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 천재 명도혁 99화
“명 대표 엑슨에서 투자받았잖아. 광고 공사 보증금 정도는 이제 DW에서는 아무것도 아닐걸?”
“DW애드가 벌써 투자를 받았다고?”
김철준이 놀라 도혁을 바라보았다.
“지난주 일본 출장 간 동안 공사 보증금을 메울 투자를 받았다니, 이것 참 놀라서 말이 안 나오네. 잠깐 사이 무슨 일이 있었던 건가.”
“운이 좋았습니다. 귀인을 만났다고 해두죠. 이렇게 제가 두 분을 이렇게 모시게 된 것처럼요.”
“이야. 이거, 참. 명도혁 대단하다. 일단 내 잔부터 받지.”
도혁의 빈 잔에 술을 따르는 김철준의 입술에서 헛웃음이 새었다.
“김철준 대표 긴장해야겠어? 김철준 대표 올챙이 적 생각이 안 날 수가 없는데 말이야.”
“제가 대일기획 나왔을 때 말씀이시죠?”
“그렇지. 사람 마음이라는 게 그래. 이 바닥, 특히 기획 쪽으로 오래 구른 놈치고 독립 생각 안 하는 놈 솔직히 없잖아?”
“그건 그렇죠.”
“근데 김 대표가 대리 때 딱 사표 쓰고 나갔잖아. 그때 나를 포함해서 다들 부러워했어. 용기를 실행으로 옮기는 패기가 부러웠다고나 할까.”
김철준이 손을 휘저으며 손사래를 쳤다.
“그때 나와서 제가 고생을 얼마나 했게요. 선배님도 아시지 않습니까? 우리 명 대표처럼 초기에 투자라도 받았으면 좋았을 텐데, 완전 보따리장수였죠, 뭐.”
“하긴. TV 자막 광고 두 띠 받겠다고 광고주 사모님 맛사지하는 동안 기다렸다고 그때 울먹이던 거 생각난다.”
“에이, 선배님 내가 또 뭘 울기까지 했습니까.”
“진짜 닭똥 같은 눈물을 내가 봤다니까?”
둘이 옛날얘기를 하며 동시에 도혁을 바라보았다.
“초기에 투자를 받았으니 나보다 명도혁이 두 배는 빨리 자리 잡겠습니다.”
“그러게나 말이야. 명도혁! 성공하면 우리 두 늙은이 외면하면 안 돼. 내가 수업 다 빼줘서 회사 차린 거니까 똑똑히 기억하라고!”
광고계의 대선배들이 계속 도혁을 띄워주자 정말 몸 둘 바를 몰라 술만 홀짝였다.
그런 그를 보던 이진태가 가방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이거 받아. 성공해도 잊지 말라고 주는 개업 선물이야.”
“어! 교수님 뭘 이런 걸 다 주시고. 저는 아무것도 준비 못 했는데요.”
“별건 아니야.”
“혹시 지금 뜯어봐도 되겠습니까?”
“그럼. 당연히.”
이진태의 선물은 넥타이였다. PT를 자주 들어가게 될 광고회사 대표에게 건네기엔 더없이 좋은 선물이었다.
회귀 전에 도혁에게 존경하는 광고인을 물으면 언제나 1순위로 꼽아왔던 이진태였다.
그의 아끼는 제자가 된 것도 감격스러운데 이런 선물까지 건네주다니……. 은사의 마음이 따뜻하게 전해졌다.
도혁은 뭉클한 마음에 가슴이 벅차올랐다.
“이 넥타이 매고 건승하겠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교수님.”
“아니, 선배님. 혼자 이런 거 준비하고 그러면 난 뭐가 됩니까? 데리고 있던 직원인데 말이지. 흠, 난 술이나 사야겠네. 오늘 3차까지 가자. 내가 쭉 끝까지 쏠 테니까.”
“아, 아닙니다. 제가 두 분께 보답하는 마음으로 자리를 마련한 건데요.”
그럴 수 없다며 고개를 내젓는 도혁에게 김철준이 다시 술을 부어주었다.
“명 대표 잘나가는 게 우리한테 보답하는 거야.”
“그래도 선물을 드려야 할 사람은 저인데 자꾸 두 분께 받기만 해서 민망할 뿐입니다.”
“그렇지. 우리한테 받은 건 기억을 해. 딱 기억했다가.”
이진태 교수가 검지로 제 관자놀이를 툭툭 치며 말을 이었다.
“후배들 열심히 도와줘. 우리 노땅들이랑은 이렇게 밥이나 같이 먹어주면 좋고. 그게 명 대표가 할 일이야.”
“맞습니다. 선배님. 이 업계가 빡빡하고 경쟁이 치열해도 또 정이라는 게 있지 않습니까?”
“그럼 그럼. 자, 파이팅하자고! 우리 명 대표 파이팅! 번창하시게!”
“파이팅!”
짠, 술잔을 부딪치는 소리가 청아하게 울렸다.
세상에는 조덕현 같은 선배나 최철우같이 뭐 같은 후배도 있다. 저 또라이 보기 싫어서 회사 때려치우고 싶은 사람들도.
반면 이진태, 김철준 같은 선배님이나 DW애드 직원들처럼 마음이 맞는 사람들과 함께 든든한 마음으로 일하기도 한다.
직장이라는 전쟁터.
그 치열한 전장에서 크고 작은 전쟁을 함께하며 신뢰를 쌓아가는 동료야말로 가장 큰 재산이 아닐까.
훈훈한 분위기에서 거나하게 이어진 술자리가 파하고 헤어지기 전이었다.
“두 분 살펴가세요. 날이 추운데, 잠시만요.”
도혁은 목도리를 하지 않은 이진태 교수의 목에 제 목도리를 벗어 둘러주었다.
“고맙다 명 대표. 자리 잡기까지 힘들어도 힘내시고. 원래 밥벌이가 고되더라.”
택시를 타는 이진태가 손을 높이 들어 흔들어 보였다.
뒷모습에서 대선배의 마음이 묻어나 가슴이 찡했다.
어느덧 겨울에 접어들어 바람이 빈 목덜미를 파고들었다. 하지만 더 춥지 않았다.
이진태에게 건넨 목도리의 빈자리는 따뜻했다.
* * *
전서윤이 약속을 지켰다.
“우와, 요트! 생일 파티를 요트에서 하다니. 이게 연예인의 위엄이군요.”
“대박. 오늘 날씨도 좋고 우와, 민아야 이쪽으로 좀 와봐.”
“쉿, 조용히 좀 해. 쪽팔리게 진짜.”
자신의 생일을 맞아 열린 요트 파티에 DW애드 직원들을 모두 초대한 것이다.
도혁은 애드포인트 시절부터 익숙했던 직원들의 호들갑에서 멀찌감치 떨어졌다.
최민아 말대로 저럴 때 같이 있으면 좀 부끄럽기도 하거든.
샴페인 한 잔을 들고 슬쩍슬쩍 요트 위를 돌아다니며 유유자적 구경을 하고 있었다.
‘전서윤이 연예인은 연예인이구나. 생일 파티를 요트에서 다 하고 말이지. 어, 저기!’
전·현생을 거쳐 아는 연예계의 간판스타와 매니지먼트의 CEO들이 대거 등장했다.
와우, 전서윤 인맥 좋네. 저기 JYG 대표는 음악인인데. 발이 생각보다 넓은 모양이었다.
도혁이 천천히 모여 있는 연예인들 무리에 다가서자 전서윤이 얼른 쫓아왔다.
“도혁 씨 여기 있었네! 왔으면 나부터 찾아야죠! DW애드 직원들 전부 인사했는데 명도혁 씨만 안 보여서 찾고 있었어요.”
“저도 서윤 씨 찾고 있었습니다. 생일 축하드립니다.”
“고마워요. 근데 도혁 씨는 그사이 회사까지 오픈하시고, 완전 놀랐다구요.”
“참, 화환 잘 받았습니다. 그때 통화 한 번 하고 우리 오랜만에 보는 거네요.”
“그러니까 말입니다. 자주 연락하고 지내요. 참, 이쪽으로 와보세요. 소개해 드릴 분들이 있어요.”
전서윤이 연예인 무리로 다가가 소개해 주었다. 정말 인맥이 되면 오랫동안 유익할 익숙한 얼굴들이었다.
“여기 소개할게요. 이쪽은 우리 개 패밀리예)요.”
“개, 패밀리요?”
“같이 강아지 키우는 연예계 모임이에요.”
전서윤이 애견 모임이라며 소개해 주었다.
“여긴 JYG 대표님, 저쪽은 코아 엔터테인먼트 실장님, 그리고 송준희 배우는 알 거고. 이쪽은 DW애드 코리아의 명도혁 대표님이에요.”
“대표라구요?”
무리의 사람들이 명함을 주고 받던중 도혁을 보고 놀랐다.
“키가 커서 모델 삘이라고 생각했는데. 반가워요.”
“그런 말, 많이 못 듣습니다만 감사합니다. 만나 뵙게돼서 영광입니다.”
“아니, 대표가 왤케 젊어? 와, 대박.”
“준희 언니, 초면인데 예의 좀 갖춰.”
“하긴 광고회사 대표면 우리가 잘 보여야지. 광고 좀 많이 꽂아주세요! 네? 오빠! 잠시만 오빠가 아닌가.”
활달한 성격인 듯 보이는 송준희가 약간 부담스럽게 다가오자 도혁이 시선을 돌렸다.
때마침 멀리서 일레라 가구 때 함께했던 경수현이 오고 있었다.
“어! 명도혁 형님!”
“잘 지냈지? 이렇게 만나네.”
“그럼요. 사장님 되셨던데,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언제 한번 놀러 가야지, 하고 있었어요.”
“언제든지 오십시오.”
“나도 끼워주세요. 네? 오빠.”
‘그러시죠, 누나’라고 할 뻔했다.
나이가 제법 많은 걸로 알고 있는데 오빠 소리가 입에 밴 건지.
사실 연예계에 제법 있는 흔한 스타일이라 그냥 내버려 두었다. 일하다 보면 이런저런 사람들 만나는 법이니까.
그리고 이런저런 사람이 또 나타났다.
“어! 정이석이네.”
“저 자식, 약간 히키코모린데 서윤이 넌 어떻게 친하냐?”
“이석이 보기보다 안 그래. 이번에 작품 같이했는데 애가 너무 괜찮더라고. 그래서 초대했지.”
전서윤과는 지난 멜로 작품을 같이했단다.
정이석이 전서윤과 인사를 마치자마자 도혁을 보고 깜짝 놀랐다.
“어! 명 대표님이 왜 서윤이 누나 요트에 있어요?”
“명도혁 씨 우리 회사랑 인연이 깊어요. 예전부터 수현이랑 나랑 작업했거든요. 그런데 둘은 어떻게 아는 사이에요?”
“이번에 제가 정이석 배우님을 섭외했습니다.”
도혁의 말에 정이석이 끄덕이더니 뭔가 생각났다는 듯 핸드폰을 꺼냈다.
“서윤 누나, 나 길드원들 좀 불러도 돼요?”
“몇 명인데?”
“네 명. 이번에 광고 같이 들어갈 애들인데 궁금한 게 좀 있다고 그래서.”
“흠, 알겠어. 뭐, 어차피 같이 즐기려고 한 거니까.”
“누나, 땡큐.”
게임 길드원들이 요트에 도착하고 DW애드 직원, 특히 강태오와 간단히 광고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러곤 곧바로 게임 얘기로 접어들었다.
“그래서, 김요한이 그러니까 그 날 벙커를…….”
“아, 그 방송 봤구나. 나 게임 TV 감독이랑 친한데 다음에 같이 갈래요?”
“올~ 대박.”
게임 얘기로 시끌벅적해진 틈새로 오늘의 주인공 전서윤은 무리에서 빠져나왔다.
한강을 바라보며 샴페인을 홀짝이는 전서윤의 곁으로 도혁이 다가가 말을 붙였다.
“오늘 서윤 씨 생일 파티인데 저 흉악한 길드원들이 와서 게임 얘기만 하네요.”
“내버려 두세요. 저도 이석이랑 작업하면서 게임 많이 알게 됐는데 오늘은 귀찮네요. 피곤해서 안 끼어들었어요. 벌써 술이 도는지 약간 어지럽기도 하고.”
“괜찮으십니까?”
“네. 바람 시원하고 좋아요. 참, 그런데 도혁 씨.”
전서윤이 도혁을 돌아보며 엑슨 게임 광고에 대해 물어왔다.
“광고에 저렇게 길드원들이 다 들어갈 만큼 사람이 필요해요? 이석이만 출연한다고 생각했는데, 특이하네요.”
“그게, 컨셉이 좀 독특합니다.”
“컨셉이요?”
“전문용어로, 병맛이라고 들어보셨는지.”
병맛이라는 말에 서윤이 마시던 샴페인을 뿜었다.
“아, 죄송해요. 전문용어 맞긴 하네요. 아, 웃겨. 도혁 씨 때문에 못 살겠어요.”
“죄송하실 건 없어요. 괜찮으십니까?”
“네. 하여튼 도혁 씨는 종잡을 수가 없어. 태강애드에서 했던 기획도 그렇고 회사까지 독립하고 말이죠. 저보다 한 살 어린 걸로 알고 있는데 정말 대단하세요.”
칸느 영화제의 레드 카펫을 두 번 밟게 될 대배우에게 칭찬을 들으니 몸 둘 바를 모르겠다.
도혁이 고개를 꾸벅 숙여 고마움을 표했다.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저야 도혁 씨 항상 좋게 보죠. 그래서 말인데요. 나도 같이해도 될까요?”
“뭘 말입니까?”
“병맛이요. 듣자마자 갑자기 흥미가 생겨 버렸거든요.”
“병맛 광고를 같이요?”
도혁이 놀라 전서윤을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