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광고 천재 명도혁-117화 (117/252)

광고 천재 명도혁 117화

“그림에 관심이 많으시군요. 진품입니다.”

“네? 진품이요?”

도혁은 저도 모르게 벌떡 일어나 그림 쪽으로 다가갔다.

그림에 관심을 보이자 김선갑이 기뻐하며 설명해 주었다.

“조르주 쇠라의 진품입니다.”

“네? 정말로요?”

“그렇습니다. 자랑하고 싶어서 하는 말은 아니지만, 이 작품 경매에서 산 겁니다. 구하기가 쉽지 않았지요.”

조르주 쇠라를 경매로 샀다고? 재산도 대통령급인 건가?

도혁이 눈을 끔뻑이자 김선갑의 자랑이 늘어졌다.

“신인상주의 대표 작가이죠. 좋아하십니까?”

“네. 혹시 가까이 가서 봐도 되겠습니까?”

“그럼요, 물론입니다.”

그림으로 다가가 거장의 점묘법을 유심히 관찰했다.

수전증으로 인해 점묘법을 창안했다는 설도 있지만, 자세히 보니 이 점을 다 찍었기 때문에 수전증이 온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섬세했다.

“색이 점으로 변해 빛이 되었군요. 매우 인상적입니다.”

“오, 멋진 표현이네요. 맞습니다. 쇠라는 점을 통해 빛에 의한 색의 혼합을 그리고자 했죠. 우리 명 대표님이 그림에 조예가 깊으시군요.”

“작품 수가 적어서 구하기 힘드셨을 텐데요.”

“오래 기다렸지요. 작은 스케치인데도 시장에 잘 나오질 않아요.”

“그만큼 가치는 더 올라갈 겁니다. 무엇이든 희소성이 있어야 가치를 인정받으니까요.”

김선갑의 취향인 그림 이야기로 화제를 이끌며 제법 친근한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아이스 브레이킹은 이쯤 하기로 하고 본론으로 들어갔다.

“선생님, 저희가 원하는 것도 조르주 쇠라와 같은 희소성입니다. 김선갑 선생님의 희소성을 이용하려고 이렇게 찾아왔습니다.”

“희소성이라고요? 제 나이 또래 배우는 많을 텐데요.”

“중견 배우는 많지만 왕의 품격을 가진 분은 없으니까요. 대체 불가능한 영역을 창조하셨지 않습니까.”

도혁이 판을 깔자 탁기준이 왕의 품격이라며 추켜세웠다.

김선갑의 입꼬리가 실룩거리는 게 눈에 보일 정도였다. 하긴 중견 배우로서 최고의 찬사가 아닌가.

때를 놓치지 않고 도혁이 부연했다.

“온화한 카리스마를 대표하는 지도층의 이미지를 잘 살려서 저희가 이번에 광고를 진행해 보고자 합니다.”

“일단 들어는 보겠습니다. 아이템이 뭔가요.”

“정치입니다.”

“정치라구요?”

미소 짓던 김선갑의 얼굴에 미세한 균열이 갔다.

“정치라. 그동안 저에게 정치권에서 여러 번 러브 콜이 있었습니다. 알고 계십니까?”

“네. 당연히 그렇겠죠. 연예계 대표 인사시고 이미지도 좋으신 데다 엘리트시잖아요.”

실제로 김선갑은 명문대 정치외교학과 출신이다. 지난 총선 때도 여야를 가릴 것 없이 공천 러브 콜이 이어졌다고 들었다.

“여러 번 제의가 왔지만 모두 거절했습니다. 저는 특정 정당을 지지하지 않아요. 이것은 제가 연예계 생활을 고수하는 데 철칙입니다.”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저희 DW애드 역시 정확하게 같은 생각입니다.”

“네? 정치광고 하신다면서요.”

“모든 정당의 광고를 할 생각입니다. 단순 브로슈어 디자인이든 캠프의 캠페인을 통째로 맡든 간에 저희는 특정 정당을 지지하지 않고 모두 맡을 생각입니다.”

“오호. 젊은 분인데 생각이 깊군요. 현명합니다.”

김선갑이 끄덕이며 동조했다.

“DW애드는 정치광고를 안 하는 한이 있어도 특정 정당의 일만 하지는 않을 거라는 철칙을 세웠습니다. 저희와 함께하시면 그런 우려는 하지 않으셔도 좋습니다.”

“제가 다양한 대통령 역할을 하긴 했지만 어느 대통령을 표현하든 정치색이 묻어나지 않겠습니까?”

“네. 그렇기 때문에 대통령의 이미지를 차용해 모델로 세울 생각은 없습니다.”

도혁이 말을 끊고 김선갑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선생님, 왕이 되시지요.”

“왕이요?”

“이번 선거에서 왕이 되어주세요.”

정치광고에 왕이라니. 뜻밖의 말에 김선갑이 되물었다.

“선생님의 품격 있는 이미지에 개그 요소를 섞어서 해학적으로 표현해 볼 생각입니다. 우리가 어떤 민족입니까, 해학의 민족 아니겠습니까?”

“사극에 개그 요소를 섞겠다는 거군요. 오호. 최근에 비슷한 광고를 본 것 같습니다만?”

“게임 회사 엑슨의 광고를 보신 모양인데, 저희가 진행했습니다. 물론 이번 지자체 선거 광고는 엑슨보다 훨씬 품격 있게 제작할 예정입니다. 톤이나 씬은 장엄하게 가고 간간이 개그 포인트를 넣는 정도로요.”

처음 저택에 들어왔을 때보다는 한결 풀어진 분위기였다.

“제가 광고는 잘 안 하는데. 일단 기획안과 콘티를 보고 결정하겠습니다. 한번 가져와 보세요.”

“정말 감사합니다. 그리고 실제로 뵙고 느끼는 건데, 선생님 정말 왕이 되실 상이십니다.”

탁기준이 마지막까지 립 서비스를 잊지 않고 챙겼다.

김선갑의 광대가 실룩거렸다.

* * *

“오늘부터 DW애드 코리아의 직제를 변경합니다. 기획팀, 제작팀을 없앨 겁니다.”

“갑자기요?”

출근과 동시에 도혁이 폭탄선언을 던졌다.

팀을 없앤다는 말에 모두 놀란 기색이었다.

“본격적인 정치 캠페인 준비 작업을 시작할 겁니다. 우리가 정치색을 빼고 오로지 광고만 진행하려고 하는 걸 모두 인지하고 있을 겁니다.”

“그렇죠.”

“그걸 실행하려면 보안이 필수예요. 그래서 기획 1명, 제작 1명을 묶어서 팀을 나누어 운영하고자 합니다.”

“아, 팀을 새로 구성하는 거군요.”

“맞아요. 당연히 직원 모두 비밀 엄수 규정을 지킬 것을 굳게 믿습니다. 다만 부지불식간에 아이디어가 섞이는 걸 예방하기 위해서입니다. 당연히 팀 간에도 보안 유지되어야 하구요. 멀찍이 떨어져 앉으세요. 멀리멀리.”

“대표님 철저하시네요.”

“AE분들은 우리의 철저한 보안 정신을 정치 광고주에게 강조해서 설명 부탁드립니다. 그럼 팀을 짜볼까요?”

팀을 새로 짠다는 말에 이진우와 최민아가 손을 맞잡았다.

“어흑, 우리 헤어지는 거예요?”

“민아 씨, 보고 싶을 겁니다. 저 잊으시면 안 됩니다.”

“나는요. 난 안 보고 싶고요? 네?”

“도준이는 저어기 끝으로 멀리 가세요. 아시겠어요?”

“아니, 선배님들 이럴 겁니까?”

막내들이 티키타카를 하는 사이 팀장급은 회의실에 따로 모였다.

머리를 맞대고 새롭게 팀을 짜기 시작했다.

“이렇게 기능적으로 묶은 팀제의 성과가 더 좋으면 이대로 쭉 진행해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난 찬성. 아무리 작은 조직이라도 팀 간에 알력이라는 게 있어. 아무래도 기획과 제작은 서로 불만이 생길 수밖에 없는 구조라서 말이지.”

“맞는 말씀입니다.”

전생에 탁기준은 명도혁의 원수였지. 제작팀 쥐어짜는 악덕 AE였으니까.

그와 함께 이렇게 회사까지 차리게 될 줄은 생각도 못 했지만.

도혁은 속으로 미소를 삼키며 팀원들의 면면을 체크했다.

“팀장들이 보기에 어떻게 묶으면 좋겠어요?”

“일단 내가 수철이랑 민아 데리고 일했으면 하는데. 부산 쪽 건설 광고를 이 멤버로 진행하고 있어서 그대로 가는 게 어떨까 해. 광고 심의받고 매체 거는 것도 내가 계속하는 게 낫고.”

차현우가 건설 광고 팀을 맡겠다고 나섰다.

강태오가 그의 말에 공감하며 자기 멤버를 골랐다.

“오, 이 팀 듣기만 해도 안정적이다. 그럼 난 탁기준 팀장이랑 하고 싶어. 제작은 진우가 좋겠고. 카피는 내가 손보고 명 대표한테 컨펌받으면 될 것 같아서.”

영상 쪽에 특장점이 있는 강태오가 탁기준와 이진우를 골랐다.

제작 팀장 둘이 멤버 지명을 끝내자 도혁의 눈초리가 가파르게 올라갔다.

“잠시만요. 저 왕따입니까? 기획 담당 중에 저만 남았잖아요.”

“왜 왕따야. 황도준이 있잖아. 카피도 명 대표가 잘 쓰고 딱이네. 딱.”

“자, 잠시만요. 팀장님들, 아니, 선배님들! 도준이도 잘하긴 하지만…….”

“둘이 어떤 거 만들어 올지 벌써 기대가 되는데? 그럼 우리 가보겠습니다. 일이 많아서요!”

도혁은 망연자실하게 회의실 밖 풍경을 바라보았다.

확정된 팀원끼리 하이파이브를 하고 난리가 났다.

떨떠름하게 쳐다보고 있는데 황도준이 미친 듯이 뛰어 들어왔다.

팀 결성의 결과를 들은 모양이었다.

감격에 젖은 눈동자가 도혁을 올려다보았다.

“대표님! 대표님께서 저를 원픽으로 지명해 주셨다면서요. 저는 이렇게 인정받고 있는지 모르고. 흑흑.”

“그, 그럼. 우리 도준이가 최고지. 디자이너 중의 디자이너 아니냐.”

“대표님!! 제가 충성을 다해 모시겠습니다.”

충성 맹세까지 하면서 열심히 일할 것을 다짐하는 모습이었다.

뭐, 직원이 열심히 하겠다는데 나쁠 건 없지.

도혁은 웃으며 황도준의 앞 머리카락을 헝클었다.

“이왕 팀 된 거 우리 끝까지 한번 가보자. 명색이 대푠데 다른 팀들보다는 잘해야겠지?”

“당연합니다! 대표님이 선택한 최고의 직원, 이 황도준이 뼈를 갈아서 최선을 다해보겠습니다. 저, 민아 선배보다 잘할 수 있습니다. 대표님 믿어주세요!”

분골쇄신을 다짐하는 황도준이었다.

결의에 찬 건 황도준만이 아니었다.

다음 날 출근한 도혁은 깜짝 놀라 사무실을 둘러보았다.

“저 파티션들 뭐냐? 아니, 이렇게까지 보안을 강화하라는 말은 아니었는데?”

“어! 대표님, 이쪽 모니터에서 떨어져 주시길 바랍니다. 비밀 누설이 걱정되는군요.”

“야! 이진우!”

FM 이진우답게 보안 유지에 철저를 기하는 모습이었다. 다른 직원들도 만만치 않았다.

“필사의 각오로 내가 어제 이발까지 하고 왔지. 솔직히 이 멤버로 차현우 팀에 밀린다는 게 말이 되나?”

“헐, 강태오 팀장님! 여긴 실전으로 다져진 사람들이라구요. 하루에 우리가 뽑는 디자인 시안이 몇 개더라?”

“우린 영상이랑 프로모션으로 승부 볼 겁니다.”

“네에네에. 그러시던지요.”

팀장끼리도 유치하게 농담을 던졌지만 눈빛은 사뭇 진지했다.

도혁은 두 팀의 면면을 찬찬히 뜯어보았다.

대표로서 양 팀을 보고 있으니 절로 광대가 승천했다.

톡톡 튀는 아이디어에 안정적인 디자인이 돋보이는 차현우 팀이야 선배가 알아서 진행할 거다.

탁기준 강태오 팀이야 말할 것도 없지. 굵직한 캠페인 진행은 이쪽에서 담당하지 않을까.

문제는…….

도혁은 황도준을 바라보았다.

황도준이 엄청난 크리에이터로 성장하긴 하지만 아직은 빌드업을 쌓는 중일 뿐이다. 거기다 멤버도 달랑 둘.

하지만 대표로서 직원들 팀에 질 수는 없지.

구석 자리에서 혼자 결의를 다지고 있는 그의 눈에서 순수한 열정이 불타올랐다.

그걸 본 도혁이 황도준에게 힘을 주기로 했다.

“도준이는 오늘부터 대표실로 출근해라.”

“네??”

“명색이 대표랑 한 팀인데, 일반 직원들 사이에 섞어둘 수 있나. 안 그래?”

“와! 대표니이임!”

어제보다 백배 더 감동한 황도준이 도혁에게 달려들었다.

“대표님, 제가 뼈를 갈아서…….”

“그놈의 뼈 그만 갈고, 자. 우리 둘이 가볼 데가 있어.”

“네?”

“광고주 처음 만나보지?”

“아! 광고주! 네. 한 번도 만나 본 적 없어요.”

“직접 만나보면 은근히 도움이 될 거야. AE한테 전해 듣는 것과는 느낌이 다를 거다.”

“대표님. 저를 정말 이렇게까지 키워주실 생각이시라니! 와. 자, 잠시만요. 지금 바로 준비하겠습니다.”

황도준이 청바지부터 슬랙스로 갈아입고 오겠단다.

귀여운 자식. 은근히 케미가 좋을 수도 있겠는데?

은근히 기대되는 막내와의 첫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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