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적의 사제-182화 (182/1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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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트 몰록은 근처의 주점으로 향했다.

그곳은 돈 있는 여행객들을 상대하는 고급 살롱이었다.

제 버릇 개 못 준다고 술을 마시는 데는 무조건 여자가 있어야 하는 반트 몰록은 ‘파르바티’란 술집의 단골이었다.

입구에 선 두 암흑가 조직원들의 인사를 받으며 안으로 들어간 반트 몰록은 자신을 발견하자마자 환하게 웃으며 다가오는 마담 ‘바네사’를 발견하곤 비실 웃었다.

“어머, 왜 이렇게 오랜만에 오셨어요.”

풍만하면서도 탱탱한 가슴이 팔뚝에서 뭉개지자 히죽 찢어지려는 입을 겨우 다문 반트 몰록은 슬쩍 미간을 좁혔다.

“겨우 사흘 전에 왔다 간 것으로 기억하는데?”

“겨우가 아니라 벌써죠! 제가 보고 싶지 않으셨어요?”

파르바티의 젊은 마담 바네사의 애교에 반트 몰록은 졌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마담 때문에 내 재산이 남아나질 않아.”

“피, 그러면 내가 먹여 살리면 되죠?”

“어이구, 됐다. 벼룩의 간을 빼먹지!”

반트 몰록은 바네사의 엉덩이를 힘껏 쥐었고, 깜짝 놀랐던 바네사는 싫지 않은지 반트 몰록에게 더욱 기대었다.

반트 몰록은 그런 바네사를 힐끔 보며 속으로 음흉하게 웃었다.

‘고년 참, 진짜 우물이라니까.’

고작 서른도 안 된 어린 나이에 이만한 규모의 술집을 가진 것은 둘째치더라도 밤일이 정말 엄청났다.

어쩌다 한번 밤을 보낸 후로는 이렇게 먼저 찾을 정도로 말이다.

‘원래 스무 살 이상은 상대 안 하지만, 마치 문어 빨판처럼 착착 달라붙으니…….’

반트 몰록은 질펀하게 노는 게 좋았다.

그런데 바네사는 괜히 마담이 아니라는 듯 정말 질펀하게 놀 줄 알았다.

“어서 방이나 안내해. 술은 알지?”

“그럼요~ 이리로 오세요.”

반트 몰록은 파르바티에서 가장 좋은 방으로 안내되었다.

족히 오십 명은 한꺼번에 놀 법한 커다랗고 화려한 방에 속옷만 놔두고 모두 벗은 채 앉은 반트 몰록은 바네사가 얼굴에 덮어 주는 따뜻한 천에 눈을 감으며 술 마시기 전의 서비스를 마음껏 음미했다.

깨끗이 씻기고 오늘 쌓인 스트레스가 죄다 사라질 정도로 온몸이 노곤하게 풀린 반트 몰록은 상기된 얼굴로 바네사가 모은 가슴에 고인 술을 후루룩 빨아 들였다.

그제야 파르바티에서 마시는 술판의 시작이었다.

짝짝!

“들어오렴.”

입고 있었던 옷 대신 아후라 산의 양털로 짠 최고급 가운을 입은 반트 몰록은 들어오는 음유시인들을 보다 눈을 번뜩였다.

“엘……프?”

뾰족하고 긴 귀가 아니라도 눈이 돌아가 버릴 미모에 반트 몰록은 흥분했다.

“피, 예쁜 여자 오니까 눈 돌아가는 거 봐.”

“커흠. 그럴 수밖에 없잖아.”

“쟤는 눈독 들이지 마세요. 다음 날, 시체를 끌어안은 채 깨고 싶지 않다면요.”

“뭐야? 그런 년이 왜 술집에서 일을 해?”

“고향으로 가는 여비를 벌려고 온 거예요. 아시잖아요, 엘프의 뛰어난 음악성에 대해서 말이에요.”

생전 진짜 엘프를 보지 못한 반트 몰록은 몰랐다.

“그, 그럼, 알지. 그런데 한번 가랑이 벌리면 여비는 충분히 벌릴 텐데?”

“제 아비가 저주를 걸어 버렸데요. 처녀를 상실하면 죽어 버리도록 말이에요.”

“뭐야? 그런 저주가 있었어?”

“자기가 우리 가게에 오기 전에 쟤랑 같이 들어온 엘프가 있었거든요? 그런데…….”

그 이상은 말하지 않아도 충분히 알아들을 수 있었다.

반트 몰록은 어이없다는 듯이 엘프를 바라봤다가 진한 아쉬움을 드러냈다.

“그런데 내가 오기 전이라…… 대체 어디까지 가기에 지금까지 있는 거야?”

“슬리핑 포레스트라고 했어요.”

“금지 중 한 곳인 슬리핑 포레스트?”

“네. 거기에 엘프 도시가 있다네요.”

순간 반트 몰록의 눈이 번뜩였다.

“도시? 엘프가?”

“그렇게 말하니까 그러려니 하는 거죠. 그런데 로드라는 존재가 있고, 오십만이 넘는 엘프들이 그곳에서 산대요. 아~주 깊숙한 곳에서요.”

“오십만!”

기함한 반트 몰록은 준비를 마친 건지 연주를 시작하려는 음유시인들에게 향해 손을 저어 멈추게 하였다.

“거기 엘프 이리로 와 봐라. 널 어찌하려는 것이 아니니 겁먹지는 말고.”

반트 몰록은 페니 다발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고, 엘프의 눈은 순간 번뜩였다.

엘프는 우물쭈물 경계하며 다가왔다.

“슬리핑 포레스트 안에 너희 엘프의 도시가 있다고 들었다. 진실이냐?”

“……네, 나리.”

“넌 그곳에 왜 가는 것이냐?”

“그, 그게…….”

반트 몰록은 페니 다발을 흔들었다.

“돈을 벌기 위해 가는 겁니다! 엘프 도시에서 나는 향신료와 찻잎을 가지고 카우트예 학원 도시와 거래를 하기 위해섭니다!”

“카우트예 학원 도시라?”

반트 몰록의 목소리에선 불쾌한 감정이 뚝뚝 묻어났다.

“돼, 됐습니까?”

슬그머니 돈에 손을 뻗는 엘프를 본 반트 몰록은 갑자기 모든 환상이 와장창 깨지는 느낌을 받았다.

‘결국 엘프도 돈에 벗어날 수 없다는 건가? 예쁜 것을 빼면 인간과 똑같은 것들이군!’

“몇 가지 더 물어보고, 한 가지를 권해 보마.”

“무, 무엇입니까?”

“엘프 도시의 인구가 몇 명이냐?”

“아, 아버지에게 듣기로 당신이 떠나오실 때까지만 하여도 칠십만은 족히 된다고 하셨습니다.”

“그, 그래? 그럼 다른 질문이다. 이야기처럼 엘프들은 모두 정령사에 마법사고, 기사이냐?”

엘프는 그 무슨 황당한 말이냐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인간도 재능이 있어야 정령사가 되고, 마법사가 되고, 기사가 됩니다. 엘프라고 다를 것은 없습니다. 다만 세계수의 축복에 정령사의 자질을 타고나는 아이들이 많을 뿐입니다. 다만…….”

“다만?”

“엘프 도시는 하이엘프만이 정령을 부릴 수 있고, 마법사나 기사가 될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나머지 일반 엘프들은…… 그리고 이야기 속 진실의 눈도…….”

상당히 놀랍고도 구미가 당기는 이야기였기에 반트 몰록은 더욱 집중했다.

“네 아비가?”

“네.”

“하이엘프의 숫자는? 그리고 거주지는?”

순간 엘프의 눈이 의구심을 머금었다.

“나, 나도 갑자기 상행에 대해 구미가 당겨서 말이다. 하이엘프가 그토록 권위가 높다면 그들을 피하거나 그들에게 선물을 줘야 할 것 아니냐. 모르고 가서 물어보는 것보다 알고 가는 게 낫지. 아니지. 너랑 같이 동업을 하면 되겠구나. 내가 돈을 대주마. 난 돈 빼곤 시체인 사람이다.”

“그래, 멜리나. 이분은 정말 돈이 많으셔. 여기 알버튼도 소일거리로 하실 새로운 사업이 없나 하고 들르신 거야.”

“……정말인가요?”

“6 대 4, 아니 8 대 2로 하자. 순 이익의 8을 네가 먹어라. 내가 자금을 대 주마! 엘프의 향신료와 찻잎을 독점 할 수만 있다면 얼마든지 줄 수 있다!”

“계, 계약서를 쓰시죠!”

“호오? 계약서도 아느냐? 좋다, 파트너가 원한다면 써야겠지. 단, 상행에는 나도 데려가야 한다는 항목을 넣을 것이다. 알겠느냐?”

“소, 손님도요?”

“내 나이가 벌써 40이 넘었다. 그런데 결혼은커녕 자식이 없지. 모두 돈만 밝히는 여자들 때문이었다. 하지만 듣기로 엘프는 한 남성에게 평생을 충성한다더구나. 엘프는 바라지 않는다. 하프 엘프라도 좋다.”

엘프의 눈이 경멸로 물들었다가 하프 엘프란 소리에 환하게 밝아졌다.

“그런 이유라면야……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허허허! 잘 생각했다. 그런데 가는 길은 아느냐?”

“아버지께서 상세히 설명해 주셨습니다.”

“그걸로는 부족한데…….”

“인간들에게 악명 높은 슬리핑 포레스트는 원래 엘프들의 땅입니다! 슬리핑 포레스트에 들어선다면 도시로 향하는 길이 열릴 것입니다! 그렇게 들었습니다.”

“호오~ 그렇단 말이지……. 알겠다. 내일 아침 내 저택으로 와서 짐 정리를 도와라. 서로 상의하여 출발할 날짜를 정하자. 이걸로 오늘은 푹 쉬어라.”

“가, 감사합니다! 그럼 내일 뵙겠습니다! 마담, 난 퇴근할 거예요!”

엘프는 페니 다발을 낚아채고는 그대로 달려 나갔고, 바네사는 찌릿 반트 몰록을 노려봤다.

반트 몰록은 아차 싶었다.

분명 잠자리를 가질 수 없지만, 엘프를 보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왔을 터였다.

“허허, 거참, 내가 실수했나 보군. 알았다. 내 돈을 주면 될 것 아니냐?”

“흥! 내가 돈 때문에 이러는 줄 알아요?”

“옜다.”

반트 몰록은 1만이라는 숫자가 적힌 페니 다발을 내려놓았고, 바네사는 순간 환하게 웃었다.

“자기, 최고!”

“허허허허허! 자자, 술이나 한잔 따라 보아라. 뭐 하느냐, 어서 연주를 시작치 않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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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호모로라는 짙은 호기심을 드러냈다.

“칠십만의 엘프라고?”

“예, 그중 전투원이라 할 수 있는 것들은 고작 일만밖에 안 된답니다. 마치 인간같이 고위층이 모든 걸 독식한 겁니다. 저도 나름대로 알아본 결과 진실로 드러났습니다.”

“어떻게 알아본 거냐?”

“세상엔 돈만 주면 제 어미 속옷 색깔을 말하는 놈이 수두룩합니다. 그런 놈들을 통해 몽블랑 예거 그놈의 도시에 사는 엘프들에게 확인해 본 것입니다. 또한 요즈음에 엘프 노예들이 시장에 돌았는데, 그 엘프들을 다른 노예 상인들에게 판 로토란 놈과 연락도 해 봤습니다. 엘프 노예 십여 명 정도를 데리고 있더군요. 그놈은 예전에 몽블랑 예거를 팔았던 놈입니다.”

알로호모라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아직도 살아 있느냐?”

“아예 그놈의 도시 안으론 들어가지 않는답니다. 몽블랑 예거 그놈이 노예매매를 싫어하기 때문에 북부에서 손가락만 빨던 중 그놈의 도시에서 힘줄이 잘린 엘프들이 추방되었고, 로토란 놈은 그걸 포획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저 혼자 다 삼키기가 힘들어 다른 노예상들에게 팔았다고 합니다.”

“좋구나, 좋아. 몽블랑 그놈을 샀던 놈이면 악연도 그런 악연은 없겠지! 네가 이제야 제대로 일을 해 주는구나!”

순간 반트 몰록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알로호모라는 심기가 뒤틀어진 것을 알아차렸지만, 무시해 버렸다.

‘흥, 네놈은 언제까지나 내 시종 노릇만 하면 되는 것이야. 내가 왜 네놈보고 혈정을 모아 오라 시키지 않은 것인데.’

모두 반트 몰록이 세력을 만들 수 없게 하기 위해서였다.

“그래, 검은 태양의 강림을 앞당겨 줄 그 머저리 같은 엘프 년은 언제 온다고 하더냐?”

“2시간 후쯤이면 올 것입니다.”

알로호모라는 마법 주머니를 꺼내 반트 몰록에게 던졌다.

“카모이안이나 다른 놈들 보고 이쪽으로 오지 말고 슬리핑 포레스트로 오라고 하여라.”

“……예!”

주먹을 파르르 떤 반트 몰록은 주머니를 낚아채 방을 빠져나갔고, 알로호모라는 코웃음을 쳤다.

“병신 같은 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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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스는 단장실에서 여러 서류를 검토하고 있었다.

지금 보고 있는 것은 각 나라의 지방별 숨겨진 특산물에 관한 서류였다.

“쿠할란 남부 작은 마을인 마린은 진주가 좋다? 쿠할란의 진주면 동부 메커 마을 아니었나?”

“요원을 직접 파견하여 알아본 결과 결코 메커의 진주보다 조금 높은 품질이라고 합니다. 다만 수확량이 희귀할 정도로 적어서 쿠할란의 귀족들 가운데서도 아주 소수만 알고 있다고 합니다.”

“그렇단 말이지. 이 정보 아드리아나 지부장에게 넘기도록 해.”

레벌의 동생인 르벌의 아들, 마르코는 미간을 좁혔다.

“어차피 넓어질 서부로 갈 귀네슈 아닙니까.”

“그 귀네슈는 지에르 것이 될 거다.”

“……귀네슈가 두 개로 갈라진다는 말입니까?”

“카우트예&귀네슈와 기존의 귀네슈로 갈라지는 거지. 현 귀네슈 상단주는 본 카우트예와 북부를 버릴 순 없어. 특히나 본 카우트예는 말이야. 그러니 다른 놈들에게 넘겨줄 바에는 차라리 아드리아나 지부장을 독립시키는 것이 나은 거지.”

“아,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마르코는 자신이 들고 있는 종이첩에 서류 번호를 메모 하였다.

게스는 다시 서류를 살폈다.

“여기 야생 아그레포 차나무가 자라는…….”

쾅!

게스는 갑자기 열리는 문에 얼굴을 와락 일그러트렸다.

“무, 물었습니다! 거북이1, 2가 먹잇감을 드디어 물었습니다!”

게스는 경악하며 벌떡 일어났다.

“정말이냐!”

“예! 알버튼 성문 경비에 위장 취업한 단원의 정보에 따르면 5분 전 코드명 꽃뱀, 메리나 단원과 거북이1, 2가 동쪽으로 떠났다는 것을 확인했다고 합니다!”

“……비상 걸어! 지금부터 거미둥지보다 더 촘촘한 거미줄을 깐다! 파하란에서 슬리핑 포레스트로 가려면 어차피 이곳 카쉬모프를 지나야 한다! 티끌만큼이라도 의심되면 미행을 붙여! 알았나!”

“예!”

“뭐 해! 움직여!”

후다닥!

게스는 다급히 몽블랑과 직통으로 연결되는 통신 수정구를 꺼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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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륙엔 절대 가서는 안 될 금지가 몇 곳 있다.

그중 한 곳이 바로 슬리핑 포레스트였다.

아흘라니를 비롯한 전 럴러바이를 탄생시킨 곳이자, 엘프들 사이에서 엘프 로드가 있다고 알려진 슬리핑 포레스트.

그곳은 몽블랑이 전장으로 낙점 지은 곳이었다.

“기사여, 잠들라…… 뭔가 몽환적이면서도 섬뜩한 말이네. 그런데 왜 기사지?”

“옛날엔 슬리핑 포레스트가 아니라 몬스터 포레스트라 불렸다. 그만큼 몬스터가 넘쳐났던 거지. 그런 몬스터 포레스트에 자신의 실력을 증명키 위하여 많은 기사들이 찾았다. 누가 가장 깊숙한 곳에 흔적을 남기냐, 그것이 당시 기사의 무력의 척도가 되었다고 한다. 그렇게 도전한 수많은 기사들이 몬스터 포레스트에서 나오지 못했다. 이후부터 한번 들어가면 영원히 잠드는 숲이라 하여 슬리핑 포레스트라 불리게 되었지. 그런데 방금 네가 한 ‘기사여, 잠들라.’라는 말은 그 이후에 생겨나게 됐어. 인간의 욕심이 부른 참사지.”

“……뭔지 알 것 같네. 유산이나 기연 같은 것을 말하는 거지?”

“맞아. 그 당시에 날고뛴다 하는 모든 기사들이 들어가 나오질 못했고, 그들의 유산이 그곳에 잠들게 되었지. 도둑, 모험가, 여행자, 마법사, 용병 등등 수많은 인간 군상들이 슬리핑 포레스트로 들어간 거야.”

“그리고 나오지 못했겠지.”

“그래. 그래서 ‘기사여, 잠들라.’,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기사의 유산을 노리는 자들이여, 숲의 미로를 헤매다 잠들어라.’라는 말이 나온 거야. 또 ‘기사여, 유산은 걱정 말고 편히 잠들라.’라는 말도 있어. 이 두 가지를 합쳐 ‘기사여, 잠들라.’라는 말이 된 거지.”

“그럼 그렇게 수많은 인간 군상들을 삼켜 버린 후에야 금지로 책정된 거야?”

“그 전에도 금지로 불리긴 했지만, 완전히 출입을 통제하기 시작한 건 그때부터지.”

“출입을 통제해?”

“그것도 옛날이야기야. 800년 전부터는 누구도 신경 안 써. 거짓말 조금 보태어 한 걸음만 내디디면 몬스터가 있지만, 숲 밖으로 쏟아져 나오는 것이 아니니까. 지금은 희귀한 약초나 마법 재료를 노리는 용병이나 마법사 들만 찾지. 그것도 숲의 초입 중 초입일 뿐이지만 말이야. 그 이상은 나이트의 칭호를 받은 자들이라도 힘들어.”

“그건 들었어. 그럼 내가 고르긴 제대로 고른 건가?”

“몬스터와 기괴한 자연환경만 뺀다면 그만한 전장도 없지.”

“숲의 미로는 언제부터 시작되는 거야?”

“글쎄? 듣기로는 초입 중반을 넘어서면서부터라던데? 그 초입 중반이라는 것도 닷새는 꼬박 걸어야 나온다지만 말이야. 몬스터도 그때부터 있지.”

“……엄청나네.”

“엄청나지.”

몽블랑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도망쳐서도 안 되고, 미로에 들어가게 해서도 안 돼. 오직 그 강림에만 신경을 쓰도록 해야 해.’

단 한 명도 남기지 않고 몰살시킬 생각인지라, 몽블랑은 그 어느 때보다 신중했다.

‘숲은 초입은 변수가 너무 많아. 어디가 좋을까…… 아, 이런 바보.’

최대한 카쉬모프에서 떨어트려 놓을 생각과 빽빽한 거미줄을 치는 데 좋은 장소만 생각했지, 정작 진짜 무대는 생각지 않았던 것이다.

그답지 않은 실수였다.

몽블랑은 아흘라니와 직통으로 연결되는 통신 수정구를 꺼내었다.

-예, 사제님.

“단장, 슬리핑 포레스트에서 훈련을 했다고 했죠?”

-예, 그렇습니다.

몽블랑은 자신의 생각을 털어놓았고, 아흘라니는 곰곰이 생각하다가 이내 눈을 번뜩였다.

-몇 군데 있기는 하지만 그 강림 때문에 다른 곳에 신경 쓰지 못하는 조건이 걸린다면 딱 한 군데 있습니다.

“어딘가요?”

-엘프 도시, 엘븐 가든입니다.

“……예?”

몽블랑이나 일행은 멍한 눈으로 아흘라니를 바라봤다.

“그, 그게 진짜 있어요?”

-……알고 슬리핑 포레스트를 무대로 삼으신 거 아니셨습니까?

“아뇨. 전 그냥 먹음직스러운 먹이를 던져 주기 위해서…… 그런데 정말이에요?”

-예. 일반적인 인간들의 도시와는 모양새가 좀 다르긴 하지만 성벽이 있고, 수십만의 엘프들이 하이엘프들의 통치 아래 몰려 사는 곳입니다.

“그렇게나 많다고요? 아니 그런 곳이 왜 발견되지 않은 거죠?”

-자급자족, 아니 하나의 사회를 완전히 이뤘기 때문입니다. 엘븐 가든은 황혼과 새벽의 전쟁 훨씬 이후에 지어진 곳입니다. 수천 년 전의 용마전쟁, 그리고 황혼과 새벽의 전쟁 이후 드래곤이란 배경과 살 곳이 사라져 인간들을 피해 만들어진 초기의 엘븐 가든은 드워프와 수인족, 하프 엘프 등의 이종족들을 노예로 부리며 그들만의 도시를 만들기 시작합니다. 모든 이종족들 가운데 엘프만이 유일하게 고귀한 존재라는 인식 때문이었습니다.

아흘라니는 엘븐 가든의 역사를 짧게 풀어 놓았다.

너무도 놀라운 그 이야기에 몽블랑과 일행은 당혹스러워졌다.

-결국 폭거를 일으킨 드워프는 슬리핑 포레스트 훨씬 안쪽으로 사라졌지만, 수인족과 하프 엘프, 호빗 족 등 이종족들은 아직도 노예로 삽니다. 이후, 드워프가 돌아올 것을 무서워한 엘프들은 바깥과의 완전한 단절을 선포하게 됩니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권력을 놓고 싶어 하지 않는 하이엘프들의 마음이 강하게 작용했겠죠.”

-그렇습니다.

“대체 이런 사실을 어떻게 아는 거죠?”

-……그들 엘프는 하이엘프 중에서 하이엘프를 로열 블러드라 부르고, 그 로열 블러드 중에서 엘프 로드가 탄생합니다. 그리고 저희 럴러바이는 마지막 훈련으로 엘프 로드를 비롯한 모든 로열 블러드의 암살을 명령받았었습니다.

몽블랑과 일행은 하얗게 질렸다.

-당시 마지막 훈련을 앞두고서 생존했던 저희의 숫자는 357명이었습니다. 서로 간의 경지는 큰 차이가 없었습니다. 저희는 야음을 틈타 엘븐 가든에 잠입했고, 3개월에 걸쳐 로열 블러드를 비롯한 하이엘프 70%를 암살했습니다. 그리고…….

아흘라니는 그때가 떠오르는지 말을 쉬이 잇지 못했다.

“단장을 포함해서 12명만 남게 된 거군요.”

-……그렇습니다. 죽어 간 345명, 훈련 내내 서로를 죽고 죽여야 했지만, 그래도 동료라 생각했습니다. 친구라 생각했고, 가족이라 생각했습니다. 저희는 저희를 그 되도 않는 지옥에 밀어 넣은 그들을 용서할 수 없었습니다. 최대한 공포스럽게 죽어 가길 원했습니다.

“……그래서 자장가가 나온 거군요.”

-죽음이 다가오는 공포. 소리는 들리는데 찾을 수 없을 때 일어나는 절망…… 저희는 사지가 찢긴 시신의 심장에도 검을 박아 넣고, 목을 잘랐습니다. 그렇게 세상에서 완벽히 지워 버렸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키웠음에도 감당치 못한 괴물들에게 몰살당한 것입니다.

“단장은 괴물이 아닙니다! 마르꼬네 씨도, 쿠잔 씨도, 루카스 씨, 벤 씨, 샤크 씨와 울브린 씨, 타일러 씨, 예렙 씨, 한나 씨, 제이미 씨, 트라운 씨 모두 괴물이 아니란 말입니다!”

“그렇소. 단장이 괴물이라니! 옛날의 럴러바이는 분명 공포였지만, 지금의 안단테는 세상 그 누구보다 든든한 친구이고 인생의 동반자요! 괴물을 친구로 삼는 자는 없소!

아흘라니의 눈이 잠시 흔들렸다.

그는 작게 웃었다.

-엘븐 가든을 무대로 삼았다면 길잡이를 위해서라도 저희가 먼저 떠나야겠군요.

몽블랑은 순간 망설였다.

엘프들이 얼마 전의 그 엘프들처럼 이기적이고, 권위적이라면 얼마든지 그러라 할 수 있었다.

-무고한 엘프가 죽어 나갈 것 같아 망설여지십니까?

“……예. 어쩔 수 없는 갈등이죠.”

-사제님, 방금 제가 말씀드렸을 겁니다. 엘프들은 다른 이종족을 노예로 쓰고 있다고 말입니다. 그건 하이엘프들만이 아닙니다.

“예? 그게 무슨…….”

-엘븐 가든에서 엘프를 제외한 이종족은 가축 이하의 존재입니다. 길을 가는 어린 엘프는 더러운 울프족을 보고 돌을 던집니다. 발정 난 사내 엘프는 빵으로 유혹해 캣족을 강간합니다. 호빗족의 어린아이가 부모가 구타당하는 모습에 반항이라도 하면, 목이 날아갑니다. 그런데 그렇게 핍박받고 억압받고 처절히 괴롭힘을 받는 이종족을 보고 동정심을 보내는 엘프는 단 한 명도 없습니다. 그들은 이종족을 보며 말합니다. 저건 가축 이하의 벌레다. 아버지는 자식에게, 자식은 또 그 자식에게 그렇게 가르칩니다.

“그런 개 같은! 어찌 인두겁의 탈을 쓰고 그럴 수 있단 말입니까! 수드라보다 더하지 않습니까!”

수드라는 마을만 들어가지 않으면 살아가는 데 지장은 없다.

비록 병 때문에, 독초 때문에, 강의 포식자 때문에 죽어 갈망정, 누군가에게 탄압을 받고 노예처럼 살아가진 않는다.

괴롭힘을 받지 않는다.

머리끝까지 화가 치솟아 몽블랑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그게 스스로를 고귀하다 말하는 엘프의 참 모습입니다.

“……단장, 절 속이는 것은 아닙니까?”

-아닙니다. 카우트예 님을 향한 제 신앙, 그리고 사제님을 향한 제 충심을 걸고 맹세합니다.

“……무대로 삼으십시오. 이 기회에 엘프들도 모두 치워 버립니다! 그리고!”

몽블랑은 여태껏 일분일초가 지옥이었을 이종족들이 이번 겁화에 휘말리지 않도록 꾀를 짜내었다.

-충!

통신 수정구가 꺼지자 몽블랑은 이를 아드득 갈았다.

그것은 일행도 마찬가지였다.

그중 제일 분노를 표출 하는 것은 샤크티였다.

수드라로 살았기에 엘븐 가든에서 부당함을 당하는 이종족들의 절망에 가장 공감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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