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 천재 명도혁 116화
차현우가 대표실로 들어왔다.
사실 탁기준과 차현우의 봉투에 조금 더 담았다. 팀장급이기도 했고 둘 다 기반 잡을 때까지 응원하고 싶은 마음이라고나 할까.
봉투를 열어본 차현우의 손끝이 떨렸다.
“도혁아. 이렇게 부르면 안 되는데…….”
“괜찮아요. 선배, 편하게 불러요. 둘뿐인데 뭐 어때.”
“고맙다. 다른 말이 뭐 필요하겠어. 그냥 고마워.”
“저야말로 함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우리 DW 애드 시작이 좋았어요. 사성전자 캠페인부터 현우 선배가 활약하는 바람에 뭐, 그때부터 떼돈 긁어모았죠.”
도혁이 진심을 전하자 차현우가 가슴을 쓸어내렸다.
“하아. 진짜 내가 그 날 노가다 판에 남아서 너 따라나서지 않았으면 어떻게 됐을까?”
“어떻게 되긴. 내가 삼고초려해서 데려왔겠지. 난 처음부터 애드포인트 식구들을 생각했어요. 차현우, 강태오, 한수철은 무조건 같이 간다.”
“내가, 아니, 우리 가족들 전부 너한테 감사하고 있어. 진심으로 고맙다.”
“벌써 고마우면 안 돼요. 이거 백배는 더 벌어야지.”
“하여간 욕심은. 아니, 욕심이 아닌가? 처음엔 황당무계하다고 생각했는데 우리가 이룬 성과를 보면 뭐든지 다 할 수 있을 것 같다. 지구도 씹어 먹을 수 있을 것 같다고.”
“네! 선배 할 수 있어요. 정말로.”
선배는 해냈었고, 나도 그럴 테니까.
차현우의 감격한 눈빛에 도혁은 미소로 화답했다.
그렇게 한 명 한 명에게 두툼한 흰 봉투가 전달되었다.
한수철은 애써 담담한 척했지만 많이 놀란 기색이었고, 최민아는 울컥했다.
“아, 대표님 돈이 다는 아닌데요. 아니긴 한데요.”
“왜 울고 그래. 누가 보면 내가 너 울린 줄 알겠다.”
“울린 거 맞으시잖아요. 아, 왜 눈물이 나지?”
주르륵 눈물을 흘리는 최민아의 손을 바라보았다.
자칭 타칭 금손 최민아. 저 손끝에서 고급스럽고 세련된 광고들이 쏟아지고 있었다.
재능에 노력이 더해진 진짜 금손이었다.
“뭐 제일 먼저 하고 싶어?”
“이사 가고 싶어요.”
“이사?”
“옥상이 있는 집으로 가고 싶어요. 별도 보고 해도 보면서 그림 그리고 싶어서. 아, 당장 알아보러 가야겠어요.”
“민아야.”
이 소박한 디자이너에게도 큰 꿈을 줘야겠다.
“옥탑방이 펜트하우스가 되게 만들어줄게.”
“대표님 잠깐만요. 펜트 뭐라구요?”
“펜트하우스. 평생 하늘 보고 그림 그려. 뭐, 심심하면 수영장에서 수영도 하고. 나 한번 믿어봐.”
“잠시만…… 잠시만 대표님. 흐어어엉.”
괜히 말했다.
눈이 퉁퉁 부어 나가는 최민아를 보며 황도준이 어리둥절해 들어왔다.
“탁기준 팀장님께서는 돈 받았다고 하셨는데 디자이너 라인만 혼내시는 건 아니죠?”
“어떻게 알았어.”
“아……. 이제 탕비실 커피 안 가져가는데요. 아…….”
탄식하며 도망가려는 황도준의 뒷덜미를 낚아채서 데리고 들어왔다.
“이 자식아. 돈으로 혼내주려고 한다. 왜?”
“네?”
봉투를 본 황도준은 오버하며 소리를 질러댔다.
시끄러운 놈.
결국엔 즉석에서 랩까지 만들어 불렀다.
“예~ 들어온 지 몇 달 만에 목돈을 챙겼네. 목돈은 이제 내 용돈, 공돈 처 럼 보여도 이건 내, 공을 쌓아 올린 내공 돈.”
“시끄러워, 이 자식아.”
“감사합니다. 진짜 고마워요. 대표님! 마음 같아서는 뽀뽀라도 해드리고 싶습니다.”
“야! 뽀뽀 같은 소리 하고 있네. 봉투 다시 내놔.”
“아, 아닙니다!”
시끌벅적하게 마지막 성과금을 전해주고 회의실 밖으로 나왔다.
직원들이 박수를 치고 환호성을 쳐대는 통에 머쓱해졌다.
강태오가 다시 한번 돈 봉투의 금액을 확인하곤 혀를 내둘렀다.
“근데 이 정도로 퍼주고 명 대표 괜찮은 거냐? 받고도 걱정될 정도야.”
“걱정 마세요. 우리 돈 복사 중이니까.”
“크으. 돈 복사. 귀에 팍팍 꽂히는 기쁜 말이구만.”
“그럼 다시 가보실까요, 돈 복사하러.”
“콜! 가봅시다.”
도혁의 입매가 부드러운 호를 그렸다.
DW애드 코리아의 돈 복사는 이제 시작이니까.
* * *
다시 섭외의 벽에 부딪혔다.
태강애드 성 국장을 통해 찾아간 MBM 드라마국에서 뜻밖의 말을 들었다.
“우리 MBM 입장에서야 고맙지요. 그러니까 우리한테도 PPL을 넣어주고 우리 배우를 이용해 홍보하신다는 거죠?”
“그렇습니다. 내레이션 성우분 활용해서 라디오 광고와 CM 진행하려고 합니다. 대한 공화국 대표 배우님 계시지 않습니까? 그분을 섭외하려고 합니다.”
“아, 김선갑 선생이요? 대통령, 왕 전문이시지요.”
중견 배우 김선갑.
신라 시대 왕부터 조선 시대, 대한민국 근현대사까지 사극에서 왕과 대통령만을 맡아왔다.
한번 왕이 되면 메소드 연기를 펼치기로도 유명하다.
스스로 왕이 되어 일상생활까지 왕처럼 한다나?
“네. 이분이야말로 시대를 넘나들며 지배층만 해오셨지 않습니까? 여야를 대표하는 정치인 배우 느낌이 아니라 대통령 그 자체죠.”
“식당 가면 노인분들이 그렇게 좋아하신답니다. 대통령 왔다고요.”
“그러실 만합니다.”
워낙 많은 대통령, 총리 역할을 하다 보니 정당 색깔조차 없는 것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문제는 김선갑의 섭외가 만만치 않다는 것이다.
“아시겠지만 이분은 섭외가 힘들 겁니다. 이런 말씀 좀 민망하긴 한데, 자기가 진짜 대통령인 줄 알아요. 특히 연기 중일 땐 완전히 몰입을 해버린다는 소문 아마 들어보셨을 겁니다.”
“지금 대한 공화국 시즌4인가요? 여전히 대통령 역할을 하시는 거죠?”
“맞습니다. 현재 시즌5 준비 중인데, 저희야 연락은 넣어놨지만 큰 기대는 하지 않는 게 좋으실 겁니다. 대신 그 내레이터 성우분만으로도 충분히 효과는 볼 거예요. 워낙 목소리가 유명한 분이라서요.”
“네. 대한 공화국의 시그니처 성우시잖아요. 전 국민이 아마 드라마 제목은 기억 못 해도 성우분 목소리는 알 거예요.”
드라마 국장에게 시도나 해보겠다고 했지만, 도혁은 김선갑의 섭외를 포기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이쪽에도 전문가가 있거든.
섭외의 전문가 탁기준 말이다.
하지만 탁기준은 김선갑의 이름을 듣자마자 미간을 좁혔다.
“김선갑이라고? 산 넘어 산이구만. 예전에 일레라 성우 섭외할 때 생각난다. 우리 고생 엄청 했었잖아.”
“그때 우리 골프까지 쳤었죠. 기억나십니까? 주말마다 필드 나갔던 거요.”
“맞아. 명 대표는 골프라도 잘 쳤지. 난 캐디 보기 민망했다니까?”
“왜요. 선배님 골프 웨어만큼은 타이거 우즈였어요. 그때 진짜 웃겼는데.”
지난 섭외에서 고생했던 일들을 떠올리자 새삼 고통이 밀려들었다.
“우리 변비약 광고할 때는 새벽같이 낚시터도 갔었잖아요. 기억나요?”
“아, 맞아. 그때 진짜, 나 그 전날 밤새워 술 마시고 넘어갔던 거라서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무슨 정신으로 말했는지 기억도 안 나.”
“말씀 엄청 잘하셨어요. 청산유수였는데요?”
탁기준이 무릎을 탁 치며 웃어젖혔다.
“졸려서 비몽사몽 헛소리한 것 같은데. 그 배우님도 정말 만만치 않으셨지.”
“그래도 힘들다는 섭외마다 백 프로 성공해 냈잖아요. 이번에도 잘될 겁니다. 할 수 있습니다!”
희망찬 도혁의 말에 탁기준이 혀를 찼다.
“김선갑 선생은 또 느낌이 달라요. 내가 한번 실물 뵌 적 있는데, 어우, 바늘 끝도 안 들어가.”
“네. 소문은 익히 들었습니다. 차라리 대통령을 섭외하러 청와대 가는 게 낫다, 이런 얘기 많이 하시더라구요.”
김선갑은 연기에 본인을 완전히 빙의하는 스타일이다.
MBM 드라마 국장 말대로 완전히 메소드 연기를 펼치는 대배우라는 거지.
물론 그렇기에 이미지가 좋은 것도 있었다.
대체 불가능한 왕 중의 왕. 그것이 바로 도혁이 그를 섭외하려는 이유였다.
도혁이 재킷을 들었다.
“일단 부딪혀 봅시다. 바로 가보시죠.”
“그럽시다. 우리 둘이 빡센 섭외 하루 이틀 하는 것도 아니고 뭐, 어떻게든 되겠지.”
사전 조사를 위해 매니저와 접촉했는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었다.
알아서 하라며 주소 하나 던져주고 화과자를 좋아한다는 힌트를 줬을 뿐이다.
둘은 백화점에 들러 고급 화과자를 준비하곤 김선갑의 집 앞에 도착했다.
탁기준이 한숨을 내쉬며 대저택을 올려다보았다.
“명 대표, 여기도 대통령 관저 같지 않아?”
“네. 위엄이 느껴지는 분위기에요. 문 열면 경호원 여럿 서 있을 거 같고. 뭐, 그런 느낌?”
초인종을 눌러 들어간 저택에서는 경호원 대신 세 마리의 셰퍼드가 둘을 맞았다.
“어우, 사납게도 생겼네요.”
“그러니까. 야! 우리가 뭔 마약이라도 숨겼냐? 왜 이렇게 짖어대!”
탁기준이 툴툴거리는 사이 안내하는 남자가 걸어 나왔다.
“오신다고 고생 많으셨습니다. 이쪽으로 오세요. 김선갑 선생님께서 기다리십니다.”
“네. 감사합니다.”
흡사 집사처럼 보이는 남자가 길을 안내하자 탁기준이 눈짓을 보냈다.
진짜 대통령 관저에 온 듯 엄숙한 분위기를 풍기는 게 신기하면서도 조금 우스워 도혁도 피식 웃고 말았다.
그리고 저택에 들어서서자 2층에서 김선갑이 걸어 내려왔다.
둘은 놀라 입이 떡 벌어졌다.
대통령 액자 속에서 사람이 튀어나온 줄 알았다.
TV에서도 봤지만 깜짝 놀랄 만큼 똑같은 모습에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얼굴 자체는 전 대통령과 그리 닮지 않았다고 생각했는데 집에서도 분장을 했는지 위화감이 전혀 없었다.
검은 정장에 올림머리. 번쩍이는 기름진 얼굴에 은테 안경. 넥타이 위에는 금장 넥타이핀이 반짝거렸다.
김선갑이 살짝 입꼬리를 끌어올리며 둘을 보고 인사했다.
“두 분 반갑습니다. 이쪽으로 오시겠습니까?”
특유의 억양까지 정확히 전 대통령 그 자체였다.
이 사람 진짜 메소드 연기구나.
하다 하다 전직 대통령 빌런까지 만나게 된 둘이었다.
도혁은 침음성을 삼켰다.
각하라고 부를 뻔했다.
김선갑. 그는 진짜 대통령 메소드 연기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일상에서까지 분장을 하고 있을 만큼 말이다.
‘오히려 잘된 것 아닌가? CF에서 왕이든 대통령이든 뭘 해도 쪽팔릴 거 없다는 소리잖아.’
도혁은 흡사 대통령을 대하듯 예를 갖추어 인사했다.
“MBM 드라마 국장님께 부탁드려서 선생님을 뵙게 되었습니다. 만나 뵙게 되어 진심으로 영광입니다.”
“저도 반갑습니다. 간단하게 애프터눈 티를 준비했는데 괜찮으십니까?”
“네. 좋습니다.”
거실의 복도를 지나 접견실로 안내받았다.
엔틱으로 꾸며진 고풍스러운 공간에는 길고 커다란 테이블이 놓여 있었고 샹들리에가 반짝였다.
탁기준이 감탄했다.
“저택이 고급스럽습니다. 클래식한 인테리어에 품격이 넘치는군요.”
“그렇게 봐주시니 감사합니다.”
곧 홍차와 함께 간단한 홍콩식 디저트가 나왔다.
차를 마시며 공간을 둘러보던 도혁의 눈길이 멀찌감치 걸려 있는 그림에 머물렀다.
‘잠시만 저게 뭐야, 설마 조르주 쇠라?’
“그림에 관심이 많으시군요. 진품입니다.”
“네? 진품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