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광고 천재 명도혁-93화 (93/252)

광고 천재 명도혁 93화

“본 제품이 바로 덤이 되는 거야. 주객(主客)전도라기보다 주주(主主)전도?”

도혁에게 모인 시선에 대답을 이어갔다.

“본 제품을 덤처럼 먼저 주는 걸 말하는 거야.”

“아, 본 제품을 먼저 써보라는 거? 그래서 주주라고 했구나.”

“사용해 본 후 계속 쓰든지 말든지 결정해라. 반납해도 좋다.”

“헐, 핸드폰을? 그러기엔 너무 비싸지 않아?”

“맞아. 고관여 제품(상품을 구매하는 과정에서 시간과 노력을 많이 들이는 제품군. 가격이 비싸고 고객에게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아이템)이지.”

도혁이 핸드폰을 손으로 들어 흔들어 보였다.

“그리고 핸드폰은 고관여 제품 중에서도 굉장히 특별해. 개인적이기도 하고 그래서 한번 사용하면 계속 쓰게 되는 특성이 있어.”

“오호. 그러니까 한번 내 꺼라고 인식한 핸드폰을 굳이 반납하지 않는다는 거야?”

“맞아. 그때 전서윤 배우만 해도 신제품 한정판 핸드폰을 제 몸처럼 아낀다고 하더라고.”

“한번 정붙이면 떼기 힘들다, 그런 말이네.”

모두 자신의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며 의견을 주고받고 있었다.

“일주일 사용 후 반납, 이라고 했을 때 굳이 엄청난 하자가 없으면 계속 사용할 거라는 게 내 생각이야.”

“와, 이거 굉장히 공격적인 마케팅인데?”

“심리학적으로 내 손에 한번 들어온 물건은, 특히 고관여 상품일 경우 강력하게 내 거라고 생각한다고 해.”

“그렇지 살까 말까 고민하다가 ‘이거 돌려줘야 하나?’로 고민의 방향이 바뀌는 거니까. 흠.”

약간의 우려 섞인 목소리도 있었지만 대체로 방향성을 통일해 가던 중이었다.

“테이크아웃!”

“뭐?”

갑자기 이진우가 소리치자 모두 그를 돌아보았다.

“처음에 프로모션을 해야 하지 않습니까? 각 매장에 ‘일주일 테이크아웃’이라는 슬로건을 붙이고 진행하는 겁니다.”

“오! 괜찮은데?”

“테이크아웃 커피 잔에 핸드폰을 담아서 그리고.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이진우가 펜을 집어 들더니 한 번에 그림을 그려냈다.

그걸 본 최민아가 굵직한 실선으로 레이아웃을 잡아 주었다.

“크으. 미치겠다. 이 맛에 광고하지.”

“명도혁. 어디서 이런 찰떡같은 인재들을 모아 왔어. 대단한데?”

차현우가 최민아와 이진우를 번갈아 보며 감탄했다.

그러곤 갑자기 무언가 생각난 듯 말을 꺼냈다.

“이렇게 옥외광고를 접근해 보면 어때? 아예 구조물을 밖으로 빼는 거지.”

“밖으로 뺀다구요?”

차현우가 슥슥 이진우의 그림 위를 덧칠하기 시작했다.

* * *

젊음은 힘이 세다.

회귀한 후론 언제나 느끼는 감사함이었지만 요즘 들어 더 깊이 공감하고 있었다.

놀랍게도 야행성 끝판왕 명도혁이 아침형 인간이 되어가고 있었다.

무려 열흘이 채 지나지 않은 시점부터였다. 젊지 않았다면 이렇게 달라진 신체 리듬에 적응하는 데 육 개월은 족히 걸렸을 것이다. 아니, 영원히 못 바꾸었을지도.

‘왜 인천시장이 그렇게 미라클 모닝을 설파하고 다녔는지 알겠구만.’

몸은 가뿐했고 기분이 상쾌했다.

무엇보다 제일 중요한 건 새벽에 일찍 일어나서는 소위 말하는 뻘짓이라는 걸 하기 싫어진다는 점이 포인트.

일찍 깨서 멍하니 게임 현질이나 하게 되진 않았다. 책을 읽든가 운동을 하든가, 생산적인 무언가를 하고 싶어진다고나 할까.

개운한 표정으로 8시에 출근한 도혁이 사무실 문을 열었다.

역시나 밝은 안색을 한 한수철이 양손에 커피를 들고 도착했다.

“굿모닝! 커피 마셔.”

“오! 수철아, 너 얼굴 좋아졌다?”

“그래? 요즘, 좀 아침에 컨디션이 괜찮더라고. 이게 한번이 힘들지 계속하다 보니까 신기하게 몸에 붙어.”

“너도 느끼냐?”

둘이 상큼한 모닝커피를 나눠 마시며 앉아 있는데 직원들이 하나둘 도착했다.

“둘 다 요즘 얼굴이 밝아 보여. 활력도 넘치시고.”

“이게 다 미라클 모닝 덕분이지. 난 헬스도 하고 와요. 선배도 같이하시죠.”

“뭐? 지금 밤의 사나이 강태오한테 아침형 인간을 권하는 건가.”

“해보니까 왜 인천시장이 미라클 모닝으로 책까지 썼는지 알겠더라구요.”

도혁은 야근형 인간 광고회사의 현실이 얼마나 비효율적인가를 떠올렸다.

당연한 줄 알았던 철야, 밤샘, 야근. 도혁은 철야를 자주 하는 강태오를 보고 물었다.

“선배 보통 본격적으로 일 몇 시에 시작해요?”

“오후 3시쯤?”

“이거 봐. 이러니까 밤을 새우죠.”

“원래 크리에이티브는 밤에 나오는 거야. CF도 낮에 게임하다가 3시는 넘어야 촬영 들어가는 거 몰라?”

탁기준이 나서서 강태오를 거들었다.

‘아침형 인간, 좋은데 참 좋은데 표현할 방법이 없네요, 선배님들.’

도혁은 속으로 말을 삼키며 안타까워했다.

미라클 모닝을 설파하는 인천시장을 처음 봤을 때 정말 꼰대처럼 느꼈거든.

그들의 후배 입장이라면 당연히 계속 무어라 대꾸했겠지만, 지금은 대표니까 더 말하면 리얼 꼰대가 되어버리겠지?

“네. 업무 스타일은 편하실 대로. 업계의 관행이 철야이니 사실 한두 명의 노력으로 바꾸긴 힘들죠. 탁기준 선배 말대로 촬영 현장부터 외주사까지 죄다 올빼미들뿐이니까.”

“그래도 미라클 모닝 좋은데. 참 좋은데 말입니다.”

한수철이 아쉬워하며 한마디 더 거들었다.

도혁이 딱 잘라 선을 그었다.

“자, DW애드는 다양성을 존중합시다. 철야 하시는 분들 인정. 대신 아침형 인간들도 인정. 오케이?”

“그래. 돈 받은 값은 할 테니까 걱정 마. 우리 전부 몇 시간을 일하든 24시간 머릿속으로 계속 아이디어 재생 중이잖아.”

“이것도 인정!”

모두의 취향을 인정하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왁자지껄한 사이에 최민아가 시안을 가져왔다.

직원들이 모여 있는 것을 보고 최민이가 조금 망설이더니 도혁에게 시안을 내밀었다.

“이왕 모인 김에 같이 시안 좀 봐줄래요?”

“잠시만. 와우. 끝내주네.”

“대박. 태강 있을 때보다 더 늘었잖아.”

“내가 좀, 하지.”

칭찬이 쏟아지자 최민아가 휙 한 손으로 머리카락을 넘겼다.

강태오가 손을 뻗어 시안을 훑어보았다.

“디렉터로서 손을 좀 봐주려고 했는데 이러면 내 역할이 없어지잖아? 디테일도 더 볼 것도 없어. 시안 두 개 뽑아왔네?”

“언제나 시안은 두 개로 가야죠. 광고주가 시안 보면서 A, B안 선택하기 힘들게 만드는 게 제 목표에요.”

“둘 다 너무 좋아서 말이지? 이야~.”

하긴. 전생에 태강에서 알 만한 패키지와 굵직한 광고 디자인의 초안은 거의 최민아가 잡았었다.

실력에 비해서 어지간히 승진이 꼬이고 막힌 케이스였지.

저 실력 쭉쭉 뻗어갈 수 있게 더 뒷받침을 해줘야겠다는 결심을 다지며 일정을 체크했다.

“자 곧 PT입니다. 우리 DW애드 코리아의 첫 번째 프레젠테이션!”

“여러분 첫 번째 프레젠터는 누구로 진행할까요?”

행복한 고민이 아닐 수 없었다.

탁기준은 말할 것도 없고 강태오, 한수철과 같은 좋은 발표자가 버티고 있었으니까.

아마 각각 다른 대기업 대행사에 가더라도 에이스급으로 성장했을 좋은 프레젠터였다.

“첫 발표는 탁기준 선배가 하면 어떨까요?”

“아무래도 경력이 있으니 그편이 좋겠지?”

“네. 제가 볼 때 당분간 대기업 쪽 PT는 탁기준 선배가, 관공서 쪽은 한수철이 맡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제작 관련해서 깊이 있는 설명을 필요로 하는 발표는 태오 선배가 하고요.”

역할을 나누어 배분하고 모두 파이팅을 다짐했다.

“이제 며칠 안 남았으니까, 마지막까지 달려봅시다.”

그렇게 PT 당일 아침이 밝았다.

일찌감치 사성전자 앞에 도착한 도혁이 높고 웅장한 빌딩을 바라보았다.

‘무려 사성전자구나. 첫 광고주치고 거창한데?’

태강애드에서 숱한 프레젠테이션을 해왔지만 이런 느낌은 처음이었다.

지금껏 맡아온 광고도 100% 진심으로 임해왔지만, 가슴 속에서 느껴지는 무게가 남다르다고나 할까.

심호흡한 도혁이 로비로 들어서자 탁기준이 막 엘리베이터에서 내리고 있었다.

“우리 명 대표님, 일찍 오셨네요. 들어가셔야죠.”

“탁기준 기획팀장님. 믿습니다.”

“이길 겁니다. 져본 적이 없으니까.”

특유의 장난스러운 허세를 부리며 탁기준이 오히려 도혁을 격려했다.

“첫 PT 꼭 따게 해줄게. 우리 대표님 떼돈 벌어야 나도 인센티브도 따고 그러지.”

“선배는 안 떨리나 봐요. 몇 번 안 해봤지만 PT 때마다 심장이 쫄깃하던데요.”

“떨리지 왜 안 떨려. 매번 기록을 경신한다. 오늘도 청심환 먹고 왔어.”

“전혀 그렇게 안 보이세요.”

“그러니 AE 하는 거겠지? 명 대표, 저쪽에 사성기획 사람들이다.”

도혁은 지나가는 사성기획 무리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이번 광고 공모는 저 사성기획 입장에서 계륵이겠어요.”

“그렇지. 짜증이 좀 많이 날 거야. 사성전자 제1 광고대행사잖아. 완전히 통으로 맡아서 외주 처리했을 텐데 프로모션만 PT까지 하다니.”

“아무래도 그렇죠. 그렇다고 광고주가 공고하겠다는데 경쟁PT에 안 들어올 수도 없잖아요.”

“그러니까. 그래도 열심히 준비했을 거야. 광고주에 대해서도 가장 잘 알고 있을 거고 말이지.”

현재로서는 사성기획이 가장 유리한 고지에 있다는 말이다.

도혁은 챔피언에 도전하는 파이터의 마음으로 주먹을 말아쥐었다.

그리고 그 주먹을 더 불끈 쥐게 만들 사람들이 걸어오고 있었다.

탁기준이 낮은 목소리로 도혁에게 말했다.

“저게 누구야. 조 본부장이네.”

로비 끄트머리에서 조덕현이 걸어 나왔다.

그가 눈이 휘둥그레져서 도혁과 탁기준에게 다가왔다.

“이런, 아는 얼굴들이 있네? 여긴 어쩐 일이야?”

“저희 오늘 프로모션 경쟁 PT 참여합니다. 4개 업체 중에 하나에요.”

“뭐? 잠시만…….”

식순이 적힌 안내문을 훑어본 조덕현이 손가락으로 DW를 가리켰다.

“설마 이 DW애드 코리아가 태강에서 살림 차려서 나간 회사야?”

“살림을 차리진 않았지만 맞습니다.”

“이런. 배신자들이구만.”

“독립해서 나오는 걸 배신이라고 할 수는 없죠.”

따박따박 받아치는 도혁을 보고 조덕현이 얼굴을 사정없이 구겼다.

“김철준이 성격이 묽어서 그냥 보내준 모양인데, 뒤통수치고 나가면 배신이라고.”

“뒤통수라니요. 혹시 김철준 대표님께서 오늘 이 자리 알고 계십니까? 조덕현 본부장님이 태강애드 이름으로 PT 오는 거 말입니다.”

할 말이 없어진 조덕현이 쩝쩝 입맛을 다셨다.

“내가 명도혁 씨 좀 하는 것 같아서 키워주려고 했더니. 나 같은 사람 밑에서 배워야 글로벌하게 커나갈 수 있는 거야.”

“말씀은 감사하지만 프레젠테이션을 통해서 배우겠습니다. 오늘 한 수 가르침 부탁드립니다.”

“신생 업체니까 당장 수주는 못 할 거고, 잘 보고 배우라고. PT 참여 경험도 중요한 거니까.”

비위가 상했지만 거들먹거리는 그에게 대충 맞장구를 쳐주었다. 굳이 적을 만들 필요는 없으니까.

그리고 경쟁 업체 담당에서 광고주로 만나는 일도 흔했다.

기업 홍보팀에서 데려가려고 하는 경우도 허다하거든. 물론 조덕현이 스카웃 될 확률은 아주 낮지만 말이다.

그렇게 대충 비위를 맞춰주고 있는데 조덕현이 큰 소리로 누군가를 불러댔다.

“어이, 이쪽으로 오시게. 여기야!”

돌아본 도혁은 어이가 없어 웃고 말았다.

‘여기서 왜 네가 나오냐,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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