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광고 천재 명도혁-104화 (104/252)

광고 천재 명도혁 104화

역시 한수철의 삼촌은 꼬장꼬장했다.

관련 업체 리스트만 달랑 손에 쥐여주곤 생색을 냈으니까.

“이 정도 해줬으면 됐제? 내 낯이 간지러버서 전화까지는 못 해주겠다. 그런 건 해보지도 않았고.”

“네. 감사합니다.”

도혁은 쭈욱 업체 목록을 훑으며 생각에 잠겼다.

대부분 이름을 알 법한 대형 건설사로 본사가 서울에 있었다.

‘이건 어차피 사무실 올라가서 미팅을 잡아야 할 거고. 문제는 부산 회사들인데.’

부산 토종 건설사 몇 개가 눈에 들어왔다.

분명히 해운대 바닷가 한가운데서 봤던 아파트 이름들. 센텀시티와 마린시티 사업을 수주한 게 확실한 기업들이다.

서울에서 계속 살아왔기 때문에 부산 동향은 잘 모르는 것이 문제다.

도혁이 삼촌을 바라보며 몇 가지 물어보았다.

“감사합니다. 저희가 어떻게든 접촉해 볼게요. 그런데 여기 부산 기업 중에 좀 탄탄하고 믿을 만한 곳이 있을까요?”

“와, 들어가 보게?”

“네. 이왕 온 김에 접촉이라도 해보려구요.”

“그럼 파란건설 함 가봐라. 만도랑 연성도 그렇고. 나름 괜찮을끼다.”

재무구조처럼 겉으로 드러나는 사항은 조사해 보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업계 동향이나 내부 사정은 지역 전문가들의 암묵지만큼 알아낼 수가 없다.

삼촌은 몇 개 기업을 추천하며 찬찬히 설명해 주었다.

“여기는 평면이 좋다고 소문난 집이다. 현장 들어가서 욕먹은 적 한 번도 없는 회사다. 그리고 보자, 어, 이 집은 다 현금 준데이.”

“현금이요?”

“그래. 현금 장사만 하는 회사다.”

6개월 어음을 끊어주는 회사도 제법 있던 시절이었다. 무려 건설 회사가 현금이라니.

도혁의 귀 끝이 예민하게 곤두섰다.

“그래. 이 업계에선 아마 보기 드물끼다. 신용도 좋고 사장도 믿을 만하고, 함 뚫어봄 직하지. 규모가 큰 회사는 아니지만 내 안목으로는 괜찮은 축에 속하니깐.”

도혁과 수철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삼촌이 질문을 던졌다.

“서울에도 일이 있을 건데 대단하네. 고마 이까지 와서 광고주도 물어 가고.”

“다른 건으로 왔는데, 이상하게 바닷가 땅들이 자꾸 눈에 밟히네요.”

“땅 파는 게 눈에 밟힌다는 소리구만.”

“맞습니다. 타 광고주 건으로 부산으로 와서 바쁘게 일정 진행 중이지만, 이 기회에 더 수주를 할 수 있다면 금상첨화겠죠. 시작하는 우리 DW애드 입장에서 시간은 금보다 소중하니까요.”

“명 대표, 이거 기생오래비처럼 생기 가지고 삐리하게 봤드만, 마! 사장 맞네. 돈길 볼 줄도 알고!”

흡족한 듯 입매를 끌어올리며 삼촌이 무릎을 탁 쳤다.

“건설사 드갈 때 내 이름 정도는 말해도 된다. 고마 사돈에 팔촌이라 캐라. 알아묵을 끼다.”

“어! 정말 그래도 돼요, 삼촌?”

“그래. 젊은 놈들이 사업해 볼끼라고 부산 바닥까지 와서 삐대는 거 보니까 내 옛날 생각나서 그런다. 젊을 때 나도 장사나 한번 해볼낀데.”

“에이, 삼촌은 딱 공무원이세요.”

“뭐라카노. 나도 잘나갈 때 있었다카이! 내 처음에 건설사 다니다가 왔다 아이가!”

삼촌의 젊은 시절 얘기가 길게 이어졌지만 하나도 지겹지 않았다.

오래도록 함께할 든든한 후원자가 생긴 기분이었으니까.

“그래가, 내가 양산 포병부대 안 있었나. 최전방. 우리의 주적은 일본이다 카믄서…….”

안 지겹다고 한 건 취소다.

* * *

애견 루돌프의 날이 밝았다.

부산 경남 지역의 잘생긴 대형견은 다 모인 것 같다.

심사를 위해 애견 전문가를 모시고 애견인들이 총출동했다.

물론 DW애드 식구들도 부산의 행사장으로 모두 모였다.

“무슨 사람이 이렇게 많아? 부산 경남만 행사하는 거 맞아?”

“지금 전국 단위로 사람들이 모인 것 같습니다. 이 행사가 애견 동호회에서 이슈가 됐나 보더군요.”

“그래? 취재하러 온 기자단도 엄청 많은데? 어머, 저건 NBC니? 공중파도 왔어.”

“그러게요. 지역 뉴스 나가나 봅니다. 어휴, 체육관 대관하길 정말 잘했는데요?”

“설마하니 이 대회가 저절로 이슈가 됐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차현우가 다가오며 이진우의 어깨에 팔을 둘렀다.

“어! 그럼 설마!”

“그래. 당연히 바이럴 뿌렸지. 전국 동호회에서 몰려올 거다. 이런 잘생긴 대형견들을 볼 수 있는 자리가 흔치 않거든. 마침 크리스마스 시즌이고 말이지.”

“어쩐지 상금이 썩 많은 것도 아닌데 너무 사람이 많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진우와 최민아가 미친 듯이 디자인 작업을 하는 동안 남은 인원들은 홍보에 총력을 펼쳤다.

그 결과 애견 전문지부터 공중파에 이르기까지 보도할 만큼 큰 행사가 된 것이다.

머리를 긁적이며 이진우가 체육관을 휘이 둘러보았다.

도혁이 웃으며 설명을 덧붙였다.

“상금은 상관없어. 썰매 끌 정도의 대형견을 키우려면 이미 부잣집이 많아서 말이지. 일단 정원도 있어야 하고, 저 개들 상태 좀 봐. 윤기가 좌르르 하지 않아?”

“그러네요. 부잣집 강아지 티가 나기는 합니다.”

“강아지는 무슨. 덩치가 나만 한걸?”

최민아가 몸을 떨며 행사장에 돌아다니는 개들을 바라보았다.

“민아는 애완견 싫어해?”

“어. 사람 나고 개 났지 개 나고 사람 났니? 유난 떠는 건 싫어.”

애견인들이 곳곳에 있었기에 최민아가 작게 속닥거렸다.

“저는 강아지 정말 좋아합니다. 아, 저 그레이하운드 정말 잘생기지 않았습니까?”

“내가 더 잘생겼어.”

“내가 낫지.”

개보다 잘생긴 걸 앞다투어 자랑하는 DW애드 남자들이었다.

최민아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그들에게 카메라를 들이밀었다.

“다들 사진이나 열심히 찍으세요. 우리도 사내 공모 할까요? 오늘 사진 채택된 분께는 소정의 상품을 드릴게요.”

“오! 굿. 우리 깐깐한 최 디자이너의 간택을 받는 것만으로도 영광인데 상품까지!”

직원들이 카메라를 다잡는 가운데 썰매견 대회가 시작되었다.

사회를 맡은 개그맨이 큰 소리로 외쳤다.

“여러분! 잘 들리세요?”

“네!!”

“오늘 이 자리는 애견인들의 축제인 동시에 크리스마스를 대비한 행사인 것 아시죠? 그럼 지금부터 산타클로스의 썰매를 끌 대형견 선발 대회를 시작하겠습니다.”

사회자가 개회를 선언하며 힘찬 함성이 쏟아졌다.

“강아지가 썰매를 끈다는 것 자체가 신기한 발상이기도 한데요, 그래서 그런지 정말 많은 분들이 참석해 주셨습니다. 여기 모인 모든 분들께 감사드리며 심사 위원 소개할게요.”

애견 전문가로 이루어진 심사 위원단 소개가 이어지고 식순이 진행되는 가운데 갑자기 문이 열렸다.

활짝 열린 문으로 산타가 나타났다.

“어! 저기 최 대표님 아니에요?”

“죄송하지만 최 대표님이 직접 하실 수밖에 없었어. 저 뱃살을 가진 모델이 흔치 않더라고.”

“못살아. 근데 정말 잘 어울리네요. 산타클로스가 현신한 것 같아요.”

“표정이 좋으셔서 그래. 평생 장난감을 만드셔서 얼굴에 아이들 사랑이 묻어나는 것 같아.”

첫 방문 때 무독성 제품을 하나하나 소개하며 아이들을 향한 마음을 감추지 않았던 최 대표였다.

도혁은 동화 속의 성처럼 지어놓은 방긋토이 공장을 떠올리며 최 산타를 바라보았다.

최 대표가 분장을 하나도 하지 않아도 될 만큼 두둑한 뱃살을 두드리더니 마이크를 잡았다.

“오늘 선발된 썰매견이 저와 함께 올해 크리스마스이브를 책임질 겁니다. 그럼 훌륭한 루돌프견을 기대하면서 산타는 자리에 앉아 구경하겠습니다.”

굵직하게 흉내 낸 목소리가 제법 산타 같았다.

사람들의 박수가 쏟아지고 사회자가 종목을 소개했다.

“총 세 가지 종목에 참가해 총 합산점이 가장 높은 참가견이 우승을 차지하게 됩니다. 상금은 5등까지 지급하지만 3등까지만 썰매견으로 참가합니다. 첫 번째 종목은 달리기! 오직 속도만을 평가합니다.”

견주들이 긴장한 표정으로 목줄을 움켜쥐었다.

“두 번째는 개인기입니다. 크리스마스의 축제에 어울리는 개인기가 있으면 좋겠죠? 선물을 받게 될 성탄의 어린이를 기쁘게 해줄 개인기가 있는 애견이 높은 점수를 받을 것입니다. 다음은!”

사회자가 말을 뚝 끊자 모두의 시선이 더욱 집중되었다.

“그다음 종목은 비밀입니다. 두 경기가 끝나고 나면 말씀드릴게요.”

“에이~ 궁금합니다.”

“뭡니까!”

견주들의 원성이 쏟아지고 개들이 짖기 시작했지만, 사회자는 큼큼 목소리를 가다듬고 진행을 이어갔다.

“비밀이 있어야 즐겁지 않겠습니까? 크리스마스 선물이 궁금한 것처럼 말입니다. 자, 그럼 첫 번째 대회를 시작해 볼까요?”

달리기 시합을 준비하는 체육관을 내려다보며 이진우가 도혁에게 물었다.

“저희 정말 아무것도 안 해도 됩니까? 우리 행사인데 뭔가 해야 할 것만 같습니다.”

“그냥 구경해. 기획만 우리가 하고 통으로 프로모션 맡겼으니까.”

“그래도요.”

“괜찮아. 이런 세세한 집행까지 부려먹으려고 너 DW 데려온 거 아니야. 근데 이진우, 이 자식, 많이 빠릿해졌다?”

군대에서 눈치 없이 삐대다가 혼쭐이 나던 이진우가 떠올라 도혁이 그의 어깨를 두드렸다.

“그렇습니까? 다 대표님 덕분이죠. 늘 감사합니다.”

“아씨, 잘 나가다가 오글거리게. 어?”

“그런가요. 그럼 제가 빠릿빠릿하게 커피 사 오겠습니다!”

“콜!”

커피를 사러 뛰어가는 이진우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도혁이야말로 오글거리는 말을 속으로 중얼거렸다.

‘고맙다, 진우야. 곁에 있어줘서. 아씨, 진짜 오글거리네.’

하지만 사실이니까.

도혁은 이진우가 가져온 커피를 홀짝이며 행사장을 내려다보았다.

역시 경연의 꽃은 달리기인가.

앞으로 내달리는 대형견들에게 엄청난 함성과 응원이 쏟아졌다.

저 속도로 밤새워 달리면 착한 어린이 모두에게 선물을 전할 수도 있겠다 싶을 정도로 빠른 속력을 자랑했다.

그리고 이어진 장기 자랑으로 우승권이 거의 추려졌다.

“저기 다섯 마리 정도가 유력 우승 후보네. 덩치는 산 만해서 애교가 장난 아닌데? 어머, 쟤 지금 몇 미터를 뛰어오른 거야?”

“와우, 서전트 어마어마하네. 완전 농구 선수구만.”

“저기 눈 파란 애는 늑대야 개야? 어우, 무섭게도 생겼다.”

“시베리안 허스키 말이야? 눈이 파랗고 보기에 늑대 같아서 그렇지 엄청 순해.”

“저 개가 순하다고?”

최민아가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살을 찌푸렸다.

“나 같은 건 한입에 잡아먹을 것 같이 생겼는걸. 아무튼, 난 저 친구가 우승할 것 같아. 찜.”

“썰매 끌기에 제격이긴 하지. 난 저기 말라뮤트에 걸게. 여기 만 원.”

“직원들! 돈내기는 하지 마!”

만 원짜리 몇 장을 걸고 우승을 점치고 있는 직원들을 도혁이 겨우 뜯어말렸다.

그러는 가운데 세 번째 미션이 발표되었다.

“세 번째 대결은 유혹 참기입니다. 산타를 보좌하는데 사소한 유혹에 흔들리면 안 되겠죠? 이 간식을 참아낼 루돌프견이 과연 있을 것인지, 두고 볼까요?”

하늘에서 애견들의 간식이 쏟아졌다. 축제처럼 내리는 간식의 유혹을 1분간 참아내는 미션이었다.

개들의 전쟁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이 축제 같은 프로모션이 훗날 장난감 전쟁의 시발점이 될 거라는 걸 그때 도혁은 알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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