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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고 천재 명도혁-98화 (98/252)

광고 천재 명도혁 98화

식사 자리는 화기애애했다.

정치인답게 인천시장은 언변이 무척 좋았고, 인천광역시 슬로건에 이은 아침형 인간 미션의 성공으로 도혁에 대한 신뢰가 극에 달했다.

“우리 요즘 굿모닝 하는 사이 아닙니까. 그렇죠?”

“네. 그렇습니다.”

“굿모닝?”

방긋 토이 최인수 대표가 무슨 말이냐는 듯 둘을 보았다.

그러다 최 시장이 아침형 인간 프로젝트를 설명하려 하자 손사래를 쳤다.

“아직도 이러고 다니는구만. 참, 최근에 책도 냈지?”

“놀라운 말을 해줄까? 내가 십 년을 전파했는데 이렇게 꾸준하게 실천하는 사람은 명도혁 대표뿐이라니까?”

한수철도 최근에 아침 메시지 인증을 포기했다.

한 번뿐인 인생 이렇게 살다 죽긴 싫다나?

도혁은 두 번이니 꾹꾹 참으며 잘해내나 싶을 정도로 열심히 미라클 모닝을 실천하고 있었다.

최 시장이 기특한 눈빛으로 도혁을 바라보며 강조했다.

“젊은 친구지만 뭐랄까, 연륜이 느껴지고 아무튼 일 한번 같이해 봐도 좋을 거야. 안 그래도 소개를 해주려고 했거든.”

“그래서 말인데…….”

드디어 본격적으로 캠페인 얘기가 오고 가기 시작했다.

“우리 이번에 론칭하는 제품이 덩치가 좀 큽시다. 완구 쪽에서 가장 고가라고 할 수 있는 자동차에요.”

“밖에서도 탈 수 있는 정도의 성능인가요? 해외 제품은 봤는데, 국내 제품은 떠오르는 것이 없습니다.”

“네. 이번에 저희가 본격적으로 승용 완구를 국내에 론칭하려고 합니다.”

“그러시면 저희 DW애드에서 마케팅 제안서를 한번 만들어봐도 되겠습니까?”

“부산인데 괜찮으시겠어요?”

“대한민국 땅 좁아서 어디든 갈수 있습니다.”

“그럼 최 시장님 믿고 기대해 보겠습니다.”

그렇게 방긋 토이 승용 완구 론칭 광고 제안서를 제출할 기회를 잡았다.

최 시장은 두 사람을 연결해 주곤 가늘게 눈을 떴다.

“설마 우리 선거 캠프 홍보 나갈 때쯤에는 끝나겠죠?”

“그럼요. 당연히 그 전에 마무리해야죠. 5월 어린이날을 기준으로 두 달 전부터 진행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제 생각과 같으시군요. 5월에는 좀 쏟아붓고요.”

“네. 맞습니다. 그럼 좋은 기획안으로 찾아뵙겠습니다. 오래 안 걸릴 거예요.”

“젊은 친구가 화끈하네요. 낮이니까 물이라도 건배하시죠.”

짠, 물 잔을 부딪치는 소리가 청아하게 울렸다.

DW애드의 일거리가 쌓이는 소리였다.

* * *

다음 날 아침, 출근하자마자 직원들을 불러 모았다.

“게임 캠페인 빨리 털어야겠다. 또 프로젝트가 생길 거 같아.”

“정말? 인천시장님이 당장 일하자고 해? 아직 선거 멀었잖아.”

“인천시장이 아니라 동생.”

“뭐?”

직원들의 말에 우연히 만난 방긋 토이 대표에 대해 설명하곤 곧바로 회의를 시작했다.

“보통 대행사에서는 이런 경우 전담팀을 두 개로 나눠서 진행하잖아요. 하지만 인원상의 문제로 팀을 쪼갤 수 없으니 순차적으로 선택과 집중을 하겠습니다.”

“좋은 말이네. 선택과 집중. 그럼 게임에 집중을 한번 해봅시다.”

“내가 간단하게 플래시를 만들어 왔어요.”

“뭐?”

다들 놀라 최민아를 바라보았다.

아파 드러누웠던 게 엊그제 같은데 또 말을 듣지 않고 일을 한 모양이었다.

“좀 쉬라고 했는데 대표 말 안 듣지, 어?”

“쓰러지면 뭐, 대표님이 또 병원 데려가 주시겠지. 아님 산재 처리 하시든지요.”

이제 괜찮다며 도혁을 흘겨본 최민아가 노트북 화면을 펼쳤다.

화면 속에서는 움직이는 배너 속으로 글자가 한 글자씩 박히고 있었다.

“컨셉이 나오면 이런 식으로 화면을 구현할 수 있어요. 게임 캐릭터를 써도 되고 배우들이 연기를 한다면 그걸 이용해도 되구요.”

“온라인 배너 광고 하려는 거지?”

“맞아요.”

“게임 광고의 특성을 살려 온라인 쪽을 강화해 온·오프라인 연계 프로모션을 1차적으로 선행할 생각입니다.”

“매체 많이 뚫어야겠네.”

차현우가 다이어리에 열심히 메모를 하고 있었다.

도혁이 그쪽을 돌아보며 강조했다.

“이번 광고는 매체, 그리고 카피가 주력이에요. 지난번 사성 프로모션 때보다 더 카피가 중요해졌습니다. 배너 광고는 카피밖에 안 보이는 경우도 많아서요.”

“맞아요. 제가 배너 디자인은 하겠지만 순수하게 카피를 강조하기 위한 거니까요.”

차현우가 고개를 끄덕이며 계속 필기를 이어갔다.

탁기준이 고개를 기울이며 의문을 표했다.

“매스미디어 광고는 어떻게 할 거야. 공사 보증금까지 대줬는데 TV 광고 밀어 넣어야지?”

“공중파, 케이블 게임 방송, 지역방송 등에 계속 밀어 넣어야죠. 그, 게임 쪽이랑 1030 남자들이 주로 이용하는 사이트에도 광고 진행하구요.”

“게임이라서 오프라인 프로모션도 할 게 많을 거야. 와우. 이거 잔손 엄청 갈 게 눈에 그려진다. 그렇지 않아?”

“그러니까요. 그럼 디테일 챙기기 전에 큰 그림부터 그려볼까요?”

대략적인 1차 회의 후 제작팀이 나가고 기획만 모였다.

도혁이 조금 망설이다가 생각해 둔 아이디어를 입 밖으로 꺼냈다.

아주 먼 미래의 게임 광고 얘기를.

“지금부터 내가 하는 얘기는 20년 뒤에나 있을 한국 게임 시장에 관한 거예요.”

“뭐? 20년 뒤라니?”

탁기준과 한수철의 눈이 커졌다.

“내가 두 분한테만 말해주는 특별한 비밀이 있는데 말이야.”

“뭔데, 이상한 거 아니지?”

수상쩍은 눈으로 한수철이 도혁을 바라보았다.

“연극을 하면 어떨까?”

“연극?”

회귀 전 가장 인상적으로 보았던 게임 광고가 있었다.

유명 배우들이 단체로 나와서 연극으로 진행하던 광고. 굉장한 코믹 소구로 세간에 엄청난 화제를 일으켜 바이럴에 성공했었다.

도혁은 이 광고를 활용해서 좀 더 엑슨의 스타일에 맞게 변형해 만들어보고 싶었지만 이 방식이 통할지 의문이 들었다.

‘광고는 한 발이 아니라 딱 반 발 앞서야 하거든. 이걸 진짜 미래에서 온 내가 판단하기가 은근히 쉽지 않아서 말이지.’

너무 앞선 광고가 아닐까, 너무 미래형 소구는 아닌가. 객관적인 시선이 필요했다.

“굉장히 진지한 톤으로 말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코믹하게 만드는 거야. 예를 들면 셰익스피어라거나…….”

“셰익스피어는 너무 갔고, 흠. 만약에 그런 느낌을 원한다면 사극은 어때?”

“오, 사극!”

도혁이 의자에서 등을 떼내며 몸을 일으켰다.

그러곤 화이트보드에 아이디어를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감이 딱 왔어. 사극은 그렇게 어렵지 않고 요즘 굉장히 유행하잖아. 그렇지?”

“맞아. 사극을 패러디하거나, 사극 톤으로만 뽑아도 웃길 것 같은데?”

“그, 단어를 조금 틀어보면 어때?”

탁기준이 일어서 보드 판에 무언가를 써 내려갔다.

[스칸디나비아 -> 수간디 나비야]

“이건 예를 든 거야. 예전에 우리가 스칸디나비아 했잖아? 그럼 수간디 나비야 이런 식으로 사극 톤으로 이름을 바꾸면 어떨까 해서.”

“사람들이 부르기 쉽게 말이지?”

도혁은 탁기준 말에 크게 공감하며 메모를 이어갔다.

이렇게 스토리텔링을 하는 광고 중에 브랜드명이 기억에 남지 않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

A라는 광고는 기억하지만 A라는 광고가 어느 브랜드인지는 기억을 못 하는 것이다.

이런 경우는 광고쟁이들 사이에선 작품성으로 회자되는 캠페인이지만, 실패했다고 봐도 무방하다.

광고는 결국 소비자에게 브랜드를 각인하고 매출로 이어져야 하니까.

그런 점에서 브랜드명을 광고 속에 계속 변형해서 강조하는 방법은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심지어 사극 톤으로 재밌게 바꾼다면 바이럴 효과도 있을 거고.

“역시 이렇게 셋이 얘기할 때가 제일 아이디어가 잘 나와. 팍팍 튀는 느낌? 너무 좋은데요?”

“그렇게 봐주시니 감사합니다. 대표님.”

일부러 깍듯하게 농담을 건네며 탁기준이 박수를 쳤다.

“그럼 팍팍 진행합시다. 아까 강태오 팀장이 말했듯이 잔손 엄청 가는 캠페인이야. 예전에 게임 광고 진행해 본 적 있는데, 게임 대회도 진행했고, 광고주 요구 사항도 많더라고.”

“이번엔 투자까지 받았으니 그 게임 광고주보다는 더 잘해야겠죠?”

“그래. 느낌 좋아. 가봅시다.”

“그 전에 밥을 먹도록 합시다. 먹고살자고 하는 짓인데.”

“시간이 번개처럼 흐르는구만.”

정말 두 배는 더 빨리 가는 것 같은 시간의 흐름을 타고 착착 캠페인 준비가 진행되었다.

차현우가 발 빠르게 각종 온·오프라인 매체를 알아보고 강태오는 제작 준비와 더불어 정이석과 길드원들의 섭외를 완료했다.

퇴근 시간, 도혁은 직원들에게 인사하고 재킷을 들었다.

그러곤 며칠 전 예약해 두었던 일식집으로 향했다.

그동안 인사를 드리고 싶었던 고마운 분들에게 식사 대접을 하고 싶어서였다.

바로 이진태 학과장과 김철준 대표였다.

“교수님 잘 지내셨지요. 김 대표님도 같이 오셨네요.”

“오! 우리 명 대표. 얼굴 좋아졌구만.”

“그게 다 태강애드의 마수에서 벗어나서 그런 거 아닌가. 앉지들 그래.”

농담을 하며 이진태가 도혁에게 악수를 건넸다.

“이제 어엿한 대표님이구만. 김철준이랑 같은 급이야. 아닌가?”

“맞습니다. 내가 제일 무서워하는 경쟁업체가 DW애드라니까요?”

“두 분, 만나자마자 놀리시니까 재밌으신가 봅니다.”

도혁이 광고계의 대선배들의 놀림에 머리를 긁적이자 김철준이 술을 따라주었다.

“난 농담으로 한 말이 아닌데? 이 바닥의 다크호스라고 DW 소문이 아주 파다하게 돌고 있어. 선배님 들으셨죠? 우리 태강애드가 벌써 1패 했습니다.”

“맞아. 생긴 지 한 달 된 DW에서 사성전자 땄다고 아주 난리도 아니더구만.”

“조덕현 본부장 혼자 진행했던 건데 태강애드한테 이긴 건 아니죠. 사성전자도 프로모션 부문만 맡은 거구요. 아, 정말 비행기 그만 태우세요.”

술을 마시기도 전에 어질어질하다며 도혁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런 도혁을 바라보는 김철준의 눈가에 미소가 번졌다.

“따지고 보면 조카뻘이나 마찬가진데 일도 똑 부러지고, 이렇게 어른 챙길 줄도 알고 말이야.”

“그러니까. 우리 나이 되면 젊은 사람들이 이렇게 불러주는 게 얼마나 반가운지 몰라요.”

왜 모르겠는가. 홀아비 마음 과부가 안다고 도혁도 잘 알고 있었다.

사회 초년생 때야 선배들이 챙겨주면 고마웠지만 연차가 쌓일수록 젊은 친구들이 따르면 그렇게 기쁜 것을.

도혁도 주머니 비는 줄도 모르고 후배들에게 술을 사주곤 했었다.

“참, 그럼 사성전자 방송 광고 쪽 대행은 안 하는 건가? 이런, 우리 태강애드가 대DW애드 코리아의 협력 업체로서 첫 번째로 파트너십 진행하는 줄 알았는데 말이지. 다음 캠페인 때 광고 공사 대행을 기대해 보지. 많이 따 와야 해.”

“어허, 이런 현직에 있는 대표가 소식이 어둡구먼.”

이진태가 안경을 머리 위로 올려 쓰고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선배님? 제가 모르는 게 또 있습니까?”

“우리 명 대표가 주식회사 엑슨에서 투자받은 거 못 들었나 보네. 광고 공사 보증금 정도는 이제 DW에서는 아무것도 아닐걸?”

“네?”

김철준이 놀라 도혁을 바라보았다.

또 머리를 긁적일 수밖에 없는 도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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