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 천재 명도혁 91화
“신규 게임 론칭 광고는 당연히 DW와 진행할 예정입니다. 더불어 한 가지 더 의논드릴 것이 있습니다.”
온화하던 이우영 대표의 눈빛이 아버지에서 사업가로 돌변했다.
“진우를 통해서 DW애드 코리아의 사업제안서를 읽어보았습니다. 그리고 그동안 태강애드에서 진행했던 사업과 각종 공모전에 대한 소식도 들었습니다.”
“아, 그랬군요.”
“처음에는 진우가 광고 일을 하고 싶어 하는구나, 지켜보기만 했는데 자꾸 어디선가 상을 타와서 많이 놀랐습니다.”
“저희가 몇몇 공모전에서 상을 받았어요. 진우 공이 컸습니다. 감각이 워낙 탁월해서요.”
이진우를 추어올리자 이우영이 흐뭇하게 아들을 바라보았다. 그러곤 계속 설명을 이어갔다.
“그러던 중에 최근 아들이 DW라는 광고회사에 들어가겠다는 말을 들었어요. 명도혁 씨가 론칭한 광고대행사라고 하더군요. 하여 당연한 일이겠지만 더 관심 있게 제안서를 꼼꼼히 살펴보았습니다.”
이우영이 손에 든 도혁의 제안서를 넘기고 있었다.
한 줄 한 줄 글자 아래 빨간 줄을 치고 야광 펜까지 그은 것을 보아 그가 얼마나 철저한 성격인지 알 수 있었다.
“제가 무엇이든 강박적으로 분석하는 스타일입니다. 제 눈에는 제안서가 굉장히 마음에 들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대표님.”
“그래서 말인데, 우리 진우와 상관없이 제가 진지하게 DW애드에 투자 제안을 드려도 되겠습니까?”
“네? 투자라면…….”
“DW애드의 지분을 가지고 싶다는 말입니다. 사업적으로 파트너십을 제안하는 겁니다. 우리 회사의 협력 업체로 등록 후 투자사로 참여하고 싶은데, 명 대표님 생각은 어떠신지요.”
생각하고말고 할 게 있나?
도혁은 저절로 올라가는 입꼬리를 내리느라 힘이 들 지경이었다.
주식회사 엑슨의 투자를 받는다면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을 것이다.
엑슨은 믿을 수 없을 만큼 빠른 성공을 이어가는 업계 1위 회사였고 이미 그 성장의 시작점에 있었다.
원래도 제일 좋아하는 후임이자 후배였지만 이진우가 오늘따라 더 예뻐 보이기까지 했다.
역시 자본의 힘은 대단한 것이다.
“이우영 대표님께서 투자해 주신다면 저희로서는 당연히 좋습니다. 엑슨의 투자를 받는 것도 좋지만 론칭 광고를 맡게 된 점, 무엇보다 파트너십을 맺는 것 자체가 영광입니다.”
“어이구, 우리도 시작하는 회사인데, 영광이라고까지 해주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아닙니다. 대표님의 기대에 부응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악수하며 맞잡은 이우영 대표의 손이 뜨거웠다.
두 대표는 아버지와 아들뻘이었지만 나이에 상관없이 손을 붙잡고 기뻐했다.
“양쪽 회사에 모두 좋은 일인 거죠? 시너지가 날 수 있도록 저도 돕겠습니다.”
“우리 진우가 취업하더니 많이 의젓해졌습니다. 명 대표님께서 계속 잘 끌어주십시오.”
“걱정 마세요. 아주 잘하고 있으니까요. 그리고 진우 학업이 아직 끝나지 않아 그 부분은 배려할 거니까 염려 놓으셔도 됩니다.”
“안 그래도 졸업은 안 하냐고 물어보려고 했는데 다행입니다. 그럼 투자 관련한 세부 사항은 실무자와 함께 별도 논의하도록 하시죠.”
진우의 어머니가 찻물을 더 가져와 따라주었다.
“드디어 회사 얘기 끝난 거예요? 차가 식어가고 있어요. 과일도 좀 드시구요.”
“감사합니다.”
“진우가 집까지 데려온 친구는 처음이라 우리도 감격이에요. 편안하게 있다가 가요. 자주 놀러 오고.”
“알겠습니다. 어머니.”
“어유, 우리 명 대표가 보기보다 살갑네.”
함께 마신 차는 아직 식지 않았고 화목한 가정의 분위기가 포근했다.
도혁은 가슴이 따뜻해지는 이진우 가족의 환대를 받으며 기분 좋게 저택을 나섰다.
돌아서는 길. 도혁은 한 줄 카피의 힘을 다시 한번 떠올렸다.
그날 이진우를 위해 부대의 문 앞에 붙이고 나왔던 짧은 문구.
[당신의 하루는 아직 시작하지 않았습니다.
일생을 24시간에 비유한다면 스무 살은 몇 시일까요.
새벽 5시에 불과합니다.
꿈속의 고통으로 자신을 괴롭히지 마세요.
곧 태양이 떠오를 테니까.
아직, 새벽입니다.]
이 문장이 이진우를 살렸고 그와 함께 일하게 만들었고, 오늘날 엑슨의 이우영과 연결 고리를 만들었다.
꼬리에 꼬리를 문 나비효과를 체감하며 도혁은 미소 지었다.
‘DW의 해는 아직 뜰 준비도 하지 않았어. 0시. 이제 시작이다.’
시작하는 발걸음이 더없이 가벼운, 겨울의 초입이었다.
* * *
첫 번째 프로젝트를 위한 처음의 회의가 시작되었다.
회의 전 도혁은 먼저 DW 가족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했다.
“회의에 앞서 전달 사항이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 DW애드 코리아가 첫 번째 투자를 받았습니다. 박수!”
“네? 갑자기…… 요?”
최민아가 손뼉을 치며 놀란 눈을 끔뻑거렸다.
“네. 투자의 출처는 주식회사 엑슨입니다. 투자를 받음과 동시에 협력사에 등재되어 파트너십을 이어갈 예정입니다.”
“와! 대박. 명 대표님 수완이 대단한데요?”
“퇴사하길 잘했구만!”
박수를 치고 기뻐하는 직원들 틈에서 도혁과 이진우가 눈을 마주쳤다.
이진우가 비밀로 해달라고 부탁하는 바람에 이우영 대표가 그의 아버지라는 것은 알리지 않았다.
“그럼 혹시 투자 규모가, 어느 정도 되는지 물어봐도 됩니까?”
“당연히 금액 등 세부 내역이 확정되면 직원들과 함께 투자 진행 상황 공유할 겁니다. 곧 실무자와 함께 논의 예정이에요. 대략적으로 어제 합의한 금액에 따르면 광고공사 보증금 정도는 충분할 듯합니다.”
“잠시만 뭐라고?”
탁기준이 놀라서 자세를 바로잡았다.
“당장 코바코 광고대행이 가능하다고?”
“그렇습니다. 내가 생각해도 대박이네.”
“대박. 대에에~박”
도혁은 도무지 입꼬리가 올라가는 걸 멈출 수가 없어 피식 웃고 말았다.
탁기준이 고개까지 절레절레 저었다.
“내가 명도혁 대표를 믿고 들어오긴 했지만, 명불허전이다 정말. 와 어떻게 하루 만에 광고공사 대행이 가능한 거지? 명 대표 귀신인가?”
“그런 걸로 합시다.”
“명불허전 명 대표로 간판 바꿔야겠는데?”
도혁이 머리를 긁적이며 민망해했다.
한수철이 무릎을 치더니 태강애드 얘기를 꺼냈다.
“우리 김철준 대표님이 공중파 광고는 대행해 주기로 했잖아. 근데 우리 대행 한 건도 못 걸겠네.”
“이런. 그렇게 되나? 여러모로 죄송해지는데.”
“들으면 진심 놀라시겠다. 와, 우리가 이렇게 놀라운데.”
강태오와 이진우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공사 대행이 그렇게 따기 어려워?”
“흠, 제가 쉽게 설명드릴게요. 방송 광고 대행 수수료가 얼마인지 아시죠?”
“10%라고 들었어.”
“네. 맞아요. 대행사에서 수령하는 건 10%. 그 말은 우리 순이익의 열 배가 넘는 매출을 컨트롤한다는 뜻이에요. 그중에 방송 광고 매체비 비중이 굉장히 높은 편이라 공사에서는 손해 보지 않으려고 보증금을 받아두어요.”
“아, 혹시 광고대행사가 부도나면 규모의 열 배로 일이 커져 버리니까?”
강태오의 말에 탁기준이 설명을 덧붙였다.
“맞아요. 대행사가 망해도 광고공사는 절대 손해 보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명이라고 쉽게 이해하면 되겠습니다.”
“그만큼 광고공사가 하는 일이 많기도 해요. 공중파 광고를 독점으로 걸고 있고, 공익광고를 주관하기도 하구요.”
AE인 탁기준의 설명을 차현우가 꼼꼼히 메모했다.
“카피도 쓰지만 당분간 매체를 봐야 하니까 내가 잘 알아야겠네.”
“선배는 매체와 접목한 카피를 뽑아야 할 뿐만 아니라 공사 케어도 해야 하고 심의까지 신경 써야 돼요.”
“와우. 명 대표가 카피 쓴다고 할 때 내버려 둘 걸 그랬어. 하긴 다들 일당백이니까 나도 한몫해야지.”
차현우의 말이 끝나자 도혁이 소란한 실내를 정돈하며 박수를 쳤다.
“자자, 이제 돈도 마련됐으니까 일을 해야죠. 일을. 참, 월급도 오늘 들어갈 겁니다.”
“엥? 하루 만에요?”
“우리 회사는 월급이 선불입니다. 이익을 나누는 인센티브는 후불이구요. 돈이 최고의 복지라고 생각하는 편이라서. 동의하십니까?”
“와. 대박. 대에박. 아니, 대표님 뭐 하세요. 빨리 일해야죠. 회의 진행하시죠.”
최민아가 큰 소리로 회의를 재촉하며 의자를 당겨 앉았다.
도혁이 노트북을 펼쳐 들었다.
“대표로서 공지할 것 다 했으니까 지금부터는 예전처럼 편하게 말하자. 아이데이션할 때까지 존댓말 못 하겠다.”
“오케이!”
“우리의 첫 번째 광고주는 둘이야. 하나는 떠올리기 싫은 이름 조덕현과 진행했던 사성전자. 다음은 어제 받아온 주식회사 엑슨의 게임 론칭 광고 이렇게 두 개.”
“게임 론칭 광고부터 진행하고 싶은 건 나뿐이냐?”
“아니. 다들 같은 마음일걸. 솔직히 이 바닥 오래 구른 건 아니지만 4년 차 AE의 눈으로 볼 때 사성전자 건은 삽질 그 자체야.”
탁기준이 고개를 가로저으며 벌써 엑슨의 브로슈어를 손으로 끌어당기고 있었다.
“하지만 수주 공고가 나온다면 얘기가 달라지지 않을까요?”
“뭐? 사성에서 공고 냈어?”
“여기. 신제품 프로모션 부분만 공고를 크게 냈어요.”
도혁이 노트북을 직원들 쪽으로 돌려 보여주었다.
강태오가 고개를 기울이며 의아해했다.
“내가 공모전 관련해서 정보를 많이 수집했었잖아. 이 공고 굉장히 이례적인 케이스야?”
“맞아요. 선배. 이 건은 명 대표가 우리 DW 오픈하기 전에 손을 좀 쓴 거예요.”
“손을 썼다고? 어떻게?”
“조덕현과 미팅이 끝나고 다시 들어가서 신제품 프로모션 부분만 경쟁 PT 붙여달라고 하더라고. 그쪽에서는 이번 신제품 프로모션 크게 생각하고 있더라고요.”
“이야, 역시 명 대표는 다 계획이 있으시구만.”
탁기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도혁은 살짝 얼굴을 굳히고 회의를 이어갔다.
“아직 기뻐하긴 많이 이르구요. 사성기획과 전자와의 관계가 얼마나 돈독한지 틈은 없는지 알아봐야 해요. 제가 볼 때는 삽질하지 않으려면 오히려 사성기획 협력사 형태로 들어가는 게 나을 수도 있어요.”
“오호. 그것도 방법이지.”
“아직은 우리가 소규모라서 파고들 틈이 없다면 사성기획을 찔러볼 생각입니다. 물론 수수료는 좀 아깝겠지만요.”
“사성기획 놈들 날로 먹으려고 할 텐데. 일단 내가 업계 동향 파악해 볼게. 선배가 사성에 있어.”
탁기준이 나서며 분위기를 알아 오겠단다.
강태오가 공고문을 뜯어보며 말을 보탰다.
“단독으로 들어가든 사성기획에 붙어가든 진행은 할 거니까, 우리 제작 쪽에서도 프로모션 벤치마킹 진행하고 있을게. 파격적인 해외 사례도 찾아보고.”
“네. 일단 사성전자 공고에 집중해서 후다닥 끝내는 게 좋겠습니다. 게임 론칭은 아직 여유가 있다고 했거든요.”
기획과 제작의 손발이 착착 맞아떨어지는 모습에 절로 미소가 걸렸다.
그 순간 또 한 명의 광고주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도혁이 웃으며 끌어 받은 핸드폰에서는 뜻밖의 말이 들려왔다.
“네? 아, 아침에요? 우리 직원들과 함께 의논해 보겠습니다.”
전화를 끊은 도혁이 눈썹을 말며 한수철을 바라보았다.
“우린 내일 새벽에 일어나야겠다.”
“하필 새벽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