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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고 천재 명도혁-95화 (95/252)

광고 천재 명도혁 95화

[Wag the dog]

몸통보다 큰 꼬리, 하지만 꼬리를 불려 몸통을 잡아먹는다.

조덕현이 화면에 크게 기획안을 띄워놓은 채 상세 설명을 시작했다.

“웨그 더 도그 전략이라고 하면 여성 잡지를 주로 떠올리실 겁니다. 여성 잡지의 부록으로 따라오는 화장품과 사은품의 가치가 사실상 잡지의 가격을 넘어선다는 건 이미 유명한 사실이죠. 다른 예로는 캐릭터 빵이 있죠. 빵을 사면 딸려 오는 스티커를 모으기 위해 내용물인 빵은 버리고 스티커만 모은다는 얘기도 들어보셨을 겁니다.”

조덕현이 그 당시 유행하던 한 여성지를 손에 들고 흔들어 보였다.

“이번 호에 딸린 부록으로는 샘플 향수, 선크림, 그리고 파운데이션이 들어 있네요. 심지어 추첨을 통해 열 명에게 고가의 카메라를 준다고 합니다. 이 잡지의 가격은 단돈 사천오백 원입니다.”

조덕현이 최철우에게 눈짓을 보내자 최철우가 빠르게 무언가를 가져왔다.

그러더니 심사 위원들과 방청석에 앉은 경쟁사 사람들에게 나누어주었다.

“여기 아까 예로 들었던 몬스터 빵, 역시 웨그 더 도그 전략의 대표적인 상품입니다. 함께 빵을 좀 드시죠.”

간단한 퍼포먼스였지만 딱딱하던 분위기가 부드러워지며 제법 효과를 거두는 모습이었다.

‘조 본부장, 이렇게 앞에서 분위기도 풀어주시고 고맙네.’

도혁은 제 앞에 놓인 빵을 옆으로 치우곤 PT 내용에 집중했다.

“이렇듯 미끼 상품을 이용해 판매하는 전략은 해외에서도 각광받고 있는 추세입니다.”

햄버거를 먹으면 트렁크를 준다거나, 유명 연예인의 포토북을 끼워 파는 카페 등 해외 사례가 열거되었다.

“특히 이런 전략은 젊은 층에서 잘 통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모바일 신제품은 트렌드에 민감한 2030에게 적극 어필해야 하므로 적절하게 프로모션을 실시한다면 주요 타깃을 정확하게 공략할 거라 확신합니다.”

여기까지 말한 조덕현이 사성전자의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신제품 출시 때 한정판 핸드폰 액세서리를 선착순으로 제공하며 입소문 마케팅과 더불어 기사화할 것을 제안합니다. 또한, 그동안 네니콜의 모델을 좀 더 어린 친구로 바꾸어 트렌드를 주도하는 사성전자의 모습을 강조하면 좋겠습니다.”

“잠시만요.”

듣고 있던 사성전자 임원이 마이크를 들어 발표를 멈추었다.

“핸드폰 액세서리 디자인이라면 해외에서도 그런 사례가 있다고 알고 있는데, 특정 브랜드와 콜라보를 말하는 겁니까?”

“그렇습니다. 젊은 층에서는 상당히 효과를 볼 거라고 생각합니다.”

“생각해 놓거나 접촉한 브랜드는 있구요? 저희는 저희보다 선호가 낮은 브랜드와는 콜라보할 생각이 없습니다.”

“그 부분은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제가 영국에서 근무할 때 유수의 명품 브랜드와 일한 적이 있습니다.”

여기까지 들은 도혁은 더 이상 조덕현의 영국 자랑을 듣기 싫어 귀를 닫아버렸다.

콜라보 아이디어는 제법 쓸 만하다는 생각을 하며 PT를 마무리하는 그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하지만 콜라보의 관건은 어떤 브랜드를 섭외해 오느냐에 있어. 역시 사성전자, 예리하구만.’

의외로 섭외와 성사가 쉽지 않은 것이 바로 콜라보다.

어느 한쪽이건 조금이라도 기울면 하기 싫어하고 광고주들은 자신의 브랜드 가치에 대해서 주관적이거든.

물론 자신에게 유리하게 편파적으로.

일반인 눈에는 비슷한 레벨이라고 생각하는 브랜드 둘이 서로 부족하다며 못마땅해하는 걸 많이 봐왔다.

도혁이 생각에 잠긴 틈에 조덕현의 발표가 끝나가고 있었다.

도혁은 인사를 하고 물러서는 조덕현에게 속으로 감사의 인사를 보냈다.

‘이렇게 콜라보까지 판을 예쁘게 깔아주시면 너무 고맙지.’

도혁과 눈짓을 나눈 탁기준이 무대 위로 올라갔다.

자세를 바로 하고 정중하게 인사를 한 그가 드디어 입을 떼었다.

“안녕하십니까. DW애드 코리아의 탁기준입니다. 반갑습니다.”

“DW애드가 신생 업체라고 들었는데 회사 이름이 아주 그럴 듯합니다. 글로벌하구요. 그럼 시작하시죠.”

마지막 발표인데다 조덕현이 빵으로 분위기를 풀어놓아서 그런지 심사 위원들의 얼굴에서 여유가 번졌다.

“앞 팀에서 빵을 드렸으니 저희는 커피를 드릴까요? 목이 마르실 수 있으니까요.”

도혁과 탁기준이 미리 준비했던 커피를 나누어 주었다.

테이크아웃 잔에 담긴 것으로.

조덕현이 빵을 뿌려놓은 덕에 커피에 대한 반응이 좋았다. 사실 회의 중이다 보니 아무도 받은 빵을 부스럭거리면서 먹지 못했지만, 커피는 홀짝이며 마시기 시작했다.

그런데 사성전자 심사 위원들이 무언가를 발견하고 눈이 휘둥그레졌다.

“어! 여기 테이크아웃 잔에 우리 신제품이 찍혀 있네요?”

“어디? 어, 그러네. 이거 우리 제품 캐릭터입니까? 귀엽고 신선한데요?”

별도로 제작한 스티커만 테이크아웃 잔에 붙인 것이다.

스티커에는 이진우가 만화 형태로 그려 의인화한 핸드폰 캐릭터가 박혀 있었다.

화면에 태강애드와 같이 Wag the Dog라는 글자가 펼쳐졌다.

그러곤 곧바로 다음 문장으로 ‘주객(主客)전도 -> 주주(主主)전도’라는 말이 새겨졌다.

“카피와 같은 말이네요. 선문답 같기도 하고.”

“네. 그럼 지금부터 설명 시작하겠습니다. 저희 역시 미끼 상품을 통한 전략을 고민했습니다. 프로모션에 방점이 찍혀 있다 보니 가장 효율적인 방법을 찾은 겁니다. 그리고 그 속에서 우리는 하나의 의문을 가졌습니다.”

탁기준이 심사 위원 한 명 한 명과 눈을 맞추며 목소리를 조금 높였다.

“아무리 좋은 미끼 상품을 묶어보아도 우리 네니콜만 한 상품이 없더라구요.”

“이야. 그 말은 정말 듣기 좋은데요.”

“빈말이 아니라 제품력, 가격, 그리고 실용성까지 네니콜을 낚을 만한 상품은 네니콜뿐이더라구요. 하여 저희는 다음과 같이 결론 내렸습니다.”

[일주일 동안 즐기는 만 원의 행복. 만원으로 신상품 네니콜을 일주일간 체험하세요.

이천 대 한정 프로모션.]

“지금부터 한 명의 소비자가 되어 저희가 제안하는 모든 프로모션을 엮어서 설명해 보겠습니다. 무심코 핸드폰 매장을 지나가던 P대 3학년 학생 명도혁은 우연히 위와 같은 포스터를 보게 됩니다. 매장 직원에게 설명을 들은 도혁은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으로 프로모션에 참가합니다. 만 원만 내면 되니까요.”

역시 탁기준 선배.

도입부부터 흥미진진하게 이야기를 풀어가는 모습이 명불허전 탁기준다웠다.

도혁은 다시 한번 스토리 텔링을 이어가는 탁기준을 보며 감탄했다.

“막상 사진을 찍어보고 음원도 저장해 들으면서 새 핸드폰과 조금씩 친해집니다. 여러 가지 기능이나 디자인이 마음에 쏙 드네요. 저녁 무렵에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이 한마디씩 건네는군요. 올~ 명도혁! 새 폰 샀구나. 나 이거 좀 갖고 싶었는데.”

어설프게 연기를 하는 탁기준의 목소리에 조금씩 웃음이 터졌다.

탁기준이 계속 설명을 이어갔다.

“소위 얼리 어답터 소리를 들은 도혁이 우쭐해하며 핸드폰의 새로운 기능을 이것저것 소개합니다. 그러곤 일주일 프로모션에 대해 말해줍니다. 다음 날 친구들은 매장으로 나가지만 줄을 서야 했습니다. 이미 소문이 날 대로 나버렸고 이 프로모션에 배정된 핸드폰은 이천 대 한정이었거든요.”

탁기준이 한 손으로 테이블 위에 놓인 커피를 들었다.

“낙심한 친구들이 커피를 사러 갑니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인기가 많은 카페에서 네니콜과 콜라보를 진행 중입니다. 컵에 찍힌 신제품 캐릭터를 보자 구입 욕구가 치솟습니다. 네니콜 신제품 구매 시 모닝 아메리카노가 무료라고 하는군요.”

“오호, 캐릭터 자체는 상당히 귀여워요. 이것만이라도 꼭 진행하고 싶을 만큼요.”

“감사합니다. 자, 그럼 우리의 명도혁으로 시선을 다시 옮겨볼까요? 도혁군이 만 원의 행복 제품을 가지고 다니는 동안 TV에서 대대적인 신제품 광고가 쏟아집니다. 뭔가 유행을 선도하는 느낌을 받으며 일주일이 번개처럼 지나갑니다. 이제 선택을 해야겠죠. 순간 도혁의 머릿속에는 이런 문장이 스쳐 갈 겁니다.”

-구입하느냐? 구입하지 않느냐(X)

-반납하느냐, 그냥 쓰느냐(O)

“이미 만 원의 보증금을 냈을 때 반납하지 않으면 결제한다는 조건으로 계약을 걸어놓은 상태입니다. 도혁은 고민합니다. 반납할 것인가 말 것인가. 눈치채셨겠지만 이건 구입보다는 훨씬 소비자에게 가까이 다가가 버린 전략입니다. 반납은 귀찮고, 핸드폰은 내 손 안에 있으며 이미 내 물건처럼 소중하게 여겨지고 있었거든요.”

“오호. 굉장히 설득력이 있는데요?”

[Take Out Ur Phone. for 7 Days.

(당신의 폰을 일주일 동안 가져가세요. 일주일 동안).]

탁기준이 화면에 크게 띄워진 Take Out을 큰 소리로 강조했다. 그러곤 도혁에게 눈짓을 보냈다.

도혁은 차현우가 제안했던 구조물을 탁기준에게 건넸다.

“아까 캐릭터가 찍힌 커피 컵 속에 핸드폰을 담았습니다. 이대로 일주일간 테이크아웃해 가는 겁니다. 단돈 만원으로요.”

“아까 카페 프로모션과 연결시킨 거군요.”

“그렇습니다. 전국 핸드폰 매장, 그리고 콜라보 프랜차이즈 카페에 크고 작은 실물 홍보물이 설치될 겁니다. 이후 이어지는 TV, 라디오 등 매체 광고를 통해 폭발적인 시너지를 만들 것이라 확신합니다.”

탁기준이 커피 컵 속에 담긴 핸드폰 구조물을 크게 확대해 형상화한 화면을 보여주었다.

합성한 화면 속에는 최민아가 구조물 옆에서 사진을 찍고 있었다.

“보시다시피 귀엽고 획기적인 디자인으로 젊은 층에 어필할 것으로 예상합니다. 사성전자 각 매장과 핸드폰 매장, 그리고 카페에 사람 크기만큼 커다란 구조물을 만들어 함께 전시해 프로모션 효과를 극대화할 생각입니다. 하나의 유행처럼 바이럴 마케팅을 병행해 트렌드를 만들어갈 생각입니다.”

커피를 마시는 심사 위원들의 표정이 밝아졌다.

긍정적인 신호를 감지한 탁기준이 PT를 마무리했다.

“인간은 한번 내 주머니에 들어온 물건을 다시 내어놓기 싫어합니다. 심지어 핸드폰은 지인의 전화번호, 사진과 음악, 그리고 취향을 담은 지극히 개인적인 물건입니다.

한번 생긴 애착을 내려놓기 쉽지 않은 아이템인 것입니다. 보다 적극적으로 고객에게 다가가는 Take out 전략이 소비자의 심장을 훔칠 수 있기를 바라며 이상 저희 DW의 발표를 마치겠습니다. 경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퍼포먼스를 가미한 DW 팀의 발표가 끝나고 가운데 자리에 앉아 있던 임원이 마이크를 잡았다.

그리고 곧바로 심사평을 말해주었다.

간결하고 분명하게.

“저희 사성은 원래 직진이라 간단하게 말하겠습니다. PT 보고 나니까 길게 말할 것 없어서요. 우리 사성 기획은 조금 더 긴장해야겠습니다. 영원한 게 없다는 걸 명심하기 바랍니다. 그리고.”

말을 잠깐 끊은 남자가 도혁과 탁기준을 바라보았다.

“두 분은 오늘 저와 저녁 식사를 함께하시죠. 이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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