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 천재 명도혁 108화
[방긋토이가 국민들에게 묻습니다.
대한민국 완구, 이대로 안전합니까?]
아침부터 DB완구 한국지사의 대표실에 재떨이가 날아다녔다.
“대, 대표님. 고정하시고.”
“방긋토이가 왜 저렇게 당당하게 나와. 제대로 알아본 거 맞아? 유해 성분 나온 회사가 저딴 광고를 할 수 있냐고!”
“그, 그럼요. 이번에 홍보 맡은 조덕현 본부장이 믿을 만한 사람입니다. 우리 영국 본사 담당자였습니다.”
“본사고 나발이고 홍보실장 이거 어떡할 거야. 저따위 시비조로 나오는데 소비자원 같은 데서 털면 대책이 있어?”
“설마 그렇지는 않을 겁니다.”
“설마? 지금 설마라고 했냐? 이 미친 XX야.”
“죄송합니다.”
홍보실장의 눈이 방긋토이 광고에 꽂혔다.
“코너에 몰려서 부리는 허세일 겁니다. 털어서 먼지 안 나오는 장난감 없습니다. 플라스틱이라 어떻게든 유해 물질은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먼지가 안 나고요? 죽고 싶어?”
“우리 회사는 승용 완구가 많아서 물고 빠는 장난감이 주는 아닙니다. 확실히 유리할 거니 불안해하실 필요 없으십니다.”
“너 같으면 안 불안하겠냐?”
“걱정 마십시오. 허세인 게 분명하지만 혹시 전수 조사를 한다고 해도 우리 지사가 불리할 일은 없으니 괜찮습니다. 관공서 라인 곧바로 가동하겠습니다.”
“똑바로 해라. 목숨 걸고 뛰라고!”
못 미더운 눈으로 DB완구 대표가 홍보실장을 노려보았다.
사장의 손에 잔뜩 구겨진 채 들려 있는 신문을 보며 홍보실장이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사장이 소리쳤다.
“그 XX부터 빨리 데려와. 조덕현인지 뭔지 하는 놈.”
* * *
상큼한 아침이었다.
도혁이 다린 듯 반듯하게 접힌 신문을 내려다보며 느긋하게 커피를 마시는 중이었다.
마침 출근하는 탁기준에게 신문을 내밀었다.
“굿모닝. 광고 잘 뽑혔네요.”
“명 대표 일찍 나왔네. 이야, 카피만 있으니까 오히려 눈에 띈다. 그치?”
“네. 보도 자료도 준비해서 뿌리셨죠? 정신 못 차리게 후속타가 계속 나가야 하거든요.”
“당연하지. 우린 찌라시가 아니라 주요 일간지로 강타해 버렸지. 방긋토이 쪽 제품은 이상 없겠지?”
“네. 최 대표님께 여러 번 확인했습니다. 공산품 유해 기준 모두 통과했대요. 그리고 옥수수 성분으로 만든 플라스틱이 검증받은 만큼 차차 완전 무해한 제품으로 바꾸신다고 해요. 자부심이 대단하시더라구요.”
“으이구. 이런 업체를 건드렸으니. 분명히 조덕현 그 인간 부산까지 한번 가보지도 않고 질렀을 거야.”
도혁이 끄덕이고 탁기준이 웃었다.
입으로만 광고하는 대표적인 인간이 조덕현이다. 안 봐도 자기 학력 경력 내세워서 잘난 척하며 세치 혀로 광고주 삶아버렸겠지.
특히나 영국 물 좀 먹었다고 한국 광고계를 어찌나 무시했던지.
도혁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참, 알아봤는데 이번 건 DB완구 한국지사에서 진행했나 봐. 조덕현이 최근에 여러 번 미팅 들어갔다더라고.”
“DB완구라면 영국에 본사 있는 회사 맞죠? 나름 글로벌 기업인데 어이가 없네요.”
둘이 기사를 보며 여유를 부리는데 결전의 용사가 들어왔다.
최민아였다.
“대표님 일찍 나오셨네요? 진우 씨랑 나랑 어젯밤을 하얗게 불태웠어요. 게시판 보셨어요?”
“안 봐도 이겼겠지. 최민아를 누가 이기나.”
“나보다 진우 씨가 몇 배는 더 무서웠다구요. 진우 씨 은근 승부사야.”
“그래?”
슬쩍 들여다본 게시판에서는 전장의 비장함이 흘렀다. 단연 돋보이는 건 닉네임 ‘리진’이었고.
“어우, 키보드 워리어네. 평소 이미지랑 너무 다른 거 아니야?”
“그쵸? 저기 아줌마 산산이 깨진 거 봐요. 은근히 돌려 까면서 할 말 다하고. 엄청 기분 나쁘게 만드는 기술이 있어요.”
“그러게. 차라리 쌍욕이 낫지 전문가인 척 평론하는 악플이 더 기분 나쁘지.”
이진우가 하품을 하며 들어왔다.
“어제 오랜만에 하얗게 불태웠습니다.”
“이런 호전성이 있는지 몰랐는데? 고생했다.”
“자꾸 아는 척을 하면서 말도 안 되는 소리 하니까 참교육 좀 해줬죠. 덕분에 완구 공부 엄청 했습니다.”
“잘됐다. 자, 어제 키워 했으니까 오늘부터는 시안 뽑아야지?”
도혁은 이진우의 어깨를 주무르며 컴퓨터 앞에 앉혔다.
“오늘부터 2차, 3차 신문광고 계속 때릴 거다. 3월 광고가 좀 당겨지긴 했는데 할 수 없지. 조금 긴 싸움이 될 거니까 각오하고.”
“넵! 알겠습니다!”
“신문만 진행할 거니까 너무 겁먹을 필요는 없어. 태오 선배랑 진우가 방긋토이 건 맡고, 민아 씨는 건설 쪽에 붙자.”
“넵!”
막내들에게 일을 맡기고 묵묵히 지켜보았다.
일도 많은데 키보드 워리어까지 시켜 버려 미안할 따름이었다.
아무리 봐도 현재 제작팀 인원으로는 계속 일을 쳐나가긴 무리였다.
도혁이 겉옷을 챙겨 입었다.
* * *
홍대 앞 거리가 분주했다.
‘그 자식이 홍대 산디과 출신이지. 학교 앞에서 알바했다고 했었는데.’
도혁은 ‘그 자식’의 얼굴을 떠올리며 거리를 휘이 둘러보았다.
태강애드 최강 디자이너를 꼽자면 단연 최민아, 그리고 지금 만날 황도준을 들 수 있겠다.
황도준은 서른 중반이 넘어서야 입사한 늦깎이 디자이너였다.
홍대 앞에서 그림도 그리고 버스킹도 하다가, 어느 힙합 레이블에 소속돼서 랩까지 했던 다양한 이력을 가졌다.
하지만 감출 수 없는 타고난 재능으로 입사 후 초고속 승진해 태강애드 디자인 팀을 이끌었다.
‘김철준 대표님한테 또 미안하네. 하긴 아직 그 자식 입사 전이니까 엄밀히 말하면 아직 디자이너는 아니잖아? 아무튼 대표님 죄송합니다. 제가 먼저 데려갈게요.’
속으로 김철준한테 사죄까지 했건만.
홍대 앞에 도착한 도혁은 막막한 심정으로 거리를 둘러보았다.
‘버스킹이냐, 캐리커처냐, 일반 알바냐. 힙합을 먼저 했을까?’
이 다양한 이력 중 어느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을까, 고민하던 참이었다.
“그림 한 장 그리시죠? 캐리커처 그려 드립니다.”
“어!”
이 자식, 나랑 인연은 인연이구나.
우연이라기엔 필연적으로, 익숙한 얼굴이 도혁에게 다가왔다.
황도준이 특유의 건들거리는 표정으로 캐리커처를 그리란다.
호객한다는 놈 복장이 그 당시 흔하던 힙합 가수 같았다.
땅까지 닿을 듯 바지를 내려 입고 치렁치렁 체인 목걸이를 두른 것이 영락없이 황도준이었다.
“그럴까요. 제 얼굴 한 장 그려주세요.”
“오! 기대 안 했는데! 이쪽으로 앉으세요. 여친 만나러 온 거예요? 여친도 그려 드릴까? 어우, 좀 생겼네요. 그리기 편하겠다.”
말이 많고 빠른 것도 딱 황도준이다.
반가운 마음에 끌어안아 주고 싶을 정도였다.
“벌써 밑그림 끝난 건가요. 손이 빠르시네요.”
“그럼요. 홍대 한가운데서 돈 벌어먹는 게 쉽지가 않다고요. 여기 캐리커처 그리는 사람들 보이시죠? 다 내 경쟁자 아닙니까. 움직이지 마시고요. 어우, 내가 그렸는데도 멋있네. 거의 다 됐습니다.”
엄청난 속도로 그림을 쳐내는 폼이 황도준다웠다.
속도는 빨랐지만 채색에 빈틈이 없고 스케치 역시 수준급이다.
도혁이 그를 보고 피식 웃었다.
그림쟁이 황도준 어디 가겠냐.
“혹시 전공자십니까? 정말 잘 그리시네요. 특징도 잘 잡고.”
“표시가 팍! 나죠? 제가 전공이 산디지만 또 음악도 잘합니다. 저녁에 버스킹 있는데 구경 오세요.”
“힙합 하시는 분 같네요.”
“올~ 이분 뭘 좀 아시네. 음악 좀 아십니까? 힙합 누구 좋아해요?”
“우탱클랜, 에미넘, 투팍, 뭐 동쪽 서쪽 안 가리고 좋아합니다.”
“올~ 오올~. 동쪽 서쪽이래. 이분 진짜 뭘 좀 아시네. 어! 진짜 움직이시면 안 되는데. 아, 이러면 각이 안 산다고요. 어, 왜 다가오는 거예요? 네?”
그 시절 황도준에게 귀가 따갑도록 들었던 이스트와 웨스트 힙합을 말하며 그에게 명함을 내밀었다.
“이게 뭡니까?”
“돈 벌어먹기 힘들다고 했죠? 돈 벌게 해주려구요.”
“엥? 저를 어떻게 아시고. 뭘 믿고 돈을 벌게 해준다는 거예요. 에이, 아저씨 사기꾼이구만. 나쁜 짓 하고 다니면 감옥 가고 그러는 거예요. 갱생의 삶을 살 수 있게 내가…….”
사기꾼 소리보다 아저씨가 더 듣기 싫었다.
황도준보다 한 살 많은데 슈트 때문에 그런가?
아무튼 황도준 이 자식, 여전히 말 진짜 많네.
도혁이 말허리를 뚝 잘라 버렸다.
“그림 마음에 듭니다. 디자이너를 뽑고 있는데 알바한다고 생각하고 면접 보러 와요. 인상도 그림도 좋아서 그런 거니까.”
“DW애드 코리아 명도혁 대표. 혹시 대표님인가요?”
“네. 꼭 와요. 투팍만큼 돈 벌 수도 있을 거니까.”
“에이~ 에이, 사기꾼 아저씨.”
“아저씨 아닌데요.”
“그럼 형! 정신 차려요!”
사기꾼이라고 눈을 흘기더니, 황도준은 다음 날 새벽같이 DW애드를 찾아왔다.
출근길, 최민아가 회사 앞에서 두리번거리는 남자를 미심쩍게 바라보았다.
“누구, 세요?”
“저 황도준인데요?”
“아니, 이름을 물어본 게 아니라 무슨 일로 왔냐고요. 여기 광고 회산데…….”
“어! 도혁이 형!”
황도준이 엘리베이터에서 막 내린 도혁을 발견하고 소리쳤다.
어우, 저 넉살도 여전하네. 언제 봤다고 형이라니.
하긴 태강애드 입사했던 날도 회사가 뒤집혔었지. 아무리 자유로운 분위기의 광고 회사지만 그래도 대기업인데 청바지 입고 면접을 봤거든.
도혁은 그날이 생각나 속으로 웃음을 삼켰다.
“어떻게 바로 왔네요.”
“내가 어제 형님 가시고 곧바로 타로점을 봤지 않습니까? 그런데 하늘에서 두 번째 살아온 귀인이 나타났다는 겁니다. 진짜 투팍처럼 벌 수 있다고 호언장담하더라구요. 어우, 왕관에 여왕에 내가 봐도 카드가 좋아서 그길로 바로 짐 쌌죠.”
“거기 어딥니까. 용하네요.”
도혁은 두 번째 살아온 귀인이라는 말에 동공 지진을 일으키며 황도준을 회의실로 데려왔다.
“조금 기다려요. 내가 스카웃했지만 팀장급들이랑 같이 면접 볼 거니까.”
“이야! 여기 가오 장난 없네요. 대박적으로 세련됐습니다. 유럽 사무실 같아요.”
“여기 인테리어 하신 분이 오시면 시작하도록 하죠.”
곧 직원들이 도착하고 도혁이 황도준에 대해 간략히 설명해 주었다.
“면접 보러 온 사람이 저 회의실 안에 저 남자 맞아?”
“네. 태오 선배랑 현우 선배가 같이 들어가서 봐주세요. 제작에서 일해야 하니까. 실력은 확실합니다. 제가 알아보고 데려왔어요.”
“명 대표가 그 정도로 확신할 정도면 뭐, 우리도 괜찮지. 좀 특이해 보이긴 하지만 말이지.”
차현우가 턱을 어루만지며 회의실 창으로 보이는 황도준을 바라보았다.
늘어진 청바지에 운동화를 신은 모습이 전혀 면접 보러 온 신입 같지 않았다.
그래도 나름대로 신경 썼는지 체인 목걸이는 안 하고 온 게 다행일 정도.
“명 대표, 현우야, 우리 오랜만에 애드포인트 스타일로 뽑아볼까?”
“그럴까? 재밌겠는데요.”
“실력 있으면 성격은 맞추면 돼. 우리 직원들도 죄다 이상하잖아.”
“인정.”
서로 또라이라며 손가락을 관자놀이에 돌려대는 면접관 둘을 대동하고 회의실로 들어섰다.
“안녕하십니까. 우리 면접관 하러 왔는데.”
강태오가 털썩 자리에 앉았다.
황도준이 인사하자 종이 한 장을 들이밀었다.
“아무거나 생각나는 거 광고 형식으로 한번 그려봐요. 뭘로 할까. 우리 DW애드 코리아 어때요?”
“이 회사 말씀이시죠?”
대답과 동시에 펜이 움직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