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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고 천재 명도혁-31화 (31/252)

광고 천재 명도혁 31화

“탁기준! 정직원 전환할 때 명도혁이 AE 못 만들면 우리 손에 죽을 줄 알아!”

“오케이!”

도혁이 떨떠름한 눈으로 기획1팀을 바라보자 탁기준이 그의 어깨를 두드렸다.

“자, 정직원 전환은 나중 일이고 일단 커피부터 마시자. 당 떨어지고 카페인도 떨어지고 정신이 하나도 없다.”

“넵! 선배님! 제가 사 오겠습니다.”

“여기 카드.”

서인기와 최민아가 탁기준의 카드를 들고 카페로 가고, 남은 인턴 팀원들이 자리에 모여 앉았다.

한수철은 그제야 숨을 깊이 들이쉬며 넥타이를 손가락으로 풀었다.

“아주 잘했어. 한수철. 목소리 톤도 좋고 수철이가 말하면 믿음이 탁, 가는 게 있어.”

“감사합니다. 선배님.”

“좋은 기획자이자 프레젠터가 될 거라고 확신해. 지금은 명도혁이한테 가려서 좀 그렇지만. 참, 살다 보니까 발표자가 묻히는 걸 다 보네.”

“괜찮습니다. 묻히는 게 아니라 당연한 거죠. 도혁이는 저도 완전 인정인걸요.”

한수철이 도혁을 바라보며 미소 지었다.

“이게 비슷해야 라이벌 의식도 생기고 하는 건데, 저는 상상도 못 한 스케일로 기획안이 나와 버리니까 질투도 안 나요. 열심히 따라가야겠다, 그런 생각뿐입니다.”

“그래. 좋은 자세야. 아이고 머리야.”

탁기준이 의자에 깊숙이 몸을 묻으며 관자놀이를 꾹꾹 눌렀다.

“긴장이 풀려서 그런지 머리가 아프네.”

“아직 긴장 놓기는 이릅니다. 결과가 안 나왔잖아요.”

도혁은 긴장의 끈을 놓지 않았다.

칭찬은 당연한 것이다. 기획, 컨셉, 제작에 매체 전략까지. 한 번에 맞아떨어지는 제안서인 것만은 확실했다.

인턴이 이렇게 시장을 통찰하는 마케팅안을 만들어낸 것만으로도 김철준은 만족했을 거고.

다만 인턴팀의 제안서가 실제로 하정 주조에 들어갈 최종안으로 채택되는 것은 완전히 다른 문제였다.

기존 광고와는 완전히 다른 컨셉.

타깃마저 바꿔 버린 기획안이었다.

결국은 도혁의 기획안대로 시장이 흘러갈 것이지만, 지금 채택될 것인지에 대해서는 확신이 없었다.

다만 젊은 나이에 실권을 잡은 하정 주조의 최 부사장이 혁신을 추구한다는 건 확실히 유리했다.

도혁의 상념을 깨는 대표실 비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명도혁 씨와 인턴1팀 모두 대표실로 오시기 바랍니다.”

“네. 바로 가겠습니다”

탁기준이 어서 다녀오라며 손을 휘휘 내저었다.

“도혁이가 잘 설명하고 꼭 광고 따 와라.”

“그건 AE가 할 일 아닙니까?”

“그러니까. 명도혁은 AE 팔자라는 거 아니야.”

탁기준을 노려봐 주고 커피조차 마시지 못한 채 대표실로 올라갔다.

심호흡한 인턴팀이 대표실 문을 열었다.

임원 회의가 끝난 상황, 김철준 혼자 덩그러니 기다리고 있었다.

“앉지. 예상했겠지만 내가 할말이 있어서 따로 불렀어.”

“네. 말씀하시죠.”

김철준이 입가에 만연한 미소를 띠고 인턴팀을 바라보았다.

“볼수록 신통하단 말이야. 이게 말이 안 되는 거거든. 이 정도 덩치의 제안을 인턴이 한다는 게.”

“칭찬으로 듣겠습니다.”

“칭찬이지 그럼.”

도혁은 조금 고개를 숙여 예를 표했다.

솔직히 기분이 굉장히 좋았다.

김철준이 얼마나 칭찬에 인색하고 꼬장꼬장한 상사인지 잘 알고 있었기에.

“나 혼자만의 의견이 아니라 임원진 회의에서 나온 말이야. 명도혁이랑 우리 인턴1팀 서로 데려가겠다고 난리더구만 아주.”

“그렇게 말씀해주시니 감사합니다.”

“그래. 제작국장은 아주 목에 핏대까지 세우더구만. 그 광경을 봤어야 했는데.”

호탕하게 웃어젖히는 김철준을 보며 제 앞에 놓인 커피를 마셨다.

그윽한 아메리카노 향이 달큰하게 번져갔다.

“하긴 그러니까 이진태 교수도 명도혁 한수철은 대일기획 데려가니 어쩌니 그딴 소리 하지. 참나.”

“그냥 하시는 말씀이시겠죠.”

“아니야. 그 양반 사람 욕심 많아서 진심일걸?”

대일기획 얘기를 꺼내는 김철준의 얼굴에서 미소가 걷혔다.

그러곤 인턴팀의 얼굴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오늘 정말 훌륭했어. 나를 포함한 임원진 전원이인턴팀이 최상의 성과를 냈다는 것에 동의했어. PT결과를 떠나서 말이야. 약속대로 인턴1팀은 모두 정직원 전환하도록 하지.”

“정말인가요?”

“와! 감사합니다. 대표님!”

감격에 젖어 환호하는 인턴팀을 바라보며 김철준이 말을 이었다.

“아직 다들 학생이라 조금 망설였지만 회사 차원에서 근무시간 배려하기로 결정했어.”

?

“와! 그렇게까지 신경 써 주시는 겁니까?”

“우리 태강애드에서 인재 채용하는데 그 정도는 고려해야지. 사람 욕심은 이진태 교수만 있는 게 아니라고.”

“그렇게 해주시면 정말 감사하죠.”

“그리고 당분간은 지금 인턴1팀처럼 신입1팀으로 팀을 이뤄서 각 국에서 교육도 받고 프로젝트도 진행하도록 해.”

회사에서 근무 시간을 조정해 준다면 훨씬 편안하게 학교생활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도혁은 파격적인 김철준의 배려에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대신 배려해 주는 만큼 이진태 교수 말에 홀라당 넘어가면 안 돼.”

“그건 걱정 마십시오. 대일기획으로는 안 갈 겁니다.”

“그래? 특별한 이유가 있는 건가?”

김철준이 진심을 확인하려는 듯 도혁의 눈치를 살폈다.

이유는 뭐, 곧 시장에서 도태될 회사니까 그렇지.

대일기획은 과거의 영광을 뒤로하고 역사의 뒤안길로 차츰 밀려난다.

그 미래를 알고 있기에 굳이 태강애드를 배신하면서까지 들어갈 이유가 없는 거였다.

아무튼 빈말은 아니라고 판단했는지 김철준이 흐뭇하게 미소 지었다.

“좋아. 명도혁이나 신입1팀 친구들이 미래를 받쳐준다고 생각하니까 내가 아주 든든해.”

“참, 결과에 상관없이 정직원 전환한다고 하셨는데, PT 결과는 어떻게 됐습니까?”

“어떻게 됐을 거 같나?”

김철준의 눈매가 부드럽게 휘었다.

* * *

드디어 개강이었다.

교문 앞 거리에 선 도혁은 가슴이 웅장해졌다.

‘무려 대학생이라니. 막상 학교 다닐 생각 하니까 실감이 나는데?’

늘 일하던 태강애드에서 회의나 할 때와는 또 다른 감회가 밀려들었다.

물론 곧 닥친 현실 역시 실감하게 되었다.

공포의 수강 신청을 해야만 했던 것이다.

따라올 테면 따라오라던 광고 속 인터넷 속도와 달리 느려 터진 서버에 속도 같이 터져 나가던 시절이다.

멀리서 역시 수강 신청을 마쳤을 리가 없는 한수철이 도혁에게 걸어오고 있었다.

“어! 명도혁. 수강 신청했어?”

“그럴 리가.”

“서버 또 터졌지? 이러다가 신청을 못 해서 아무것도 못 듣겠어.”

“피시방으로 가자. 학교에서 해봐야 답도 없어.”

도혁은 특히 느렸던 학교 전산망을 떠올리며 인근에서 가장 빠른 피시방으로 한수철을 데려갔다.

“수업을 쭉 몰아볼까?”

“태강애드 근무 일정이 목, 금 이틀이니까…… 전공은 월화수로 몰아서 들어야겠지?”

신입팀의 기획안이 내부 프레젠테이션에서 통과했다.

하여 우리는 태강애드 전원 정직원으로 전환되었다.?

더불어 학기 중엔 지장이 없을 만큼만 업무가 배정될 거라는 배려도 받게 되었다.

물론 대일기획과의 일전을 앞두고 있었지만 그건 태강애드 선배들이 진행할 일이었고.

하여 신입들은 깨끗한 참소주 제안서를 회사에 내맡기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학기를 시작할 수 있었다.

“도혁이 너는 수업을 전부 전공으로 채운 거야?”

“입대 전에 교양 엄청 들었거든. 선배들이 제대하면 까먹는다고 교양 위주로 채우라고 하더라고.”

“잘됐네. 와, 근데 너무 빡빡한데. 이거 가능하겠냐?”

월요일에서 수요일까지. 최대한 전공필수로 꽉 채워 넣었다.

전공 중에서도 만만해 보이는 건 남겨두고 알짜배기로만 쏙쏙.

4학년 때는 어차피 취업계 내고 학교에 올 생각이 없거든.

그 전에 최대한 괜찮은 수업을 당겨 들어야 한다.

물론 이진태 학과장 강의가 가장 많았다.

“그래. 이렇게 들으면 될 거 같은데. 제발…… 클릭! 아 씨.”

“될 리가 있냐? 짜장라면이나 먹자.”

짜장라면에 컵라면, 그리고 게임 두어 판을 끝내고서야 겨우 수강 신청을 끝낼 수 있었다.

진이 다 빠진 도혁과 한수철이 커피를 물고 동아리방으로 향했다.

“얼마 전에 학교 들렀을 때 차현우 선배 만났었어.”

“애드포인트에서 차현우 선배 만난 게 특별한 일은 아닐 텐데? 지금도 동아리방 방바닥에 누워 있을걸?”

“현우 선배 자퇴했어.”

“뭐?”

한수철이 놀라 돌아보았다.

좋게 나가는 것도 아니니 소문내지 않고 조용히 그만둔 모양이었다.

“너무 서운한데. 그 선배 특이하긴 해도 천재 과였잖아.”

“그렇지. 나도 아쉬워.”

한수철은 차현우 소식에 속상해하며 애드포인트의 문을 열었다.

거기엔 떠난 사람 대신 새로운 사람이 와 있었다.

신규 회원으로 등록하려고 온 이진우였다.

원서 접수를 하고 있는 이진우를 동아리 멤버 둘이 바라보고 있었다.

도혁을 보자마자 이진우가 벌떡 일어나 90도로 인사했다.

“명도혁 형님! 저 왔습니다.”

“웬일이니. 도혁이 보고 형님이래.”

“선임이었다잖아. 아직 군기가 안 빠진 거지, 뭐.”

도혁이 웃으며 그를 맞았다.

“진우 진짜 왔네. 잘 왔다. 이야, 드디어 제대의 날이 오는구나.”

“덕분에 무사히 제대했습니다. 이틀 됐습니다!”

“제대하자마자 복학이네.”

“칼같이 계산했죠. 그래도 하루 쉬지 않았습니까?”

은근 철저한 놈이구나.

도혁이 이진우를 보며 동아리 멤버들을 소개해 주었다.

“여기 두 명이랑은 인사했지? 이쪽은 내 베프이자 동아리 총무 한수철. 우리 전부 2학년이야. 여기는 내 군대 후임 이진우.”

“반갑습니다. 한수철 형님. 잘 부탁드립니다!”

“진우 씨는 일 학년 일 학기 마치고 군대 갔어요? 빨리 갔다 왔네.”

“매도 일찍 맞는 편이 낫다고 해서 다녀왔는데, 하아, 딱히 더 나은 것 같지는 않았습니다.”

그의 군 생활을 아는 도혁은 쓰게 웃었다.

그래도 무사히 마친 게 어디냐.

살아 돌아온 게 새삼 기특해 이진우를 바라보았다.

“둘이 각별했나 봐? 도혁이가 동아리로 불렀다는 거 보니까.”

“형님께서 엄청 챙겨주셨습니다!”

“그놈의 형님 소리는 좀 안 하면 안 되겠냐? 오글거려 미치겠네.”

“그래. 형이라고 불러.”

“그, 그럴까요? 혀어엉.”

길게 늘어진 혀어엉 소리에 한수철이 기겁을 하며 소리를 질렀다.

“아, 왜 이렇게 어색하지? 아, 우리 신입 이상해!”

“애드포인트에 이상하지 않은 사람이 하나라도 있어?”

문을 벌컥 열고 회장 강태오가 들어왔다.

애드포인트 회장 강태오.

대학 시절 내내 가장 열정적으로 광고에 빠져 있던 강태오였다.

그가 전국 대학생 공모전에 참여해 만든 브랜드 네임이 회귀 직전 21세기 대한민국에서도 쓰이고 있다는 걸 알까.

그만큼 광고인으로서 미래가 밝았던 강태오였다.

다만 그는 모두의 예상을 깨고 광고의 길을 걷지 않는다.

광고만큼 술독에 빠져 살더니 술로 진로를 틀어버렸다.

강태오는 태강애드 앞에 플레어 바를 차리고 국제 대회를 휩쓴 스타 바텐더가 된다.

그 바가 애드포인트 출신의 아지트처럼 쓰였었지.

나중엔 외국인 여자에게 빠져서 영국으로 떠났었다.

굉장히 아쉬웠는데.

아무튼 어디로 튈지 모르는 기인 강태오 선배를 보니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선배. 잘 지냈죠. 완전 반갑네.”

“그래, 도혁아. 군대에서 신입 회원 달고 왔네.”

“제 후임이었어요.”

“이진우라고? 자, 애드포인트 왔으니까 뭐 하나 만들어봐야지?”

시작됐다. 강태오 선배의 테스트.

“그려봐.”

“네?”

“우리 동아리를 홍보할 광고 한 장 만들어보라고. 즉흥적으로.”

이진우가 입술을 꾹 깨물곤 잠깐 생각에 잠겼다.

결심한 듯 그가 펜을 꺼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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