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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고 천재 명도혁-110화 (110/252)

광고 천재 명도혁 110화

“명도혁 대표님! 뭘 그렇게 찾고 계세요? 도와드려요?”

익숙한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태강애드 성민국 국장의 아내이자 스타 작가 이은경이었다.

도혁은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이은경 작가가 PPL을 도와준다고 약속하지 않았던가.

명현진한테 아쉬운 소리 하기 싫었는데 잘됐다. 도혁은 만면에 미소를 띤 채 그녀에게 인사했다.

“이은경 작가님! 여기서 다 뵙네요.”

“그러니까요. 독립해 나가서 연타석 홈런 치고 있다면서요. 남편한테 소식 전해 듣고 있어요. 엑슨 광고 너무 웃기더라구요. 보면서 한참을 웃었네요.”

“감사합니다.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만나기도 어려운데 차 한잔 같이하시죠.”

예전에 PPL 필요하면 언제든 찾아오라던 약속을 떠올렸다. 아무렴 스타 작가의 약속이 피보다 진하고말고.

도혁은 일단 카페로 자리를 옮긴 후 이은경을 슬쩍 떠보았다.

“작가님 지난번 작품 ‘밤비에 공기가 내리면’ 잘 봤습니다. 서정적인 분위기에 호평이 자자하더군요.”

“고마워요. 전격 멜로인데 어떻게 괜찮았나요?”

“괜찮은 정도가 아니라 국민 드라마로 등극하지 않았습니까? 40퍼센트 시청률이면 국민 절반 가까이 봤다는 거잖아요. 축하드립니다. 작가님, 차기작도 준비 중이신가요?”

“네. 이번에는 가족 드라마로 진행할 예정이에요. 참. 우리 딸 그때 만났었죠? 영민이.”

“네. 기억합니다. 성영민 씨.”

“이번 작품에 스크립터로 참여할 거예요.”

처음으로 모녀가 함께하는 작품이란다. 이은경 작가에게도 기념이 될 만한 작을 진행 중이라고.

이은경이 도혁의 눈치를 보더니 운을 떼었다.

“PPL 부탁하고 싶어서 입술이 간질간질하구나. 그쵸?”

“맞습니다.”

“나 약속한 건 지키는 사람이에요. 걱정 말아요. 혹시 제품은 뭔가요?”

“승용 완구입니다. 어린이 장난감이요. 가족 드라마라고 하니까 큰 무리는 없을 것 같습니다.”

“좋네요. 오케이! 우리 영민이 통해서 진행하세요.”

잠시만. 가족 드라마라고?

도혁은 잠깐 숨을 고른 후 이은경을 바라보았다.

“작가님 제가 한 가지만 더 부탁드려도 될까요?”

“네. 말씀해 보세요. 제가 PPL 외에 광고 회사에 더 도와드릴 일이 있을 것 같지는 않은데요?”

“작품 속에 아역 탤런트 나오지 않습니까?”

“그렇죠. 내부적으로 아직 결정되지 않았고 오디션을 본다고 들었어요.”

“혹시 오디션 일자를 알 수 있을까요?”

도혁의 말에 이은경이 의아한 눈빛을 보냈다.

“왜, 출연시키고 싶은 꼬마라도 있어요? 조카?”

“저희가 이번에 키즈 모델을 선발하는데 드라마 출연권을 따내면 더 좋지 않을까 싶어서요. 오디션에 참여해 보면 좋지 않을까 싶어서 여쭈었습니다.”

“흠, 얼른 듣기에 괜찮은 것 같은데요? 그건 내가 알아보고 영민이 통해서 전달할게요. 일단 여기 영민이랑 연락처요. 서로 조율할 일이 있을 거예요.”

성영민의 연락처를 적어주던 이은경의 눈매가 곱게 휘었다.

“선남선녀가 좀 자주 만나면 좋겠네요. 둘이 잘 어울리던데.”

“감히 제가 영민 씨하고 어떻게, 언감생심 그럴 생각은 없습니다.”

“에이, 도혁 씨 너무 겸손하시다.”

겸손 아닙니다. 작가님. 따님은 칸느에 가실 고귀한 영혼이십니다.

세계적인 프랑스 배우와 약혼도 하시구요.

도혁은 웃으며 카페를 나오자마자 성영민에게 전화를 걸었다.

다행히 작업실에 있다는 그녀를 곧바로 만날 수 있었다.

“맨입으로요?”

도혁을 보자마자 성영민이 새침하게 나왔다.

“이은경 작가님께 말씀 들으셨군요. 저희 입장에서는 PPL, 키즈 모델 오디션, 그리고 아역까지 연결해서 진행하는 게 좋은데 협조 부탁드리려구요.”

“그러니까요. 맨입으로 되겠냐고요. 흠.”

“뭘 하면 되겠습니까? 원하시는 게 있으면 말씀해 주세요.”

“제가 지금 자료 조사를 나가려고 하는데 같이 좀 가주실 수 있나요? 3시간 정도 걸릴 거예요.”

“그 정도야 당연히 오케이죠.”

성영민이 자료 조사를 한다며 데려간 곳은 서울의 외곽에 위치한 허름한 영화관이었다.

“저는 영화를 보면서 이런저런 영감을 얻는 편이에요. 이 영화관 꾸질꾸질해 보여도 좋은 작품만 걸고 있어요.”

“네. 저도 여기 좋아합니다.”

전생에 자주 왔던 예술영화관이었다.

도혁 역시 영화에서 영감을 많이 받았기에 한 달에 한두 번은 꼭 들렀던 곳.

벽면에 붙은 포스터를 보며 도혁이 심호흡했다.

‘이거지. 이게 바로 회귀의 참 재미 아니겠어? 와, 뭉클하네.’

짐 자무시, 프랑스와 오종, 스탠리 큐브릭, 구스 반 산트…….

그 당시를 주름잡던 영화계의 신인과 거장 감독들의 얼굴이 벽면을 메우고 있었다.

‘괜히 나 혼자 반갑네. 직접 아는 사람들도 아닌데 말이지.’

마치 옛 친구를 만난 듯 들뜬 기분으로 상영관 안으로 들어섰다.

화면에서는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인터뷰가 흘러나왔다.

성영민이 목소리를 낮추고 그가 누구인지 알려주었다.

“크리스토퍼 놀란이라고 요즘 핫한 신예 감독이에요. 재능이 하늘 위로 뻗치는 신인이죠.”

“네. 기세가 우주를 뚫고 갈 위인이 될 관상이네요.”

“풉, 우주래.”

농담 아닌데. 크리스토퍼 놀란은 진짜 우주 갈 거거든.

도혁은 웃으며 화면에 시선을 고정했다.

곧 세기를 대표할 거장의 떠오르는 신인 시절을 바라보며 감회가 새로웠다.

이미 명절 기념 영화 상영으로 공중파에서 수차례 봤던 영화였지만 흥미롭게 관람을 마쳤다.

“도혁 씨 영화 엄청 좋아하시나 봐요? 뭐랄까, 굉장히 경건하게 보시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어요.”

“네. 평소에 영화를 즐겨 보기도 하지만 이 영화 상당히 좋네요. 독특하고 메시지도 있구요.”

“혹시 가끔 저랑 영화 봐줄 수 있어요? 나도 영화에 진심이거든요. 이렇게 숙연하게 영화 보는 사람 처음 봐서 하는 말이에요.”

“얼마든지요.”

미래의 거장 감독 성영민의 제안을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더불어 PPL와 아역 오디션 날짜까지 확인하며 성영민과의 자료 조사가 끝났다.

백 번도 넘게 할 수 있을 것 같은 자료 조사 시간이었다.

* * *

여기는 천국이다.

천국처럼 천사들이 돌아다니는 곳. 여기는 키즈 모델 오디션 현장이었다.

어린이 채널의 서바이벌 오디션 방송 편성이 확정되고 광고가 나가며 엄청난 화제를 불러 모았다.

예상보다 훨씬 더 많은 지원자들이 전국에서 몰려들었다.

바로 천사 지원자들 말이다.

세상의 어린이 천사들이 모두 모인 듯 아름다운 광경이 펼쳐졌다. 멀리서 아이들이 모여 있는 광경을 지켜보던 이진우가 감탄했다.

“안구가 환하게 정화되는 기분입니다. 세상에는 정말 예쁜 아이들이 많군요.”

“그러니까. 만날 애기라고는 우리 진우, 도준이만 보다가 시야가 환해진다니까?”

“내가 왜 애깁니까? 우리 동갑이잖아요.”

“하는 짓이 아기잖아요. 7.5세 정도?”

“에이, 7.5세는 아니다. 한 5살 더 쓰시죠.”

DW애드의 막내 디자이너들이 투닥거렸다.

평소 같으면 팀장들이 귀여워했겠지만 어림없지.

팀장급의 시선도 모두 꼬마 모델들에게 집중되었다.

“아, 난 어떡해서든 결혼해서 딸을 낳고야 말 거야.”

“난 아들이 더 좋아. 저쪽에 남자 아기는 눈이 얼굴 절반을 넘기는 거 같지 않아? 눈망울이 어떻게 저러냐. 와.”

“진짜 너무 너무 너무 귀엽다.”

하지만 곧 예선전 대기장은 지옥으로 바뀌었다.

기다림에 지겨워진 천사들이 악동으로 변해 버렸기 때문이다.

“에이, 야! 호박처럼 생긴 게. 내 칼을 받아라.”

“여기도 있다. 광선검!”

“빅카츄 아이츄, 토끼와 거북이!”

“이 괴물아. 내가 가져가지마. 내 빅카츄. 흐어엉엉.”

사정없이 떠드는 아이들 때문에 정신이 혼미할 지경이었다.

다들 어안이 벙벙한 채 아이들을 쫓아다니는 가운데 도혁만이 흐뭇하게 그 광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회귀 전 CF 촬영장에서 만났던 아이들을 떠올리면서.

‘아역 배우들 죄다 스마트폰에 코 박고 있어서 촬영장이 조용했었지. 충전기만 있으면 조용해진다고 감독들이 좋아했었잖아.’

뛰어놀아야 할 아이들이 고개를 숙인 채 가상의 화면 속에 갇혀 있었다.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에 따르면 2020년대에 들어서며 스마트폰 중독이라는 말이 없어졌단다.

지구 위의 인류 대부분이 이미 중독이라서.

오랜만에 아이들로 시끌벅적해진 촬영장의 풍경이 내심 흐뭇했다.

‘반갑네. 저 소란도. 정신없는 소음도. 아이답게 뛰어노는 모습도 죄다 반갑다.’

잠깐 상념에 잠긴 틈새로 직원들의 음성이 들려왔다. 제법 다급한 목소리였다.

“어! 대표님! 저기 김영석 대표님 아니에요?”

“이런, 잠깐만 이, 인천 시장님?”

“이진태 교수님도 오셨잖아? 이게 무슨 일이래?”

광고주 세트 모음인가? 거기다 교수님까지.

직원들 모두 어안이 벙벙해진 채 그들을 맞았다.

채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더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자, 잠시만요. 저기 저 꼬마 김영석 대표님 아들인가요?”

“어이구, 그렇게 젊게 봐주시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손자예요. 손자.”

“아!”

“이쪽은 우리 조카. 귀엽지 않나? 하하.”

광고주들이 본인을 거푸집으로 찍어낸 수준으로 똑같이 생긴 자녀와 손자들을 데리고 온 것이다.

“DW애드에서 키즈 모델 오디션 한다길래 데려와 봤지. 우리끼리 보기 아까운 미모라고 마누라가 어찌나 옆구리를 쿡쿡 찔러대던지.”

“네……. 정말 그러네요……. 귀여워요.”

“미스코리아 내보내기 전에 예행연습이라고 생각하려고. 자, 카메라 보이지? 저쪽에 불 들어오는 쪽을 보는 거야. 알겠지?”

이진태 교수도 한몫 거들었다.

“우승은 어차피 우리 조카가 할 거야. 다들 눈도장이나 찍어놓으셔.”

“교수님이랑 똑같이 생겨서 아들인 줄 알았더니 조카로군요.”

“어허, 명 대표. 나 이래 봬도 총각이야. 아들이라니. 어디 가서 그런 말 하지 마시게.”

“네…….”

DW애드 직원들의 동공이 세차게 흔들렸다.

도혁도 영업 미소를 유지하고 있었지만 큰일이 아닐 수 없었다.

이렇게 광고주들까지 몰려들 거라고는 생각도 못 한 직원들이 난감한 듯 머리를 긁적였다.

그새 자기들끼리 명함을 주고받고 인사를 나누고 서로 손자와 조카들을 칭찬하며 친목을 다지는 중이다.

최민아가 조용히 다가와 속삭였다.

“이거 정말 곤란한데요. 물론 얼굴만 보는 건 아니고 다양한 자질을 보겠지만 일단 카메라 테스트는 통과해야 하는데 말이죠.”

“자기 혈통에는 원래 객관적일 수가 없어.”

“하긴 우리 아빠도 나 전지현 닮았다고 해요. 우리 가족끼리 죽을 때까지 비밀로 해야 할 발언이죠. 어디 가서 피살당하지 않으려면.”

피살이라는 말에 한수철이 빵 터지고 도혁이 손목시계를 내려다보았다.

‘지금쯤 올 때가 됐는데.’

순간 문이 열리고 실내에 알 수 없는 빛이 들었다.

“어!!!”

“와! 저거, 그, 와.”

“말이 안 나온다. 쟤 뭐야?”

출입문이 열리고 아이 하나가 뚜벅뚜벅 걸어 들어왔다.

“설마 내 눈에만 후광이 비치는 거야?”

“아니, 눈이 부셔. 뭐지? 이 위화감은?”

광고주들의 눈에 씌인 대책 없는 콩깍지를 벗겨줄 진짜가 나타났다.

‘우리 천사님. 연기의 신. 늦지 않게 도착했네.’

도혁은 가슴을 쓸어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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