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광고 천재 명도혁-107화 (107/252)

광고 천재 명도혁 107화

엔터테인먼트계의 큰손 권아영.

도혁이 의외라고 느낀 건 그녀가 광고계 인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분명히 연예계의 악명 높은 마녀였는데. 명현진이 엄청 욕했잖아.’

전생에 명현진과 원수를 진 엔터테인먼트계의 악녀였다.

권아영 얼굴은 예쁘지 않냐고 한마디 했다가 죽을 만큼 갈비뼈를 얻어맞은 기억이 생생했다.

“어머, 기준아. 나 지금 저분한테 악수 까인 거니?”

“아닙니다. 반갑습니다.”

도혁은 권아영이 내민 손을 마지못해 잡으며 명현진이 했던 말들을 떠올렸다.

연예계의 도베르만.

약점을 꽉 물고 있다가 계약 기간 갱신일이 다가오면 언론에 풀어서 옴짝달싹 못 하게 옭아맨다고 했었다. 이맘때는 대일기획에서 일했나 보다.

권아영이 도혁을 자세히 보며 눈을 가늘게 떴다.

“명도혁이라고 했죠? 이상하게 낯설지가 않네. 이상해.”

“저는 처음 뵈었습니다.”

“혹시 전에 나 만난 적 없어요?”

“네. 흔한 얼굴이라 그렇게 느끼셨나 봅니다.”

“자신에 대해 잘 모르나 보네. 흔한 얼굴 절대 아닌데?”

찬찬히 얼굴을 훑어보는 여자의 눈빛이 내키지 않아 시선을 탁기준에게로 돌렸다.

“두 분은 동문이라고 들었습니다.”

“동문 맞아요. 그건 그렇고 탁기준이가 왜 나를 불렀을까? 나랑 다시 잘해볼 생각이라도 들었어?”

“농담이라도 그딴 헛소리는 집어치우시고.”

탁기준이 양쪽 팔의 소름을 훑으며 그녀를 노려보았다.

“혹시 B급 언론사 아는 곳 없어요?”

“왜. 작업 치게?”

“작업이라니, 단어 선정 여전하구만. 알아놔서 나쁠 것 없으니 물어보는 거예요. 우리 회사 이제 시작하는 입장이라서.”

능구렁이답게 느물느물 변죽을 울려대며 탁기준이 인터넷 언론에 대해 물었다.

“이 바닥 알 만큼 알면서 나한테 왜 찾아왔냐? 뭐 먹을 게 있다고.”

“에이, 이거 왜 이러셔. 마이너 쪽은 꽉 잡고 계시잖아.”

“흠. 이거 흥미로운데? 그래서 나를 찾아오셨다?”

권아영이 다리를 꼬며 의자에 등을 기대었다.

“실체가 있는 게 있고 없는 게 있어.”

“파파라치 언론 말고.”

유령 회사 목록을 원한다는 말을 돌려 하며 탁기준이 권영아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그녀가 한숨을 내쉬며 커피 잔에 입술을 대었다.

“기준아. 나 이 바닥 뜰 거다. 결혼해.”

“뭐? 천하의 권아영이 결혼을 한다고?”

“그래서 말인데 내가 유서처럼 몇 가지 알려주고 갈게. 옛정을 생각해서 말이지.”

느끼한 웃음을 흘리는 권아영을 보고 탁기준이 찌푸렸다.

권아영은 탁기준의 괴로움을 조금 즐기는 것 같았지만.

‘그래. 권아영 뒷배가 있었지. 남편이 준재벌급 사업가라고 했던가?’

연예계에서 패악을 부렸지만 아무도 건드리지 못한 데는 남편의 권력이 한몫했었다.

명현진은 그걸 특히 꼴 보기 싫어했고.

그녀가 메모지를 꺼내 들어 슥슥 언론사 목록을 적어주었다.

“앞으로 여기 여기, 같이 일하면 좋은 일이 있을 거야.”

“……잠시만, 이게 다야?”

“그나마 쓸 만한 곳으로 적은 거야. 이런 데는 오늘 생겼다가도 내일 사라지고 그래. 태강에 조덕현이도 있잖아. 그쪽으로 알아보지그래?”

“역시 조덕현인가.”

탁기준이 중얼거렸다.

권아영이 고개를 기울이며 가만히 그를 바라보았다.

“기준아. 너 설마 나를 조덕현급으로 생각하고 찾아온 건 아니지?”

“그럴 리가 당연히 있지. 선배가 나한테 한 짓 까발려 봐?”

“예뻐하니까 갈군 거지, 인마.”

“두 번만 예뻐했다가는 어휴. 아무튼 고마워. 이런 걸 다 주고. 실체가 있는 집들은 유용하겠네.”

“그려. 결혼식은 오지 마라. 네 얼굴 보면 흔들리니까.”

“지랄.”

탁기준은 그렇게 권아영 욕을 해대더니, 의외로 둘이 친해 보였다.

권아영이 잠깐 전화를 받으러 간 사이 도혁이 탁기준을 놀렸다.

“은근히 저분과 친밀해 보이십니다.”

“오우야, 꿈에 나올까 무섭다. 저 여자랑 적이 되면 골치가 아파서 적당히 친하게 지내는 거야. 절대 근처에 살기는 싫다고.”

“선배님, 권아영 씨 근처에 살 생각까지 하셨던 겁니까?”

“와, 이거 대표라서 욕도 못 하겠고.”

탁기준이 욕을 참는 사이 권아영이 자리로 돌아왔다.

순간 카페 모니터로 엑슨의 병맛 광고가 흘러나왔다. 그걸 본 탁기준이 감탄했다.

“올~ 우리 광고 나오네. 잘 뽑혔어, 아주.”

“잠시만. 저거 너네가 만든 거니? 요즘 난리 난 사극 광고 말하는 거지?”

화면 속에서는 전서윤이 차지게 문어발을 휘두르고 있었다.

무심코 모니터를 보던 사람들의 시선이 고정되고 웃음이 터졌다.

“한바탕 난리가 나기는 했지? 저거 봐. 음소거한 광고 보고도 사람들이 반응을 보이잖아.”

“그거야 안 들어도 음성 지원이 되니까. 요즘 바빠서 대행사 확인은 못 해봤었는데 당연히 대형에서 만든 줄 알았어. 와, 저걸 신생 광고대행사에서 만들었다는 거야?”

“뭐, 우리가 좀, 하지?”

탁기준이 거들먹거리자 도혁은 조금 피식하고 말았다.

“좀 하는 정도가 아니라 너네 광고판을 엎어놓지 않았니? 네티즌부터 평론가까지 문제의 광고라고 지난주 내내 난리였잖아. 저런 소재가 공중파에 나갈지 누가 상상이나 했겠어.”

“이왕 엎어지는 거 확 넘어져 버렸죠. 뭐. 좋게 봐주시니까 감사합니다.”

“회사 이름이 뭐라고 했죠? DW애드 코리아. 나 명도혁 대표님 기억할게요.”

권아영이 기억해 주면 아주 고맙지.

전서윤의 기획사가 칸느 느낌이라면 권아영네는 헐리우드였거든.

권아영 쪽이 아무래도 소비자에게 친밀한 모델이 많았으니까.

속으로 쾌재를 부르지 않을 수 없었다. 악녀라도 일 하나는 똑 부러지는 걸로 소문난 그녀였다.

권아영이 DW애드의 명함을 야무지게 챙겨 들었다.

* * *

“권아영 선배도 조덕현을 지목하는구만. 이 길로 쳐들어가 버려?”

“아니요. 내버려 두세요.”

“왜.”

“그쪽은 실체가 있으니까요.”

권아영이야 존재를 몰랐으니까 확인하려고 했던 거고, 조덕현이야 이 뒤로 무슨 수를 쓰든 안 봐도 너튜브다.

굳이 땀에 젖어 기름진 얼굴을 또 보고 싶지도 않았고.

“조덕현이 맞긴 하겠지?”

“정황상 그렇죠. 선배, 사무실 들어가면 프로덕션들 통해서 최근 조덕현 행보 좀 알아봐 주세요. 입이 싸니까 분명히 완구 프로모션을 대대적으로 진행하네 어쩌네 떠벌리고 다녔을 거예요.”

“그래. 확인해 볼게. 근데 정말 저대로 둬도 괜찮을까?”

탁기준이 우려했다.

“실컷 굴러봐야 빌드업이나 쌓는 거죠. 아마 성격 급해서 또 뭔가 이것저것 하면서 또 구르고 있을 겁니다. 우리는 그걸 이용해 버리면 그만이니까 내버려 둡시다.”

“전에 말한 대로 네거티브로 가시겠다? 네거티브 전략은 매체비 들이부어야 할 수도 있어.”

“돈 아끼자고 있는 게 머리 아니겠습니까? 조덕현한테 쏟을 돈 없어요. 그 돈 직원들에게 쓸 겁니다.”

“올~~ 명 대표님.”

탁기준이 반가운 소리라며 막 대꾸하던 찰나였다. 둘에게 동시에 메시지가 도착했다.

인터넷 커뮤니티 등을 통해 방긋토이를 겨냥한 바이럴이 시작됐다는 것이다.

“명 대표 자리 깔아야겠다. 조덕현이 벌써 굴렀네.”

“그러게요. 선배는 프로덕션 쪽 바로 부탁드려요. 저 먼저 회사 들어가 볼게요.”

도착한 사무실 안에서는 최민아가 노트북을 던지고 난리가 났다.

“이 미친 것들이 진짜 해보자는 건가? 이거 좀 보세요.”

-아이 엄마들 유해 장난감 기사 보셨나요? 불안해서 이거 원.

ㄴ 그러니까요. 이번에 문제 된 거기 OO토이 맞죠? 방긋방긋 웃는 곳.

ㄴ 애들 물고 빠는 장난감 많이 나오는 곳 아닌가?

ㄴ 그러니 더 문제죠. 애들 장난감 가지고 장난질이라니.

ㄴ 헐, 방긋? 산타 옷 입고 개 끌고 난리 치던 거기?

2020년대처럼 커뮤니티가 엄청나게 활발하던 시절은 아니었지만 타격감은 충분했다.

이미 방긋토이를 겨냥하고 있었고 유해 장난감의 원흉으로 거론되고 있었으니까.

“방긋토이 최 대표님 이거 보시면 멘탈 완전히 나갔겠는데?”

“광고 뿌립시다. 그때 말했던 네거티브.”

“뭐?”

“현우 선배. 바로 신문사 컨택하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내일 조간 내보내는 걸 목표로 진행합니다. 안 되면 석간이라도요.”

“조간이라고? 집행비는?”

“최 대표님과는 제가 직접 얘기할게요. 빨리 들어갈 슬롯부터 확인해 주세요. 신문사와 연결된 여성지들 3, 4, 5월 특집으로 들어간다고 하면 빼줄 수도 있어요.”

도혁은 가장 급한 매체부터 지시한 후 한수철에게 물었다.

“수철이는 관공서 쪽 확인해 봤어?”

“어. 통화했는데 최 대표님 말대로 방긋토이는 최근 검사에 매우 우수한 점수를 받았어. 그런데 한 개 품목이 등급 외 판정을 받았더라고.”

“뭐?”

“문제 될 건 없어. 그게 옥수수로 만든 완전 무해 성분이라 지금까지 사례가 없었나 봐. 어젠가 판정이 떨어졌어.”

“그런 사항을 바로 말해줬어?”

“아니. 당연히 상세 사항은 함구하지. 다른 루트 통해서 자세히 알아봤어. 아버지의 친구분의 친구분, 어우 힘들었다고.”

“고생 많았네. 아무튼 조덕현이 등급 외 판정을 물었구만. 오케이”

사태를 확인한 도혁이 빈 종이 위에 시원하게 카피를 갈겨주었다.

“시안은 태오 선배가 뽑아요. 굵직하고 섬찟하게.”

“그런 거야 내 전공이지.”

“어! 저희는 뭐 합니까?”

“우리 귀염둥이 제작팀 둘은 할 일이 따로 있어.”

이진우와 최민아가 초롱초롱한 눈망울로 도혁을 올려다보았다.

“둘 다 타자 빠르지?”

“아, 아까 봤던 커뮤니티에 글 남기라는 거죠?”

“판은 저쪽에서 이상하게 깔아놨으니까 조목조목 반박해 주면 돼. 디펜스 개념으로 하는 거야. 애 둘 정도 있는 아줌마로 빙의해서. 할 수 있지?”

“그럼요!”

빙의를 마친 둘이 손가락을 풀었다.

그리고 곧 번개처럼, 빛의 속도로 강태오가 시안을 뽑아왔다.

도혁이 전화를 들었다.

“최 대표님. 괜찮으십니까?”

“하아, 인터넷 보셨군요. 직원들한테 말도 못 하고 속앓이하면서 댓글 다는데 독수리 타법이라…….”

말을 잇지 못하는 최 대표였다.

“대표님 시간 없으니까 바로 말씀드릴게요. 지금 핸드폰 메시지로 사진 하나 보냈습니다. 보이십니까?”

“잠시만요. 보입니다. 어! 이런, 이거 설마!”

“맞습니다. 내일 조간, 늦어도 석간에 내보낼 광고입니다.”

통화 내용을 듣던 차현우가 손가락으로 오케이 사인을 보냈다.

“조간 가능하다고 하네요. 지금 보낸 카피 컨펌해 주시죠.”

“이대로 나갑시다. 좋습니다. 어느 경쟁사에서 이런 짓을 하는지 모르지만 저는 거리낄 거 없어요.”

“그 경쟁사도 곧 그 사실을 알게 될 겁니다. 그럼 이대로 나가겠습니다.”

실시간으로 상황이 정리되고 있었다.

도혁이 최 대표를 안심시켰다.

“독수리 타법은 그만하셔도 됩니다. 여기 선수들을 배치했거든요.”

게임과 디자인으로 단련된 노련한 손끝이 바쁘게 움직였다.

애 둘 맘으로 완벽 빙의한 DW의 제작팀 막내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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