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광고 천재 명도혁-45화 (45/252)

광고 천재 명도혁 45화

제품을 탐구하는 건 모든 광고의 시작이다.

도혁은 에모라 화장품 공모전 참가를 위해 견학을 신청했다.

“여기가 에모라 화장품 본사구나. 와.”

“저건 공장 같은데 본사랑 붙어 있네?”

국내 화장품 업계에서 선두 자리를 꾸준히 유지해 오고 있는 에모라 화장품은 소비자를 위한 견학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었다.

“자료 조사 아니라도 한번 와보고 싶었는데. 여기 견학 끝나면 샘플도 엄청 준대.”

“좋네. 에모라 화장품 써볼 일이 없었거든.”

“하긴 남자들은 기초 화장품도 잘 안 쓰잖아. 어! 저쪽에서 부른다.”

이지원이 상기된 얼굴로 도혁을 잡아끌었다.

설명을 위해 에모라 화장품 홍보팀 직원이 직접 나와 그들을 맞았다.

“지난번 브랜드 네이밍 발표 때 뵈었었죠? 발표 인상 깊게 잘 봤습니다.”

“이렇게 직접 나와주셔서 감사합니다.”

“대표님이 그날 영상 보고 얼마나 땅을 치셨는지 모릅니다. 직접 갔어야 했는데 아쉽다구요.”

“에모라 화장품 측에서 공모전까지 열어주셔서 기쁜 마음으로 참여하고 있습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네. P대에 거는 기대가 아주 큽니다. 일단 이쪽으로 오시죠.”

본사 홍보관에서부터 견학이 시작되었다.

입구에서부터 에모라 화장품의 시작과 성장, 그리고 현재를 보여주는 영상이 방영되고 있었다.

이지원이 유니폼을 입은 화장품 판매원의 사진을 가리키며 속닥거렸다.

“어! 나 저거 생각나. 화장품 판매원이잖아. 집집마다 돌아다니고, 와, 추억의 사진이다. 어릴 때 우리 집에도 많이 왔었거든.”

“그래? 집이 좀, 살았나 보다?”

“그건 아니고 예전엔 방문판매원이 많이들 다녔거든?”

이지원의 말에 홍보팀 직원이 끄덕였다.

“방문판매 유통이 성행했던 시절이 있었죠. 집으로 가서 제품 설명과 피부 마사지를 해주며 화장품도 팔던 판매원들입니다. 지금도 주력은 아니지만 방판 유통을 병행하고 있습니다.”

“요즘도 하나 보네요?”

“예전에 비하면 비중은 많이 줄었죠. 현재는 가맹점 유통이 주력이고 인터넷 판매도 매출이 증가하고 있는 추세입니다. 자, 그럼 가든으로 이동할까요?”

홍보팀 직원이 계단을 타고 2층의 실내 가든 쪽으로 안내했다.

그 안에는 동서양의 허브와 자연 재료, 그리고 이를 연구해 화장품으로 만드는 과정이 전시되어 있었다.

“저희는 아예 농장에서 주재료를 재배하고 있습니다. 최대한 유기농법을 사용해 피부 자극을 줄이려고 노력합니다.”

“저희가 진행하는 자연주의 제품이 탄생한 배경이군요. 참, 촬영이 가능한가요?”

“네. 필요하면 사진 찍으셔도 됩니다. 소비자에게 공개한 공간이니까요.”

도혁은 씨앗, 꽃 등의 재료와 자연 유래 성분을 추출하는 과정을 카메라에 담았다.

“촬영 충분히 하셨으면 체험관으로 이동하겠습니다.”

“오! 체험관이 제일 기대되요!”

체험관을 기대하는 이지원과 달리 도혁과 한수철의 시선은 복도 쪽으로 향해 있었다.

복도의 긴 길을 따라 벽면 가득 에모라 화장품 광고의 역사가 펼쳐져 있었던 것이다.

“광고가 제법 많죠? 역대 탑 연예인은 모두 에모라를 거쳐 갔습니다.”

“여자 모델들이 가장 선호하는 기업일 겁니다.”

어느 시대건 화장품 모델은 여자 연예인에게 간판과 같은 것이다.

특히 에모라 화장품은 오랫동안 업계 탑이었으니까 그 선호도가 더 컸겠지.

“자, 어디서부터 아는 얼굴입니까?”

“흑백은 모르겠고, 중간 지점부터는 아는 연예인이네요. 광고가 세련되고 이미지 톤이 좋습니다.”

“네. 창업주이신 선대 회장님부터 지금까지 광고 홍보에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도혁은 끄덕이며 인쇄 광고와 영상 속 TV-CF를 감상했다. 한눈에 캠페인의 흐름을 알 수 있어서 굉장히 유익한 시간이었다.

인터넷 자료 조사로는 한계가 있었거든.

도혁은 꼼꼼히 카메라와 머릿속에 에모라 광고의 역사를 담았다.

“여기서부터 체험관입니다.”

“어! 립스틱이네요!”

“네. 찾아오신 고객을 상대로 어울리는 립스틱 색상을 찾아주는 행사를 하고 있어요.”

여자들의 시선은 먼저 눈에 띄는 색조 화장품 쪽으로 이동했다.

도혁과 한수철은 일렬로 늘어선 립스틱을 바라보며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저 중에서 어울리는 색을 찾는다고? 똑같은 색깔 아니야?”

“그러니까. 구별이 전혀 안 돼.”

“어머, 너네 색맹이었구나. 나 몰랐어.”

여자 둘은 멀쩡한 남자들의 눈을 색맹이라고 칭하며 립스틱을 열심히 손등에 발라보고 있었다.

손등에 바르니까 더 색깔이 똑같은데?

어리둥절 서 있는 남자들에게 홍보팀 직원이 다가왔다.

“남자분들은 피부 상태에 따라 스킨이나 로션을 사용해 보실 수 있어요. 립스틱보단 로션이 낫겠죠?”

“당연히요.”

“직원으로서 이런 말 하긴 좀 그렇지만, 저도 저 립스틱들 색상, 겨우 구별합니다. 다 빨간색 같아요.”

“그렇죠? 저희가 색맹인 거 아니죠?”

“색조 화장품 고를 때 여성분들의 시력이 향상되나 봅니다. 이쪽에 앉으시죠.”

하얀 옷을 입은 직원이 도혁과 한수철에게 다가왔다.

지성, 중성, 건성, 민감성인, 피부 상태에 따라 적당한 남성용 화장품을 권해주었다.

“이쪽 분은 중성이시고, 피부 나이를 보면 대략 20대 중반 정도로 보이세요. 그리고 여기 남성분은 건성이시네요.”

“그런가요. 혹시 저는 피부가 몇 살로 보이나요?”

한수철이 까칠해진 얼굴을 어루만지며 나이를 묻자 직원이 조금 난감해했다.

“보이기는 20대 같은데요. 솔직히 말씀드려도 될까요?”

“그, 그럼요.”

“피부만 보면 30대 초반 정도로 보이세요. 제대한 지 얼마 안 되셨나 봐요.”

“악! 30대라니. 군대는 나만 갔다 온 게 아닌데.”

“한수철 세월을 얼굴로 맞았구만.”

도혁은 신나서 한수철을 놀렸지만, 도혁 역시 제 나이보다 피부가 늙어 보인다는 말을 들었다.

저도 모르게 벽면의 거울을 바라보았다.

직원이 위로를 건네며 스킨과 로션을 가져왔다.

“남자분들은 거의 그래요. 관리를 안 하니까요. 이쪽 분은 스킨도 안 바르시죠?”

“남자가 무슨 스킨입니까! 세수도 겨우 하고 다니는데요.”

한수철의 말에 도혁의 머릿속에 번뜩 스쳐 가는 것이 있었다.

도혁은 서둘러 직원에게 물었다.

“혹시 이번 자연주의 브랜드, 남성 화장품도 함께 론칭합니까?”

“당연히 론칭합니다. 놀랍게도 대부분의 브랜드가 남성 라인을 함께 출시하는데. 이게 좀 골치가 아파요. 남자분들은 화장품 거의 안 쓰시잖아요.”

홍보팀 직원이 눈썹을 조금 찡그리며 설명을 이어갔다.

“분명히 시장은 있지만 소비자들이 꿈쩍도 안 해요. 이번엔 타깃이 젊으니 좀 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세수만 하는 수철이 보니까 저희가 광고를 잘 만들어야겠네요.”

“그러게요. 아, 물론 주력은 여성 화장품 쪽입니다.”

“그럼요. 잘 알고 있습니다.”

도혁은 피부 나이 30대에 빛나는 한수철의 어깨를 툭 치며 말을 이었다.

“내가 너를 설득해 보겠어. 화장품을 사도록 말이지.”

“쉽지 않을걸?”

저도 공모전에 참여하는 주제에 소비자인 척하기는.

도혁의 머릿속에는 국내외 남성 화장품 광고의 역사가 스쳐 가고 있었다.

‘또 시장 트렌드 몇 년 당겨봐? 우리 수철이 피부 좀 지켜주게?’

푸석한 한수철의 피부를 보자 남성 화장품 캠페인의 시급함이 몸에 와닿았다.

도혁은 급히 발을 옮겼다.

* * *

들국화 영토에 팀원들이 모였다.

도혁은 견학에서 가져온 사진과 자료를 정돈하며 커피 잔에 입술을 대었다.

“역시 마음 편한 곳은 여기뿐인가!”

“과방은 최철우가 차지했고 동방은 강태오 선배가 삐대고 있잖아. 에모라 회의는 무조건 들국화에서 해야겠어. 지원이도 곧 도착한대.”

지원의 이름이 나오자마자 그녀가 호랑이처럼 소리를 지르며 들어왔다.

“얘들아. 나 에모라 화장품 팬 될 거 같아!”

“오 마이 갓, 이게 다 샘플이야?”

“최고지? 나오는데 홍보실 직원분이 또 챙겨 주시는 거야. 그리고 우편으로 이것도 왔어.”

이지원이 꺼낸 건 자신의 피부 톤에 맞는 립스틱이었다.

케이스에 이름을 새겨서 준다고 호들갑이다.

“에모라 마케팅 잘하네. 이름 새기는 거 힘든 일도 아니면서 고객들에게 각인이 바로 되잖아? 충성도가 확 올라가겠어.”

“마케팅뿐 아니라 제품도 좋아.”

마케터가 광고주의 제품에 홀딱 넘어갔다니 잘된 일이다.

도혁은 이지원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에모라가 확실히 순해. 다른 건 모르겠는데 이건 정말 강점이야.”

“그래? 우린 써도 그런 거 잘 못 느껴.”

한수철이 뺨을 어루만지며 한쪽 눈썹을 치켰다.

“응. 자연주의를 강조하는 이유를 알겠어. 그리고 이런 말 하긴 좀 그렇지만 지금까지 에모라는 엄마가 쓰는 화장품이란 인식이 강했거든.”

“여자들 사이에서 그런 이미지라는 말이지? 그럼, 상위권 매출을 견인한 건 중년 여성층이라고 봐도 무방하겠어. 내가 조사한 바로도 그렇거든.”

도혁이 사전에 조사한 통계자료를 내밀었다.

이지원이 자료를 보며 끄덕였다.

“패키지도 고급스럽고 가격대도 있어서 비싼 엄마 화장품이라는 생각이 강했어. 근데 이번 자연주의 패키지 보니까 깔끔하고 가격대도 합리적이더라구.”

“맞아. 2030이 언젠가는 4050이 되잖아? 지금 잘나가도 미래 시장은 잡아야 하는 게 기업의 숙명이야.”

“그 말은 좀 듣기 싫은데? 늙는다는 소리잖아.”

“아무리 예쁜 이지원도 늙어야지 뭐.”

한수철이 무심결에 말하자 도혁이 놀렸다.

“어라, 한수철, 지원이가 예쁘냐?”

“어, 어? 마, 말이 그렇다는 거지!”

“내 눈에는 별로구만.”

“야! 명도혁!”

이지원이 소리를 지르며 샘플을 집어던지고, 도혁이 양팔을 들어 항복을 표했다.

“자, 항복할 테니까 바로 아이데이션 합시다. 혹시 제품 쓰면서 약점이라고 느낀 건 없었어?”

“아쉬운 점이 하나 있긴 해.”

“아쉬운 점?”

팀원들이 이지원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향이 너무 미미하다는 거야.”

“아, 자연주의 화장품이라 향이 강하지 않구나.”

“응. 의도는 알겠는데, 기존 여성 화장품은 워낙 향이 강하잖아. 익숙하지 않다고 해야 하나?”

“뭔지 알 것 같다. 왜 우리가 치약 사용할 때도 민트 맛이 강해야 개운한 느낌이 들잖아.”

“맞아. 화장품을 발랐는데 발랐나? 이런 느낌이 들었어. 자연주의 제품을 처음 써봐서 그럴 수도 있고.”

이지원의 말에 도혁이 종이에 무언가를 끄적였다.

[약점->강점, 향이 적다. 은은한 향. 타깃 다각화에 강점.]

한수철이 목을 쭉 빼서 도혁이 적은 메모를 슬쩍 들여다보았다.

“이게 뭐야? 약점을 강점으로 바꾼다고?”

“맞아. 향이 적은 건 강점이 될 수도 있다 싶어서.”

“자연주의 컨셉을 강조한다는 거지?”

“맞아. 그런 점도 있고…….”

도혁이 한수철을 보며 물었다.

“스킨도 안 바른다고 했지? 피부 타입 보면 건성이라 당길 텐데, 화장품 안 쓰는 이유가 뭐야?”

“냄새가 너무 독해. 남자 화장품은 아빠 냄새 나서 싫어.”

“맞아. 바로 그렇지. 이 부분을 강조해서 약점을 강점으로 바꿔보면 어떨까?”

“여자들도 그래? 지원이는 향이 적어서 싫다고 하는데?”

“아니, 여자들에게는 자연주의라 향이 적다고 어필할 거야.”

“그럼?”

의아한 한수철의 눈동자가 타깃 다각화라는 단어에 꽂혔다.

“도혁아, 설마, 타깃을 나 같은 놈으로 잡는 거야?”

“응. 메인 타깃은 아니고 서서브로. 내가 너 설득해서 화장품 팔 거라고 말했잖아.”

“엥? 서브도 아니고 서서브?”

도혁의 말에 팀원들이 무슨 소리냐는 듯 고개를 기울였다.

“타깃이 하나일 필요가 없어. 그 말은.”

“그 말은?”

“광고도 하나일 필요가 없다는 뜻이야. 우리 CF 콘티 3개로 가자.”

“뭐? 야! 명도혁!”

곧 들국화 영토가 떠나가게 소리를 지르는 팀원들의 원성이 높아졌다.

도혁은 귀를 틀어막으며 슬며시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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