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 천재 명도혁 111화
광고주들의 대책 없는 콩깍지를 벗겨줄 진짜가 나타났다.
‘우리 연기의 신이자 천사님. 늦지 않게 도착했네.’
도혁은 가슴을 쓸어내렸다.
이 무렵 CF계에 혜성처럼 나타난 천사. 완구부터 아이스크림, 통신에 이르기까지 광고계를 휩쓴 아역 스타였다.
어린데 일 욕심이 많아서 오디션은 모조리 참가했던 아이다. 야무지게 연기도 잘하고 무엇보다 말도 안 되게 예쁘고 귀여웠지.
천사님이 걸어와 도혁의 앞에 섰다. 무한 영광이다.
“아저씨, 어디로 가면 되나요?”
“저쪽 카메라 든 아저씨 있지? 그쪽으로 가면 돼.”
TV로만 보던 아이였는데 가까이서 보니 더 천사처럼 예뻤다. 순수하고 말간 미소로 아이가 웃으며 걸어갔다.
“이, 이런 거구만.”
자신감 빼면 시체인 이진태가 풀 죽은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 조카도 예쁘지만 후우, 저 아이 요즘 TV에 자주 나오는 그 친구지?”
“네. 완구 광고이고 오디션 프로그램까지 진행한다고 해서 분명히 지원할 거라고 믿고 있었어요.”
“내가 현역일 때보다 수준이 업그레이드되었구만. 실물이 외국인, 아니, 외계인인가?”
현실을 깨달은 광고주와 이진태에게 도혁이 위로를 건넸다.
“여기 아이들도 귀여운데요. 1등만 뽑은 건 아니니까 모두 재밌게 참여하면 좋겠습니다.”
“네! 아저씨!”
얼굴이 아니라 이놈의 슈트 때문에 아저씨 소리를 듣는 것이라고 굳게 믿어보며, 도혁이 참가자 명단을 점검했다.
“예선전 시작할게요!”
“네!”
현장에서 황도준이 삼촌 역을 톡톡히 했다.
아이들을 금세 정돈해 FD의 손에 넘겨주고 모니터로 돌아왔다.
“애들이 도준 씨 엄청 따르네?”
“저를 싫어하면 애가 아니죠. 원래 강아지랑 애들이 저를 좋아했어요. 어릴 때부터요.”
“정신연령이 비슷해서 그런가?”
“아, 최민아 선배님!”
아이들이 사라지자 다시 약간은 귀여워 보이는 막내들과 함께 모니터 앞에 앉았다.
카메라 테스트와 간단한 면접, 그리고 연기력 테스트가 이어졌다.
생각보다 예선전 시간이 길어졌다. 처음 이런 대회에 참가하는 아이들은 짜증을 내거나 졸기도 했다.
“저 남자애 연기 너무 잘한다. 그치?”
“연기 아닌 거 아니냐? 저 정도면 일상인데?”
“올~ 지금 우는 거야?”
쉬엄쉬엄 모니터를 들여다보던 DW직원들의 시선이 한 아이에게 고정되었다.
“아까 봤던 그 아이네. 후광 비치던 천사.”
“맞아. 지나가는데 모세의 기적처럼 길이 갈라지는 기적을 봤지.”
연기는 더 기적적일 텐데?
도혁은 털모자를 눌러쓴 아이의 얼굴을 주시했다.
초롱초롱한 눈으로 카메라를 올려다보며 아이가 대사를 시작했다.
“아빠 오늘 회사 안 가요?”
“어린이날이잖아. 있다가 오후에나 가보든가.”
“아빠 일하면 한 시간에 얼마 벌어요?”
“한 오만 원 버나? 왜 우리 딸?”
“내가 천 원 줄게요.”
꾸깃꾸깃 구겨진 돈을 내놓는 아이.
“아빠 십 분만 나랑 놀아주시면 안 돼요?”
순간 모니터를 바라보던 모든 사람들이 숨을 죽였다.
황도준이 눈을 끔벅이며 중얼거렸다.
“오마이. 울 뻔했네. 저 꼬마 감정선 장난 아니다. 와.”
“드라마 오디션도 씹어먹을 듯. 타고났네. 타고났어.”
호평이 이어지고 열 명의 예선전 통과자가 추려졌다.
주 1회 편성으로 3주에 걸쳐 3등까지 뽑는 프로그램이다.
참가자 가족들의 한숨이 이어졌다.
“1등은 아무래도 정해진 것 같다. 안 그러니?”
“압! 몬스터를 잡아라! 야, 이 뚱땡아!”
“더 뚱뚱보 바보야. 내 칼을 받아라.”
부모들의 걱정과 상관없이 신나게 떠드는 아이들 사이로 고깔모자를 쓴 천사가 지나갔다.
“강민경이지? 정말 잘했다. 본선 때 보자.”
“네. 감사합니다. 아저씨.”
감사하다니 아저씨라고 해도 그저 영광입니다.
장난감 칼과 몬스터, 그리고 천사가 공존하는 귀여운 예선전이었다.
* * *
[투니 채널 키즈 모델 선발 대회 성황리 개최.]
[케이블 TV로서는 이례적 관심 폭발, 첫 방 시청률 2.1%]
[주최 측 방긋토이, 방긋 웃어. 투니채널 최고 시청률 갱신.]
예선전 녹화방송이 나가자마자 기사가 쏟아졌다.
막 출근한 DW애드 직원들이 모여 대회 모니터링 중이었다.
“예상대로 대박이에요. 투니 채널 사장은 우리 회사 쪽으로 절해야 돼.”
“키즈 모델 선발 대회에 오디션 방송이라니. 누가 생각이나 했겠어?”
“탈락자 아이들 모아서 놀이공원 데려가잖아요. 이것도 너무 귀여워요. 아무도 아쉬워 안 해. 오히려 붙은 애들이 탈락자들 부러워했다는 후문이에요.”
3회짜리 편성이지만 아이들을 상대로 한 서바이벌이기에 탈락한 아이들에 대해 고심했다.
동심에 스크레치를 내지 않기 위해 마련한 방안이었는데 합격보다 놀이동산이 더 좋단다. 아이들의 순수한 마음이 귀엽기 짝이 없었다.
“시청자 반응 보셨어요? 투니 채널에서 이렇게 댓글이 많이 달린 프로그램이 처음이래요.”
최민아가 프로그램 홈페이지를 보여주었다.
ㄴ 귀여움 터짐. 혼자 보면서 아빠 미소 짓고 있었음
ㄴ 탈락한 애들 걱정했는데 놀이동산 신나게 뛰어가는 게 킬포임 ㅋㅋㅋㄴ 저 꼬마 누구예요? 니트 고깔모자 쓴 아이요.
ㄴ 강민경? 인형이 말을 다 하더구만.
ㄴ CF 벌써 두어 개 찍지 않았나? 광고에서 대충 보다가 이번에 자세히 봤는데 사람 아님. 그냥 천사임.
ㄴ 투니 채널 반성해라. 왜 이거 3회 편성했어. 30회는 해야지.
ㄴ 애 만화 보여주려고 틀었다가 제가 더 눈 빠지게 보는 중입니다. 윗분 참가자 이름 알려줘서 고마워요.
ㄴ 벌써 다음 화 기다려지는 건 나뿐이냐?
직원들의 얼굴에 흐뭇한 미소가 걸렸다.
홈페이지에는 참가자들에 관한 긍정적인 반응과 프로그램 칭찬이 이어졌다. 우승자를 점치는 시청자도 많았다.
“이 정도면 대성공인 것 맞죠?”
“당연하지. 2화는 개인기와 연기 대결도 있잖아. 예고편 보는데 나도 기대되더라고.”
“결승전은 시청자 ARS 참가도 된다고 들었어요. 만날 ARS 기부만 하다가 투표라니.”
DW애드에서 결승전 ARS 투표를 제안했고 투니 채널에서 즉각 수용했다.
직접 투표에 참여함으로써 주 타깃인 어린이 시청자와 부모들의 충성도를 끌어올리는 데 기여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직원들은 홈페이지의 시청자 반응을 훑어보며 모두 미소 짓고 있었다.
도혁은 흐뭇했지만 한편으로 조금 걱정이 되었다.
“평가가 좋아 다행이지만 분명히 악플 달릴 거야. 미리 조치 좀 하자.”
“전체적인 분위기 괜찮은데? 어린이 채널이라 그런지 나쁜 댓글은 거의 없어.”
“곧 달릴 거다. 시청자가 늘어나면 이상한 인간들도 따라오게 되어 있어.”
“설마 애들한테, 어유, 정말 그러면 쓰레기 아니에요? 분리수거도 안 되겠어요.”
웅성거리는 직원들을 보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좋은 댓글이 천 개라도 악플 하나가 마음에 남는 법이야. 꽃밭에서 칼에 맞는다고 안 아픈 게 아니라고.”
“하긴, 익명으로 무심코 싸지른 댓글이 가슴 아플 때가 있잖아요. 때리는 놈은 잘 모르죠. 맞는 사람이 얼마나 아픈지.”
“특히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프로그램이니까 어른들이 더 신경 써야지. 현우 선배 투니 채널 쪽에 악플 삭제 신경 써달라고 요청해 주세요. 시청자도 어린이가 많아서 조치해 줄 겁니다.”
“바로 전화할게.”
아무튼 성황리에 마무리된 첫 방이었다.
정말 방긋 웃게 된 방긋토이 최 대표와 통화를 마치고 성영민에게도 전화가 왔다.
-축하드려요. 키즈 모델 오디션 기획이라니. 아버지가 보고 감탄하시더라구요. 신생 회사가 간도 크다고 하시면서 명도혁 물건이라는 말을 열 번 정도 하셨어요.
“성 국장님께 배운 겁니다.”
성 국장이 입버릇처럼 하던 말이 있다. 툭툭 떼주라고.
-혼자 머리 싸매고 들러붙어 있지 말고 툭툭 떼줘. 프로덕션, 매체사, 우리 회사 기획국 인간들도 있고 외주사도 있잖아. 특히 PD들! 우리가 가진 자원만 활용하지 말고 머리를 쓰라고.
십 년도 넘게 들었던 잔소리가 떠올랐다.
그땐 카피만 써서 저 말이 무슨 소린지 귀에 꽂히지 않았는데 대표가 되니 잘 알겠다.
태강처럼 큰 회사조차 가진 자원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걸.
소규모 신생업체인 DW애드야말로 협력 업체와의 유기적 관계가 가장 중요했다.
‘DW는 중요한 것만 챙긴다. 나머지는 최대한 외부 자원을 활용해야지.’
잠깐 생각에 잠겼던 도혁의 뒤에 성영민의 발랄한 목소리가 꽂혔다.
-아무튼 명 대표님! 이렇게 전화드린 건 탐나는 아이가 있어서예요.
“강민경 어린이요?”
-역시 귀신이시네요.
성영민이 신나서 말을 이었다.
-캐스팅이 제대로 된다면야 굳이 공개 오디션까지 보진 않을 거예요. 아역 오디션이 좀 정신없거든요.
“이해합니다. 정말 그렇더군요.”
-그래서 말인데, 그 아이 바로 캐스팅을 할까 해서요. 연락처를 좀 알 수 있을까요.
“그러시죠. 참, 다음 라운드에서 개인기와 연기력 테스트가 있습니다.”
-어머! 정말 잘됐네요. 유심히 봐야겠다.
결국 드라마 배역까지 따내는구나. 이렇게 된 마당에 좀 더 딜을 해야겠다.
“강민경 어린이 나가게 되면 PPL 잘 부탁드립니다.”
-안 그래도 방긋토이 관련해서 대본 수정 중이었어요.
“토이 외에 들어갈 광고가 있는지 좀 검토해야겠네요.”
-어우, 하여간 그 틈을 또 파고드시네. 지독한 사람.
성영민은 혀를 내두르면서도 싫은 목소리는 아니었다.
-자료 조사 동참 여부에 따라서 생각해 볼게요.
“적극 동참하겠습니다. 언제든 불러주세요.”
-당연하죠. 곧 짐 자무시 감독 특집전 있어요. 콜?
“네. 조니뎁이 나오면 좋겠네요.”
-어? 조니뎁 주연인 줄 어떻게 알았어요? 정말 귀신이네요.
귀신 아니고 회귀자이지만 뭐, 그게 그거인가?
좋은 관계를 이어가며 도움을 주고 있는 성영민에게 고마웠다.
도혁은 전화를 끊자마자 직원들을 불러 모았다.
“모두 알겠지만 우리가 지금 진행하는 일들은 밑밥에 불과합니다. 어린이날 크게 한 방 터뜨리려면 광고가 잘 나와야겠죠?”
“네! 아이디어 장전 중입니다!”
“올~ 황도준!”
“신입의 패기로 뭐 하나 보여주는 거냐? 이번 광고 도준이 믿고 가면 돼?”
자신만만한 황도준의 말에 선배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커피와 함께 마실 디저트 아이디어 장전 중입니다. 제가 즉시 뛰어가서 롤 케이크를 사 오겠습니다.”
“이 자식, 센스 터지네. 빨리 갔다 와!”
막내가 빛의 속도로 뛰어나가고 선배들이 흐뭇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저 자식 저거 볼수록 물건이야.”
“동감. 명 대표는 캐리커처 그리는 놈 재능을 어떻게 알아봤데?”
“후광이 비치더라구요. 제가 여러분 DW애드 오라고 꼬셨을 때처럼.”
“우리 후광 있냐?”
“또라이 후광이 넘치죠.”
도혁의 말에 최민아가 웃음을 터뜨렸다.
“AE 쪽은 그래도 좀 정상인들 아니에요? 한수철, 탁기준 라인은 겉으로는 정상이라고요. 제작팀 어쩔 거야.”
“왜! 우리가 왜!”
“이진우 선비님부터 외국인 마인드 태오 팀장님, 그리고 벗겨질 것 같은 바지 입고 다니는 래퍼 도준이까지. 그나마 저라도 있어서 제작팀이 균형을 잡는 거라구요.”
“무슨. 야! 최민아가 제일 또라이야!”
때아닌 또라이론이 펼쳐지는 가운데 커피와 롤 케이크가 도착했다.
디저트처럼 달콤 쌉싸름한 DW만의 아이데이션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