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광고 천재 명도혁-106화 (106/252)

광고 천재 명도혁 106화

“대표님, 그 기사 보셨죠? 이거 어떡해요?”

“봤어. 모두 모이라고 해.”

부산에서 밤새워 달려와 비상 회의를 소집했다. 직원들은 이미 전원 출근한 상황.

DW애드 코리아 회의실에 긴장이 서렸다.

회사를 오픈한 후 이렇게 얼어붙은 분위기는 처음이었다.

도혁이 무거운 입술을 떼었다.

“모두들 아동 유해 완구 관련한 기사 보셨을 겁니다.”

“미친놈들. 이거 대표적인 흠집 내기잖아. 돌려 까는 거. 아니, 정면으로 깐 건가?”

탁기준이 인쇄해 놓은 기사를 테이블에 던지며 소리쳤다.

최민아가 기사를 읽으며 어이없어했다.

“최근 어린이 장난감에서 유해 물질이 검출되어 논란이 일고 있다. 특히 크리스마스 프로모션으로 큰 화제를 불러일으킨 00토이, 업계 1위를 달리고 있는 XX장난감 등이 도마 위에 올랐다.”

“와, 정말 악의적이네요. 크리스마스 프로모션 기사에 딱 맞춰서 풀어버렸네. 이거 누가 봐도 방긋토이 아닌가요? 회사 이름 깐 거나 마찬가지잖아요.”

“그러니까. 이러면 특정 지어서 이름을 거론한 게 아니라서 고소하기도 모호해져. 완구 회사에서는 크리스마스 행사 규모가 작더라도 다들 한다고.”

“이런. 교묘한 인간들.”

“자, 주목해 주세요.”

웅성거리는 직원들의 시선을 모은 후, 도혁이 손가락으로 신문사 이름을 가리켰다.

“이 신문사들 들어본 적 있는 사람?”

“피엘 신문. 지엔타임즈, 전부 처음 들어봐. 듣도 보도 못한 이상한 신문사들이라고.”

“이 기사 좀 봐봐요. 이게 무슨 기사야. 완전 증권가 찌라시 스타일 아니에요?”

출처조차 불분명한 무책임한 기사들. 직원들이 분노를 쏟아냈다.

“이름 없는 인터넷 신문사에서 낸 전형적인 ‘아니면 말고’ 식의 기사입니다.”

“어이가 없어서. 이거 맞대응해야 하는 거 아니에요?”

“그러니까 말입니다.”

“문제는 맞대응이 아니야. 소문이지. 소문이라는 게 무섭잖아. 특히 장난감이다 보니까 어머님들이 민감해.”

“거기다 방긋토이는 최근 프로모션으로 인지도까지 올라가 있어서 오히려 불리한 상황이라고. 좀 화제가 됐어야지.”

방긋토이는 애견 루돌프 프로모션과 산타 행사의 성공으로 긍정적인 이미지를 쌓아가던 참이었다.

강태오가 주먹을 불끈거리며 분노했다.

“이거 정말 누구 짓이지? 다 밝혀서 밟아버려야 해.”

“이 바닥 빌런이 한둘이어야 말이죠. 악질적인 데가 몇 군데 있긴 한데. 예전에 라면 업체도 그렇게 무너졌지 아마.”

탁기준이 부정적인 사례를 열거하며 얼굴을 구겼다.

최민아가 반박했다.

“이 어린이 완구 유해 물질 논란은 사실이 아니잖아요. 최 대표님이 아이들 물고 빨아도 된다고 그렇게 강조를 하셨는데. 저한테 따로 전화 주신 적도 있어요. 무해한 성분에 관해서 집중적으로 부각해달라고요.”

“뭐, 라면은 유해했냐?”

근거 없는 선동이 통하던 시절이었다. 하긴 2020년대에도 찌라시나 악의적인 방송으로 중소 기업 하나 무너뜨리는 건 일도 아니었지.

가짜 기사로 피해 보는 사례도 많았고.

도혁이 혀를 차며 대꾸했다.

“대중들이 기억하는 건 진실이 아니고 가십이야. 그게 이런 가짜 선동의 무서운 점이고.”

“하아, 최 대표님은 뭐라셔?”

“최 대표님은 아직 연락이 안 돼. 아마 기자들 때문에 시달리고 계실 거야. 소비자원이라거나 유관 부서에서 조사가 나올 수도 있을 것 같아.”

한수철이 고개를 가로저으며 대답했다.

도혁이 일단 사건을 정리하며 수습을 시작했다.

“일단 대응부터 해야 해. 현우 선배는 주식회사 엑슨 쪽 언론대응팀이 있을 거예요. 그쪽에 연락해서 사태 파악해 주시고, 기준 선배도 태강애드 매체국 쪽에 좀 알아봐 주세요. 더 기사가 번지지 않도록 조치하는 게 최우선일 듯합니다.”

“그러지. 관공서 쪽은 수철이가 담당하면 어떨까?”

“내가 여러 루트 통해서 알아볼게. 반박 자료 수집이랑 보도 자료도 준비하고.”

“일단 언론부터 막고 나랑 기준 선배는 누가 이런 짓 했는지 좀 알아봐야 할 것 같아요.”

“아, 이게 웬 날벼락이람.”

직원들이 손발을 맞추어 업무를 빠르게 분장했다.

최민아가 테이블에 엎어지며 한숨지었다.

“지금부터 준비해서 3월 정도에 매체 풀고 5월에 팍, 프로모션 때리면 되는 그림이었는데. 어이가 없네.”

“잠시만.”

도혁이 한쪽 팔을 들어 그녀의 말을 가로막았다. 그러곤 잠깐 생각에 잠겼다.

“왜 그래요. 대표님. 뭐 떠오르는 거라도 있어? 범인 누군지 알겠어요?

“우리 이후 일정 그대로 진행하자.”

“엥? 이 마당에 계획대로 진행하자는 거예요?”

“오히려 잘된 일일 수도 있어.”

“그게, 무슨 말이야?”

놀란 눈동자들이 오롯이 도혁을 바라보았다.

그가 기사가 프린트된 종이를 구기며 쓰레기통에 던져 버렸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이용해 버리자고. 네거티브 전략(부정적, 혹은 충격적 이미지를 활용해 광고하는 전략.)으로 나가는 거지. 일부러 마케팅을 하기도 하잖아?”

“뭐? 네거티브?”

직원들이 동시에 소리쳤다.

* * *

최 대표로부터 전화가 걸려온 건 저녁때가 다 되어서였다.

최 대표의 목소리가 분노로 일렁였다.

-전부 고소할 겁니다. 이렇게 헛소문 퍼뜨린 것들 다 잡아내서 족칠 거예요. 가만히 안 둘 거라고요!

“네. 그 심정 충분히 공감합니다. 대표님 일단 진정하시고 제 얘기 잘 들으세요.”

도혁이 최 대표를 진정시키며 계획을 전해주었다.

“지금 우리 직원이 사태를 파악 중이에요. 어느 경쟁사와 대행사에서 싸움을 걸어왔는지 알아야죠. 그리고 언론은 일단 손이 닿는 데 까진 연락 돌렸어요.”

-정말 감사합니다. 어쩐지 이제 기자들에게 더 전화가 안 오더라구요. 정말 참담한 기분입니다. 평생 내가 어떻게 만들어온 완구인데…….

최 대표가 말을 더 잇지 못하고 흐느꼈다.

일평생 장난감 하나만 바라보고 살아왔다고 했던가. 좋은 완구 만들어서 아이들이 가지고 노는 것만 보고 있어도 즐겁다고 했었지.

동심을 잃지 않은 피터 팬 산타의 꿈이 조각조각 깨어진 오늘이었다.

도혁은 상심한 최 대표를 겨우 달래고 탁기준과 길을 나섰다.

“최 대표님 괜찮으셔?”

“분노하시죠, 뭐. 고소할 거라고 벼르고 계십니다.”

“고소고 나발이고 이미지가 중요한 제품군인데 솔직히 난감하다 정말.”

“일단 잡으러 가봅시다. 그 뭐 같은 인간들.”

주차장에 도착하자 탁기준이 제 차로 가자고 손짓했다.

“운전 내가 할게. 짚이는 데가 좀 있어서 그래.”

“짚이는 데요? 선배가 업계 동향 제일 잘 아니까 맞지 않을까요?”

촉이 좋은 탁기준이었다. 은근히 광고계에 발도 넓었고 대외 활동도 활발한 편이었다.

탁기준이 두 팀을 지목했다.

“일단 첫 번째로 의심 가는 곳은 태강애드야. 조덕현 본부장이 태강에서 따로 팀 꾸린 거 들었냐?”

“벌써요?”

“어. 입사한 지 얼마 안 됐는데 임원들 세 치 혀로 구워삶았나 봐. 말은 청산유수니까.”

“으. 태강도 망조 들었네요. 답답하네.”

“꼭 그런 것만은 아니야.”

탁기준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얼마 전에 김철준 대표님과 한잔했거든. 조덕현 본부장 두고 보시겠다고 하더라고. 명 대표가 독립하면서 조덕현 조심하라고 말했었잖아. 그래서 주목하고 계신대. 어쩌면 지금 시험하는 중인지도 모르지.”

“그렇구나. 하긴 조덕현 본부장은 따로 팀을 꾸리고 있는 게 주변에 민폐를 덜 끼칠 수도 있어요.”

“아무튼 내가 첫 번째로 의심하는 쪽은 조덕현이야. 그리고 두 번째는…….”

탁기준이 말을 흐리자 도혁이 의아해 고개를 기울였다.

“어딘데요? 선배가 생각하는 곳이?”

“대일기획.”

“대일이요?”

의외의 대답에 도혁이 갸웃했다.

하긴 대일도 계속 하향세를 걷기는 한다. 몇 년 내에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 버리지.?

전에 탁기준이 대일에 꼴 보기 싫은 인간들 있다고 했던 게 기억났다.

탁기준이 핸들을 한번 내려찍더니 입술을 앙다물었다.

“거기 배운 변태가 있어. 내 생각에는 그 여자가 아주 유력해. 공격하는 스타일이 비슷하다고 해야 할까?”

“조덕현보다 이쪽을 주목하시는군요?”

“맞아. 아주 뱀 같은 여자야. 태강애드도 당한 적 있을걸?”

기획팀장급이라는데 타격감이 장난 아니라고. 다른 업체 광고주도 쏙쏙 빼 오고 언론 플레이의 달인으로 악명이 높단다.

“일단 꼬리부터 잡아보자. 언론사부터 가보자고. 뭔 근거가 있어야 들이밀 테니까.”

“흠. 글쎄요. 딱히 그쪽에서 단서가 나올 것 같지는 않아요. 유령일 테니까.”

탁기준과 함께 찾아간 언론사에서는 예상대로 아무것도 건질 수 없었다.

주소도 가짜, 법인도 없는 데다 직원도 없는 유령 회사였다. 서버조차 계속 갈아타는 요상한 신문사. 그야말로 이름만 있고 가짜 기사를 쏟아내는 쓰레기 언론이었다.

이 잡스러운 인터넷 언론사들은 애초에 실존하지 않는 건 아닌지 의심스러울 정도.

“실체가 없는 언론이라.”

“찌라시나 흘리고 가짜 기사를 양산하는 곳이죠. 금세 만들었다가 사라지는 유령 같은 존재들.”

“참, 인생 편하게 산다.”

후우, 한숨을 뱉으며 둘이 서로를 바라보았다.

“어쩔 수 없지. 꼬리가 없다면 머리를 바로 치러 가야겠지?”

“같은 생각입니다.”

둘은 그길로 발을 돌려 배운 변태를 찾아 대일기획으로 향했다.

대일기획 사옥 앞 카페에서 선배라는 그 여자를 전화로 부른 탁기준의 낯빛이 파랗게 질렸다.

긴장한 기색이 역력한 탁기준을 보며 도혁이 놀리듯 말했다.

“기준 선배가 긴장하는 걸 다 보네요. PT 할 때도 안 떠시잖아요.”

“아우 내가 저 여자한테 당한 게 많아서. 우리 과 동문인데. 집착이 아주 쩔어.”

“집착이요?”

“하나 꽂히면 집요하게 파대면서 사람을 아주 말려 죽여 버려요. 나도 찍혀 가지고 뼈도 못 추렸었지.”

마치 어제 당한 듯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탁기준이 치를 떨었다. 그러곤 도혁에게 당부했다.

“놀라지 마라. 이 선배가 좀, 그래.”

“네? 좀 그런 게 어떤 겁니까? 구체적으로 설명해 주시죠.”

“예뻐. 그것도 많이 예뻐. 못돼처먹어서 그렇지.”

“아, 예쁜데 못됐어요?”

“예쁘고, 머리 좋고, 못됐어. 아주 골고루 갖췄다고. 배운 변태라고 했잖아.”

한 번 더 탁기준이 미간을 좁히며 치를 떨었다. 순간 멀리서 또각또각 하이힐 소리가 울려 퍼졌다.

“어!”

“쉿. 야, 명 대표! 예뻐도 놀라지 말라니까.”

도혁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

잘 아는 얼굴이었고 여기서 만날 줄은 전혀 몰랐던 사람이니까.

놀라 동그래진 도혁을 한번 눈으로 훑은 여자가 탁기준을 보고 방긋 웃었다.

“어이, 탁기준이. 오랜만이다. 살아 있었냐? 이쪽에 훤칠한 친구는 누구?”

“뭐 그럭저럭 살았지 뭐. 여기는 명도혁. 내가 지금 일하는 회사 대표야.”

“어머, 너 태강 나왔니? 잘했네.”

여자가 고개를 돌려 도혁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명도혁 씨. 반가워요. 나 권아영이에요.”

여자의 손이 도혁에게 악수를 청했다.

도혁은 물끄러미 그 손을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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