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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고 천재 명도혁-17화 (17/252)

광고 천재 명도혁 17화

김성빈이 다가와 경수현를 불러 젖혔다.

“네가 드라마 땜빵해 줘서 블록버스터 들어가잖아. 고맙다. 김기훈 감독, 존나 싸가지 없는데.”

도혁은 찬찬히 배우 둘이 하는 꼴을 지켜보았다.

“그래도 좋은 기회니까 한번 열심히 해보겠습니다.”

“감독이라는 것들은 제 잘난 맛에 사는 것들이라 개념이 없어. 김기훈이도 작품성이 좋네 어쩌고 하던데 난 잘 모르겠더라고. 너도 적당히 하고 나와라.”

“네. 참고할게요.”

와, 인성 수준 뭐냐.

김기훈 감독은 업계에서도 베테랑급이다.

오십이 넘은 노장에게 김기훈이?

거기다 직업군 전체를 까 내리는 오만한 태도까지.

김성빈의 거들먹에 절로 인상이 찌푸려졌다.

그런데 놀랍게도 경수현은 웃고 있었다. 고른 치열이 드러나도록 환하게 미소를 짓고 있는 게 아닌가.

저런 소리를 들으면서도 해사한 표정을 지을 수 있다니, 괜히 배우가 아닌가 보다.

사실 나이는 김성빈이 한두 살 많았지만, 연기 경력으로만 따지면 경수현이 훨씬 선배였다.

대개 이런 경우는 맞존대를 하게 마련이다.

김성빈이 자기가 S급이라고 예의 없이 나오는 건데, 그걸 군말 없이 받아주고 있는 거였다.

아무튼 저 김성빈, 말하는 꼬락서니를 보니 연예계 바닥에서 오래 버티기는 힘들어 보인다.

특히 미래의 국장 명현진이 저런 눈을 하고 째려보면 말이지.

“별다른 용건 없으면 이제 가주시죠.”

“뭐야, 이 여자?”

“김성빈 씨가 방금 말씀하신 개념 없는 감독이에요. 방송국 피디.”

“아, 피디님께서 같이 있는 줄은 몰랐네. 뭐 다 그런 건 아니니까.”

“감독이라는 것들은 개념 있는 것들이 없어, 는 직업군 전체를 가리키는 거죠.”

아우, 김성빈 잘못 걸렸네. 하필 명현진이라니.

오소소 닭살이 돋아왔다.

김성빈 싸가지가 커피라면 명현진 똘끼는 에스프레소일 텐데.

역시 똘끼 어린 명현진이 이를 갈며 복수를 다짐했다.

“제가 잘 전달할게요. 협회, 커뮤니티, 뭐 모임도 많구요. 참 어디 블록버스터 들어가신다면서요. 그 영화 감독님이 누구시더라.”

“아, 저기 잠시만, 너 이름이 뭐야?”

“개싸가지 막내 피디 이름은 알아서 뭐 하게요. 가자, 도혁아.”

핸드백을 챙겨 든 명현진의 눈이 양쪽으로 쫙 찢어졌다.

진심으로 도혁이 무서워하는 눈빛이었다.

돌아 나오기 전, 도혁이 명현진의 사이다에 탄산을 보탰다.

“경수현 배우께는 정말 감사드립니다. 바로 연락드릴게요. 저희 쪽에서 먼저 제안한 CF인 만큼 최선을 다해보겠습니다.”

“CF?? 너 CF 찍냐?”

“평소 반듯한 이미지로 브랜드 선호도를 높일 수 있는 모델이시거든요. 광고계에서는 경수현 씨 같이 인성 좋은 분이 장수하십니다. 몸값도 계속 오르구요.”

팩트로 경수현을 추켜세우자 김성빈의 눈이 커다랗게 부풀었다.

놀란 그를 뒤로하고 명현진과 밖으로 나왔다.

명현진이 씩씩거리며 복수를 각오했다.

어이구 진짜 죽었네, 김성빈 저 자식.

“김성빈인지 뭔지 내가 이 바닥에서 묻어버릴 거야. 안 그래도 소문 거지 같더라고.”

“스텝들 무서운 걸 모르네. 무식한 건지 용감한 건지.”

“머리가 나빠서 그래. 좀 잘나간다고 주위에서 잘한다 잘한다 해주니까 평생 갈 줄 아나 봐?”

“저런 애들 맛 가는 거 순식간이지.”

“넌 꼬맹이가 뭘 안다고. 아는 척이냐!”

툭, 뒤통수를 얻어맞았는데도 누나가 조금 예뻐 보였다.

“명현진, 화장했냐?”

“뭐? 아, 뭐. 평소에도 하거든?”

“웃기시네.”

눈곱이나 떼고 출근하면 다행이었다.

그래도 오늘 화장에 원피스까지 차려입었는데 누나랑 데이트나 좀 해볼까.

“누나 술 먹자. 소주.”

“조오치. 요 앞에 포장마차 갈까?”

“그래. 오돌뼈 좋아하잖아.”

사회 초년생일 땐 누나랑 가끔 소주도 마셨던 것 같다.

명현진이 그나마 몇 년 직장 생활했었고 명도혁은 막 카피라이터로 입사했던 시절.

고단하고 지랄맞은 회사를 욕하며 주변 사람 뒷담화도 해가면서 그렇게.

회귀 직전에는, 정확히 언제 누나 얼굴을 봤는지조차 기억나지 않았다.

아프다고 했었고, 성대를 잘라냈고, 많이 말랐었던 것만 생각이 난다.

수술한다는 말을 들었으면서도 PT 마감에 치여서 병원 한번 가보지도 못했다.

미친놈 명도혁은 도대체 어떤 인생을 살았던 건가.

전생을 생각하자 쓴 소주가 술술 넘어갔다.

혼자 잔에 소주를 따르는 것을 본 명현진이 손끝으로 잔을 툭 쳐주었다.

“혼자서 뭘 그렇게 드시나. 무슨 고민 있냐?”

“아니. 누나, 미안해.”

“갑자기?”

토끼처럼 댕그랗게 뜬 눈이 뭐, 좀 예쁘네.

“예쁘다, 우리 누나.”

“이 자식이 벌써 취했나. 명도혁 너 돌았냐?”

“내가 잘할게. 미안하다.”

“아씨 아씨! 소름 돋아. 몰래카메라 그런 건가? 우웩!!”

누나는 꺼지라고 하면서도 새끼 소리는 하지 않았다.

예쁘다는 말에 얼굴도 조금 붉어졌다.

오글거린다고, 바쁘다고, 그깟 일 좀 한다고 제일 소중한 사람들에게 소홀하고 함부로 대하는 짓, 이젠 절대 안 할 거다.

표현도 많이 할 거다. 각오해라, 명현진.

“누나야. 사랑한다고 하면 때릴 거지.”

“미쳤냐? 야 이 새끼야.”

끝내 새끼 소리를 듣고 말았다. 그래도 좋았다.

“누나야, 내가 평생 지켜줄게. 아프지 말고…….”

“아, 더러워. 꺼져라 명도혁!”

도혁은 꺼지지 않고 누나의 술잔에 소주를 따라주었다.

비실비실 웃으며 오돌뼈도 하나 집어 입안에 넣어주려 하자 꾹 발이 밟히고 말았다.

은근 재밌네. 놀려먹는 거. 이런 신박한 방법이 있을 줄이야.

“누나, 우리 예쁜 누나!”

“명도혁, 너 내가 반드시 죽인다.”

누나 손에 죽어도 좋을 것만 같은 가을밤이었다.

* * *

“시안 나왔어. 한번 봐줄래?”

최민아는 역시 천재였다.

며칠 지나지 않아 최민아는 지면 광고 시안을 만들어왔다.

A안은 실사 배경, B안은 애니메이션 배경이었다.

상큼한 봄의 이미지가 뒤편에 깔리고, 그 속에 따뜻한 집안의 모습이 그려지며 책상에 기댄 채 정면을 바라보는 경수현이 웃고 있었다.

색감부터 분위기 레이아웃, 모델의 위치까지.

무엇보다 톤앤매너(Tone&Manner, 색상, 분위기, 등 표현에 대한 전반적인 방향)가 기가 막혔다.

명도혁의 머릿속에 들어갔다 나온 것처럼 말도 안 되게 만족스러운 시안이었다.

“진짜 찰떡이다.”

“정말? 아, 자신 없었는데 자신감 뿜뿜.”

“농담 아니라. 미쳤네. A안이랑 B안 전부 버릴 게 없어.”

최민아는 찰떡이 본인의 별명인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불러봤다.

“이거, 대박 치겠는데?”

“시안 만들 때야 다 그렇지, 뭐. 왜 공모전 낼 때 이거 대상이다 매번 그러잖아.”

입바른 소리 아닙니다만?

최민아는 곧 유수의 광고제에서 두 번이나 대상을 타게 된다.

“아무튼 이건 되는 그림이야. 기획팀 불러서 CF 콘티 진행하자고 해야겠다.”

“벌써 CF?”

탁기준이 커피를 들고 나타났다.

“기획팀은 아직 FGI(Focus Group Interview 집단 심층 면접)도 안 끝났어.”

“그럼, 뭐 우리는 놀고 있구요.”

도혁이 어깨를 으쓱하며 거들먹거렸다.

최민아의 시안에 자신이 있었던 것이다.

탁기준이 어이없다는 듯이 스윽 시안을 훑어보더니 그대로 시선을 고정했다.

“미친놈들.”

“네?”

긴장한 최민아가 토끼 눈을 떴다.

아마 생의 첫 컨펌일 것이다. 손을 떨고 있는 게 육안으로 보일 정도였다.

“제작팀 놀아도 되겠다.”

“아! 정말요? 마음에 드시는 거예요?”

“그래, 뭐 손댈 게 더 있냐? 명도혁, 어떻게 생각해?”

“전혀요. 솔직히 기성 십 년 차 디자이너가 뽑은 것 같습니다.”

“인기가 많이 도와줬어요.”

“그러니 서인기가 인기가 많지.”

이십 년 전에도 아재들은 저런 농담을 즐겼었나 보다.

시안 통과에 기뻐하던 최민아조차 인상을 굳혔다.

“야, 이럴 때 웃어주고 해야 하는 거야! 그런 게 사회생활이야, 이것들아.”

“실력이 되는데 왜 그래야 합니까?”

“어, 명도혁 이 자식 싸가지 보시게?”

“저 말고 최민아 씨요.”

한 번 더 최민아를 추어올리자 그녀가 그제야 환하게 미소를 지었다.

“인정, 인정한다. 이 자식들 내가 인정해 버렸다. 제작팀 놀아버려!”

“오. 정말 놀아도 되겠습니까?”

“이거 그냥 옥외까지 쭉 써도 될 거 같아. 카피, 디자인 둘 다 찰떡이네.”

역시 누가 봐도 찰떡인 모양이다.

잇단 칭찬으로 상기된 최민아가 기획팀 소식을 물었다.

“기획 쪽은 어쩌고 있어요? 가서 PPT 디자인이라도 좀 만질까요?”

“내버려 둬. 사사건건 의견이 안 맞아서 삽질 중이던데 환장하겠다.”

“그럼 안 되는 거 아닙니까?”

우린 우승 해야 한다고. 거의 다 왔는데 포기할 수 없잖아?

“하긴 시안 나온 거 톤앤매너 공유해야 하니까 오후에 전체 회의 잡고, 콘티는 하아. 아, 갑갑해.”

“도대체 어쩌고 있길래…….”

최민아의 말에 탁기준이 제 머리카락을 뜯곤 한 줌 빠진 머리에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가보면 알아. 그래, 이 고통을 나만 느낄 수 없지. 너네 어차피 노니까 기획팀 회의할 때마다 들어와. 의견도 내고.”

“놀라면서요.”

“어. 놀라고. 회의 와서 놀라 버리라고. 하하.”

그는 다시 아재 개그를 시전하며 ?사라졌다.

도혁은 저런 개그는 평생 치지 말아야지 다짐하며 시안을 손으로 훑었다.

‘다시 봐도 명작이네. 마스터피스!’

마스터피스에 감탄하던 오전이 가고 기획팀 미팅에 들어갔다.

그리고 곧, 탁기준처럼 머리를 뜯게 되었다.

“김민수. 여기 봐봐. FGI(집단 심층 면접)는 그렇게 진행하기엔 무리가 있어.”

“아, 씨. 사사건건 안 된다고만 하면 어떻게 회의를 진행하자는 거야?”

“내가 하고 싶은 말이다. 제발 좀!”

김민수의 딴지에 나머지 셋이 붙어서 열심히 설득 중이었다.

한수철의 얼굴은 누렇게 떠서 눈 뜨고 보지 못할 지경이었다.

‘저건 무슨 광고주도 아니고. 김민수 설득에 목을 매야 하나?’

아무리 광고가 설득 커뮤니케이션이라고 해도 이건 아니지.

짜증이 올라오는데 김민수가 제작팀 시안에도 시비를 걸어왔다.

“모델 확정도 안 됐는데 이렇게 앉혀서 가져오면 어떡해! 어울리지도 않는구만.”

“아직 촬영을 안 했잖아. 컨셉에 맞춰서 촬영하면 모델 이미지는 새로 앉혀야지.”

“이럴 거면 차라리 전체 애니메이션 안으로 가는 건 어때?”

“애니메이션 같은 소리 하고 있네. 공이 얼마나 드는지 알고나 있냐? 한 땀 한 땀 네가 그릴 거냐고!”

도혁이 더 못 참고 성질대로 지랄을 해버렸다.

“뭐? 명도혁, 지금 어디서 소리를 질러!”

“김민수 이 자식. 적당히 해야지. 여기가 무슨 광고 동아린 줄 아냐?”

“무슨 말이야?”

“시비만 털지 말라는 소리야. 막눈도 아니고, 어떻게 이 시안이 좋은지 모르냐?”

좋은 광고를 알아보지 못하는 시력 고자야말로 광고판에서 오래 버틸 수가 없다.

“명도혁 너, 전부터 거슬리더니 가만 안 둘 거야.”

“안 두면 어쩔 건데. 본인이 얼마나 팀워크를 해치고 있는지는 생각해 봤냐?”

“웃기시네. 무슨 빽이 있는지 처음부터 깝치는 너 같은 놈이 팀워크 말아먹는 거지.”

“이 자식이 진짜!”

불을 켜고 덤벼드는 김민수를 피할 마음이 조금도 없었다. 한 대 치면 두 대 쳐줄 생각이었다.

김민수가 막! 도혁의 얼굴 앞으로 주먹을 들이밀던 찰나였다.

“여기가 벌써 시안을 완성했다는 1팀인가? 아니, 분위기가 얼마나 좋으면 벌써……?”

“대, 대표님!!!”

태강애드의 수장, 김철준 대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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