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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고 천재 명도혁-79화 (79/252)

광고 천재 명도혁 79화

매체국 선배들과 함께 옥상 정원으로 올라온 건 다름 아닌 이진태 교수였다.

“교수님! 오랜만에 뵙겠습니다. 잘 지내셨습니까?”

“그래. 잘들 지냈나? 얼굴이 더 근사해졌어?”

“이게 다 에모라 화장품 덕분이죠.”

“명도혁 씨 이거, 이거, 더 광고쟁이 같아졌구만. 자, 앉지.”

도혁의 주접에 이진태가 웃으며 어깨를 다독였다.

언제 봐도 에너지가 넘치는 이진태가 반가운 얼굴로 모두와 인사를 나누었다.

“방금 김철준 대표 보고 왔는데 여전하더구만. 대표 얼굴도 보고 겸사겸사 왔더니 명도혁 한수철 태강애드 사람이라고 다섯 번 정도 강조하던데 아주 귀가 아파.”

“원래 사람 욕심 많으시잖아요.”

“그렇지. 아니, 신입들한테도 욕심부리는 티를 냈어?”

이진태는 웃어넘겼지만 김 기자는 눈을 가늘게 뜨며 다시 고개를 기울였다.

도혁은 의심 서린 눈초리를 애써 물리치며 서둘러 인터뷰를 진행하자고 재촉했다.

“저희가 오후에 계속 일정이 있어서요. 기자님도 바쁘실테니 빨리 진행하시죠.”

“그렇게 하겠습니다. 이진태 교수님도 오셨으니 세 분 같이 진행하도록 하지요. 대한민국 최고의 광고인의 뒤를 이을 천재 후계자 정도로 헤드 뽑을 생각인데, 교수님 마음에 드십니까?”

“명도혁, 한수철 위주로 넣어요. 나야 이제 뒷방 늙은이니까.”

“에이,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사실인데 뭐. 처음엔 현역에서 뒤로 물러서는 게 좀 서글펐는데 요즘은 아주 신이 나. 자식 낳은 기분이에요.”

“그럼 ‘광고가 이은 인연, 부자지간이나 다를 바 없죠’로 헤드 뽑겠습니다.”

“좋네요. 역시 우리 김 기자가 감이 좋아.”

훈훈한 분위기에서 다시 인터뷰가 이어졌다.

졸지에 광고계의 살아 있는 전설 이진태 교수의 아들로 거듭난 도혁과 수철이 머리를 긁적였다.

그걸 본 이진태 교수가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언제봐도 든든한 후원자일 뿐 아니라 무려 양아버지가 되어버린 이진태 교수였다.

정원으로 쏟아지는 오후의 햇살 속에서 사제지간은 오랜만에 마주 보고 웃었다.

* * *

그 후의 일상은 의외로 평온했다.

꽈배기바 캠페인이 워낙 대규모이다 보니 진행 과정에 크고 작은 일들이 많았다.

캠페인 후속 업무들을 처리하며 순한 시간들이 지나가고 있었다.

덕분에 서울시 공모전에 집중하며 준비에 만전을 기할 수 있었다.

그러는 동안 겨울이 후르륵 지나갔다.

3월 새 학기를 며칠 앞두고 팀원들이 함께 모였다. 최민아가 합류하며 이른바 소주 결의를 했었던 ‘포에버 팀’이 공모전의 마지막 시안을 정리했다.

“오늘 제출이지? 아, 떨린다. 이거 상 받을 수 있을까?”

“잊지 않았지? 안 되면 빼고 하라고 하든가. 그게 우리 모토잖아. 난 가능하다고 봐.”

“서울시에서 1차 심사 통과 팀 두 팀만 발표의 기회가 주어진다고 했지?”

“맞아. 수철아, 부탁 좀 하자. 우리의 운명이 네 손에 달렸다.”

강태오가 까까머리를 어루만지며 민망해했다.

즉흥적으로 자른 머리가 제법 길었지만 PT에 나서기엔 아직 많이 짧았다.

특히나 보수적인 관공서 광고라서 민머리인 강태오보다는 신뢰를 주는 인상의 한수철이 발표자로 결정되었다.

“도혁아, 우리 대상 받을 수 있겠지?”

“당연하지. 넌 발표 연습이나 열심히 해. 무조건 된다고 생각하고.”

“또 또, 저 근거 없는 자신감.”

“근거 있는 자신감인데? ‘싫으면 빼고 하라 그래’ 몰라?”

도혁이 자신 있게 외치자 모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분명히 될 겁니다. 될 거예요!”

“당연하지. 포에버가 안 되면 누가 상 탈 거야!”

“그렇지. 진짜 문제는…….”

공모전과 별도로 문제가 없지는 않았다. 어제까지 밤새워 시안 완성한다고 아무도 수강 신청을 못 했거든.

“아, 정말. 이놈의 학교 서버 폭파시켜 버리든가 해야지. 학기마다 난리다, 난리.”

“환장하겠네. 편한 교양은 모두 마감돼 버렸다고!”

“우리 학교는 좀 편하지롱.”

시각디자인과 학생이 몇 명 없기에 별다른 문제 없이 완료했다며 최민아가 혀를 쭉 내밀었다.

얄밉기 그지없다고 장난을 쳐대고 있는 3학년들과 달리 강태오의 표정은 조금 무거웠다.

“난 이제 4학년이라서 뭔가 진로를 결정해야 하는데, 참 갑갑하다.”

“왜? 선배 정도 실력이면 어디든 모셔가겠구만.”

“조직 생활 할 자신이 없어서. 어디 처박혀서 카페나 술집 차리고 유유자적 그림이나 그릴까 싶고, 그렇다 요즘.”

도혁은 물끄러미 강태오를 바라보다 문득 궁금해졌다.

이 선배는 정말 칵테일바를 차리고 스코틀랜드 집으로 돌아가 양조장을 하게 될까? 이 실력으로 광고를 접고, 그림을 포기하고?

전생의 강태오도 실력이 나쁘지 않았지만 지금의 강태오는 도혁과 공모전을 하며 상당히 좋은 시안을 뽑아내고 있었다.

상업적이면서도 개성이 넘치는 그의 디자인은 CD라면 누구나 탐낼 만한 실력이었다.

‘거기다 외모도 훌륭하고 PT 능력도 갖추고 있으니까, 어디든 갈 수 있을 텐데.’

아무튼 현안인 수강 신청이 급했으므로 미래에 대한 상념은 잠깐 접어두고 모두 시간표 짜는 일에 올인하기로 했다.

폭풍 클릭을 계속하며 경쟁 PT를 준비하는 심정으로 키보드를 두드리는 도혁의 옆에 최민아가 다가왔다.

“시간표 한번 심플하네. 영어랑 전공인 광고 관련 과목뿐이잖아.”

“교양필수는 거의 끝났고 학점은 두 가지로만 따려고.”

“올~ 영어 잘하나 봐?”

“못하진 않지. 태오 선배 시간표도 비슷할 거 같은데? 영어랑 전공.”

“어떻게 알았냐. 학점 따기 편한 걸로 하는 거지. 한 가지 외국어가 네이티브면 이럴 때 편해. 도혁이는 외국 살다 왔어?”

“아니요. 그냥 뭐, 영어는 그럭저럭해서요.”

졸업 성적 차석에 빛나는 영어영문학과 졸업생이라는 사실을 말할 수는 없었지만, 아무튼 덕분에 현생에서 학점 따기 편한 건 사실이었다.

“그럼 합격을 기원하며 오늘은 찢어집시다. 모두 자기 전에 기도하고 자!”

“PT 날 광화문 앞에서 봅시다. 무조건 우리가 대상일 테니까 모두 슈트 입고 오고. 공익광고 공모전 때 맞춘 옷 말이야.”

“역시 도혁이 자신감이 넘치는구만. PT 파이팅!”

“파이팅!”

그리고 정확히 일주일 뒤. 이멤버 포에버 멤버들은 도혁의 예언대로 광화문 앞에서 슈트 차림으로 만났다.

“나 수업 있어서 이렇게 정장 입고 들어갔잖아. 신입생들이 인사하더라. 교수인 줄 알고.”

“못살아. 근데 막상 보니까 나쁘지 않네. 똑같이 입고 다니면 부끄러울 줄 알았는데 셋 다 근사해요.”

최민아가 한수철의 어깨에 묻은 먼지를 털어주며 미소 지었다.

“오늘은 수철 오빠가 제일 멋있는데?”

“오늘은 이라니?”

“평소엔, 큼큼. 좋은 말만 해야 하니까 오늘은, 수철 오빠가 지구에서 제일 멋있어. 파이팅해요.”

“고맙다. 시안이 통해야 할 텐데. PT 스타일도 맞아야 할 거고.”

“우리 기획안이 좀 많이 튀기는 하는데, 괜찮을 거야. 한수철 목소리가 신뢰를 주잖아?”

도혁은 전혀 걱정하지 않았다.

공모전 도장 깨기의 첫 단추가 서울시일 뿐, 오늘의 발표는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서울시에서 안 받아주면 다른 지자체 어디서라도 사 갈 기획안이었다. 그만큼 도혁은 자신이 있었다.

“채택 안 하면 서울시만 손해야. 난 그렇게 믿는다. 수철아, 힘내.”

“고마워. 그런데 장소가 계속 대회의실이네. 두 팀만 발표한다고 하지 않았어?”

“그러게. 작은 장소에서 할 줄 알았더니. 덩그러니 넓은 데서 발표하면 더 떨릴 수도 있겠다.”

그런 걱정은 할 필요가 없었다. 전혀 덩그렇지 않았거든.

대회의실에 들어선 그들은 놀라 눈이 휘둥그레졌다.

객석을 가득 메운 사람들. 가슴에 사원증을 걸고 있는 것으로 보아 모두 공무원인 듯했다.

대기석에 앉으며 어리둥절 주변을 돌아보고 있는데 담당 사무관이 다가왔다.

“포에버 팀 맞습니까?”

“네. 맞습니다. 그런데 저쪽 객석에 앉은 분들도 심사 위원이신가요?”

“그렇습니다. 오늘 심사를 위해 각 부서에서 몇 명씩 차출했어요. 홍보 교육 차원에서 도움이 될 것 같아 기획했습니다. 여기 명찰 달아주세요.”

도혁은 주변을 빠르게 둘러보며 상황을 캐치했다.

족히 50명은 넘어 보이는 일반직 공무원 심사 위원.

그리고 가운데 자리에는 5명의 심사 위원이 자리하고 있었다.

안내를 마친 사무관이 떠나고 최민아가 팀원들에게 말했다.

“내가 슬쩍 저쪽에 명패 훑어보고 왔어. 교수가 둘, 서울시의 높으신 분이 세 자리더라고. 막상 여기 오니까 더 긴장된다.”

“그러니까요. 새삼 두 배로 떨립니다.”

이 순간 가장 떨릴 발표의 당사자 한수철은 순번을 뽑으러 대기실로 이동했다.

곧바로 사회자가 마이크를 들었다.

“여러분 장내를 정돈하시고 자리에 앉아주시기 바랍니다. 지금부터 서울시 홍보 영상과 포스터, 그리고 슬로건 공모전 결승전을 진행하겠습니다. 아, 말씀드리는 순간 시장님께서 들어오시네요. 모두 큰 박수로 맞아주시길 바랍니다.”

회의실의 문이 열리고 서울시장이 선거 유세장에서와 같은 환한 미소를 유지한 채 걸어 들어오고 있었다.

“어! 시장님도 직접 참석하네요?”

“그러게. 실물은 처음 보는데 TV하고 똑같이 생겼어.”

이진우와 최민아가 속닥거리는 사이 서울시장이 자리에 앉았다.

‘시장이 직접 심사까지 하네. 하긴 내년 선거에 유용하게 써먹을 캠페인이니까 중요하겠지.’

도혁은 속으로 생각하며 서울시장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사회자가 곧바로 진행을 이어갔다.

“지금부터 국민의례가 있으니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주시길 바랍니다.”

관공서답게 의례적인 국민의례에 순국선열을 위한 묵념까지 마치고 심사 위원 소개에 들어갔다.

역시 예상대로 교수 두 명과 고위 공직자 세 명으로 구성된 심사 위원단이었다.

“그리고 오늘은 특별히 일반직 공무원 여러분도 함께 심사에 참여합니다. 각 과에서 모인 직원 여러분께서는 발표가 끝나면 앞에 놓인 종이에 선택한 팀의 이름을 적으시면 됩니다.”

“오늘은 사전 심사를 거친 두 팀이 발표에 참여할 건데요. 아, 말씀드리는 순간 발표자들이 방금 뽑은 순서가 도착했네요.”

사회자가 주변을 둘러보며 뜸을 들였다.

“첫 번째 발표팀은 S대 광고학과 최강 서울팀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는 P대 광고홍보학과 외 1인이 함께한 포에버 팀입니다. 먼저 S대 발표자부터 앞으로 나와주세요.”

S대 광고과가 1차 심사에서 통과한 모양이었다. P대와 함께 광고 홍보계를 주름잡는 S대였기에 공모전에서 선전할 거라고 예상했었다.

도혁은 기대에 찬 눈으로 목을 쭉 빼고 화면을 바라보았다.

그런데 발표자로 나선 인간 얼굴이 낯이 익다?

도혁과 최민아가 동시에 마주 보았다.

이상한 기색을 눈치챘는지 강태오가 둘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왜 그래? 무슨 일인데. 둘이 왜 이렇게 당황해? 아는 사람이야?”

끄덕인 도혁이 낮은 목소리로 대꾸했다.

“저 자식 아는 놈이에요. 이거 쉽지 않겠는데? 이상한 짓거리 전문이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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