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광고 천재 명도혁-3화 (3/252)

광고 천재 명도혁 3화

누구나 한 번쯤 다시 태어나는 상상을 한다.

이생망. 이번 생은 망했다며 다시 태어나야 제대로 살 거라는 우스개도 있지 않나.

소설처럼 회귀해서 비트코인도 하고, 부동산으로 돈 벌고, 새 인생을 사는 꿈.

말도 안 되는 생각이라고 치부해 버리던 상상이 눈앞에 펼쳐져 버렸다.

그리고 집안으로 들어서자 울컥 뜨거운 것이 심장에서 올라왔다.

그곳에는.

작년에 돌아가신 어머니가 서 계셨다. 어린 시절 거실의 풍경 속에서.

“아들! 고생 많았지? 엄마가 부대 앞으로 가려고 했는데 새벽같이 왔네.”

“어머니!!”

저도 모르게 눈시울이 붉어졌다.

도혁은 어머니에게 달려가 꽉 품속에 당겨 안았다.

“우리 아들이 다정하니까 좀 어색한데?”

“어머니!”

“엄마 그만 부르고 아침이나 먹자. 오늘 밥은 맛있을 거다. 전부 사 왔거든.”

여전히 시크한 말투, 우리 엄마 맞네.

어머니의 모습은 건강하고 젊어 보였다. 작년에 돌아가실 땐 암 투병으로 모습이 말이 아니셨는데.

이렇게 다시 만나게 되다니. 눈물이 앞을 가렸다.

밥상에는 도혁이 좋아하는 푸짐한 해물찜과 두부전골, 제육볶음까지 산해진미로 가득했다.

제대라고 특별히 준비하셨던 그날의 그 밥상 그대로였다. 여기저기 맛집에서 공수했다며 생색도 많이 내셨지.

문득 진짜 엄마 밥이 먹고 싶어졌다.

평생 맞벌이를 하신 어머니는 요리를 참 못하셨다. 매일같이 골드 보이의 군만두처럼 같은 메뉴로 밥상을 차려주었다. 계란프라이, 조미김, 그리고 정체 모를 찌개 하나.

그땐 이렇게 먹다가 죽어야 하냐고 투정도 많이 부렸었는데.

“어머니. 나 딴 거 먹고 싶다고 하면 차린 대로 먹으라고 할 거지?”

“뭐 먹고 싶은데. 오늘 제대니까 특별히 봐줄게.”

“계란프라이 먹고 싶어. 조미김이랑.”

“군대 있더니 엄마밥이 그리웠구만. 오케이!”

어머니는 서둘러 계란프라이와 시장에서 사 온 조미김, 그리고 국인지 찌개인지 모호한 김치 요리 하나를 만들어주었다.

진짜 엄마가 만든 밥상을 내려다보자 가슴이 찡하게 울렸다.

이 소박하기 그지없는 어머니의 아침 밥상은 돌아가실 때까지 이어졌다.

누나네 아들, 그러니까 조카를 돌봐주실 때도 조미김과 계란프라이만 먹였다.

조카가 처음 어린이집에 가서 다른 밥상을 받고 울었다는 얘기는 나중에 전해 들었다.

조카는 세상에 다른 아침밥이 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은 것이다.

그 얘기 듣고 한참을 웃었는데.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았다. 계란프라이와 조미김 한 장을 앞에 놓고.

촉촉하게 젖은 눈시울을 보던 명현진의 눈이 커다래졌다.

“헐, 명도혁 너 설마 계란에 감동한 거냐? 엄마, 쟤 군대 갔다 오더니 돌았나 봐! 미친놈.”

“현진이 너는 동생한테 미친놈이 뭐니?”

“또라이를 또라이라 부르지 못하고…….”

명현진의 미친놈 소리도 반가웠다.

저 카랑카랑한 목소리 듣는 게 얼마 만인지.

그녀는 남극이며 아마존이며 특집방송마다 따라가서 소리를 질러대다가 결국 성대결절로 제 목소리가 걸걸해진다.

“누나 목소리 예쁘다?”

“얘가 진짜 돌았나.”

누나의 젊은 시절 목소리로 욕이 듣고 싶어서 부러 오글거리는 말을 던져봤다.

돌았냐는 소리까지도 진심으로 반가웠다.

꿈이라면 절대로 깨고 싶지 않을 정도로.

눈물을 삼키며 밥을 퍼먹었다. 입속으로 가득 김과 계란과, 정체 모를 김치 요리가 섞인 맛이 퍼졌다.

이건 꿈이 아니었다. 손의 촉감, 입속의 감각, 모든 것이 너무도 생생했다.

천천히 밥을 먹으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익숙한 기시감, 원목으로 만든 뻐꾸기시계와 가죽 소파, 오렌지 주스 병에 담긴 보리차까지. 정겹기 그지없었다.

겨우 눈물을 참아낸 식사를 마치고 제 방으로 들어왔다.

누르스름한 벽지와 싱글 침대, 약간은 촌스러운 초록색 침구가 보였다.

“감회가 새롭다. 와, 이거 설마 나야?”

도혁은 크게 웃음이 터졌다.

책상 옆에 위치한 전면 거울 속에는, 이십 대 초반의 명도혁이 있었다.

회귀 직후엔 꿈인지 생시인지 버벅거리다가 이진우의 일을 처리하느라 달라진 몸도 제대로 확인하지 못했었다.

도혁은 거울을 찬찬히 들여다보았다.

다부지고 건장한 체격, 팽팽한 피부와 훤칠하고 늘씬한 몸매.

중년이 되면서 조금씩 나오기 시작했던 뱃살도 온데간데없었다. 무엇보다.

굳은 채 펴지지 않던 미간, 동태눈처럼 흐릿하던 눈동자가 사라졌다.

거울 속 청년이 생기 있는 눈초리로 그를 바라보았다.

한동안 잃어버렸던, 열정이 끓어 넘치는 눈빛이 반가웠다.

‘크, 명도혁 제법 생겼었네. 어?’

젊은 모습에 취한 채 핸드폰을 찾았다. 군대 간 동안 정지를 걸어놨었다.

서랍 속에 넣어두었던 핸드폰은 무려 가로로 본능을 뽐내는 기종. 혜성같이 출시되어 바람같이 사라진 제품이었다.

게다가 011로 시작하는 번호였다. 세상에, 미친.

도혁은 제 물건들을 정돈하며 다시 한번 회귀를 절감했다.

그리고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솔직히 삶의 기회가 다시 주어질 거라고 생각해 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런 소설 같은 상상을 할 여유가 있었어야 말이지.

일 년 내내 경쟁 PT에 밤새도록 카피를 써대며 정신없이 살아왔었다.

-명도혁, 이게 최선입니까!

마지막 죽음의 순간에 떠올렸던 질문. 회귀는 그 질문에 대한 생의 대답일지도 모르겠다.

그는 인생에서 가장 후회했던 지점으로 돌아왔으니까.

그리고 정말 저 질문의 대답으로 회귀한 거라면 지난 생이 최선은 아니었다는 뜻이었다.

정말 최선을 다해 달려왔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난 생의 결과는 처참했다.

가정을 돌보지 않아 아내를 잃었다. 자신이 이혼을 요구했지만 버림받은 거나 마찬가지라며, 아니, ?결혼 내내 버려졌었다고 울면서 서류에 도장을 찍던 아내의 얼굴이 떠올랐다.

니코틴과 알코올, 카페인에 절어서 살며 미친놈처럼 앞만 보고 내달렸다.

그렇게 광고 하나만 보고 목숨 걸고 뛰었는데 결국 회사에서도 팽당했다. 마지막에는 제 손으로 짐조차 싸지 못하고 쫓겨났었지.

‘여기가 최선의 인생을 위한 출발점이라는 건가?’

도혁의 눈빛이 단단히 굳었다.

그렇게 그는 다시 출발점에 서게 되었다.

* * *

자, 생각을 정리해 보자고.

보기만 해도 웃긴 가로본능을 가로로 눕혀보며 그가 회귀의 일시를 확인했다.

회귀를 했으니 허투루 살 수 없다. 죽어라고 달려서 버림받는 인생은 한 번으로 족했다.

인생을 통째로 놓고 하나하나 통찰해 보자.

제일 쉬운 것부터. 일단 돈.

지금부터 회귀 직전까지 대한민국은 몇 번의 벼락을 맞게 된다.

그 벼락에 벼락부자가 될지 벼락 거지가 될지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시기가 계속해서 오는 것이다.

그 중심에는 부동산, 주식, 그리고 비트코인이 있었다.

무엇보다 학생의 신분으로도 조금씩 사 모을 수 있는 금도 있지.

명도혁은 미래에 닥칠 모든 벼락의 흐름을 알고 있다.

느긋하게 머리 위에 깍지를 끼고 의자에 등을 묻었다.

자본주의 미소가 절로 흘러나왔다.

다음은 학교.

도혁의 전공은 영어였다. 광고는 동아리에서 취미로 하는 정도로 시작했었고. 그때 조그만 광고제에 입상하면서 진로를 틀었다.

‘영문학과에 복학할 이유가 있나?’

전혀 그럴 필요가 없었다. 그는 이미 영문학과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해 보기도 했고, 토익도 갱신할 때마다 만점에 가까웠다.

굳이 등록금을 버려가며 영문과로 돌아갈 이유가 전혀 없었다.

그렇다고 바로 취업해서 광고판으로 뛰어들기는 모호했다.

사회에서 학벌은 아주 중요하다. 과거에도 그랬고 회귀 전에도 마찬가지였다. 특히 대기업은 학위에 따른 유리 천장이 명백히 존재했다.

학연에 따라 라인을 서고 손바닥을 비비던 시절, 대학 졸업장은 필수였다.

‘그렇다면 전과를 해볼까?’

도혁이 일하면서 제일 엿 같았던 때는 광고홍보학과끼리 뭉칠 때였다.

특히 태강애드에는 광고홍보학과 출신이 많았다.

대학은 같았지만 전공 때문에 은근히 그 라인에 끼지 못했었다. 선배들이 같은 과 후배들 챙기기도 바빴거든.

십수 년 광고 바닥을 굴렀으니 학문으로 접근해 보고 싶은 호기심도 들었다.

아무튼 체계적으로 광고를 배웠던 건 아니었으니까.

혹시 모르지, 은퇴 후 학교에서 강의하게 될지도. 그걸 위해서라도 학위 취득은 필수였다.

그럼 전과를 하는 것으로 결정.

자, 다음은 회사, 태강애드를 어떻게 할 것인가.

광고홍보학과로 전과하고 본격적으로 공부한다고 해서 학교에서 내주는 과제나 하고 있기는 좀 웃겼다.

그렇다고 이십 년 전처럼 광고 동아리에서 대학생 광고 공모전이나 끄적이기엔 너무 심심할 거고.

문득 도혁의 머릿속에서 광고 동아리 홍보 게시판에 붙어 있던 태강애드 대학생 인턴십이 떠올랐다.

“이맘때쯤 태강애드에서 인턴십을 시작했었는데. 인기 터져 나갔지 아마.”

중얼거리며 책상 아래 숨어 있는 PC를 켰다.

그 시절 유명 광고를 통해 따라올 테면 따라와 보라던 PC는 정말로 느긋하게, 천천히, 미칠 듯이 답답하게 켜졌다.

1초 만에 검색되던 5G의 속도감을 떠올리며 미소를 지었다.

잃었던 시간의 틈새를 찾은 것 같아서.

그는 PC가 켜지는 더럽게도 지루한 시간의 틈새에 커피를 타 왔다. 오랜만에 보는 인스턴트 알커피였다.

촌스러운 꽃무늬 잔에 인스턴트커피 둘, 설탕 둘, 프림 둘을 타서 휘휘 저었다.

오랜만에 맛보는 수동의 단맛이 반가워 입가에 저절로 미소가 걸렸다.

그는 커피잔을 들고 느긋하게 의자에 걸터앉아 화면을 바라보았다.

-띠리리릭

익숙한 PC의 로그인 소리와 푸르고 화사한 화면.

그는 정말로 이 추억의 시절로 돌아온 것이다.

그걸 폐부 깊숙이 절감하며 드디어 켜진 PC의 화면을 찬찬히 훑어보았다.

역시 광고 쪽은 호황으로 구인광고가 넘쳐났다.

[제1회 태강애드 대학생 인턴십 모집

새로운 아이디어, 참신한 도전! 태강애드의 대학생 인턴에 도전하세요.

광고대행사 취업의 기회가 열리는 인턴십에 여러분의 많은 참가 부탁드립니다.]

툭툭, 손가락으로 책상을 두드리며 잔잔히 웃었다.

대학생 인턴십 정도면 충분히 학업과 병행 가능할 듯했다.

안 그래도 일중독 명도혁이 명퇴하고 얼마나 심심할까, 손이 간지럽던 차였거든.

도혁은 천천히 남은 커피를 입속에 넣어 굴리며 그 맛을 음미했다.

맨 아래 가라앉은 설탕의 단맛이 강렬했다. 마치 두 번째로 주어진 생의 달콤한 나날을 암시하듯이.

‘꽃길일 수밖에 없지. 미래를 속속들이 아는데.’

히트 상품, 대표 광고, 각 기업의 흥망성쇠까지.

대한민국 마케팅의 최전선에 있었던 명도혁이었다.

지난 생의 삶이 주마등같이 스쳐 가고 그가 기억을 천천히 재생했다.

이번 생만큼은 시야를 넓히고 여유롭게 살고 싶다.

그럴 수 있을 만한 통찰이 주어졌고 명도혁은 최고가 될 것이다.

돈, 명예, 성공.

아등바등 살아봤자 기계 부속품 같은 삶이 아닌가. 낡으면 밟히고 고장 나면 버려지는.

그렇기에 이번 생에는 태강애드의 노비로 늙어가지 않을 거다. 수석 카피라이터 자리 따위 개나 주라지.

하지만 때려치울 때 때려치우더라도 꼭 해보고 싶은 일이 있었다.

태강애드 안에서만 할 수 있는 사이다 짓.

‘알짜배기만 쏙 빼 먹고 발로 뻥 차 주지. 사업자금 모으고 독립할때까지 태강애드는 내 손 안에 좀 놀아나 줘야겠어.’

태강애드의 직원이 아닌 그를 뛰어넘는 경쟁사가 될 때까지 제물로 삼을 생각이었다. 그 안에 있는 빌런들 퇴치도 좀 해주고 말이다.?

‘태강애드 안에서 출세해서 잡아먹던가, 밖으로 나와서 씹어먹던가, 아직 젊으니까 천천히 생각하기로 하고.’

그가 젊어진 거울 속 모습을 들여다보며 가방을 둘러메었다.

오늘은 태강애드 인턴십의 접수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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