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광고 천재 명도혁-101화 (101/252)

광고 천재 명도혁 101화

“어이, 그쪽에 그림 받아놔. 테입 좀 걸고.”

“기깍기(싱크로율)가 안 맞잖아. 죽을래?”

이른 아침, 도혁은 CF 편집 외주를 맡긴 TJ프로덕션을 찾았다.

벌써 분주한 실내에서는 영상 편집이 한창이었다.

담배꽁초와 빈 맥주캔, 테이크 아웃 커피 컵이 발에 채이는 보통의 프로덕션 풍경이었다.

“어이구, 새벽같이 우리 명 대표님이 어쩐 일이세요?”

“출장길에 잠깐 들렀어요. 그림 어떻게 나왔나 잠시 보려고 들렀죠. 밤새우셨나 봐요.”

“그럼요. 설마하니 이 인간들이 이 시간에 일어났겠습니까?”

TJ 대표의 말에 영상 편집을 하던 직원들이 손가락으로 브이를 그려 보였다.

그중에 한 명이 커다란 목소리로 소리쳤다.

“대표님, 엑슨 광고 골 때리는데요? 밤새우면서도 웃겨 가지고 피식거리면서 작업했어요.”

“칭찬인 거죠? 골 때리라고 만든 광고거든요.”

“네. 사극 버전 시나리오 쓰신 분 도핑테스트 해봐야겠는데요?”

도혁이 작업 중인 모니터로 가서 꼼꼼히 영상을 들여다보았다.

“벌써 제법 진행됐네요. 대단한데요?”

“저희 이틀 새웠어요. 근데 이거 대박 각이에요. 삘을 팍! 받았다고요!”

“네. 잘될 겁니다. 우리 직원들 오면 잘 부탁드려요.”

큰 문제 없이 편집까지 순탄하게 마무리되는 것을 보며 길을 나섰다.

외주처 관리는 광고대행사로서 상당히 중요한데, 웬만큼 일이 늘지 않으면 도혁은 TJ와 독점으로 진행하고 싶었다.

아주 오랫동안 지켜본 태강애드 거래처인데, 일 처리가 깔끔하다.

마감 잘 지키고 퀄리티 좋고 무엇보다 입이 무거워서 믿을 만했거든.

‘그럼 엑슨은 웬만큼 정리된 것 같으니 개운하게 떠나볼까. 떠나요, 바다로~.’

콧노래까지 흥얼거리며 차에 올랐다.

방긋토이 미팅을 위해 한수철과 부산으로 직접 가기로 한 것이다.

데리러 간 한수철이 차에 타며 커피를 건넸다.

“운전 내가 할까? 장거리 처음이지?”

“처음이라…….”

수철아. 내가 이래 봬도 이십 년 무사고 베스트 드라이버여.

커피를 들이켜며 여유를 부리는 도혁을 못 믿겠는지 한수철이 제 장거리 운전 경력을 자랑했다.

“집이 부산이라서 난 그래도 두어 번 해봤어. 생각보다 부산까지 밟고 가기 힘들어.”

“고속도로는 됐고, 부산 들어가서 너가 운전해. 그 동네는 뭐가 뭔지 모르겠더라.”

“아. 그럼 그럴까? 부산 도로 운전하기 힘들지.”

부산 도로 얘기가 나오자마자 둘은 동시에 주먹을 움켜쥐었다.

“한수철. 북한이 6.25 때 왜 낙동강을 넘지 못했는지 아냐?”

“엥? 갑자기 그건 왜 물어봐?”

“부산 도로로 탱크를 들이지 못해서란다. 들어가면 개미지옥이라 못 나올까 봐 못 쳐들어갔대.”

차가 떠나가라 웃어젖히며 한수철이 크게 동감했다.

“아, 맞아. 삼복도로가 복잡하기도 하고 운전도 거칠고. 맞네. 탱크 못 나와. 아, 미치겠다.”

“웃겼냐?”

함께 웃으면서도 도혁은 식은땀이 흘렀다.

무려 십수 년 전의 부산 아닌가.

도로는 2020년대보다 더 복잡했고 부산 사나이들은 더욱더 거칠었던 시절.

부산에 들어서자마자 한수철에게 핸들을 넘겨줘야겠다고 다짐하며 액셀을 힘껏 밟았다.

“그나저나 너, 본가 오랜만에 가겠다?”

“응. 설에 가고 못 갔어. 추석 때도 어영부영 삐대다가 못 가고.”

“어머니 좋아하시겠다.”

“나 엄마 없는 거 모르냐?”

있잖아, 인마. 새어머니라서 그렇지.

‘아직 새어머니랑 화해하기 전인 건가.’

도혁은 수철의 눈치를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에잇 콩가루 집안. 너니까 내가 집안 사정 말했던 거지. 솔직히 본가 가기 싫어. 그냥 호텔에서 자면 안 되냐?”

“안 돼. 전부 회삿돈이니까 집에 가서 자.”

“아오, 누나뻘밖에 안 되는 여자가 엄마라고 앉아 있는데 가고 싶겠냐? 내가 진짜 쪽팔려서 이 말은 안 하려고 했는데…….”

얼굴이 벌게진 한수철이 손바닥으로 벅벅 제 얼굴을 문질렀다.

“내가 추석 때 왜 안 갔냐면. 아오. 그 새엄마라는 여자가 애를 낳았어.”

“한수철 동생 생겼구만.”

“생긴 지 좀 됐어, 사실. 벌써 어린이집 다닌다더라. 근데 설에 갔을 때 얘가 나한테 오빠라고 하는 거야. 수철이 오빠. 그러는데 소름이 쫙 끼치는 거야.”

도혁은 잠깐 말을 멈추고 고속도로 통행권을 뽑았다.

그러곤 한수철을 돌아보았다.

“소름까지 끼칠 건 뭐 있냐. 애가 무슨 죄라고.”

“……아무튼 집에 가기 너무 싫어. 아오, 막장 드라마도 아니고 나 좀 호텔에 재워달라니까.”

“안 된다니까.”

“내가 부산의 맛집이란 맛집은 죄다 데려갈게. 어?”

오! 지역 맛집이라. 솔깃한데?

관광도시라지만 현지 출신의 추천 맛집이라면 믿을 만하지.

“그럼 일단 맛집을 모두 탐방한 후에 컨펌하도록 하지.”

“아오, 대표님 갑질이냐?”

“베프의 우정이지. 부산의 명소를 안내하는 즐거움을 만끽하라는 배려라고나 할까?”

“이 자식.”

오랜만에 멀리 가서 그런지 조금 들떴다. 비록 출장이었지만 수철이랑 이렇게 둘이 가는 것도 좋았고.

“수철아.”

“왜 인마.”

“우리 성공하면 둘이 유럽 한 바퀴 돌까? 한 두어 달 휴가 내서.”

“미친놈. 유럽은 여자랑 가야지 왜 단둘이 가냐?”

“그럼 뭐, 아프리카나 인도? 남자 둘이 가기 좋은 곳으로 바꾸고.”

“그래. 조오치. 성공하면 어딘들 못 가겠냐. 생각만 해도 좋네.”

“약속했다!”

“네. 명도혁 대표님. 대표님이나 약속 깨지 마세요. 성공해도 하루 종일 업무 보고 그러지 마시고요.”

“수철이 너야말로.”

가볍게 반격하곤 라디오를 틀었다.

익숙하고 정겨운 추억의 가요들이 흘러나와 여행길의 정취를 더했다.

쭉쭉 속도를 내며 휴게소에 들러 알감자도 까먹으며 차는 어느덧 부산 톨게이트를 지나고 있었다.

현생에서의 첫 번째 부산행이었다.

* * *

부산에 이런 공단이 있구나.

관광으로만 방문했던 부산의 한 공장단지에 들어서며 도혁이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여기 나도 처음 와 보는데 공장 진짜 많네.”

“그러니까. 바닷가 생각하다가 좀 당황했어.”

“으이구. 하여간 서울 놈들은 부산시가 죄다 바다랑 붙어 있는 줄 안다니까. 광역시가 어촌이냐?”

“하긴. 어! 저긴가 본데?”

도혁이 동화 속에서 튀어나온 듯 파스텔 톤으로 색칠한 성 모양의 공장을 가리켰다.

한눈에 보기에도 나 완구 회사네, 하는 외관으로 떡하니 서 있는 건물의 간판은 역시나 방긋토이였다.

“여기 중요한 광고주지? 인천 시장님까지 얽혀 있잖아.”

“맞아. 그래서 우리 현지 사정 잘 아는 한수철 AE님 모시고 왔지 않습니까?”

“에이, 내가 뭘 안다고.”

“그래도 출신은 뭐가 달라도 달라. 밥집 하나라도 맛있는 데 알 거 아니야. 자, 일단 부딪혀 봅시다.”

문을 열고 들어간 도혁과 한수철은 건물 안의 분위기를 유심히 관찰했다.

기존의 딱딱하고 건조하던 광고주 건물과는 상당히 다른 분위기였다.

복도에는 쭉 장난감이 즐비하게 늘어져 있고 벽면엔 가득 웃고 있는 아이들의 얼굴이 찍힌 포스터가 걸려 있었다.

마음까지 환해지는 어린아이들의 표정을 보며 기분 좋게 대표실 문을 두드렸다.

방긋토이 최인수 대표가 반갑게 둘을 맞아주었다.

“이런, 먼 길 오시느라고 고생 많으셨습니다. 이쪽으로 앉으시죠.”

“아닙니다. 불러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DW애드 코리아의 한수철이라고 합니다. 저도 부산 출신입니다. 반갑습니다. 대표님.”

한수철이 부산 출신이라는 말에 최 대표가 반갑게 부산말로 인사를 건넸다.

“부산 어데십니까?”

“본가는 해운댑니다. 말씀 편하게 하십시오, 대표님.”

“억양 보이 부산 사람 맞네. 맞아. 내 마, 믿음이 팍 가뿌네.”

“감사합니다. 그런데 대표님은 평소에 사투리 안 쓰시네예. 전혀 부산분인지 못 알아봤습니더.”

“대학을 서울에서 나와서 말투가 서울 사람 다 됐다 카이.”

“지도 말 안 하믄 부산 사람인지 눈치도 못 채드라고예.”

“그러니깐. 친구 놈들이 서울 놈 다 됐다고 배신자라 카지요?”

“예. 맞습니다. 그럼 우리 다시 공적인 자리니까 표준어로 진행할까요? 하하.”

저기요, 두 분 다 문장만 서울말이지, 억양이 완전 경상도거든요?

도혁은 완벽한 서울말을 구사한다고 굳게 믿고 있는 두 사람을 바라보며 하고 싶은 말을 삼켰다.

그러곤 찬찬히 한수철과 대화하는 광고주를 찬찬히 관찰했다.

덩치가 큰 인천시장과 함께 있을 때는 몰랐는데, 방긋토이 최 대표 역시 배가 불룩 나온 것이 후덕한 인상이었다.

푸근한 산타를 연상케 하는 외모라고나 할까.

산타를 떠올리는 순간 최 대표가 성탄절 얘기를 꺼냈다.

“앉자마자 본론부터 얘기해서 죄송한데, 제가 그날 명 대표를 보내고 아차 했어요. 우리가 캠페인을 내년 어린이날에 맞추려고 했었잖아요. 그런데 곧 크리스마스더라구요.”

“아, 그러고 보니 크리스마스가 코 앞입니다.”

“완구 회사는 성탄이 대목이잖아요. 어떻게 좀, 이번 프로모션부터 안 될는지요?”

최 대표님, 벌써 내일이면 11월입니다만?

광고주라는 종족이 성격이 급한 건 익히 잘 알고 있었지만 이건 급해도 너무 급한데?

도혁은 애써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며 미소 짓고 있었다.

한수철 역시 마찬가지로 웃고 있었지만 머리 굴리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도혁이 일단 기대에 찬 광고주를 진정시켰다.

“대표님, 일단 야심작이라고 하셨던 승용 완구 론칭은 내년 5월 예정인 것 맞습니까?”

“네. 이때는 대대적으로 캠페인을 할 예정이에요. 그때 우리 식사하면서 얘기 나눴듯이 3월 정도부터 슬슬 홍보하면 되지 않을까 생각 중이고.”

“그럼 크리스마스 프로모션은 기존 제품이나 이미지 광고로 진행하면 되겠습니까?”

“네. 임팩트 있고 굵직하게 진행하고 싶은데, 너무 시간이 촉박하죠?”

도혁이 살짝 고개를 끄덕이자 최 대표가 아쉬운 듯 입맛을 다셨다.

“인천 행님 말로는 명 대표님 회사가 반짝반짝 아주 아이디어가 장난 아니라고 하던데, 아니, 형님은 진작 좀 소개를 해주시지.”

“흠, 혹시 대표님, 기존에 홍보 진행하던 광고대행사 있으십니까?”

“대행사라고 할 것도 없고요. 뭐, 몇 번 해보긴 했는데 솔직히 크게 마음에 들지 않더라고요.”

“그럼 크리스마스 프로모션 저희와 진행하시죠. 일단 해보겠습니다.”

“오! 고맙습니다.”

크게 반색하는 최 대표와 달리 한수철의 눈에서는 동공 지진이 일어났다.

도혁은 그에게 안심하라는 듯 0.1초 눈짓을 보내고 말을 이었다.

“여기 한수철 AE가 저와 함께 방긋토이를 담당할 겁니다. 마침 본가가 부산이니까, 저희가 당분간 부산에 상주하면서 프로모션 밀어붙여 보면 어떨까 합니다.”

“오! 그렇게까지. 안 그래도 서울 업체라 소통이 걱정이었는데 그렇게 해주시면 저희로서는 정말 감사하죠.”

인천시장까지 엮여 있는 광고주였다. 현지에 뼈를 묻더라도 일단 고객 만족 해드려야지.

도혁이 설명을 이어갔다.

“이번 크리스마스 프로모션 진행하면서 인지도와 이미지 향상을 꾀하고 승용 완구 론칭에 기반을 닦으면 좋겠습니다. 다만 시간이 너무 촉박한 것이 문제인데…….”

말을 흘리며 도혁이 흘금 최 대표의 푸짐한 뱃살에 시선을 던졌다.

“모델 섭외나 진행 과정이 모두 촉박한 만큼 대표님께서 나서주시면 어떻겠습니까?”

“제, 제가요?”

놀란 최 대표가 눈을 끔뻑이며 안경을 올려 썼다.

도혁이 두툼한 최 대표의 뱃살을 흐뭇하게 바라보며 덧붙였다.

“방긋토이의 산타클로스가 되어주시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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