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 천재 명도혁 50화
심사 결과 발표가 시작되었다.
에모라 화장품 대표가 인사말로 심사평의 포문을 열었다.
“모두 고생이 많으셨습니다. 창사 이래 첫 번째 공모전인 만큼 전사적으로 신경을 많이 썼는데, 대단히 만족합니다. 신제품 론칭 때마다 공모전을 열고 싶을 정도예요.”
“공모전이야 또 열면 됩니다. 대표님 뜻대로 하시죠.”
홍보팀장이 웃으며 맞장구를 치고 편안한 분위기에서 심사가 이어졌다.
“초반에는 의외로 기성 광고대행사처럼 정형적인 발표였는데, 뒤로 갈수록 대학생다운 재기 발랄함이 돋보였습니다. 정확히 저희가 공모전을 통해 의도한 부분입니다.”
“일단 발표의 구성이 대학생다웠어요. 일반인 심사위원과 소통하는 부분이라거나 도입부에 직접 했던 퍼포먼스. 통통 튀고 아주 젊은이다웠습니다.”
에모라 대표가 도혁 팀 쪽을 바라보며 짧은 눈인사를 보냈다.
“특히 한 팀은 놀라울 정도의 캠페인 구성 능력을 보여주었습니다. 발표 방식만 눈에 띄는 것이 아니라, 대고객 마케팅을 전체적으로 아우르는 제안을 선보였습니다. 우리 강 전무는 어떻게 봤습니까? 심사평 한마디 해주시죠.”
에모라 대표가 임원에게 의견을 물었다.
“저 역시 앞으로 대학생 공모전을 계속 열어야 하나, 생각할 정도로 만족했습니다. 몇 가지 아이디어는 당장 적용해도 좋을 만큼 뛰어났습니다. 좋은 기량을 선보여 준 팀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우리 대학생 여러분의 의견도 궁금하네요.”
강 전무의 말에 진행 요원이 급히 마이크를 일반인 심사위원석으로 넘겼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오늘 처음 이런 심사를 해보는데요, 일단 너무 재밌었구요. 마케팅이 이런 거구나, 광고가 이렇게 시장을 연구해서 만들어지는구나 싶어서 신기했어요. 참, 여담으로 CF 연기하신 분, 정말 인상 깊었습니다.”
도혁이 대학생 심사위원석을 돌아보며 민망한 미소를 지었다.
“자, 그럼 대학생 심사위원단 말까지 들었으니 대상 팀을 발표할까요? 다들 결과를 기다리고 있을 텐데.”
에모라 대표의 말에 사회자가 서둘러 진행을 이어갔다.
“네. 알겠습니다. 바쁘신 와중에 자리하신 심사위원들, 그리고 대학생 여러분께 다시 한번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또한 자세한 공모전 작에 대한 심사평은 당사 홈페이지를 통해 공시할 예정입니다. 그럼 에모라 자연 화장품 스킨엔 푸드의 대학생 캠페인 공모전, 그 대망의 결과를 발표합니다.”
실내의 공기가 긴장으로 팽팽해졌다.
멀리서 도혁을 보고 있는 이진태와 허공에서 눈길이 부딪혔다.
그는 도혁 팀을 보고 웃고 있었다.
* * *
“야이, 미친! 악!!!”
“아 어떡해!!! 실감이 나지 않는다. 아, 정말 우린 미쳤어! 미쳤다고.”
에모라 화장품 본사 앞 정원에서 도혁 팀 멤버들이 방방 뛰고 있었다.
도혁의 목에 팔을 감은 한수철이 너무 힘을 세게 주는 바람에 목이 턱턱 막힐 지경이었다.
이지원은 거의 울고 있었다.
“아, 그동안 고생한 보람이 있다. 진짜 중간고사에 공모전까지 준비하면서 죽는 줄 알았거든.”
“나도 연기한 보람 있네. 아, 이놈의 발 연기.”
“왜, 아까 대학생 심사위원은 인상적이었다고 하더만. 도혁이는 담담하다?”
“그럼. 이 정도는 따내야지. 안 그래?”
“이 자식, 겸손 같은 건 없는 거냐? 아니다. 오늘은 안 겸손해도 돼!”
농담처럼 말했지만 사실이었다. 대학생 공모전에서 1등을 못 하면 곤란하거든.
도혁의 시야는 훨씬 높은 곳을 향해 있기에.
대한민국, 어쩌면 세계 무대에서 시대를 관통할 전설적인 캠페인을 남기고 싶었다.
오랫동안 인구에 회자되는, 뭉클한 감동과 세련된 예술성, 그리고 폭발적인 매출을 견인할 단 한 편의 광고.
그 목표를 향해 묵묵히 한 걸음씩 걸어가고 있는 것이다.
명도혁에게는 인생의 기회가 두 번이나 주어졌으니까.
팀원들과 기쁨을 나누는 사이 이진태가 큰 소리로 그들을 부르며 다가왔다.
“명도혁! 한수철! 에모라 광고주님께서 우리를 찾으시는데? 술 한잔할 수 있나?”
“네? 그럼요. 당연합니다!”
1초 만에 한수철이 대답했다.
이것이 제작팀과 AE의 타고난 차이인가.
끝나고 맥주나 마시려고 거절할까 했던 도혁과 달리 바로 긍정 대답을 날렸다.
역시 천생 AE 한수철다웠다.
‘사업하려면 저런 태도도 필수겠지? 최고의 영업 사원은 대표이사라고들 하니까.’
이진태가 에모라 대표실로 향하며 도혁의 어깨를 두드렸다.
“내가 믿고 있었지. 우리 도혁 팀이 P대의 위상을 살려줄 줄 알았어.”
“저는 교수님께서 최철우 팀을 도와주실 줄 알았습니다.”
“그럴 리가. 아이디어가 어디서 나왔는지 알고 있는데. 나도 줄 설 줄 안다고.”
이진태가 쓴 입맛을 다시며 도혁을 바라보았다.
“공익광고도 나하고 같이하면 좋겠구만. 잘 되고 있어?”
“네. 공익광고는 처음 만들어보는 거라서 재밌게 하고 있습니다.”
“그래. 재밌는 게 최고지. 즐기는 사람을 이길 수가 없어. 우리 명도혁, 한수철을 보면 캠페인을 즐기는 게 보여.”
덕담을 듣는 사이 어느덧 약속 장소에 도착했다.
서울에서도 손에 꼽히는 한정식집이었다.
정관계 인사들의 로비 장소로 유명한 고급 한옥의 룸으로 들어서며 팀원들이 혀를 내둘렀다.
“오우, 드라마 같은 데서 볼 때마다 TV 세트장인 줄 알았는데, 진짜 이런 곳이 있기는 있구나.”
“여기 제법 비싼데 우리 정 대표 오늘 크게 쏠 생각이구만.”
“그럼, 접대할 때나 오는 곳이야. 오늘 우리 젊은 친구들하고 한잔하고 싶어서 자리 마련했지. 자, 우리 대상 팀 발표하느라 고생했을 텐데 실컷 드시죠.”
청와대 셰프 출신이라는 주방장의 시그니처 요리가 속속 들어왔다.
따뜻한 밤죽과 흰살생선 냉채부터 등심과 유자 갈비찜 등 고급 요리와 술이 서빙되자 촌스러운 탄성이 다시 터졌다.
“소고기 대박. 이렇게 맛있는 건 처음 먹어봐.”
“와, 냉채 소스 무슨 일이니.”
젊은 대학생들의 감탄을 들으며 에모라 대표가 미소 지었다.
“음식은 입에 맞습니까?”
“네. 대표님 감사합니다.”
“이진태 학과장이 브랜드 네이밍 때부터 입에 침이 마르도록 제자 자랑을 하더구만, 이유가 있었어요. 오늘 발표 정말 잘 봤습니다.”
대표는 한 명 한 명 팀원들에게 술을 따라주며 격려했다.
“특히 그 샘플 마케팅 제안은 놀라웠습니다. 이게 대학생 공모전에서 나올 수준인가 싶어서요. 스팸처럼 여겨지는 DB 마케팅과 관례적으로 주기만 하던 샘플 판촉을 엮어서 이렇게 진행할 수도 있구나, 감탄했습니다.”
“그렇게 봐주시니 감사합니다.”
“고객 서비스를 넘어 고객 감동입니다. 이건. 더구나 바로 매출로 연결될 확률이 아주 높은 마케팅이라고 봅니다.”
정대표가 흡족한 표정으로 팀원들과 도혁을 유심히 보았다.
“이진태 교수에게 핵심 제안자라고 들었습니다. 명도혁 씨, 아이디어 뱅크시라고요.”
“과찬이십니다.”
“과찬은 무슨. 오늘 보면서 다시 한번 깨달았지. 명도혁은 미래에서 온 사람이구나!”
이진태의 말에 밥 먹다가 사레들릴 뻔했다.
당황하는 도혁을 보며 이진태가 껄껄 웃음을 터뜨렸다.
“아니, 이럴 때 보면 영락없는 20대 초반 학생인데 말이지. 광고만 잡으면 국장급 경륜을 보인단 말이야.”
“그래? 그 정도야?”
“그렇다니까. 이건 말이 안 돼. 20대 친구들이 아이디어야 더 참신하지만, 이걸 마케팅에 연결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니야. 아무리 봐도 수십 년 광고한 사람 같단 말이지. 그래서 내가 결론을 내렸어.”
“미래에서 왔다고? 하여간 이진태 학과장 특이한 건 알아줘야 한다니까. 헛소리 그만하고 한 잔씩 하지.”
정 대표가 이진태를 구박하며 섬짓한 농담이 일단락되었다.
도혁은 가슴을 쓸어내리곤 술잔을 들었다.
“자, 우리 대상팀 파이팅입니다! 막강한 기획안을 바탕으로 론칭 대박 한번 쳐봅시다.”
“네. 대박을 기원합니다.”
“그럼 대박 기원을 위하여!”
“위하여!”
다시 촌스러운 감탄이 터져 나올 수밖에 없었다.
삼키는 순간 가격이 걱정될 정도의 목 넘김과 고급스러운 향취가 인상적인 아주 좋은 술이었다.
한 모금 입에 물고 음미하는 찰나에 정 대표가 뜻밖의 말을 꺼냈다.
“혹시 광고홍보학과는 졸업 후 진로가 어떻게 되나?”
“우리 과? 광고대행사에 제일 많이 들어가고, 대기업 홍보팀에 입사하기도 하고…… 잠시만, 정 대표 벌써 우리 애들한테 침 바르는 건가?”
“역시 눈치가 빠르구만. 오늘 발표를 봤는데 탐내는 게 당연한 거 아닌가?”
“어허, 아직 2학년인데. 취업 얘기는 너무 빠르잖아.”
“무슨 말이야. 학년이 어떻든 취업한 학생은 회사에 보내주는 게 상도의지. 사회의 당당한 일원으로서 출결 잡아주고 과제도 빼주는 게 교수의 도리 아닌가?”
“이 사람이! 막말하는구만.”
막말이라고 구박하면서도 이진태의 눈빛이 진지해졌다.
“정 대표 한번 말하면 지키는 사람인데, 우리 명도혁 팀 에모라 화장품에 코가 꿰이는 거 아닌가 모르겠다.”
“저희야 영광이죠.”
“이거 봐, 코가 꿰이는 게 아니라 영광이라고 하잖아.”
“그럼 애들이 면전에 대고 싫습니다, 하겠냐?”
절친이라더니 서슴없이 투덕거리며 신입 사원 영입에 대해 논의하고 있었다.
“난 진심입니다. 술 먹다가 할 말은 아니니 내 정식으로 스카우트 제의를 따로 넣겠습니다. 내가 에모라 화장품을 글로벌 기업으로 확장하려는 꿈이 있어요. 선대 회장님께서 한국 최고를 지향했다면 저는 세계 최고를 지향하고 있습니다. 유능한 미래의 인재들이 함께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간절하게 듭니다.”
“말씀만 들어도 감사합니다.”
한수철이 유들유들하게 잘 대처하고 이진태가 그만하라고 타박하며 겨우 스카우트 얘기가 마무리되었다.
“참, 우리 공모전 대상에 빛나는 기획안을 CF로 잘 만들어줄 광고대행사를 선정해야 하는데 말이지.”
“대일기획이랑은 진짜 정리하는 거야?”
“회장님 지시니까 할 수 없지. 너무 오래 한 회사랑 했다고 딱 자르시더라고.”
“아쉽구만.”
대일기획의 사외 고문을 담당하고 있는 이진태가 유감을 표했다.
아마도 회장과 사이가 틀어진 모양이었다.
“그래서 말인데, 태강애드는 어떤가?”
“경쟁 PT 안 붙이고? 태강애드라…… 거기는 우리 명도혁, 한수철이 신입으로 일하고 있어서 잘 알 거야.”
“그래?”
에모라 대표가 기대에 찬 눈으로 둘을 바라보았다.
“명도혁 씨 태강애드 어떻습니까?”
“신입이라서 섣불리 말씀드리기 그렇지만 분위기는 나쁘지 않습니다. 유능한 선배님들이 많이 포진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요?”
턱을 어루만지며 잠깐 생각에 잠긴 정 대표가 무릎을 탁 쳤다.
“잘됐네. 명도혁, 한수철 씨가 마케팅 제안자이니만큼 컨셉을 제일 잘 이해하고 있을 거 아닙니까?”
“그렇긴 합니다만…….”
“광고주가 한번 되어주시죠.”
“네?”
“태강애드에 일괄 대행 주고 함께 진행하는 겁니다. 에모라 화장품을 대표해서요.”
“아…… 태강애드에 대행 맡기시려구요?”
“그렇죠. 이참에 광고주 연습하시는 겁니다. 에모라 화장품 입사하기 전에요. 하하하하.”
정 대표의 호탕한 웃음소리가 실내를 가득 울렸다.
도혁과 한수철이 동시에 마주 보았다.
광고주를 하라고? 태강애드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