소설리스트

광고 천재 명도혁-133화 (133/252)

광고 천재 명도혁 133화

“AT케이블과 브랜드 All은 전혀 다른 성격의 제품군입니다. 기획의 처음으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제안서의 첫 장으로 화면이 이동했다.

“AT 케이블은 최근 엄청난 속도로 성장하고 있습니다. 특히 도심 지역에서의 선전이 눈에 띕니다. 서울을 비롯한 주요 광역시에서 1위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다만 지방에서는 지역 케이블이 강세이다 보니 시장을 뚫는 것이 쉽지 않은 실정입니다.”

“그래서 저는 세련되고 독특한 광고로 도심 시장을 공고히 하는 광고가 나오지 않을까 기대했던 겁니다.”

“말씀하신 부분 충분히 공감합니다. 하지만 저희가 실시한 설문 조사 결과를 한번 보시겠습니까?”

도혁이 화면을 클릭해 설문 조사 결과를 보여주었다.

“문항을 보시면 사용하고 있는 상용 인터넷과 케이블 TV 브랜드를 교체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요인으로 가격과 사은품을 들었습니다. 또한 이 부분을 주목해 주시기 바랍니다.”

화면 한곳을 크게 확대하자 문항의 결과가 상세하게 보였다.

“기존 케이블 TV 브랜드를 바꾸지 않는다는 쪽이 훨씬 많이 나왔습니다. 그 첫 번째 이유는 보다시피 귀찮아서입니다. 바꾼다는 쪽은 경쟁사의 사은품 때문이라고 합니다.”

“사은품과 묶음 상품 경쟁이 아주 치열하죠. 전쟁통입니다.”

AT 케이블 대표가 쓴 입맛을 다셨다.

“맞습니다. 결국 이 말은 고객과의 최접점, 그러니까 현장에서 매출이 결정된다는 것이고 이는 티저와 같은 추상적인 광고로 접근할 사항이 아닙니다. 이미 지역 케이블이나 타 경쟁사에 비해 훨씬 세련된 이미지를 가지고 있으니 그 부분은 걱정 안 하셔도 되구요.”

브랜드 이미지 선호도 결과 조사를 확인한 AT텔레콤 대표가 그제야 미간의 주름을 폈다.

“그래도 K사보다는 우리 회사 이미지가 좋군요. 다행이네.”

“그룹 전체의 브랜드 가치를 방영하는 부분도 있으니까요. 추상적인 광고는 그룹 이미지 광고에 묻어가셔도 괜찮을 듯합니다. 그리고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텔레콤인지 케이블인지 인터넷인지, 소비자들은 제대로 모르기도 합니다. 로고까지 통일되어 있는 데다 핸드폰 매장에서 판매하는 경우도 많으니까요.”

“하긴. 매우 일리 있는 말입니다.”

그룹 이미지 광고에 묻어가라는 말에 AT케이블 대표가 짧게 끄덕였다.

돈이 굳는 소리였으니까.

도혁이 화면으로 바꾸며 AT케이블 대표에게 물었다.

“로열패밀리께 여쭙기 부적절한 질문이긴 합니다만, 혹시 대표님 댁에는 TV가 몇 대 있습니까?”

“의외로 많이 없어요. 세 대 있네. 어머님 방과 거실, 아이들 방 이렇게요.”

“그렇다면 가족이 함께 거실에서 시청할 때도 많겠군요.”

“맞아요. 평소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을 중요시하기 때문에 티타임은 항상 거실에서 AT케이블 TV를 보고 있습니다.”

‘AT케이블’을 강조해 말하는 대표를 보고 도혁이 미소를 지었다.

“말씀하셨듯이 TV는 가족이 함께 시청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꼭 보지 않더라도 배경처럼 틀어놓기도 하구요.”

“아, 맞아요. 배경. 가끔은 TV가 벽지처럼 느껴질 때도 있어요. 어머님이 안 보셔도 꼭 틀어놓더라구요. 적막하다고.”

“네. 그런 점에서 개인적인 매체인 핸드폰과 달리 TV는 가족 친화적인 매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말에 좀 더 공감하려면 20년은 더 지나야겠지.

도혁은 온 가족이 모인 명절조차 각자의 스마트폰에 고개를 묻고 있던 회귀 전의 시간들을 떠올렸다.

한숨을 삼키며 도혁이 화면을 전환했다.

“앞서 보신 조사 결과를 종합해 보겠습니다. 도심 지역에서 AT케이블은 시장 1위를 차지하고 있고 이미지도 좋습니다. 또한 소비자들은 경쟁사에서 더 큰 사은품이나 현금을 걸지 않는 한 굳이 케이블 TV를 바꿀 생각이 없으며 이는 이미지 광고가 아닌 현장 프로모션과 마케팅을 강화할 부분입니다.”

“정리해서 보니 공감이 되네요.”

“따라서 지방으로 시장 확대를 통해 매출의 증진을 꾀하고 브랜드 충성도를 공고히 하는 것이 가장 공격적이고도 확실한 방안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에 가족 친화적인 광고를 기획한 것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이 있습니다.”

숨을 고른 도혁이 타깃 분석으로 화면을 전환했다.

“지역으로, 그러니까 수도권과 광역시를 제외한 지방까지 시장을 확대하려면 노인 계층을 공략해야 합니다. 하지만 이 타깃은 제품, 그러니까 인터넷과 케이블 TV에 대한 이해도가 부족하고 브랜드에 대한 인지도 희박합니다.”

“아무래도 그렇죠.”

“심지어 케이블 TV 자체를 잘 모르시기도 합니다. 거의 공중파만 보시는 거죠.”

“서너 가지 채널이 지배하는 지역이 아직도 많긴 합니다.”

“이곳을 공략하기 위해서는 어르신들을 타깃으로 광고하는 방안으로 효과를 보기 어렵습니다. 어르신들은 움직이시지 않으니까요.”

도혁이 CF 카피 중 한 곳을 강조해 보여주었다.

[어머니! 시골집에 케이블 TV 놔드려야겠어요. 요즘 심심하시다면서요.]

“시골집에 케이블 TV를 놓아드리는 건 자식들이라야 합니다. 케이블 TV가 뭔지도 모르는 어르신들이 직접 케이블을 개설할 확률도 낮을뿐더러 부모님 세대는 쓸데없이 돈을 쓴다고 생각하실 확률이 높습니다.”

“300개 채널 한 번이라도 체험해 보시면 좋아하실 텐데요.”

“그렇기에 경험을 해보시는 것이 가장 중요한데, 그 역할을 자식들이 해줘야 하는 거죠. 그리고 그편이 AT텔레콤에게 유리합니다. 도시에 사는 자식들은 AT케이블 브랜드를 가장 선호하거든요.”

“그렇군요!”

AT텔레콤 대표가 CF 상영을 다시 요청했다.

“다시 한번 CF를 틀어보시죠. 기획안을 본 다음이니, 한 번 더 찬찬히 보고 싶군요.”

안경을 고쳐 쓴 AT케이블 대표가 뚫어지게 화면을 바라보았다.

“가족 감성을 강조하기만 한 줄 알았는데 설명을 듣고 보니 엄청나게 계산적인 광고네요?”

“맞습니다. 휴머니즘 감성 소구는 거들 뿐이죠. 철저하게 마케팅적인, 그리고 최종적으로 지갑을 여는 사람과 그 소비자의 선호를 공략한 광고입니다.”

“이런 표현 좀 그렇지만, 약간 죄책감도 느껴진달까요? 그 어르신이 TV 볼 때마다 자식 걱정을 하면서도 귀찮을까 봐 전화조차 못 하는 부분이 잘 표현되어 있습니다.”

“모두 마케팅을 위한 빌드업입니다.”

“이런.”

AT케이블 대표가 호탕하게 웃어젖혔다.

“휴머니즘 광고 속에 그런 뜻이 숨어 있을 줄이야.”

“할머니 연기에 감동하셨는데 파괴해서 죄송합니다. 우리 마케팅하는 사람들이 무작정 착하지가 않아서요.”

“그건 사업가들도 마찬가지죠. 아무튼 좋습니다. 사실 아까부터 이럴 줄 알았어요. 의도를 찬찬히 듣고 싶어서 잠시 골이 난 척했던 겁니다.”

“네. 의도를 간파하고 계셨을 거라고 짐작하고 있었습니다.”

딱히 AT 대표가 그랬을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맞장구쳐 줬다.

이런 상황에서의 광고주 대처법을 가르쳐 준 탁기준 선배에게 고마워하면서.

도혁의 말에 AT케이블 대표가 고개를 주억였다.

“일부러 CF부터 보여주셨구만. 충격요법 맞지요?”

“그렇습니다. CF를 보고 기획안의 설명을 듣는 편이 효과적인 광고이기도 했구요. 감성 소구 속에 숨겨진 마케팅의 기법을 대표님이 공감해 주셔서 프레젠테이션이 편안했습니다. 감사드립니다.”

“이런, 내 아까 AT그룹을 가지고 논다고 말씀드렸잖아요.”

AT케이블 대표가 부연했다.

“그거 진심입니다. 젊은 친구가 어떻게 이렇게 광고를 가지고 노나, 신기해서요. 난 저 나이에 뭐 했나 싶어서.”

“그때도 경영 수업 열심히 받으셨잖아요.”

“유학하면서 연애나 하고 돌아다녔죠, 뭐. 아무튼. 매우 인상적인 기획안이었습니다.”

AT케이블 대표가 도혁에게 차를 권하며 계약서를 들이밀었다.

“일단 도장부터 찍으시죠? 이 광고를 K사에서 볼까 두렵네요.”

“네. 그렇게 하시죠.”

“참 신기하단 말이지. ALL 캠페인과 완전히 다른 회사에서 만든 것 같은데 각각 완성도가 뛰어나요. 정말 AT 브랜드를 가지고 노는 느낌이라니까요.”

“그렇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명 대표 정말 서른이 안 된 게 맞아요? 나이 속인 것 아닙니까?”

도혁이 멋쩍게 웃었다.

* * *

급하게 체결할 계약이 하나 더 있었다.

성격이 급한 AT케이블과의 성공적인 계약을 마치고 도혁은 또 다른 계약을 하기 위해 부동산으로 발을 돌렸다.

“어서 오세요. 어! 지난번에 사무실 알아봤던 총각 맞죠?”

“네. 맞습니다. 반갑습니다.”

“사무실에 무슨 문제라도 있어요? 그 건물주가 해외에 있어서 제가 위탁 관리하고 있거든요.”

“문제는 아니구요. 사무실을 확장 이전할까 해서요.”

“벌써요?”

부동산 아주머니의 눈이 커졌다.

“인근에 적당한 곳이 있을까요? 지금 사무실 두 배 정도 규모를 원합니다.”

“잠시만요. 아! 혹시 그 임대한 층에 변호사 사무실 임대 나온 거 알아요? 그 사무실을 쓰면 편하지 않겠어요? 이사 안 가도 되고.”

“확장해도 되나요?”

“그건 제가 알아볼게요. 바로 앞이니까 그냥 같이 쓰는 게 제일 좋죠. 공사 안 해도 되고.”

구조물 변경은 꺼리는 눈치였다.

하긴 사옥이 생기더라도 사업부별로 층별로 분리해서 사용해야겠지.

도혁이 일단 임대가 나온 곳을 보겠다고 하자 아주머니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그 자리, 대박 나기로 유명해요. 지금 있는 변호사 사무실 있잖아요? 빌딩 지어서 나가잖아요!”

“아, 그 이혼 전문 변호사 말씀이시죠? 뭐, 앞으로도 쭉 호황일 겁니다.”

전생의 경험과 연이어 치솟는 대한민국의 높은 이혼율을 생각하며 도혁이 씁쓸하게 웃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아주머니는 신이 나서 건물 홍보 중이었다.

“나중에 성공하면 그 건물 통째로 사버려요. 그 자리가 아주 좋아요. 운도 운이지만 요 앞에 지하철 뚫린다는 소문이 파다하다구요. 바로 앞에!”

“그거 솔깃하네요.”

처음부터 알고 들어간 겁니다만? 당연히 나중엔 그 건물 사려고 임대한 거였다.

곧 지어질 지하철 역세권 그 자체였으니까.

광고할 때 과장하는 지하철 도보 1분 거리가 아니고 진짜 1분 거리.

현재 시가의 20배는 오를 건물이었다.

“지금 이 건물 얼마예요?”

“올~ 총각 역시 화끈하구만.”

좀 더 화끈하게 인근 아파트 가격까지 꼼꼼하게 알아본 후 투자처를 점검했다.

그리고 늘 그렇듯 이것저것 간식거리를 손에 들고 사무실로 들어가던 참이었다.

마침 담배를 피우고 들어오던 황도준과 도무진이 도혁을 보고 달려왔다.

“뭘 이런 걸 또! 감사합니다!”

“황도준. 인마, 프레젠테이션 결과부터 물어야지, 치킨이 먼저 보이냐?”

“앗! 그러네요. 당연히 잘하셨겠지요. 믿고 있으니까 안 여쭤본 거죠.”

계약은 떼놓은 당상이라며 치킨에만 열중하는 둘을 보자 장난기가 발동했다.

오랜만에 애들 좀 놀려줘 볼까?

“하, 미안하다. 이렇게 믿고 있는데.”

“네에? 자, 잠깐만요. 대표님.”

“직원들 볼 면목이 없어서 들어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망설이고 있었어.”

황도준과 도무진이 나라 잃은 표정으로 도혁을 올려다보았다.

웃음을 겨우 삼킨 도혁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하아, 먼저 들어갈래? 난 마음을 좀 추슬러야 직원들 볼 수 있을 것 같다.”

“대, 대표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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