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광고 천재 명도혁-56화 (56/252)

광고 천재 명도혁 56화

“두 가지 케이블 뭔데. 어?”

도혁이 커피를 사 들고 들어와 자리에 앉았다.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최민아에게 건네며 물었다.

“제법 쌀쌀한데 얼어 죽어도 아이스 아메리카노야?”

“어. 난 한겨울에도 아이스. 명도혁 자꾸 딴소리할래?”

“딴소리 아닌데?”

도혁이 제 앞에 놓인 뜨거운 커피를 입술에 대었다.

“두 가지의 아메리카노가 있는 것처럼 케이블 TV에는 두 종류가 있어. PP(공중파를 제외한 송출 채널)와 SO(유선 동축 케이블로 송출하는 유선방송).”

“그래? 처음 들어보는데?”

“간단히 말하자면 YTM 같은 케이블 채널과 지역 케이블 방송국, 이렇게 두 가지가 있다고 생각하면 쉬울 거야.”

SO 유선 채널은 IP-TV가 활성화되면서 점점 쇠퇴하게 되지만 아직은 주요한 매체였다.

도혁이 그림을 그려서 쉽게 설명해 주었다.

“PP에서는 프로그램을 만들어. 지금 수철이가 적은 뉴스 방송, 드라마 방송, 예능 방송 같은 것들이 모두 PP야. 그리고 강남케이블, 수서 TV같이 방송을 받아서 송출하는 지역 유선을 SO라고 부르지.”

“그렇구나. 이 두 가지 케이블 방송 중에 주로 광고가 걸리는 쪽은 PP인 거지?”

“일반적으로는 그래. 하지만 우리는 양쪽에 모두 광고를 걸 거야.”

최민아가 약간 눈살을 찌푸리며 반론을 제기했다.

“내가 케이블 방송 자주 보거든? 근데 지역 유선방송에 나오는 광고는 너무 마이너해. 촌스럽고 뭐랄까, 시골에서 만든 광고 같다고.”

“맞아. 업종도 식당 같은 중소 업체들이지?”

“그래. 건설 광고는 거의 못 본 것 같아. 광고주가 싫어하지 않을까?”

“하지만 지역만 골라서 송출할 수 있지. 그리고 지역들이 거의 묶여 있어. 묶음으로 광고 시간대를 판다는 뜻이야.”

프로그램을 만들어 파는 쪽과 송출하는 쪽 양쪽 매체를 동시에 활용하자는 말에 모두 귀를 기울였다.

“양쪽 다 광고를 건다라…….”

“PP는 타깃이 볼만한 뉴스 프로그램을 선정하고, 그리고 SO는 지역을 공략하는 거야. 전국 송출할 필요 없잖아? 어차피 투자자들은 서울에 많을 거고, 사실 쇼핑몰 소비자도 거의 서울 사람들일 테니까.”

“하긴 전국에 쏘는 건 전파 낭비지. 아주 큰 건설 회사는 아니더라고.”

한수철의 말에도 최민아는 고개를 갸웃했다.

“그래도 지역 송출 광고들이 너무 별론데. 디자이너로서 보기 싫을 정도의 퀄리티라고!”

“잘 만들면 되지. 솔직히 소비자들은 잘 몰라. 광고 퀄리티 보고 지역광고라고 느낄 뿐, 송출 시간대나 SO니, PP 이런 거 따져가면서 보는 게 아니잖아?”

“하긴 나도 케이블 TV에 대해 잘 몰랐으니까. 그럼 도혁이 말은 광고를 예쁘게 잘 만들면 지역 광고인 것조차 모를 거라는 거야?”

“맞아. 우리 최민아처럼 세련되게 잘 만들면 돼.”

최민아는 그제야 끄덕이며 무언가를 수첩에 적어 내려갔다.

도혁이 SO 지역 케이블 광고를 제안하려 하는 데는 두 가지 이유가 있었다.

하나는 신입들에게 말한 대로 타깃과 지역을 분리해 합리적인 금액으로 최고의 매체 효과를 내기 위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SO가 좀 커주는 게 중소 광고사에 유리하거든. 소규모 광고대행사도 먹고살아야지. 나 역시 나중에 사업을 하게 된다면 대형부터 시작할 수는 없을 테니까.’

처음부터 공중파 광고를 따는 건 무리가 있을 것이다.

공중파는 태강애드와 같은 큰 업체의 외주로 진행하고, 작은 광고주를 공략해 옥외와 케이블 TV등 기타 매체를 제안하며 사업을 확장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최민아의 말대로 마이너한 이미지가 있는 케이블 광고 시장이었다.

하여 조금이라도 빨리 괜찮은 광고를 케이블에 넣고 싶었던 거였다.

태강애드와 같은 큰 광고대행사가 그 변화를 주도해 주면 더 좋은 일이고.

‘좀 이른 감은 있지만 이런 건 기회가 있을 때 미리 준비해두는 게 좋으니까.’

태강애드를 이용할 큰 그림을 또 하나 그리며 도혁은 빙그레 웃었다.

한수철이 그를 바라보며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들이켰다.

“이번 매체 기획안도 통과할 것 같아.”

“어떻게 알아?”

“명도혁이 저런 표정 지으면 만사 오케이더라고.”

손가락으로 오케이를 그려 보이는 한수철의 표정이 더없이 밝았다.

* * *

기획국 회의실. 완성된 매체 기획안을 들고 도혁이 탁기준을 찾았다.

애초에 도혁에게 의뢰한 것이기에 다른 팀원들은 놓고 혼자 기획국으로 들어갔다.

솔직히 욕먹을 수도 있거든.

“SO라고? 하여간 명도혁. 독특해요. 이거 광고주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는데.”

“주요 채널도 밀어 넣고 지역 송출도 빵빵하게 할 거라고 말해주면 좋아할 겁니다. 일단 싸니까요.”

“하긴. 쇼핑몰은 노출이 많이 될수록 좋기는 해. 대소비자 인지도 향상도 중요하거든. 흔히 말하는 오픈발 받으려면 말이지.”

탁기준이 눈썹을 말며 생각에 잠겼다.

뜻밖의 제안에 조금 당황한 모습이었다.

“맞습니다. 식당 광고 같지 않게 잘 만들면 됩니다. 지역 송출 광고 표시 안 나게요. 어차피 광고주는 SO인지 모를 거 아닙니까.”

“일단 제안은 해보지. 어차피 공중파까지 들어갈 퀄리티로 만들 거라서 소비자들은 모를 수도 있어. 좀 모험이긴 한데, 시도해 볼 만한 것 같다.”

역시 탁기준은 말이 통했다.

대기업 AE로서 약간 꺼릴 수도 있는 제안이라고 생각했는데 선뜻 받아들여 주었다.

탁기준이 기획안을 덮으며 말을 이었다.

“그나저나 너네 어떡하냐. 신입1팀 깨졌다며.”

“네. 윤기는 영국으로 유학 간다고 하고, 진수는 학업에 집중하고 싶다며 그만뒀다고 들었습니다. 전공도 아니구요.”

“잠깐만, AE는 이제 명도혁, 한수철 달랑 둘만 남은 거야?”

“저기 죄송합니다만, 저는 카피라이터거든요?”

“웃기시네.”

탁기준이 입매를 끌어올리며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내가 장담하는데 넌 절대 카피만 못 써.”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이십 대 초반 글쟁이는 너 같은 마인드 아니야. 순수하고 서브 컬처 파고, 아무튼 그 특유의 느낌이 있어.”

“…….”

“명도혁 지금 너 눈빛이 어떤지 아냐?”

“어떤데요?”

“김철준 대표님 눈빛이야.”

툭, 머리를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그렇구나.

“광고주 같기도 하고 광고 회사 대표 같기도 한 아우라가 있다고. 그런 놈이 무슨 카피만 쓴다고. 그냥 기획하면서 카피도 같이 써. 내 말 알아들어?”

“네. 이해했습니다.”

“이제야 말이 좀 통하네.”

탁기준이 팔짱을 꼬며 의자에 등을 기대었다.

“제작에 감 있는 AE, 정말 드물어. 야구로 따지자면 좌완 에이스 느낌이거든.”

“좌완 에이스라구요?”

“아니. 스위치히터인가? 왼쪽 오른쪽 다 치는 선수들 있잖아.”

탁기준이 야구방망이를 휘두르는 듯한 손동작을 해보이며 도혁을 바라보았다.

“난 광고판도 인생도 야구 같다는 생각을 많이 해. 경기가 돌아가는 상황도 그렇고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닌 마지막도 그렇고.”

“맞습니다. 저도 그런 생각 가끔 합니다.”

“하지만 선수들을 볼 때 정말 광고판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더라고. 고교 야구를 보면 말이야, 에이스 투수들이 꼭 4번을 쳐. 선천적으로 재능이라는 게 불공평하거든. 거지 같아 아주.”

“타고난 광고쟁이 탁기준 선배가 할 말은 아닌 것 같습니다.”

도혁의 말에 탁기준이 어깨를 한번 으쓱하더니 고개를 저었다.

“근데 말이야. 그 고교 에이스들이 프로 와서 다 제 기량을 펼치느냐, 그건 또 아니거든.”

“자만하지 않고 끝까지 가는 게 중요하죠.”

“맞아. 핵심을 알고 있으니까 넌 끝까지 잘될 거다. 광고 천재 명도혁 옆에 딱 붙어 있어야지!”

도혁은 대답하지 않고 생수를 들이켰다.

탁기준 선배와 함께 사업을 한다면?

잠깐 생각했다.

그는 정말 큰 힘이 될 것이다.

영업과 기획, 시안을 보는 능력까지 그가 비유한 대로 스위치히터 같은 인물이었으니까.

하지만 태강애드의 기획국장이 되실 몸인 탁기준의 미래를 바꾸고 싶지는 않았다.

회귀 당시에 부사장 얘기까지 나오고 있었던 그였다.

도혁이 아쉬운 마음에 한숨을 내쉬자 탁기준이 의아한 듯 바라보았다.

“무슨 걱정 있냐? 젊은 놈이 한숨은.”

“아닙니다. 그냥 좀 아까운 사람이 있어서요.”

“왜, 같이 일하던 애들 나가서 그러냐? 직장이 그렇지 뭐. 떠난 애들 그리워하지 말고 남은 애들 콜해 봐. 브리핑할 게 있어.”

“브리핑이요?”

매체국 여기저기에 흩어져서 선배들을 돕고 있던 신입1팀 팀원들을 불러 모았다.

이제 신입1팀에는 카피를 지원했던 도혁과 강시원, 디자이너 팀의 최민아, 서인기, 그리고 AE 지원자는 한수철 하나 남았다.

“선배님 잘 지내셨습니까? 더 잘생겨지셨습니다?”

“그러니까요. 얼굴 좋아지셨는데요?”

“이 자식들이 누굴 놀리나. 어제도 밤새웠는데. 아무튼 느물거리는 게 직장인 다 됐네. 앉아봐.”

신입들이 올망졸망 모여 앉자 탁기준이 그들을 둘러보았다.

“모두 기말고사 끝났지?”

“네.”

“이제 방학이네. 겨울방학은 우리 기획국하고 함께 보내야지. 안 그래?”

“맞습니다. 기획국으로 먼저 갈 거 같다고 들었어요.”

“그리고 내가 미리 너네 찜해놨어. 우리 신입1팀은 겨울방학 동안 내가 있는 기획1팀하고 함께한다. 알겠지?”

공사나 같이 가자고 신입들 사정 봐주던 매체국와는 차원이 다를 미래가 그려졌다.

탁기준이 신입들에게 일정표를 나눠주었다.

“알겠지만 우리 기획국은 빡빡하게 돌아가. 기획1팀 추후 일정이니까 참고하고.”

“이렇게 광고주가 많습니까? 이걸 다 컨트롤하시면서…….”

“맞아. 관리하면서 새 광고주도 뚫어야지. 시간 나면 틈틈이 경쟁 PT도 하고 말이지.”

“하아. 알겠습니다. 선배님.”

제작국 있을 때는 제작이 제일 미쳐 돌아가는 줄 알았더니 기획도 만만치 않구나.

도혁은 빈틈없이 빼곡한 일정표를 보며 혀를 내둘렀다.

“그런 의미에서 첫 번째 광고주를 소개해 줄게. 잠깐 기다려 봐.”

탁기준이 밖으로 나가 박스 하나를 가져왔다.

무심코 그 상자를 바라보던 도혁의 눈이 커다래졌다.

[바이플렉 코리아]

‘어, 잠깐만!’ 브랜드명 하나만 달랑 찍힌 박스.

하지만 그걸 본 순간 도혁의 머릿속에 무언가 스치고 지나갔다.

회귀한 후 미래가 바뀌면서 시간이 뒤틀리더니, 잠깐만. 이 광고를 벌써 한다고?

도혁의 이마에서 땀이 흘러내렸다.

그리고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도, 도망쳐.”

“뭐? 도혁아 갑자기 그게 무슨 말이야?”

신입들이 갑작스러운 도혁의 말에 눈이 동그래져 그를 바라보았다.

“도망쳐야 해. 여기서 빠져나가는 건 지능순이라고!”

“야, 명도혁 정신 차려!”

“쟤 왜 저러니?”

신입들이 영문을 모른 채 도혁을 의아하게 바라보고, 탁기준이 박스를 테이블 위에 내려놓았다.

그러곤 신입들 얼굴을 한번 휘익 둘러보더니 다시 출입문으로 다가갔다.

-툭

탁기준이 문을 잠그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의 입꼬리가 사악하게 말려 올라가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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