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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고 천재 명도혁-59화 (59/252)

광고 천재 명도혁 59화

바이플렉 코리아의 대표실에 들어선 여자를 보고 도혁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의 누나 명현진이 들어온 것이다.

“두 분 아는 사이십니까?”

“네. 도혁이 제 동생이에요. 어머, 집에서도 잘 못 만나는 동생을 바이플렉에서 만나네요.”

“어허, 동생분 귀가가 늦는 편인가 봅니다.”

명현진이 광고주 앞에서 굳이 집에 늦게 온다는 말을 하며 의아한 듯 도혁을 바라보았다.

“태강애드에서 이번에 바이플렉 광고 진행 중이라서 방문했어. 누나는?”

“나야 뭐, 출연자 만나러 왔지. 이 대표님, 마음의 준비는 되셨죠? 사흘간 저희 스태프가 따라다니면서 촬영할 거예요.”

촬영?

탁기준과 도혁이 동시에 바이플렉 이태호 대표를 바라보았다.

“어이구 민망합니다. 딱히 대단한 일을 한 것도 아니고. 나 같은 사람이 방송에 나가도 될지 모르겠어요.”

“무슨 말씀이세요. 강한기업 3일. 딱 대표님을 위한 기획이나 마찬가지라구요. 설마 아직도 출연을 망설이시는 건 아니시죠?”

건실한 중소기업을 소개하는 ‘강한기업 3일’이라는 다큐멘터리를 기획 중이란다.

명현진이 삼고초려해서 겨우 바이플렉을 섭외했다고.

“이 창고 같은 사무실을 보이려니 민망해서 그렇죠. 우리 집도 누추하고 말입니다.”

“그게 바로 대표님을 섭외한 이유예요. 바이플렉 연구실은 으리으리하잖아요. 설비와 제품 연구에 투자를 아끼지 않으시고 평소엔 검소하게 지내시는 모습이 시청자들에게 귀감이 될 거예요.”

“당연히 바이플렉뿐 아니라 론칭 제품 홍보에도 큰 도움이 될 겁니다.”

명현진의 말을 받아 탁기준이 강조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굉장히 좋은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제품 론칭 광고에 맞춰서 대표님 다큐 프로그램이 방송되다니 행운이에요. 일부러 방송 프로그램을 끼워 캠페인을 구성하기도 합니다.”

“그래요?”

“물론 이렇게까지 대표님을 중심으로 촬영하는 프로그램을 섭외하긴 어려웠겠죠.”

끄덕이는 이 대표를 보며 도혁이 쐐기를 박았다.

“대표님 다큐멘터리 강한기업 3일 앞에 붙는 20초짜리 광고 집행비가 얼마인지 아십니까?”

“아주 비싸겠죠? 저녁 9시니까.”

“매체 송출비만 한 달에 수천만 원에서 억대를 지불해야 합니다.”

“그렇게나 비쌉니까?”

“네. 그렇습니다. 그런데 지금 대표님은 한 시간가량 바이플렉을 홍보할 기회를 잡으신 겁니다. 그것도 아주 긍정적인 방향으로 말입니다. 그리고 더 중요한 건 시청자의 집중도입니다.”

말을 끊고 도혁이 이 대표에게 질문했다.

“대표님은 광고를 열심히 보십니까? 아니면 프로그램을 집중해서 보십니까?”

“그야 당연히 프로그램을 열심히 시청합니다. 아, 소비자들도 그렇겠군요!”

“이건 정말 좋은 기회입니다. 그리고 그 기회를 살릴 수 있도록 저희 태강애드가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명현진이 입 모양으로 ‘명도혁 파이팅’을 외쳤다.

잠깐 생각에 잠겼던 이 대표가 결심한 듯 무릎을 탁 쳤다.

“그래요. 우리 제품을 위해서 대표가 존재하는 거 아니겠습니까? 좀 민망하지만 촬영에 적극적으로 협조하겠습니다.”

“멋져요. 대표님! 진짜 후회 없으시게 열심히 찍어볼게요!”

“그래요. 우리 두 남매분을 한번 믿어보지요.”

명현진이 사무실을 나서며 팔꿈치로 도혁의 배를 툭 쳤다.

“명도혁, 올~ 말 잘하더라? 오래 살다 보니까 네 덕을 다 보네. 덕분에 완전히 섭외 확정했어. 할 듯 말 듯 계속 망설이셨거든. 고맙다!”

“나도 오래 살다 보니까 누나한테 고맙다 소리를 다 듣네.”

“꼬맹이가 또 노친네같이 말하지. 어?”

“참, 소개할게. 이쪽은 태강애드 탁기준 선배야. 기획팀 사수.”

“반갑습니다. 저 도혁이 누나 명현진이에요. 우리 애늙은이 잘 부탁드려요.”

“탁기준이라고 합니다. 굉장히 미인이시네요.”

명현진을 보고 입에 침도 바르지 않은 채 미인이라니, 역시 탁기준은 탁월한 AE이다.

도혁은 그의 수완에 혀를 내둘렀다.

“미인을 알아보시는 탁기준 씨, 이것도 인연인데 같이 차라도 한잔할까요?”

“금요일인데 술을 한잔하는 게 어떻겠습니까?”

“오! 그러시죠, 뭐. 안 그래도 한잔할까 입이 심심하던 참이었거든요.”

“화끈하시네요. 그럼 우리 애늙은이 명도혁은 떼놓고 둘이 갈까요? 도혁아, 너는 버스 타고 가라. 저 앞에 정류장까지 태워줄게.”

“아니, 잠시만 잠시만 선배. 누나랑 단둘이 마시게요?”

“그럼 눈치 없이 따라붙으려고 했냐?”

어? 이거 아닌데? 탁기준 지금 우리 누나한테 작업하냐?

둘 다 전생의 제 짝 있는 사람들이 왜 저러실까? 아니, 전생이니까 상관없나? 아니, 있나? 도혁의 머릿속이 복잡하게 꼬여가고 있었다.

그걸 본 명현진이 도혁의 앞 머리카락을 헝클었다.

“으이구. 술 먹고 싶으면 같이 가든가. 근데 너 술 싫어하잖아?”

“누나, 내가 언제부터 술을 싫어했어! 와!”

“그러게 말입니다. 제가 도혁이 술 먹는 거 본 적이 없거든요. 소주 광고할 때도 그렇게 권했는데 잘 안 마시더라구요.”

“아니, 아니! 이게 무슨 말입니까!”

깨끗한 참소주 PT 때 마신 소주만 한 상자가 넘는구만.

어리둥절한 채 서 있는 도혁의 팔을 탁기준이 잡아끌었다.

“너 놀려본 거지 인마. 뭐 먹고 싶은 거 없어?”

“그래. 명도혁 빼고 가면 재미없지. 아무튼 여러분 덕분에 섭외도 성공했는데 오늘은 제가 살게요.”

“그럼 저는 2차 쏘면 되겠네요. 명도혁 근데 2차 때는 꼭 집에 먼저 가야 한다. 눈치 챙기라고.”

“잠시만 2차를 단둘이 간다구요? 우리 누나 지켜야겠는데요? 대한민국 남동생으로서 끝까지 함께해야겠습니다!”

남동생의 의무라며 술자리에 따라붙었다.?

의외로 탁기준과 명현진은 죽이 잘 맞았고, 광고와 방송국 얘기, 회사 뒷담화와 사람 사는 이야기로 셋은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새벽 4시. 무려 5차까지 이어진 술꾼들의 밤이었다.

* * *

주말 내내 숙취를 물리치고 야심 차게 기획국의 문을 열어젖힌 도혁은 감회가 새로웠다.

태강애드의 젊은 심장 기획국.

벽에 붙은 빡빡한 일정표와 벌써 회의가 한창 진행 중인 회의실의 모습이 바쁜 기획국의 일상을 보여주고 있었다.

아침부터 바쁘게 뛰어다니는 사람들의 얼굴에는 활기가 넘쳤다.

이곳에서 카피라이터를 넘어 광고 기획과 영업의 기초를 다지게 될 거다.

도혁은 한 눈으로 기획국을 휘이 둘러보고 있었다.

“도혁아, 뭐 하냐.”

“어! 수철이 왔구나. 그냥 보고 있었지. 혹시 기준 선배 못 봤어?”

“아까 마주쳤는데 대표실 들어간다던데?”

탁기준은 아직 대리였지만 김철준이 특별히 챙긴다고 들었다.

하긴 회귀 전에도 워낙에 잘나가던 탁기준이었다.

더구나 지금은 도혁과 신입1팀이 활약하면서 완전히 김철준의 눈에 들었을 것이다.

곧 도혁도 김철준에게 불려가게 되었지만.

“명도혁 씨, 대표님이 찾으십니다.”

“알겠습니다.”

비서의 안내에 따라 들어간 대표실에는 의외의 인물이 함께였다.

바로 광고공사 부장이었던 최철우의 아버지가 김철준 옆에서 도혁을 반갑게 맞았다.

“우리 대상 수상자 명도혁 씨. 내가 차 한잔 같이하고 싶어서 김 대표님께 부탁했습니다. 이쪽으로 앉으시죠.”

“네. 안녕하세요.”

“내가 이번에 광주지사로 발령이 났어요. 한동안 못 보니까 그동안 맡았던 광고대행사들 한 바퀴 돌고 있습니다.”

“그러시군요.”

그는 광주지사에서 지사장까지 승진했던 걸로 기억한다. 그리고 지방을 몇 군데 돈 후 광고 공사 사장을 역임한다.

인사가 끝나자 김철준이 최철우의 안부를 물었다.

“참, 아드님은 잘 지냅니까? 아드님도 공익광고 공모전에서 우수상 탔었죠? 발표를 아주 잘하던데요.”

“아이구, 잘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우리 태강애드 신입들 따라가려면 멀었죠. 어떻게 이렇게 직원들이 유능합니까?”

“겸손하게 대답해야 하는데 인정하겠습니다. 우리 신입들 유능하죠. 하하.”

“자랑하실 만합니다. 저도 태강애드 신입들 탐나는 걸요.”

“참, 이참에 아드님도 태강애드에서 인턴십을 진행하면 어떻습니까? 저희 대학생 인턴십 과정 처음 하는데, 성과가 아주 좋아요. 큰 경험이 될 겁니다.”

김철준 대표가 최철우를 영입하고 나섰다.

도혁은 절로 나오는 한숨을 삼키며 둘의 대화에 귀 기울였다.

“철우는 광고공사에서 인턴을 하겠답니다.”

“아, 공사에도 인턴 과정이 생겼습니까?”

“네. 이번에 뽑는다고 하네요. 태강애드가 광고계에 인턴십 붐을 일으켰어요. 대형 대행사에서 족족 인턴십 여는 거 보고 저희도 시작했지요. 저는 하는 줄도 몰랐습니다. 어떻게 알고 지원해서 합격했더라구요.”

당연히 알고 아들 밀어줬겠지.

이번에도 흘러나오는 조소를 속으로 삼켰다.

‘역시 최철우는 수완이 좋아. 대행사보다는 공사 쪽에서 발을 넓히시겠다는 건데.’

그 좋은 수완으로 동료들의 아이디어와 공을 채가던 최철우의 모습이 머릿속에 스쳐 갔다.

일단은 최철우가 어떻게 광고판에서 자리를 잡을 건지 지켜보기로 했다.

기를 쓰고 쫓아오려는 꼴을 구경하는 재미가 생겨 버렸거든.

최철우 생각에 잠깐 잠겨 있는데, 최 부장이 뜻밖의 말을 건넸다.

“태강애드가 바이플렉 쪽이랑 일한다고 들었는데, 아직 기획안이 들어간 건 아니죠?”

“그렇습니다만, 어떤 일 때문에 그러시는지.”

“저도 대표님께 인사를 드릴 수 있을까 해서요. 다리 좀 놔주시죠.”

“아, 직접 들어가 보시게요?”

“네. 공사에서 제가 태강애드 담당이니까 태강 광고주면 제 광고주지요. 영업 차원에서 방문하려고 합니다.”

“다음번에 함께 가시죠. 탁기준. 기획안 들어갈 때 우리 최 부장님 모시고 가도록 해.”

김철준은 흔쾌히 수락했다.

광고 공사의 영업은 광고대행사에서 주로 하지만, 아무튼 최 부장의 직함은 영업2부장이었으니까.

그리고 아마도 그는, 바이플렉의 비전을 느꼈는지도 모르겠다.

도혁은 최 부장의 동물적인 감각에 감탄했다.

‘이런 식으로 기업을 추려내서 주식을 사 모았구나. 부전자전이구만.’

광고 일을 하다 보면 기업 마케팅의 핵심, 재무구조, 시장이 돌아가는 상황까지 한눈에 그려진다. 그걸 좀 더 자세히 파악하기 위해 바이플렉에 방문하려는 것이다.

최철우도 전생에 주식 꽤나 했었지. 부전자전이라고 참 닮은 곳이 많은 부자였다.

“혹시 바이플렉 제품 있으면 추천 부탁드립니다. 김철준 대표님이 늘 그러셨습니까? 제품을 직접 써봐야 회사를 안다고 말입니다.”

“제품이라면, 이번에 캠페인 하는 변비약이랑 유산균 말씀이시죠? 명도혁 씨 혹시 가지고 있는 게 있나?”

“제가 지금 바로 달려가서 가져오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역시, 명도혁 씨. 이런 적극적인 마케터는 광고주가 상 줘야 한다니까요?”

제품을 가지러 도혁이 빠르게 회의실로 뛰어갔다.

‘아이고, 우리 최 부장님 밤에 고생 좀 하시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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