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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아악!”
“인성을 버렸으니, 네겐 죽음밖에 없다. 해적!”
르네의 넓은 칼날로 입을 찢어 버리며 뒤통수를 꿰뚫어 버린 세베루스는 관자놀이를 향해 날아오는 매서운 파공성에 서늘히 눈을 가라앉히며 르네의 손잡이를 놓고 몸을 숙였다.
도끼 한 자루가 머리 위를 스쳐 지나가자 세베루스는 몸을 일으키며 오러가 가득 담긴 손을 쳐 올렸다.
퍼석!
세베루스는 다시 르네를 잡아 뽑아내며 몸을 비틀었다.
카앙!
르네의 날이 비스듬히 솟구쳐 오르며 기회를 노려 공격해 오는 해적의 불뚝한 배를 갈라 버렸다.
촤아악!
내장이 쏟아져 내리는 것을 보던 세베루스는 급히 자리를 이탈했다.
그 순간 세베루스가 있던 자리에 검은 불덩이가 격돌하며 터졌다.
세베루스는 일백여 명의 해적들에게 둘러싸여 입술을 달싹이는 사제를 보며 비릿하게 웃었다.
“이 세베루스가 그리 쉬워 보이더냐! 다 어디 가고 네놈 혼자만 있는 것이냐! 네놈의 동료들을 더 불러 오라!”
우웅!
르네의 칼날에 화염과 같이 넘실거리는 오러 블레이드가 솟고, 그의 양발에도 오러가 감싸졌다.
“마, 마스터-!”
해적들의 얼굴이 시퍼렇게 죽어 갔다.
“더 데려오지 않으면 죽음밖에 없을 것이다!”
콰앙!
땅거죽을 폭발시키며 한 줄기 빛살이 된 세베루스는 원진을 그린 해적들에게 달려들며 르네를 강하게 휘둘렀다.
“피, 피해!”
고작해야 상단이나 어부 들을 털어먹고, 해안가나 약탈하는 해적일 뿐이었다.
그런 것들이 완숙한 마스터의 오러 블레이드를 막아 낼 수는 없었다.
반사적으로 세운 무기들을 수숫대를 가르는 것처럼 잘라 버리며 궤적 안에 걸리는 그들의 몸까지 모두 이등분으로 갈라 버렸다.
떠엉!
뒷발이 올려치며 르네의 칼날이 또다시 두 명을 살육하고, 오러 블레이드가 감싼 뒤꿈치가 한 해적의 머리를 부숴 버렸다.
떠엉! 떵! 떠엉!
결코 멈추지 않는 잔혹히도 아름다운 살육의 춤사위가 펼쳐졌다.
그렇게 춤판을 벌여 가던 세베루스는 순간 오싹해지는 기분에 급히 방어로 돌아섰다.
꽈앙!
“큽! 하하핫! 해적 놈 주제에 제법…… 샤크티?”
세베루스는 고양이처럼 땅에 착지하는 샤크티와 화염의 고리가 목에 씌워진 해적들과 사제를 보고는 그들 너머의 숲을 바라봤다.
자박자박 발소리를 내며 걸어 나온 몽블랑은 화염의 고리를 목에 찬 채 안절부절못하는 사제의 머리통을 잡으며 조용히 읊조렸다.
“카우트예의 축복.”
파아앗!
“크악! 끄아아아악!”
몽블랑은 검은 기류를 뿜어내며 바닥을 구르는 사제를 무시한 채 세베루스에게 다가갔다.
세베루스는 사제의 변화를 관찰하는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저거 하나뿐이야?”
몽블랑은 세베루스에게 확인하다 시피 물었다.
“추적해 왔지만, 결국 한 명뿐이었다. 몇 명이나 정화시켰냐?”
“대략 삼백 명 정도? 한 무리당 많아야 다섯 명 정도였어. 뭔가 이상해.”
“진리안이나 다른 정보 단체에서는?”
몽블랑은 고개를 저었고, 세베루스의 얼굴은 심각해졌다.
“결국 뭔가를 느끼고 도망쳤다는 거로군.”
“아마도 그렇겠지.”
“블랑, 어떻게 할까요?”
“없애 버리세요. 인세에 쓸모없는 것들입니다.”
“네.”
트리샤가 허공에 손을 들어 주먹을 움켜쥐는 시늉을 하자 해적들의 목을 감쌌던 불의 고리가 급격히 좁혀지며 살이 타는 역한 냄새가 퍼져 나갔다.
몽블랑은 살려 달라 외치고 고통에 절규하는 비명을 가벼이 무시했다.
몽블랑은 정신을 차리는 듯한 사제를 바라봤다.
“……허억! 사, 살려 주시오! 제발 살려”
“죽여요.”
“네.”
사제의 목에 씌워져 있었던 불의 고리도 좁혀졌다.
“크아아아악!”
세베루스는 미간을 좁히며 몽블랑을 바라봤다.
“왜냐, 해적은 원래부터 그런 놈이라지만, 사제는 세뇌당한 거잖아?”
“정신을 차리고 난 후 참회가 아니라 제 목숨부터 구걸한다면 결국 해적과 다를 게 없는 놈이란 소리야. 그딴 놈은 채석장도 아까워.”
“……너도 너무 많은 피를 봤구나.”
“그런 거지.”
씁쓸히 웃는 몽블랑에게로 샤크티가 두 개의 검붉은 구를 가져왔다.
“두 개뿐이였어?”
“네, 주인님.”
“없애 버려.”
말이 떨어지자마자 샤크티의 양손에서 솟아 오른 검은 기류가 검붉은 구를 삼켜 버렸다.
검은 기류가 사라진 후, 샤크티의 손바닥 위엔 아무것도 없었다.
칭찬을 바라는 눈으로 바라보는 샤크티의 머리를 쓰다듬으려 했던 몽블랑은 갑자기 샤크티의 눈매가 날카로워지더니 수풀을 항해 단검을 던져 버리자 혀를 차며 전투태세를 감추었다.
카앙!
“크윽! 빌어먹을, 어린것이 더럽게 강하네! 어이 잠깐! 잠깐! 비무장으로 나갈 테니까 공격하지 마!”
바스락! 바스락!
몽블랑은 수풀을 헤치며 걸어 나오는 낯설지 않은 얼굴의 두 기사에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트리샤의 얼굴은 한껏 굳어 있었다.
두 기사 중 한 명은 능글맞게 웃으며 트리샤를 향해 한 손을 들어 올렸다.
“여~ 자밀 아가씨, 서점은 잘돼 가?”
그들은 예전에 트리샤를 잡으러 메조른의 왕도 메조르니아에 왔었던 제국 황궁근위기사단의 일원인 마틴과 루터였다.
“경들이 왜?”
몽블랑은 황급히 입을 막으며 자신을 보는 트리샤보다 사지가 꺾이고 입이 뭉개진 채 루터의 손에 머리채가 휘감겨 끌려오는 사제에게 더 눈길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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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닥타닥 타오르는 모닥불을 중심에 두고 양쪽으로 마주하며 앉은 몽블랑은 루터를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제국 정보국이 협력하겠다? 왜?”
“왜겠어, 당신 때문이지. 새로운 폐하께선 장수에 아주 관심이 많거든. 그래서 당신의 일에 협력. 알겠지? 이야, 당신 찾는 데 정말 엄청 뺑이 쳤어. 그렇게 빨리 이동할 수 있었던 이유가 뭐야? 역시 텔레포트?”
“……정보국 요원이었군요.”
“정답! 정식으로 소개하자면 제2정보국 잠입 전문 요원 루터 크라잉이지. 아, 루터란 이름은 코드명이니까 그렇게 알아. 여기 똥 폼 잡고 있는 놈은 마틴 트러스, 제2정보국 잠입 전문 요원이야. 이렇게 말 없는 놈은 3정보국으로 가야 하는데 말이야. 그래도 실력은 진짜니까 피해는 주지 않을 거야.”
“날 어떻게 찾은 겁니까?”
“방금 뭘 들은 거야? 우리 새로운 폐하께서 당신한테 관심이 많다니까? 감시를 붙이는 건 당연하잖아.”
“그러니까 어떻게 찾았냐고 묻잖아.”
자신의 행적이 전혀 모른 사람에게 감시당한다는 것은 결코 기분 좋은 일이 아니었다.
얼굴이 일그러지는 몽블랑을 보며 능글맞게 양팔을 든 루터는 손가락으로 트리샤를 가리켰다.
“아후라에서 구한 정령석 원석 가지고 있지? 그걸로 지금 차고 있는 고대의 아티팩트를 강화시켰을 거고?”
트리샤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리며 몽블랑에게로 향했다.
“나, 난…….”
“알아요. 트리샤의 잘못이 아니에요.”
루터는 당황하는 트리샤를 보며 반사적으로 무어라 속을 뒤집는 말을 하려고 했지만, 목숨은 소중한 것이었기에 입을 꾹 다물었다.
“그래서 갑자기 해적 놈들과 사제들을 없애고 다니는 이유는 뭡니까?”
여태껏 침묵하던 마틴이 입을 열었다.
몽블랑은 잠시 고민했다가 이내 털어놓았다.
지금은 아기 손이라도 더 필요한 시기였다.
“검은 태양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발할라, 로도스네, 카우트예 등 몰락한 고대 교단들의 경전에도 나와 있지 않고, 현 5대 교단의 경전에도 나와 있지 않은 놈이죠. 다만, 루나의 세페리안이 그놈의 봉인이 풀리면 일곱의 재앙이 퍼지고, 대륙은 어둠에 휩싸인다고 하였습니다. 이후 세페리안은 더 이상의 언급을 하지 않았죠. 그 말인즉…….”
“마계의 마황이나 마신에 준하는 존재란 뜻이군요. 미래를 예견하는 세페리안이 말하였다면 그건 세페스가 말했다는 것일 테니까요. 본디 신은 아니지만, 미래의 신인 세페스가 입을 다물었다는 것은 결국 검은 태양이란 것을 두려워한다는 것…….”
마틴의 얼굴이 한껏 굳어 갔다.
갑자기 이야기가 전설로 치닫고 있었다.
이런 식의 이야기는 결코 마틴이 생각하던 주제가 아니었다.
차라리 몽블랑이 카만과 율리나의 사제 숫자를 줄이기 위해 그들을 학살하고 다니는 게 더 신빙성이 있었다.
하지만 앞에서는 성자지만, 뒤에서는 신의 아바타라 불리는 몽블랑이었다.
진실일 확률이 90% 이상이란 소리였다.
“하, 씨발. 이야기가 갑자기 영웅 소설이 되어 버리네. 그럼 저 인간을 데려온 게 잘한 일이야?”
루터는 모닥불 근처에서 몸을 말고 자고 있는 카만의 사제를 가리켰다.
“어디론가 도망치려는 모습을 보이기에 일단 제압해서 끌고 왔는데 말이야.”
카만의 사제는 일종의 뇌물이었다.
“잘한 일입니다. 아주 중요한 단초가 되어 줄 거예요. 이 일의 주범인 알로호모라에게로 가는 길을 알려 줄 테니까요.”
카우트예의 축복에 정신을 차린 사제는 자신이 어디로 가는지 말해 주었다.
“역시 카우트예인가…….”
모이기로 한 곳은 카쉬모프의 알버튼 광산 마을이었다.
알버튼 광산 마을에서 카우트예 학원도시까진 겨우 여드레 정도밖에 안 걸렸다.
등잔 밑이 어둡다에 제대로 당한 것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드러나 버린 이상 알로호모라는 잡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반 토막 난 파하란에서 돌아갈 사제들을 경로를 생각하면 거의 3개월이 넘는 여정, 아직 시간은 많았다.
“아직 어떤 보고도 들어오지 않은 것을 보면, 알로호모라가 조용히 있다는 뜻인데…….”
“아마도 세뇌한 사제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겠지. 강림 의식에 필요한 혈정이 부족할 테니 말이야.”
강림 의식, 혈정, 그 모두 헌트 바슘에게 들은 것이었다.
“알버튼의 인구가 십만이랬지?”
“지금은 약 이십이만. 카우트예 학원, 병원이 들어서면서 사람들이 모이고 있는 실정이지. 우리 측에서도 사업을 확대하고 있고 말이야.”
“응? 우리 도시는 안 오던데?”
“일부 학자들이 네가 원하지도 않는데 학원 도시에 입성한다는 것은 결국 네게 폐가 될 것이라는 말을 퍼트렸다. 귀족들과의 관계를 들먹이면서 말이야. 네 도시가 직할령으로 바뀐 후부터 그런 현상이 두드러졌을 거다.”
카쉬모프만 해도 80% 가까이의 백성이 카우트예의 신도였다.
카우트예의 신도들의 특징은 절대 몽블랑에게 폐가 되는 일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들은 몽블랑의 부름이 있기 전까지 기회의 땅이 된 학원도시로 가지 않기로 하였고, 또 주위 사람들이 가려고 하면 극구 말리기까지 했다.
몽블랑은 이해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나도 그것 때문에 백성을 불러 모으는 게 조금 거슬리긴 했지. 하지만 이제 곧 독립국으로 바뀌니 사정은 달라지겠지.”
“그렇지. 북부가 모두 네 것이 될 테니까.”
“네 것도 있거든?”
“절대로 거부할 거다! 난 계승 작위만 있으면 돼! 귀찮게 영지를 운영할까 보냐!”
“전하가 명령하면 넌 따라야 하는 거야. 네가 나한테 귀의한다고 해도 난 네게 그 땅을 맡길 거고. 북부는 내가 혼자 커버하기가 불가능해. 딴 나라를 가도 마찬가지일걸. 아니, 받아 주기는 하려나?”
외교 문제도 있었지만, 세베루스와 몽블랑을 비교했을 때 더 가치 있는 사람은 몽블랑이었다.
즉 몽블랑이 한마디만 흘린다면 세베루스는 다시 귀환해야 하는 것이었다.
“빌어먹을!”
낄낄 웃은 몽블랑은 트리샤를 바라봤다.
트리샤의 두 눈은 갈 곳을 찾지 못한 채 흔들리고 있었다.
그녀는 몽블랑의 눈과 마주치지 못했다.
“잠깐 이야기 좀 나눌까요?”
“……네.”
몽블랑은 근처의 꽤 큰 못으로 향했다.
못은 달빛이 고즈넉하게 비추고 있었다.
한겨울 추운 바람이 수풀이 흔들리는 소리와 함께 두 사람을 편안히 감쌌다.
볼을 헤집는 추위에 몽블랑은 옷깃을 살짝 세우며 둔덕에 앉았다.
트리샤는 죄인이라도 된 것처럼 고개를 숙인 채 조심스레 앉았다.
“본명을 말해 줄래요?”
“……트리샤 드 자밀 알타이른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