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광고 천재 명도혁-132화 (132/252)

광고 천재 명도혁 132화

AT케이블 CF 내부 시연이었다. 전 직원이 모여 감평을 시작했다.

“이거 떨리는데? 담당 AE로서 책임감이 느껴진다고나 할까?”

“정작 제작 감독님께서는 전혀 그런 기색이 아니십니다만?”

차현우가 긴장하자 도혁이 멀찌감치 앉아 있는 강태오를 가리켰다.

그는 새끼손가락으로 귀를 파고 있었다.

“저 인간 저거, 더럽게. 아오.”

“그래도 나름 회사원이라고 잘 씻고 다니는 게 어딥니까? 동아리방에서 생각 안 나세요?”

“으. 생각도 하기 싫다. 화면은 그렇게 깔끔하게 뽑으면서, 참 알 수 없는 인간이야.”

애드포인트 동아리 시절을 생각하며 두 남자가 고개를 젓는 사이 CF 상영 준비가 완료되었다.

“시작하겠습니다. 모두 느낀 점을 가감 없이 말씀해 주시면 최종 수정본에 반영할게요.”

“네! 알겠습니다!”

CF가 돌아가고 전 직원이 화면에 집중했다.

“설마, 이걸 강태오 팀장님이 만들었다구요?”

“저기…… 잠깐 눈물 좀 닦고 올게요.”

“이런 휴머니즘을 하아, 도대체 강 팀장 못하는 게 뭐야?”

역시 예상대로의 반응.

선이 굵으면서도 세련된 크리에이티브 결과물을 내는 강태오가 파격적인 변신을 선보였다.

ALL 광고를 생각한다면 정반대나 다름없는 시도에 직원들의 호평이 이어졌다.

“에이, 이 광고에 수정할 부분이 있나요?”

“나도 어떻게든 흠잡아보려고 기를 썼는데 딱히 고칠 게 안 보이는데요?”

“반응이 좋아 다행이네요. 보시다시피 모델이 시골 어르신들이라서 다시 촬영하기 상당히 어렵습니다. 로케를 뛰는 것도 문제지만…….”

“밤낮으로 술을 마셔야 합니다. 그것도 항아리째 들이부어야 한다고요.”

재촬영이 불가하다는 도혁의 말에 황도준이 부연했다.

술이라면 입맛부터 다시고 보는 둘이었지만 어촌 마을 어르신들에게 두 손 두 발 다 들고 내려왔던 것이다.

“아무튼 전체적으로 지적할 부분 있으시면 지금 가감 없이 말씀해 주세요. 곧 광고주 브리핑입니다.”

“고칠 만한 점이 있나요? 대표님 눈에는 보이세요?”

“솔직히 말하자면, 아니요. 전혀 없습니다.”

최민아가 쿨쩍 코를 풀며 강태오를 바라보았다.

“강태오 팀장님 미쳤어요. 원래 감각, 감각 노래 부르던 크리에이터 아니었나요? 이거 다른 사람이 찍은 거죠?”

“찍기는 우리 진우가 찍었지. 난 손만 슬쩍 대고.”

“거짓말입니다! 저는 시키는 대로 조정만 당했습니다.”

도혁의 말에 이진우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시키는 대로 찍을 수 있는 놈도 대단한 거야. 아무튼 이번 광고 컨셉을 너무 잘 표현했다고 생각합니다. 나도 휴머니즘은 강태오 팀장이랑 안 어울릴 줄 알았는데, 이렇게 찰떡같이 찍을 줄은 몰랐어요.”

영상미 얘기가 나오자 모두 동시에 강태오를 바라보았다.

그는 신입 사원 자리에서 팽이처럼 생긴 장난감을 돌리며 장난을 치고 있었다.

딴짓을 하고 있는 모습이 아주 바보 같았다.

“저럴 때 보면 어디 모자란 사람 같은 데 말이지.”

“완성작을 보면 그런 느낌이 싹 사라지죠.”

“세련된 작품만 잘하는 게 아니었어. 이번 작은 휴머니즘 그 자체였고 심지어 모델도 어르신이었잖아. CF 따라 맞추는 톤이 예술이야. 진심 죽을 때까지 같이 일하고 싶은 사람이다.”

직원들이 속닥거리는 소리를 듣곤 차현우가 큰 소리로 강태오를 불렀다.

“여기 너 띄워준다고 난린데 팽이나 돌리고 있냐?”

“팽이 아니고 스피너거든?”

“아무튼 삼 년 안에 강태오 국제 광고제 상 받는다에 천 원 건다.”

“야! 차현우 천 원은 너무 한 거 아니냐?”

장난처럼 티키타카를 하고 있었지만 모두 승리를 확신했던 감평회였다.

“그럼 발표는 강태오 팀장이 하는 건가?”

“흠, 강태오 팀장이랑 이번 프레젠테이션이랑 안 맞지 않나? 작품 톤이야 프로듀싱이니까 그렇다 쳐도 저 자식은 진지한 스타일 안 어울려. 그냥 인간 자체가 그래.”

차현우의 말에 모두 세차게 고개를 주억였다.

아무렴 차분한 휴머니즘 광고에 강태오라니.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그가 다시 새끼손가락으로 귀를 비비적거리고 있었다.

도혁이 한숨을 내쉬며 실내를 둘러보곤 결심한 듯 입을 떼었다.

“이번엔 제가 할게요.”

“오! 명 대표님께서 직접 하신다고요?”

“네. 이번 발표는 확정했던 컨셉대로 마케팅 부분은 건조하게, CF는 훈훈하게 표현하는 게 관건입니다. 제가 하죠.”

도혁이 프레젠터를 하겠다고 나선 건 처음이었다.

의외로 대표가 전면에 나서자 환호성이 터졌다.

“오! 우리 모두 응원 가야겠는데요?”

“최민아, 플래카드 제작해! 문구는 내가 써줄 테니까. 경축! 명도혁 대표의 프레젠테이션을 축하합니다.”

차현우의 농담에 한번 입매를 끌어올리곤 대답했다.

“조용히 다녀오겠습니다. 도준이 정도만 같이 가면 될 것 같아요. 어차피 단독이고 AT케이블은 계약서 도장 찍은 거나 마찬가지니까요.”

“올! 자신감.”

“DW애드 코리아 평균연령 26.5세. 우리 앞길 막을 게 있습니까? 직진하는 거죠.”

“그렇지. 플래카드 문구 또 나왔다. 받아 적어!”

그렇게 PT 당일에 현수막이 제작되었다.

도혁의 간곡한 만류로 대표실 안에만 설치했지만 말이다.

[필승! 평균연령 26.5! DW 직진 코리아!]

“하아, 이렇게 힘이 안 나는 응원 문구는 처음인데? 이 촌스러운 카피는 누가 썼어!”

“대표님이요. 그날 말씀하신 그대로 받아 적은 거라구요.”

노트북을 챙기며 황도준이 도혁을 돌아보았다.

“이야, 평소에도 그렇지만 오늘은 뭔가 더 대표님 같으십니다.”

“대표님 같은 건 또 뭐냐.”

“있어 보인다고요. 역시, 포스가 남다르십니다.”

황도준이 옷매무시를 살피는 도혁을 보고 엄지손가락을 들어 올렸다.

차현우가 들어와 마지막으로 기획안을 꼼꼼히 살폈다.

“시나리오 정리도 잘 되어 있고 안 봐도 수백 번 연습했을 거고.”

“프레젠테이션 연습은 지나치게 하라고 배웠습니다. 저 인간 돌았나 싶게 연습해야 평타라도 친다고.”

“그건 맞지. 연습 많이 하니까 안 떨리지?”

“네. 선배님들처럼 완전히 담담하지는 못해도 마음은 차분합니다. 뭐, 잘되겠죠.”

“당연히 잘될 거야. 명 대표님 그럼 계약 도장 잘 찍고 오십시오.”

도혁은 인감을 챙겨 들고 출발했다.

* * *

드물게 대표실에서 이루어지는 시연회였다.

AT케이블 대표가 악수를 청하며 환대했다.

미팅으로 자주 드나들면서 느낀 거지만 분위기가 밝은 회사였다.

대표의 긍정 에너지가 회사 곳곳에 스며든 느낌이라고나 할까.

“우리 젊은 대표님, 직접 PT하신다고 들었습니다. 오늘 기대가 큽니다.”

“최선을 다해보겠습니다.”

“차부터 드세요. 편하게 합시다. 경쟁 PT도 아니고 우리끼리 보고 감평하는 거니까요.”

분위기를 풀어줄 커피가 나오고 AT케이블 대표가 기대에 찬 눈으로 도혁을 바라보았다.

“어떤 광고가 나올지 완전 기대 중이에요. 제가 ALL 캠페인의 성공을 눈앞에서 봤잖아요. 그때 우리 AT그룹 회장님이 칭찬하시던 걸 명 대표님이 보셨어야 했는데.”

“영광입니다.”

“저희 AT케이블 CF도 그 이상의 작품이 나왔겠죠?”

도혁이 AT케이블 대표에게 현실을 말해주었다.

“오늘 저희가 가져온 광고는 ALL 캠페인과는 전혀 다른 느낌입니다.”

“그래요? 케이블 TV도 충분히 감각적인 매체 아닙니까? 미디어 산업의 선두 주자인데, 저는 ALL과 같은 세련된 스타일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AT케이블 대표의 눈초리가 사정없이 올라갔다.

험난한 PT 타임이 예상되었다. 하지만 진심이 통할 거라는 확신이 있었다.

모든 창작자는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줄 때 가장 진실한 법이니까.

오늘 도혁은 유년 시절을 함께했던 할머니를, 더불어 대한민국의 가족에 관해 말하려고 한다.

화면에 가득 도혁의 할머니가 클로즈업되었다.

“지금부터 AT케이블의 마케팅커뮤니케이션 제안을 위한 프레젠테이션을 시작하겠습니다. 먼저 CF부터 보시죠.”

“CF부터요?”

AT케이블 대표가 의아한 표정으로 도혁을 바라보았다.

시장조사부터 기획 방향 컨셉 도출의 과정을 거쳐 CF를 마지막에 보여주는 방식이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대표가 직진하는 성격이라니 거기에 맞춰서 구성한 것이다.

“결론부터 보고 말하자는 거군요. 아주 좋습니다.”

“네. 그럼 CF 먼저 보시고 말씀 나누시죠.”

방에서 마늘을 까며 TV를 보고 있는 할머니의 모습, 주름진 눈이 끔뻑이는 모습이 클로즈업되어 무료하고 담담하게 그려진다.

거친 손으로 어딘가에 전화를 걸려다가 내려놓고 혼잣말을 하신다.

“당뇨에 율무가 좋다는데……. 애비 좀 챙겨줄까.”

다음 날 마을 회관에 모여 TV를 보시던 할머니들. 조금 수다를 떨다가 대화가 잦아들고 TV 화면만 무료하게 바라보고 있다.

다시 전화기 들었다 놓으며 혼잣말을 하시는 할머니. 차마 전화를 걸지 못하고 망설이는 모습이다.

“내일 춥다네. 애들은 잘 있는가 모르것다.”

장면이 전환되고 두 노부부가 TV를 보고 있다.

역시나 고요한 정적 속에 TV 소리만 사위에 울린다.

“주말인데 애들한테 전화 한 통 해볼까?”

“쉬는데 귀찮게. 내버려 둬.”

이번에도 자식에게 연락을 하지 못하고 전화를 바라보던 부부, 다시 시선을 TV로 돌린다.

재미는 없지만 습관적으로 보고 있는 무료한 모습이다.

순간 전화벨이 울리고 할머니가 수화기를 든다.

-어머니! 시골집에 케이블 TV 놔드려야겠어요. 요즘 심심하시다면서요.

“아이고, 그렇게 마음 안 써도 되는데.”

잔잔하던 화면이 밝게 바뀌고 TV를 보며 환하게 웃고 있는 할머니의 얼굴 아래로 카피가 흐른다.

[어머니의 TV 속에는 자식 생각뿐입니다. 어머니의 세상을 넓혀주세요.

300개의 채널, 300개의 새로운 세상. AT케이블과 함께하세요.]

엔딩 컷, 자식에게 온 전화를 한 손으로 받으며 손을 휘휘 젓는 할머니. 시선은 TV에 고정되어 있다.

“그려. 옷 잘 챙겨 입고. 케이블 연속극 시작한다! 끊어!”

AT케이블 대표가 엔딩컷을 보고 입매를 끌어올렸다.

“할머니 변심하셨네요. 자식 전화도 끊어버리시고.”

“AT케이블 TV의 재미와 감동을 알아버리셨으니까요.”

농담처럼 진담을 건네는 도혁을 바라보며 AT케이블 대표가 말했다.

“제가 오늘 일부러 CF 콘티를 미리 보지 않고 들어온 걸 아십니까?”

“네. 전해 들었습니다.”

“감이 좋은 편이라서요. 첫 느낌을 날것으로 느껴보려고 콘티를 한 글자도 안 읽어봤어요.”

“저 역시 CF의 첫인상을 강조하고자 결과물부터 방영했습니다. 느낌이 어떠셨습니까?”

AT케이블 대표가 안경을 고쳐 쓰며 도혁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재밌어요. 재밌어. 젊은 친구가 이렇게 우리 AT를 가지고 논단 말이지.”

“대표님. 어떤 의미이신지요.”

“이건 ALL과는 완전히 결이 다르지 않습니까? 티저와 같이 감각적인 스타일을 원하는 걸 알고 있었을 텐데.”

“제품이 다르니까요.”

도혁이 명료하게 대답했다.

“그리고 시장성의 확장 방향도 명확하게 다르기 때문입니다. 어떤 말씀을 드리는지 잘 아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주변의 공기가 팽팽해지고 두 남자의 눈길이 허공에서 부딪혔다.

“제품의 결이 다르기에 기획부터 컨셉, 그리고 결과물까지 AT케이블에게 가장 필요한 CF를 만들었다고 자부합니다.”

도혁의 확신에 찬 목소리가 사위를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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