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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녀올게
엘메이라, 그녀는 해맑게 뛰어노는 자신의 아이들을 보며 사람답게 산다는 게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그것은 다른 엘프들도, 이종족들도 마찬가지였다.
“야! 내가 너보다 수십 살 많거든.”
“그래 봤자, 나보다 어려 보이잖아. 그러니까 오빠라고 불러 봐.”
“부를까 보냐!”
이제 열서너 살 정도 되어 보이는 인간과 엘프 아이 둘이서 투덕거리는 모습을 보며 거리를 지나는 사람들은 흐뭇하니 웃었다.
“거기 가는 처자, 와서 과일 좀 봐. 기가 막힌 게 들어왔어!”
“어머, 사과 빛깔이 왜 이렇게 좋아요?”
“엘프들이 키운 거야! 앞으로 이런 것만 나올 거야!”
“정말요? 그, 그럼 큰일인데? 우리 아빠가 과수원하시는데…….”
“뭐야, 그게 걱정이야? 걱정 마! 관청에 가면 과일 잘 키우는 엘프들을 일꾼으로 소개시켜 준대! 그 비법을 전수받는 대신, 나중에 땅 좀 떼어 주면 되는 거야! 아니면 일꾼으로 올 잘생긴 엘프 남자를 한 명 낚아서 아예…….”
“어머, 어머!”
청과상 주인아주머니는 이제 성인이나 됐을 법한 소녀를 보며 음흉하게 말하고, 소녀는 잘생긴 엘프를 떠올리며 어쩔 줄 몰라 했다.
‘정말 잘 녹아들었네.’
삑-! 삑-!
“거기 서 이 새끼야!”
“서란다고 서면 그게 도둑이냐!”
엘메이라는 자신을 스쳐 지나가는 소매치기의 손목을 잡아 업어 치고는 그대로 팔을 꺾어 버렸다.
“끄아아악!”
“저, 정지! 정지! 뭐야, 뭡니까! 왜 갑자기…….”
엘메이라는 품에서 군인패를 꺼내어 경비 병사를 향해 내밀었다.
“추, 충! 삼등병 톰슨, 근무 중 이상 무!”
경비 병사는 엘메이라가 엘프임에도 군례를 올리는 데 망설이지 않았다.
오히려 존경이 가득한 눈으로 쳐다보았다.
그것이 자못 놀라웠다.
“영웅을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영웅?”
“이종족이시라면 그림자 부대 출신이시지 말입니다. 그림자 부대가 어떤 활약을 했는지 익히 들어서 존경하고 있었지 말입니다! 여러분이 계셨기에 본 도시가, 그리고 본 왕국이 겁화에 휘말리지 않았지 말입니다!”
“난 이종족인데?”
“그딴 것은 중요하지 않지 말입니다!”
너무도 단호했고, 너무도 호쾌했다.
“그런가…….”
엘메이라는 이런 인식이 너무 놀랍고, 또 기꺼웠다.
‘그래, 이제 엘프는 이 도시의 주민이다!’
“그, 그런데 위대한 영웅에게 악수를 청해도 괜찮겠습니까?”
“아? 그, 그러지.”
“가, 감사합니다!”
마치 희귀한 보물이라도 만지는 듯이 바짓단에 벅벅 문지르고 내민 손을 잡아 주자 경비 병사는 완전히 녹아내릴 듯한 모습을 보였다.
그 경비 병사뿐만이 아니었다.
왠지 머쓱해져서 주위를 둘러보자 경비 병사의 큰 목소리에 주목하게 된 주위 사람들이 엘메이라를 보며 존경과 감사의 눈빛을 보내고 있었다.
“그럼 수고하십시오! 가자, 이 새끼야. 너 정말 운 좋은 줄 알아. 그림자 부대가 얼마나 무서운지 알아? 네가 조금만 더 깡이 좋아서 칼이라도 꺼내 들었으면 그냥 뒈졌어! 아, 수고하시지 말입니다! 충!”
“……충!”
엘메이라는 떠나는 경비 병사와 소매치기를 가만히 바라보다 이쪽을 향해 달려오는 울프족의 병사를 발견하곤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엘메이라의 앞에선 울프족의 병사는 군례를 올렸다.
“성자님께서 대신전으로 오시라는 전갈을 보내셨습니다!”
“대신전으로? 무슨 일이지?”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일단 최대한 빨리 오시라고 하셨습니다!”
“알았다. 수고하도록.”
“충!”
엘메이라는 대신전을 바라보며 땅을 박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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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메이라의 얼굴은 어둡게 물들어 있었다.
갈등을 하는 듯 두 눈이 흔들리던 그녀는 곧 눈을 부릅뜨며 군례를 올렸다.
“제가 군영에 들어가던 날, 모국은 카우트예 학원 도시가 됐고, 고향도 카우트예 학원 도시가 됐습니다!”
“동족이 학살당할 겁니다. 그리고 당신의 손으로 그것을 조장해야 합니다.”
“저는 카우트예 학원 도시에서 사람이 무엇인지, 사람답게 사는 게 무엇인지를 배우게 되었습니다! 제게 가족은 아이들 스무 명이고, 이웃은 카우트예 학원 도시의 주민들입니다! 동족 역시 카우트예의 이름 아래 모인 사람들입니다! 그러니 제가 지켜야 할 곳은 카우트예입니다! 부디 명령을!”
몽블랑은 모여 있는 엘프의 장로들을 둘러보았다.
그들 역시 엘메이라와 별반 다를 바가 없었다.
“내가 한마디 해도 되겠소?”
“예, 차쿨 장로.”
“우리 엘프가 힘들 때 손을 내밀어 준 것은 카우트예였소. 인간이 은인을 배신하지 않듯, 우리 엘프도 마찬가지라오. 난 지금 정말 놀랍고도 분노가 솟구친다오. 수십만? 노예? 하! 그들은 동족일지언정 카우트예에 있는 우리 엘프들과는 전혀 상관없는 자들이오! 인간이 다른 나라의 일을 보고 자신은 상관 없다를 말하는 것처럼, 나도, 아니 우리도 마찬가지오!”
슬리핑 포레스트에는 수십만의 엘프가 산단다.
그런데 그들의 지도자는 대륙 전역에 퍼져 언제나 노예 사냥꾼을 걱정하며 한 끼 먹을거리도 조심스레 구해야 했던 슬리핑 포레스트 밖의 엘프들에게 구원의 손을 내밀지 않았다.
엘븐 가든의 엘프들과 자신들은 그저 동족이라는 그 하나만이 공통점일 뿐이었다.
그 외에는 남이었다.
그런데 타 종족인 카우트예 학원 도시의 인간들과 이종족들은 그들을 보호하고 보살펴 주었다.
충성은 결국 자신을 알아주는 존재에게로 향하는 것이었다.
“그곳에서 고통받고 사는 이종족들을 부디 구원해 주시오! 이곳에 와서 새로이 태어난 나 차쿨은 오늘만큼 분노한 적이 없소이다, 성자! 어찌 엘프란 것들이!”
다른 엘프 장로들도 분개하며 차쿨의 뜻에 동조했다.
몽블랑은 다행이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저들이 반대했어도 엘븐 가든을 지옥으로 만들려고는 했지만…… 다행이군.’
몽블랑은 엘메이라를 바라봤다.
“엘메이라 천인장, 아니 그림자 부대 사령관 엘메이라!”
“추, 충!”
“내일 06시까지 모든 그림자 부대를 소집하여 카우트예 학원 마법학부 앞에 집결합니다!”
“충!”
“마지막이 될 수 있으니 가족과 뜨거운 밤을 지새우고 오라 말하십시오!”
“알겠습니다! 충-!”
벌써부터 전투 상태에 들어간 듯 두 눈에 살의를 띠는 엘메이라는 성큼성큼 절도 있게 대신전을 빠져 나갔고, 엘프 장로들 역시 빠져나갔다.
몽블랑도 대신전을 나가 카우트예 학원 도시를 바라보았다.
그 순간 등 뒤에서 누군가 감싸 왔다.
코끝을 스치는 익숙한 비누 향기에 몽블랑은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루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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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나도 슬프고 뜨거운 밤이었다.
몽블랑은 루시아의 몸을 깊숙이 파고들었고, 루시아는 모든 것을 열어 몽블랑을 온전히 받아들였다.
참아 내고 또 토해 내며 성스럽고 숭고한 땀으로 둘은 엉켜들었다.
해도 뜨지 않는 새벽, 몽블랑은 자신의 팔을 베개 삼아 잠든 루시아의 얼굴에 붙은, 땀에 젖은 머리를 떼어 냈다.
마치 다시는 못 볼 사람처럼 루시아의 얼굴을 뚫어져라 바라보던 몽블랑은 잠시 머리맡의 시계를 바라봤다.
‘시간인가…….’
4시 30분, 이제는 씻고 준비해야 할 시간이었다.
몽블랑은 조심히 팔을 빼어 베개를 넣어 주곤 침대를 조심스레 빠져나왔다.
방을 빠져나오자 싸늘한 바람과 텅 빈 복도가 조용히 반겨 왔다.
“옛날에는 이 시간부터 시끄러웠었는데 말이야.”
일백 명이 넘는 아이들이 6시 30분까지 채석장으로 출근을 하기 위해 이 새벽부터 전쟁을 벌였더랬다.
말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다섯 살 난 아이가 언니 오빠의 손에 이끌려 차디찬 물에 세수를 하고, 이미 그 전에 씻어 버린 큰 아이들은 전날 채석장에서 쓰고 남은 재료로 아침을 준비했었다.
하지만 채석장 일을 관둔 지금은 달랐다.
아이들 대부분이 카우트예 학원에서 수학을 하게 됐기에 7시 30분부터 준비해도 늦지 않았다.
줄 설 필요도 없이 아이들 전원이 씻을 수 있는 지하 목욕탕과 각 방에 있는 화장실. 앞에 사람이 있다 싶으면 빈 방의 화장실로 달려가거나 대신전의 화장실로 달려가도 됐다.
8시 30분이 되면 아이들을 데려갈 마차들이 왔다.
“내 새끼들, 누구보다 더 잘 먹고 잘 입혀야지. 풋! 결혼도 안 하고 서른도 안 된 젊은 새끼가 백 명 넘는 자식들을 가지고 있으니, 세상에 나 같은 놈은 또 없을 거야.”
로비로 내려오자 몽블랑은 다시 추억에 잠겼다.
“메리 아주머니, 체리는 잘 크고 있는지 모르겠네.”
쟝의 부인 메리는 그 누구보다 열성적으로 질문을 하고 공부를 했었다.
아니, 이곳에 온 모든 사람들이 열정적으로 공부를 했었다.
그들 덕에 카우트예 학원이 세워질 수 있었다.
그들이 공부에 대한 열망이 없었더라면, 몽블랑은 학원을 세울 생각을 하지 못했을 것이다.
“크리스마스…….”
처음으로 자신이 했던 일에 후회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때의 벅차고도 고마운 감정은 아직도 가슴을 진탕시켰다.
촤악! 촥!
몽블랑은 게르만이 만들어 준 마법 아궁이 덕에 1년 내내 쓸 수 있는 뜨거운 물로 머리부터 발끝까지 씻어 냈다.
루시아의 흔적이 지워지는 게 아쉬워, 몽블랑은 조금이라도 더 간직하고자 아주 천천히 몸을 씻어 냈다.
피부 안 핏속에 담아 언제든 떠올릴 수 있지만, 그래도 못내 아쉬웠다.
모든 준비를 마치고 방으로 올라온 몽블랑은 아직 깨지 않은 루시아를 보며 소리 죽여 옷을 입었다.
법복을 입고 성물로 몸을 치장했다.
반지를 끼고, 목걸이를 걸었다.
왕관도 쓸까 하였지만, 이내 고개를 저으며 성자의 지팡이를 들었다.
몽블랑은 조심스레 침대로 다가갔다.
세상모르고 자고 있는 루시아를 가만히 바라보던 몽블랑은 이내 그녀의 입에 짧은 입맞춤을 하곤 돌아섰다.
“다녀올게.”
“다녀…….”
멈칫!
몽블랑은 손잡이를 잡은 모습 그대로 멈추었다.
떨리는 침대의 진동이, 이곳까지 전해져 왔다.
그러나 몽블랑은 돌아보지 않았다.
돌아본다면 못 갈 것 같기에, 다른 이들 보고 하라는 유혹에 빠질 것 같기에 몽블랑은 애써 참아내었다.
“다녀오세요, 오빠.”
“……그래.”
달칵!
이를 악문 몽블랑은 손잡이를 돌리며 문을 거칠게 열어젖혔다.
등 뒤로 흐느끼는 소리가 들려왔으나 몽블랑은 발을 멈추지 않았다.
저택을 나온 몽블랑은 대신전에서 카우트예 학원으로 향하는 지름길에 앞에 섰다.
그의 양옆으로 샤크티와 화이트가 섰다.
마지막으로 저택을 돌아본 몽블랑은 여전히 조용한 모습에 작게 웃으며 지름길을 밟았다.
“다녀오세요, 사제님-!”
“여긴 우리가 지킬게요!”
“화이트, 샤크티, 우리 사제님 잘 보호해 줘-!”
몽블랑은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돌렸다.
모든 아이들이 애써 웃는 일그러진 얼굴로 자신을 보며 힘차게 손을 흔들고 있었다.
몽블랑은 거칠게 몸을 돌렸다.
‘그래! 다녀오마!’
가파른 계단을 내려와 학원 정문으로 향한 몽블랑은 벌써부터 모여 있는 그림자 부대의 대원들을 보며 환하게 웃었다.
“모두 부인, 남편, 남자 여자, 친구 들은 찐하게 안아 주고 왔습니까?”
“충-!”
혹여 도시가 깨랴 그들의 대답은 묵직하지만 작았다.
“솔로들은 술집 아가씨나 거리 놈팡이를 안았고요?”
그림자 부대의 대원들 사이에서 피식 웃는 소리들이 흘러나왔다.
살짝 풀어져 가던 분위기는 곧 차갑게 굳는 몽블랑의 얼굴에 얼어붙었다.
“우린 지금 돌아올 수 없는 길을 갑니다. 작전대로 된다고 해도 돌아오지 못하는 사람이 있을 겁니다. 모두 옆과 앞뒤의 전우들을 보십시오. 그리고 기억하십시오.”
모두 자신의 주위 전우들을 뜨겁게 바라보았다.
“다 기억했습니까?”
“충-!”
“그럼 갑시…….”
몽블랑은 말을 다 하지 못했다.
어느새 그림자 부대의 대원들 뒤로 사람들이 몰려오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골목골목에서 쏟아져 나온 그들은 말없이 몽블랑과 그림자 부대원을 바라봤다.
그런 그들을 해치며 군복과 가죽 갑옷을 입은 사람들이 걸어 나오기 시작했다.
레벌, 잭, 톰, 제스퍼, 게스, 놀랜드, 체놈, 아커만 등 인연을 맺은 모든 이들이 두고 보자라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에휴, 조용히 떠나려는 건 끝났네. 이게 뭐야, 이러면 애써 폼 잡은 게 말짱 도루묵이잖아.”
몽블랑의 작은 목소리는 갑자기 튀어나온 엘메이라의 손에 들린 음성 증폭 아티팩트에 의해 퍼져 나갔고, 몽블랑은 어이없다는 듯이 엘메이라를 바라봤다.
“하하하하하! 저흴 놓고 가시면 섭섭합니다! 다녀오십시오, 사제님!”
“빌어먹을.”
머리를 벅벅 긁은 몽블랑은 음성 증폭 아티팩트를 빼앗아 크게 외쳤다.
“다녀오겠습니다!”
“다녀오십시오! 이번에도 저흴 구해 주세요! 대륙을 구해 주세요, 사제님!”
고개를 저으며 몸을 돌린 몽블랑은 서늘히 입술을 비틀었다.
“갑시다!”
척! 척! 척! 척! 척!
학원 내 마법 학부 앞 커다란 운동장 앞에 온 몽블랑은 갑옷을 입고 있는 세베루스와 트리샤, 황금사자 기사단, 그리고 헌트 바슘과 리네 마하트마를 비롯한 율리나의 추기경들과 베네딕트 전 추기경, 아실리 전 주교외 지그문트의 사제들을 발견하곤 다시 머리를 긁었다.
“이럴 것 같아서 말을 전하지 않았는데…… 그래, 가자, 가.”
“떼어 놓고 갔으면 넌 정말 맞아 죽었다.”
“세상의 악을 없애는 것은 신의 종인 우리들의 일이라네!”
“은혜를 갚게 해 주시오!”
“알았다고! 알았다고요!”
혀를 찬 몽블랑은 운동장 전체에 그려진 텔레포트 마법진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런 몽블랑의 옆으로 세베루스와 황금사자기사단이 섰다.
“어머니가 두고 보자더라. 아버지도 말이야.”
“……아나.”
이천여 명 정도가 룬문자와 마나석을 피해 서자 몽블랑은 마법진 밖에 있는 멀린과 게르만을 바라봤다.
멀린은 마법진 주위를 감싼 마법사들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고, 곧 그들의 입에서 텔레포트 마법진을 구동시키는 스펠과 마나가 흘러나왔다.
우우우우우우우웅!
“텔레포트!”
파아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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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리핑 포레스트의 입구에 수만여 명의 사람들이 밀집했다.
그중 대다수는 백전노장이나 다름없는 퇴역 병사들이었다.
그들에겐 가족이 없었다.
가족이 있다 하여도 평민으로서 힘들게 살았다.
부모로서 마지막 도움이 되고자, 자식을 영웅의 자손으로 만들고자 온 것이었다.
군영은 순식간에 만들어졌고, 상등병 이상의 계급을 지닌 지휘관들이 지휘부 막사로 몰려들었다.
몽블랑은 미리 출발하여 점검에 들어갔던 아흘라니 등 전 럴러바이가 만든 작전 지도를 펼쳐 놓고 있었다.
“알로호모라와 반트 몰록을 비롯한 적들이 이곳에 당도하기까진 약 한 달반여의 시간이 있습니다. 그 시간 동안 우리는 이 슬리핑 포레스트에 익숙해져야 합니다. 한 발만 잘못 내디뎌도 방금 봤던 풍경과 전혀 다른 곳이 나오는 이 슬리핑 포레스트의 미로를 눈을 감고도 올바른 방향을 밟을 수 있게 해야 합니다. 그것도 42일 동안 말입니다. 그 이후부터는 본격적인 작전이 펼쳐질 겁니다. 그것이 불가능하다 생각되는 분들은 지금 일어서 돌아가십시오.”
몽블랑의 말은 너무도 매정했다.
하지만 그들은 서운해하기는커녕 오히려 전의를 불태웠다.
“낙오되는 사람은 구하지 못합니다. 외로이 잠들어야 합니다. 그래도 괜찮겠습니까?”
그들은 입을 다물었지만, 두 눈은 이글이글 타오르고 있었다.
“……그럼 앞으로 여러분을 슬리핑 포레스트의 일원으로 만들어 줄 교관을 소개하겠습니다.”
아흘라니를 비롯한 일곱의 전 럴러바이들이 일어났다.
“앞으로 제군들을 슬리핑 포레스트에 사는 짐승으로 만들어 줄 총교관 아흘라니다. 솔직히 본인은 제군들이 지금이라도 돌아갔으면 싶다. 제군들의 숫자는 너무 많고, 교관들의 숫자는 한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제 자신의 이기심에 전우의 발목이나 잡으려는 제군들이 난 너무도 경멸스럽다. 하지만 무슨 욕을 해도 듣지 않을 것 같으니, 마지막으로 권하고 그만두겠다. 단언하겠다. 미로에 빠지면 죽는다. 너희가 어디에 있는지 모르기에 우리는 무시할 것이다. 그것은 분명 개죽음이고, 사제님은 너희에게 그 어떤 보상도 해 주지 않을 것이다. 사제님이 하려고 해도 본인을 비롯한 학원 도시의 중진들이 막을 것이다. 그러니 돌아가라.”
몽블랑은 혹여 마음을 돌릴까 하는 마음에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서 단언하겠습니다. 훈련 도중 죽는 사람은 절대 챙기지 않을 겁니다. 그러니 지금이라도 돌아가십시오.”
하지만 이미 마음을 다잡고 온 노병들은 흔들리지 않았고, 아흘라니는 화상으로 일그러진 얼굴을 구겨 버렸다.
그것은 분명 미소였다.
“그럼 슬리핑 포레스트에 온 것을 환영한다. 제군들. 미로에 빠지면 그냥 자살해라. 알겠나?”
“충!”
“지금부터 딱 30분의 여유를 주겠다. 그 안에 자신들이 맡고 있는 조로 돌아가 방금 들은 이야기를 전해 주고, 군영을 접어 군영 입구에 정렬해 있어라. 후에 돌아가려는 전우를 잡았던 놈은 내가 죽여 버릴 것이다.”
“충-!”
지휘관들은 급히 지휘부 막사를 빠져나가 달리기 시작했다.
몽블랑은 아흘라니를 바라봤다.
“저 안에 이 인원이 머물 수 있는 공간이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