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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고 천재 명도혁-96화 (96/252)

광고 천재 명도혁 96화

다음 날 아침, DW애드 사무실이 소란했다.

“대표님 왜 안 나오시는 거야? 기준 팀장님도 그렇고.”

“그러니까 누구 속 터져 죽는 꼴 보려고 그러시나. 전화도 안 받으시지?”

“다시 전화 돌려봐.”

핸드폰 벨이 요란하게 복도를 울리고 곧 도혁과 탁기준이 문을 박차고 들어왔다.

“아니, 두 분 어떻게 같이 들어오세요? 어머, 둘 다 어제 옷 그대로네. 설마 밤새운 거예요?”

“그렇게 됐어. 아, 독하다 독해.”

“아우, 술 냄새. 아니, 술을 얼마나 들이부었길래.”

“사성그룹 광고 왜 사성기획에서 독점하는 이유가 따로 있더만. 이 술자리를 버틸 사람이 없었던 거지.”

어제 도혁은 한 회사의 대표로서 첫 시험에 든 기분이었다.

낮에는 PT로, 밤에는 술자리로.

이 당시 흔했던 더러운 접대 따위는 절대 안 할 생각이었지만, 광고주가 저녁에 반주나 한잔하자는 제안까지 뿌리칠 수는 없었다.

그렇게 시작된 술자리였다. 다행히 심사 위원으로 참석했던 광고주들의 술자리 매너가 깔끔한 편이었지만 문제는 술의 양이었다.

“우리도 솔직히 한 술 하잖아. 어후, 그런데도 정말 못 당하겠더라.”

“그래서 연락이 끊긴 거구나. 그래도 우리가 됐다. 메시지 한 줄 오고 감감무소식이라 어찌나 갑갑하던지.”

차현우가 훅, 숨을 뱉으며 둘을 번갈아 보았다.

그로서는 오랜만에 잡은 광고 일이었다. 만감이 교차하는 듯 아련한 눈빛이었다.

탁기준이 그런 차현우를 보며 엄지를 치켜들었다.

“나 이번에 차현우 씨 다시 봤잖아. 실물 테이크아웃 컵에 핸드폰 담는 거 하며 그걸 프랜차이즈 카페와 연계한 홍보까지. 그때 아이디어 회의할 때보다 발표하면서 더 느꼈어. 이게 한 프로젝트 안에 정확히 묶이는 광고라는걸.”

“맞아. 현우 선배가 매체와 메시지, 그리고 프로모션 큰 그림으로 잘 묶고 활용하지.”

“왜 비행기 띄우고 그래. 다 같이 했으면서. 솔직히 난 제작 쪽에 더 놀랐어. 진우랑 민아가 그린 캐릭터디자인 진짜 최고였다.”

차현우가 책상 위에 놓인 샘플 컵 속 캐릭터를 가리키자 모두 함께 끄덕였다.

“맞아. 현장 반응도 굉장히 좋았어. 임원님 연세가 지긋하신데 캐릭터를 엄청 마음에 들어 하시더라고.”

“귀여운 건 세대를 뛰어넘으니까. 괜히 광고에 그렇게 아기랑 동물들이 등장하는 게 아니라고.”

“맞아. 이번에 나도 다시 느꼈어. 아무튼 다들 정말 고생했다. 선배님들도 고생 많으셨습니다. 진짜 우리 직원들 대단해.”

도혁이 마지막으로 직원들에게 칭찬과 격려를 남기곤 책상 위로 엎어졌다. 탁기준 역시 마찬가지.

이진우가 얼른 둘에게 들어가서 쉬라고 재촉했다.

“오늘은 두 분 다 쉬시길 바랍니다. 사무실은 저희가 지킬 테니까 걱정 마시고요. 얼굴이 말이 아닙니다.”

“내가 미안해서 그렇지. 첫 PT 땄으니 회식이라도 해야 할 텐데.”

“아, 회식. 거기에 대해서는 내가 명 대표한테 할 말이 좀 있어.”

강태오가 탕 테이블을 한 번 쳐서 시선을 모았다.

“우리 회사 오픈하고 왜 회식 안 했냐? 도대체 왜 안 하는 거야?”

“어! 선배 기대했습니까?”

“그럼. 나 술 좋아하는 거 모르냐? 내가 오픈 회식 때 쓰려고 무려 경매에서나 볼 법한 술을 한 병 숨겨놨는데 말이지.”

“정말요?”

술이라면 사족을 못 쓰는 DW애드의 모든 직원들이 그를 보고 눈빛을 반짝였다.

“명도혁 대표님. 직원들 이 초롱초롱한 눈동자가 보이십니까? 왜 회식 안 했는지 해명을 좀 해보시죠!”

“아, 그게 말입니다.”

느리게 몸을 겨우 일으킨 도혁이 천천히 대답했다.

“이유가 있어요. 좀 조심스러워서 그랬습니다. 여러분.”

“조심? 지금 대표님께서는 술 마실 때 조심한 사람의 모습이 아닙니다만?”

“그거야 어쩔 수 없이 영업상 마친 거고. 아무튼 회사에서 하는 회식 좀 싫지 않아요?”

“네??”

초롱초롱하던 눈들에 의아한 빛이 동시에 서렸다.

강태오는 어이가 없다는 듯이 고개를 가로젓기까지 했다.

“대표님 방금 직원들이 회식 안 한다고 컴플레인하는 거, 못 들으신 겁니까?”

“선배는 원래 술을 좋아하는 거잖아요. 난 회사에서 하는 정식 회식을 말하는 거예요. 대표랑 같이 술 먹는 거 다들 싫어하잖아요.”

솔직히 말하면 도혁은 전생에 회식을 싫어하는 편이었다.

동료나 아래직원과 함께 마시는 건 세상 즐거운 일이었지만, 윗사람 여럿 섞이면 뭐 같거든.

전생에 도혁보다 오백 배 정도 회식을 혐오했던 최민아가 깔깔 웃어젖혔다.

“뭐야. 지금 우리가 싫어할까 봐 회사 오픈하고 술 먹자고 안 한 거예요?”

“어. 내가 회사 차리기 전에 책도 읽고 강의도 좀 들었거든. 대표랑 술 먹는 거, 주말에 등산 같이 가자고 하는 거, 쓸데없는 말 시키는 거 전부 하지 말라고 하던데?”

“그거야 꼰대 사장님 얘기지. 아이구, 우리 귀여운 명 대표님을 어떡하면 좋아.”

강태오가 제자리로 가서 술을 한 병 가져왔다.

“명 대표. 내가 얼마나 회식에 진심인지 보여주지. 이거 봐.”

“자, 잠깐만. 설마, 글랜 50?”

양주병을 드는 순간 깜짝 놀라서 뒤로 넘어갈 뻔했다.

진짜 경매에 나올 법한 술이었거든.

예전에 글랜 광고하면서 구경한 게 다고, 입에 대어보지도 못한 레전드 라인이었다.

강태오 이 선배 도대체 뭐지? 농담 아니라 진짜 재벌인가? 궁금해지는 순간이 아닐 수 없었다.

도혁이 저도 모르게 입맛을 다시며 주먹을 불끈 쥐었다.

“선배 이거 가짜 술 아니에요? 우리 사무실에 안에 존재한다는 게 말도 안 되는 술인데.”

“가짜는 무슨. 아버지께 직접 받은 거야.”

“좋아. 나랑 기준 선배 몸 좀 회복하면 그날로 회식한다. 아니, 그냥 오늘 저녁에 할까요?”

“태세 전환 빠른 거 봐. 우리야 좋지만 두 분 괜찮겠어요?”

“사우나 갔다 오면 되지. 그리고 원래 술은 술로 깨는 거야.”

“우리야 좋죠. 얼른 그럼 다녀들 오셔요!”

연가를 내고 종일 사우나를 한 도혁과 탁기준은 간이 아기처럼 생생해졌다며 저녁 술자리에 참석했다.

“자, DW애드 코리아의 오픈과 첫 승을 축하하며 이멤버!”

“포에버!”

“오우, 야. 잠시만 이 술 뭐냐?”

“대박. 대에에에박.”

나름대로 술꾼인 멤버들의 눈이 모두 커졌다.

아직 젊은 직원들이 이 술의 가격을 알 리는 없지만 다들 느꼈을 것이다.

말도 안 되게 고급스러운 몰트위스키라는 걸.

“선배, 내가 직접 맛을 보니까 더 무서워지려고 하는데 말이죠. 혹시 재벌입니까?”

“그래, 명 대표. 어떻게 알았어?”

“아니, 선배는 아무리 봐도 거지 캐릭터인데. 동아리방에서 두더지처럼 살지 않았어요?”

“이런. 그럼 두더지 재벌인 걸로 하자. 자, 더 마셔.”

쭉쭉 들어가는 위스키와 파이팅 넘치는 술자리로 마음이 흐뭇해졌다.

무엇보다 워너비 위스키 글랜 50.

그리고 그 어떤 가치로도 환산할 수 없는 좋은 사람들과의 시간이었으니까.

“우리 직원들, 모두 사랑합니다. 사랑하고 사랑합니다.”

“아, 징그러워. 우리 대표님 술이 덜 됐네. 더 드려!”

결국 도혁은 이틀 연속 집에 들어가지 못했다.

20대의 아기 간도 한계에 달했던 첫 회식의 밤이었다.

* * *

주식회사 엑슨의 이우영 대표와 미팅이 잡혔다.

한수철과 함께 엑슨의 사옥에 방문했다.

협약식을 위해 마련된 테이블에 이우영 대표와 함께 나란히 앉았다.

파트너십을 맺고 협약서에 사인을 하자 투자를 받게 된 것이 실감 났다.

양쪽 회사의 직원들이 동시에 사진을 찍어대는 통에 플래시가 터지며 눈이 부셔왔다.

이우영 대표가 웃으며 먼저 손을 내밀었다.

“오늘 협약식 보도 자료 배포부터 부탁드려도 되겠습니까? 자체 홍보팀이 있기는 하지만 기념으로 첫 업무를 함께 수행하고 싶어서 말씀드립니다.”

“네. 바로 진행하겠습니다.”

사진과 간단한 협약 사항을 사무실로 전송해 당일 기사를 지시한 후, 이우영 대표와 본격적인 미팅을 시작했다.

“저희가 출시하는 이번 게임은 회사의 사활을 걸고 만든 겁니다. 함께 한번 보시겠습니까?”

“네. 같이 보시죠.”

도혁은 화면을 열자마자 그 익숙한 화면에 미소가 번져갔다.

이른바 현질을 엄청 해댔던 에이스토리였다.

도혁은 회의실을 슬쩍 돌아보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내가 앞으로 아이템 사느라고 여기 기둥 하나는 세울걸? 저 게임 중독성이 엄청나단 말이지.’

아무 생각 없이 관성으로 계속하게 된다고나 할까.

아무튼 엑슨의 대표작으로 오랫동안 대국민적인 사랑을 받게 될 게임이었다.

이우영 대표와 실무자가 정성껏 브리핑을 해주었다. 품에 안겨주는 자료집만 한 아름일 정도로 게임에 대한 애정이 넘쳐났다.

“정말 잘 부탁드립니다. 모든 게임이 자식 같지만 이 게임은 진우를 생각하면서 만든 겁니다.”

“듣고 보니 진우랑 잘 어울리는 것 같습니다. 어딘가 모르게 닮았어요.”

다채로운 매력을 가졌으면서도 꾸준하고 오래 볼수록 사랑스러운 게임이다. 뭐, 조금 귀여운 구석도 있고.

하지만 에이스토리가 잘나가는 건 한참 후의 일이다. 출시 당시보다는 십 년이 훌쩍 지난 시점에서 전성기를 구가할 예정인 게임이었다.

‘시간을 좀 당겨봐? 아주 많이.’

설명을 듣는 내내 머릿속을 빙빙 도는 아이디어가 있었다.

그런 도혁을 보며 이우영이 조심스레 속뜻을 내비쳤다.

“기존 게임 광고와는 차별점이 있었으면 합니다. 좀 독특하더라도 괜찮습니다.”

“대표님, 모델이 등장하는 건 어떠십니까?”

“모델도 좋죠. 프로게이머들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꼭 게이머가 아니라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입니다. 대표님 저희가 오늘 브리핑을 받았으니 내부적으로 좀 논의를 해보고 난 후 기획안을 가져오도록 하겠습니다.”

“어이구, 제가 마음이 급했습니다. 이 게임 말만 나오면 이렇게 막무가내가 된다니까요. 오죽하면 내 외동아들 진우 같다고 말씀드리겠습니까? 잘 부탁드립니다.”

오래오래 이우영의 효자 상품으로 자리 잡으니, 진우 같다는 말도 틀린 건 아니었다.

도혁은 한수철과 함께 자료집을 차에 실었다.

지금까지 받았던 광고주 브리핑 자료 중에 제일 많은 양이었다.

“이렇게까지 안 주셔도 되는데 말이지. 무슨 개발 단계부터 자료를 다 주셨네. 그런데 진우랑 정말 닮으셨다. 얼굴도 그렇고 말투도.”

“아, 진우가 아버지인 거 비밀로 해달라고 했는데, 도저히 모를 수가 없지?”

“어떻게 몰라. 거푸집에서 찍어놓은 듯이 닮았는데. 아무튼 정말 잘됐다. 진우만 보고 투자하신 건 아닐 거야. DW애드의 가능성을 보신 거겠지?”

“그러니까 사활을 건 게임 광고 론칭을 맡긴 거라고 믿고 있어.”

“그래. 믿어주신 만큼 열심히 진행해 봐야지. 참, 아까 모델은 무슨 말이야? 생각해 놓은 사람이 있어?”

짐을 다 실은 한수철이 손을 탁탁 털며 모델에 대해 물어왔다.

“수철아. 지금 나랑 같이 가볼 곳이 있어.”

“어딘데? 혹시 직진 명도혁 벌써 모델 섭외하러 가는 거야?”

“그렇지. 그런데 가서 보고 놀라면 안 돼.”

벌써 놀라는 한수철을 보고 도혁이 느리게 입매를 끌어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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