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 천재 명도혁 1화
방금 명퇴당했다.
태강애드 제작국 수석 카피라이터 명도혁. 십수 년을 광고만 보고 달려왔다. 광고에 미쳐서 이혼까지 당하고 처자식도 없이 등신처럼.
신입에서 수석을 달 때까지 과정은 지난했지만 떠나는 길은 명료했다.
인사팀 김인식 대리와 함께 밥을 먹은 것이다.
명퇴시킬 직원과만 식사를 한다는 저승사자 김인식과 함께.
생전 밥 한번 먹을 일 없었던 인사팀 대리였다.
어색하게 그를 마주 보고 앉아 국밥 두 그릇을 시켰다.
입속에서 거슬거리는 밥알을 씹는 맛이 씁쓸했다.
뚝배기 속에 깍두기를 몇 개 집어넣고 국물을 휘휘 젓다가 김인식을 물끄러미 보았다.
“그 자리도 참 일하기 힘들겠어. 아무도 맡기 싫어하는 업무잖아.”
“그렇죠. 뭐, 먹고살기가 원래 고되지 않습니까.”
김인식의 신입 시절이 떠올랐다.
똘똘하고 당찬 눈빛이 기억에 남는 친구였다.
부서를 돌며 신규 교육 받을 때 도혁이 회의에 몇 번 데려가기도 했었다.
카피라이터 쪽도 제법 어울렸는데 매체팀으로 발령이 났고, 뒤엔 스태프로 빠졌다.
인사팀 넘어갈 때 밥이라도 한 끼 사줄 걸, 뒤늦은 후회를 했다.
너무 늦어버렸지만.
“저 신입 때 명 수석님 카피가 PT(Presentation, 경쟁 프레젠테이션) 휩쓸었잖아요. 전성기 시절 참 대단했었는데.”
“대단은 무슨. 뒷방 늙은이가 왕년이 다 무슨 소용이야.”
도혁의 성을 따 한때 ‘명카피 제조기’로도 불렸었다. 전성기 때는 나름 잘나갔었다.
신입 때부터 난 놈이라고 인정도 많이 받았고, 론칭만 하면 족족 히트 광고를 터뜨렸었다.
다, 지난 얘기다.
전성기 때와 달리 최근 경쟁 PT에서 연달아 세 번을 패했다. 심지어 마지막 건의 경쟁사는 일 년 전에 광고 바닥에 발을 들인 중소 신생 회사였고.
억울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2년 후배였던 낙하산 최철우가 국장으로 승진하면서 암암리에 있었던 견제가 수면 위로 올라왔다.
아무래도 선배가 부하 직원으로 일하는 게 불편했던 모양인지 대놓고 부당하게 대우하는 일을 서슴지 않았다.
신규급 디자이너를 그의 팀에 붙이고 예산도 삭감했다.
잘나가던 시절에는 에이스팀에서만 일했던 그였는데.
최철우의 등장 이후 사내 정치에서 밀리며 2팀으로, 3팀으로 점점 밀려났다.
자연히 떨어지는 시안의 퀄리티에 절망했지만 정말 최선을 다했다. 결과는 참담했지만.
하긴 베테랑 주제에 그런 핑계를 댈 수는 없었다. 어떤 환경에 처해도, 어떻게든 따내야만 하는 것이 경쟁 PT였다.
3연패라니. 쓰리아웃 체인지는 당연한 수순이었다.
가뜩이나 퇴직 연령이 낮은 광고 회사 제작팀이었다.
늙고 감 떨어진 카피라이터를 더 데리고 있을 이유가 없을 것이다. 고참이랍시고 월급은 좀 많아야지.
자조 섞인 한숨이 흘러나왔다. 잘나가던 한때를 그리워한들 무슨 소용일까.
회한 속에서 국밥 뚝배기는 바닥을 보였고, 저승사자는 그에게 사형을 고했다.
“식사 끝나시면 그냥 집으로 가시면 됩니다.”
“이 길로, 바로?”
“네. 죄송하지만 회사 건물 내로는 들어가실 수 없습니다. 짐은 저희가 며칠 안으로 택배 발송하겠습니다.”
“뭐? 야, 이 자식아. 아무리 명퇴지만 이십 년을 다닌 회산데 내 손으로 짐은 싸게 해줘야지.”
“죄송합니다. 회사방침 아시지 않습니까. 최근에 정보 유출 건도 있었구요.”
사실 알고 있었다. 누구보다 잘 알고 있지. 선배들이 어떻게 이 바닥을 떠나갔는지.
광고계는 경쟁이 치열한 시장이었다. 아이디어가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제품이 바로 광고다. 정보가 경쟁사로 새어 나갈까 조심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었다.
명도혁이 어느 홍보 회사에 어떻게 재취업할 줄 알고 시안 취합해서 가져갈 시간을 준단 말인가.
김인식이 말한 대로 최근에 불미스러운 정보 유출 사건까지 있었던 터였다. 이 같은 조치는 오너 입장에서 당연한 일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이십 년을 넘게 몸 바쳐온 회산데 이건 아니지. 원망을 섞어 김인식을 노려보았다.
그 눈빛에 김인식은 굳이 대답하지 않았다.
저승사자는 매뉴얼대로 업무를 잘 수행하고 있었다. 악역을 맡았을 뿐, 그의 잘못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울컥 화가 치밀어 올랐다.
내가 말이지 왕년에 아버님 댁에 보일러도 놔드리고, 응? 침대를 과학으로 만든 사람이야. 야, 이 자식들아.
욕이라도 싸질러 주고 싶었는데.
묵묵히 돌아섰다. 담담하게 국밥의 그릇을 비워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돌아선 뒷모습이 초라해 보이기 싫어 걸음을 재촉해 봤지만, 발길이 무거웠다.
오래전 시인의 말은 틀렸다.
떠날 때를 알고 떠나는 자의 뒷모습은 아름답다더니, 이보다 비참할 수는 없는 거였다.
꾸벅 고개를 숙여 구십 도로 인사를 하는 김인식을 뒤로하고 핸드폰을 들었다.
천천히 액정을 훑어 통화 목록을 뒤졌다.
그래도 십수 년을 일했던 직장을 떠나는 날, 술이라도 한잔하고 싶어서.
그런데 마땅히 부를 사람이 없었다.
이럴 때 연락해서 술 한잔 기울일 놈이 한 명도 없었다. 최근에 했던 통화는 모조리 회사 직원들과 거래처뿐이었다. 이럴 때 무서워할 아내조차 그에게는 없었다.
어이없는 실소가 터져 나왔다.
‘명도혁 진짜 인생 헛살았구나. 광고 하나에 목매고 죽어라고 달렸는데 회사 나오니까 연락할 친구가 있나, 따뜻하게 맞아줄 가족이 있나, 후우.’
한숨을 뱉으며 눈앞에 보이는 아무 술집에 들어갔다. 아늑하고 조용한 1층의 바였다.
“뭘로 드릴까요.”
“아무거나 독한 걸로 한 잔 주세요.”
취하고 싶은 걸 알았는지 바텐더는 테킬라를 내어 왔다.
‘이거 마시고 쓰러져 자다가 내일 아침에 머리 깨지면 딱 좋겠네.’
원샷으로 들이켠 테킬라의 브랜드 디자인이 익숙하다. 그가 지면광고를 진행했던 쿠엘보 에스페살이었다.
바텐더의 뒤로 커다란 포스터가 붙어 있었다. 거기에는 본인이 직접 썼던 카피가 붉은 글씨로 적혀 있었다.
[테킬라다운 첫맛, 테킬라다운 끝 맛. 어제의 오리지널을 넘어 오늘의 클래식으로.]
테킬라를 들이켠 입가에 쓴웃음이 흘렀다.
명도혁은 앞으로 얼마나 많은 광고를 마주하게 될까.
자신이 만든 광고와 동료가 만든 광고. 쏟아지는 미디어의 홍수 속에서 씁쓸한 과거를 추억하며 왕년이나 찾고 있을 거다.
그렇게 천천히 낡아가겠지.
그런 그를 보며 바텐더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손님, 포스터 뚫어지겠습니다. 뭐 잘못된 거라도 있습니까.”
“저거 제가 만든 광고라서요.”
“아! 테킬라요?”
휘둥그레진 눈으로 바텐더가 그를 바라보았다. 감탄 섞인 리액션이 싫지 않아 조금 으쓱해 보였다.
술에 취했으니까 조금은 호기로워도 될 것 같아서.
“와, 광고하시는 분이구나. 저 어릴 때부터 정말 광고 좋아했습니다. CM송도 따라 부르구요.”
“광고 좋아하는 분들 제법 있으시죠. 광고가 꿈인 친구들도 많고.”
“우리 막냇동생도 광고대행사 취업한다 어쩐다 하면서 공모전 준비 중입니다.”
“인턴 면접에 들어가면 한 해에도 몇 명씩 급여 같은 건 필요 없으니까 배우게 해달라고 찾아오는 젊은 친구들이 있긴 합니다.”
“그런 지원자들은 채용하시는 편입니까?”
도혁은 미간을 깊이 찌푸렸다. 테킬라를 한 번에 훅 털어 마시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런 이유로 채용하지는 않습니다. 열정 페이는 혐오하는 편이라서요.”
“아, 열정 페이! 혐오스럽죠. 선생님 같은 분이 직장 문화 좀 많이 바꿔주십시오.”
씁쓸히 웃을 수밖에 없었다.
바텐더는 그를 잠깐 보더니 새로 들어온 주문을 받았다.
분주한 그와 짧은 대화를 마치고 목구멍으로 테킬라를 몇 번 들이붓고는 밖으로 나왔다.
거리는 한적했고 인적이 드물었다.
아직 초겨울인데도 바람이 차가워 코트 깃을 여몄다. 그 틈을 비집고 기어이, 칼바람이 가슴팍으로 스며들었다.
한동안 끊었던 담배를 사서 입술에 꼬나물었다. 역시나 익숙한 브랜드였다.
그의 후배가 디자인한 패키지.
시원한 민트와 박하를 상징하는 직관적인 광고는 작년 연말 광고제에서 우수상을 수상했다.
물론 카피는 도혁이 직접 컨펌했다.
[One & Only, 부드럽고 짜릿하게]
그걸 내려다보며 천천히 담배 연기를 흡입했다.
오랜만에 느끼는 니코틴이 전신으로 번져간다. 혈관을 타고 손끝까지 저릿했다.
터덕터덕, 빈 길을 홀로 걸었다.
희뿌연 연기를 타고 정신이 몽롱해졌다. 한 병 가까이 마신 테킬라의 취기가 올라오는 듯했다.
악마의 술 테킬라답게 내일 아침에 머리가 깨지는 걸로는 부족한 모양이다.
‘고작 그거 먹고 정신줄 놓는 거냐? 명도혁 다 죽었네.’ 중얼중얼 늙은이처럼 입속으로 말을 굴리자 머릿속도 뱅그르 도는 기분이었다.
올려다본 하늘에 별빛이 흐려졌다가 밝아지고 다시 흐릿하게 사라졌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간다면 이것보다 잘할 수 있을까.
수없이 썼던 카피들, 밥 먹듯이 컨펌했던 시안들, 아무 후회 없는가.
청춘이고 인생이고 가족과의 시간까지 송두리째 광고에 바쳤는데, 무참히 차여 버린 느낌이었다.
또라이 카피라이터 명도혁, 평생 호구 짓 안 하고 살았다고 자부했었다. 그런데 인생을 통째로 놓고 보니 이런 호구가 다시 있나 싶었다.
명도혁! 뭐냐, 정말. 이게 최선입니까!
짧은 자문에 대답을 찾지 못하고 터덕터덕 걷다가 어느 상가의 계단에 쪼그리고 앉았다.
차가운 난간에 고개를 기대었다. 하아, 긴 한숨 끝에 서서히 눈이 감겨왔다. 술기운이 도는 모양이었다.
곧 깊은 적막이 몸을 사로잡았다.
감각이 조금씩 소실되었다.
그는 눈을 감은 채 그대로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그곳이 어디인지도 모른 채.
* * *
빛이 내렸다. 감은 눈으로도 그 빛이 부셔 천천히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
뿌옇게 흐릿한 감각. 좁은 틈새로 빛이 번쩍였다. 귓가에는 낯익은 노랫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손이 가요 손이 가, 문어깡에 손이 가요.
꿈인가?
술 먹고 상가 어디 즈음에서 잠든 것 같은데.
흐릿하게 아련한 감각 속에서 귓전에 울리는 노래가 우습고, 한편 서글펐다.
미친. 명도혁. 광고 지겹지도 않냐? 뭔 꿈에서도 CM송이 들리고 지랄이야.
어이가 없어 속으로 픽 웃고 말았다.
광고쟁이 아니랄까 봐 꿈속에서도 문어깡 광고라니.
하긴 광고하는 꿈은 지겹도록 꿨었지. 아이데이션(아이디어 회의)하는 꿈, 카피 까이는 꿈, CF 펑크 나는 꿈, 매출 1등 먹고 광고제 대상 타는 꿈.
이제 그만 꾸고 싶다. 그런 꿈 따위.
카피라이터 명도혁의 꿈은 산산이 부서졌으니까.
도혁은 천천히 상체를 들어 올려 자리에 앉았다.
팔다리가 저렸지만 견딜 만했다.
쪼그려 앉아 잠든 새 술이 깼는지 머리도 말끔했다.
여러 번 주먹을 쥐었다 펴며 멀쩡한 손의 감각을 확인한 후 주위를 둘러보았다.
두리번거리는 그의 눈앞에 배불뚝이 TV의 브라운관이 보였다.
‘어?? 저거 언제 적 TV야. 나 대학 때나 보던 건데.’
신기해하는 그의 귀에 계속해서 TV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노래는 멈추지 않았다.
-손이 가요 손이 가, 문어깡에 손이 가요. 아이손 어른 손 자꾸만 손이 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