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광고 천재 명도혁-124화 (124/252)

광고 천재 명도혁 124화

“우리는 모두 스물한 살이 되고 싶으니까요.”

차현우가 숨을 고르며 말을 이었다.

“이십 대는 모두가 동경하는 나이입니다. 십 대는 빨리 성장해서 스무 살이 되고 싶어 하고, 삼십 대 이상은 지난 시절을 추억하죠. 그것이 스물한 살의 특별한 매력이라고 할 수 있지요.”

“스물한 살의 매력이라구요?”

“네. 스물에서 한 살을 더한 것은 약간 더 성숙하면서도 시작하는 느낌을 주기 위해서입니다. 또한 저희는 ALL이라는 새 브랜드의 타깃을 양분하여 소구했습니다.”

“토마토와 오렌지로요?”

놀란 눈빛을 감추지 못하는 AT텔레콤의 상무가 질문을 쏟아냈다.

“그렇습니다. 토마토는 막 성인이 된 스물한 살의 청춘에게 던지는 세상의 편견과 질문입니다. 스무 개의 토마토를 맞은 청년이 마지막 토마토를 강속구로 날리죠. 그것이 바로 세상에 대한 청춘의 대답입니다.”

“적극적인 대응이군요.”

“그렇습니다. 나만의 자유를 외치는 스무 살의 모든 것을 건 ALL 브랜드의 이미지를 표방한 것입니다. 저희가 만약 AT텔레콤의 마케팅커뮤니케이션을 진행한다면 샘플 광고와 비슷한 톤으로 남녀 모델 모두 선정해서 촬영하고자 합니다.”

차현우의 말에 상무가 끄덕이며 오렌지 광고에 대해 물어왔다.

“첫 비주얼도 파격적이었는데 블루 오렌지를 보고 더 놀랐습니다. 의미를 설명해 주세요.”

“네. 블루 오렌지는 기성세대를 향한 삶의 목소리입니다. 아버지다운, 아들다운, 그리고 상무님이라면 한 회사의 상무다운 역할이 쏟아지는 기성세대의 무게감을 나타낸 것이죠.”

“그래서 마지막에 오렌지를 붙잡아 던지는 모습을 보고 후련한 기분이 들었군요.”

“그렇습니다. 그 마지막 오렌지는 기성세대의 저항이자 다른 의미로는 자녀 세대인 ALL 세대를 향한 응원의 메시지입니다. 마케팅적으로는 ALL 브랜드인 AT텔레콤을 선택해서 자녀를 응원하라는 뜻이기도 하죠.”

“하하. 그게 그렇게 연결되는군요.”

상무의 입가에 드디어 미소가 번졌다.

차현우가 놓치지 않고 빠르게 부연했다.

“쿨한 배경과 붉은 토마토, 웜톤의 레이아웃에서 번져가는 블루 오렌지의 빛깔이 대조를 이루며 메시지를 강조합니다.

이를 통해 마케팅적으로는 대조적인 타깃을 동시에 소구하는 효과를 노렸습니다. 자녀는 파격적이고 세련된 이미지의 ALL 브랜드를 동경하고 구매를 조르게 될 것입니다. 그 후 매장에서 ALL 브랜드를 선택하는 것은 부모 세대인데요, 자녀를 응원한다는 이미지를 이미 각인한 상태에서 구매에 이르게 됩니다.”

“무의식적으로 말이군요?”

무의식을 자극하는 광고. 강렬한 영상의 핵심을 설명하는 차현우의 눈동자가 빛을 냈다.

“그렇습니다. 십 대 타깃이지만 십 대에게만 어필하게 되면 결국 최종 소비자인 부모 세대를 공략해야 하는 건 필드의 유통망입니다. 그렇게 되면 유통 쪽에서 부담이 너무 커지니까요. 가격으로 후려쳐야 하는 부분도 커지다 보니 고급 이미지가 깨지기도 쉽구요.”

“그렇겠군요.”

“따라서 저희는 파격이 오히려 브랜드 고급화 전략을 이어가기 쉽다고 판단했습니다.”

차현우가 마지막으로 앞으로 나가 무언가를 던지는 시늉을 했다.

흉내 냈을 뿐이었지만 모두 흠칫 놀랐다.

“파격. 저희가 선보이는 광고는 파격적입니다. 하지만 이 파격은 모든 것을 철저히 계산해서 만들어낸 빌드이기도 합니다. 저희 DW애드가 던진 마지막 파격의 대답을 손에 넣으셨기를 바라며 이상 발표를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상무가 천천히 의자에 등을 기대며 아주 느릿하게 박수를 쳤다.

그의 눈치를 보며 광고주와 대행사 사람들이 하나둘 박수를 따라 치기 시작했다.

차현우가 자리로 돌아오자 도혁이 의자 밑으로 작게 브이를 그려 보였다.

‘차현우 선배. 연습보다 10배는 잘한 것 같다.’

잘되든 안 되든 DW애드에서 하고 싶은 얘기는 다 했다.

여한이 없이 후련한 표정으로 도혁이 분위기를 살펴보았다.

“채택되는 팀은 내일 전화로 연락드리겠습니다. 고생 많으셨습니다.”

공식적인 행사가 끝나고 하나둘 회의실을 빠져나갔다.

고생한 차현우와 사우나라도 가려던 참이었다.

“DW애드 코리아 분들은 상무실로 함께 가시죠. 제가 안내하겠습니다.”

등 뒤로 홍보팀장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 *

토마토, 오렌지, 키위 그리고 레몬.

색색깔의 과일이 놓인 테이블에 DW애드 직원들이 모여 앉았다.

“드디어 우리가 태강을 꺾는 날이 오는구나. 아, 감동이다.”

“태강을 이긴 건 좋은데 우리 이정민 팀장님 얼굴 뵙기가 민망하겠구만.”

“탁 선배님, 그래서 PT 당일에 안 가신 거죠?”

“공과 사는 구별하니까 꼭 그런 건 아니지만 뭐, 껄끄럽기는 하지. 아무튼. 대단한 우리 DW애드 코리아. 자축 파티합시다!”

탁기준이 레몬 하나를 천장에 올렸다 잡으며 기뻐했다.

“자축 파티는 모레 탁 선배님 결혼 피로연에서 하기로 하고, 일단 과일 주인 좀 찾아줍시다. 과일은 정했는데 정작 과일의 주인이 없다구요.”

“남자 모델은 임한율 확정이고, 이 레몬의 주인공 여자 모델 때문에 그러는 거지?”

도혁은 당연히 전생의 AT텔레콤 모델을 떠올렸지만, 어디서 어떻게 섭외해야 할지 난감했다.

신선한 마스크가 CF에 딱 어울렸지만 전생에 인연이 없었고 이름과 얼굴 정도밖에는 몰랐기 때문이었다.

도혁이 고민하는 걸 본 차현우가 오디션을 제안했다.

“기존 모델 중에 떠오르는 사람이 없다면 오디션은 어때?”

“아예 신인이 오히려 어울리지 않을까 고민하고 있었는데 역시 오디션이 좋겠죠?”

“내 생각도 그래. CF 이미지상 신인이 어울리니까 굳이 비싼 기성 모델을 쓸 필요가 있나 싶어.”

“좋습니다. 그럼 오디션 진행하고 강태오 선배가 주관해서 현장에 어울리는 모델을 찾는 걸로 해요.”

“오케이. DW애드에서 진행하는 두 번째 오디션 프로그램이 되겠구만. 진우랑 같이 추진해 볼게.”

이진우가 고개를 주억이며 레몬을 꺼내 들었다.

“샘플 CF 보고 완성본 엄청 기대 중입니다. 제가 콘티 짤 때는 이 정도 비주얼이 나올 거라고 상상조차 못 했어요. 정말 팀장님들 대단하세요!”

“우리가 실력이 좀, 장난 없지.”

굳이 겸손하지 않겠다며 강태오가 손가락으로 브이를 만들어 보였다.

도혁이 한 가지 더 아이디어를 냈다.

“이참에 엄마 아빠 모델도 오디션으로 뽑으면 어떨까요? 대국민적으로 진행하면 되지 않겠어요?”

“오! 일반인 모델? 그것도 중년으로? 오! 괜찮은데?”

“네. 그렇게 화제도 끌고 브랜드 친화도도 올리구요.”

“난 맘에 쏙 들어. 강태오 팀장 생각은 어때?”

강태오가 팔짱을 끼고 조금 생각하더니 오케이를 외쳤다.

“일반인 모델로 연기가 될까 싶기도 한데. 흠. 감독이 워낙 탁월하니까. 내가 잘 찍지 뭐. 진행합시다!”

“콜! 그럼 오디션 포함해서 전체 스케줄 잡고 광고주 미팅 들어가도록 할게요.”

도혁이 탁기준을 담당 AE로 지목했다.

“AT텔레콤은 아무리 생각해도 우리 탁기준 팀장님이 전담으로 맡아주셔야겠어요.”

“첫 대형 광고주인데 영광입니다. 대표님. 신혼여행이 좀 걸리지만 미팅 일정 조율하면 될 것 같긴 한데.”

“초반엔 제가 좀 더 신경을 쓸게요. 그럼 팀별로 업무 조율하고 퇴근 준비들 하시죠.”

“일거리 던지고 퇴근하라는 거 봐. 하여간 우리 명 대표 고단수예요.”

“그런 거 아닙니다. 저의 진심은 언제나 오늘 할 일 내일로 미루자는 거예요. 사훈으로 써 붙여놔야겠다.”

이놈의 일 중독자들 때문에 할 일을 미루고 퇴근하라고 써 붙여야 할 판이었다.

도혁은 회의실을 나가는 직원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저절로 광대가 승천했다.

‘세상에 없는 꿈의 회사를 만드는 게 목표였는데, 진짜 판타지에서나 있을 법한 직원들이구만.’

그리고 며칠 후 판타지에서나 나올 법한 결혼식이 펼쳐졌다.

대한민국에서 내로라하는 광고계 인사들이 한자리에 모인 것이다.

“와, 탁기준 팀장님 마당발 무슨 일이에요? 어머, 광고공사 사람들도 엄청 왔네요?”

“희주 선배도 한 사회성 하지. 둘 다 광고과 전공인 데다가 대학도 달라서 무슨 동문회 참석한 것 같다.”

S대, Y대 광고홍보학과 출신은 죄다 모인 것 같았다.

최민아가 연회장을 둘러보다가 김철준을 발견했다.

“어! 저기 김철준 대표님 계시네요! 오늘 주례 보신다더라구요.”

도혁과 태강애드 출신들이 달려가 그에게 인사했다.

말끔한 정장 차림에 흰 장갑까지 끼곤 열심히 주례문을 읽고 있었다.

“오! DW애드 식구들이구만. 일단 AT텔레콤 수주한 것 축하해. 그래, 우리 태강을 이긴 기분이 어떤가.”

“하, 이 기분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막상 얼굴 뵈니까 민망하기도 하고, 뿌듯하기도 하고 그렇습니다.”

“내 그 심정 잘 알지. 나도 씁쓸하기도 하고 한편으론 기특하기도 하고 묘한 기분이었어. 아무튼 지금은 그게 문제가 아니라. 흠.”

김철준이 크게 한숨을 골랐다.

“나 오늘 주례잖아. 처음 직원 주례 서는 거라서 그런지 많이 떨리는구만.”

“처음이시군요. 하긴 주례 보시기엔 많이 젊으시니까요. 사회자 같으십니다.”

“철 지난 사장한테 아부까지 할 필요는 없고. 아부까지 하고 그러나. 아무튼 신랑처럼 긴장이 되는구만.”

긴장한 표정이 역력한 김철준 곁으로 성민욱 국장이 다가왔다.

“우리 김철준 대표님 오늘 신부보다 먼저 오셨어. 어찌나 준비성이 철저하신지.”

“그럼. 우리 태강 출신 직원 둘로 성사되는 첫 번째 결혼인데 대표가 실수하면 안 되지.”

김철준이 주례에까지 프로 정신을 발휘하는 가운데 또 다른 프로들이 나타났다.

전서윤과 경수현 배우였다.

“저희 오늘 신부보다 일찍 와서 축가 연습했어요. 약속 지키려구요.”

“아니, 오늘 희주 선배는 얼마나 늦게 온 겁니까? 주례도 축가도 신부보다 일찍 왔다고 그러시네요.”

“원래 주인공은 늦게 오는 법이죠. 축가 기대해도 좋아요.”

“어련하실까요. 두 분 성격 아는데 제가 들어보지 않았지만 아마 음반 내도 될 수준일 겁니다.”

즐겁게 하객들과 인사를 하는 가운데 식이 시작되고 놀라운 퀄리티의 결혼식이 진행되었다.

완벽한 주례사, 당장 녹음을 해도 좋을 정도의 축가, 재치 있는 사회와 좋은 사람들 그리고 눈부시게 아름다운 신부.

“서희주 선배 예쁜 줄은 알았는데 미모 미쳤네요. 와…….”

“탁기준 팀장, 도둑놈이구만. 어디서 저런 공주님을 낚아채 왔지? 훔쳐 온 거겠지? 설마 연애한 거 아니지?”

“저도 정말이지 미스터리합니다, 정말.”

여기저기서 감탄이 터지고 엄청나게 많은 하객들로 붐비는 풍성한 결혼식이 끝나가고 있었다.

모두 넉넉한 마음으로 식장을 나가려는데, 멀찍이 보기 싫은 얼굴 둘이 달려와 도혁에게 아는 척을 했다.

최근 회사를 차렸다는 조덕현과 최철우였다.

굳이 왜 여기까지 온 거냐.

도혁은 마지못해 대충 인사를 건네고 돌아 나오려고 했다.

조덕현이 큰 소리로 도혁을 불러댔다.

“명 대표!! 어디 가나. 잠깐만 우리가 늦어서 부조만 좀 하고.”

서둘러 축의금을 접수한 조덕현이 도혁을 감격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아이고 명 대표! 고마워! 내 은혜를 갚아야 할 텐데.”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