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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각국 전하들의 의견을 듣고자 자리를 마련하였습니다. 고견들을 말씀해 주십시오.”
라리우스 공작이 앉자 7국의 왕들은 생각에 잠기었다.
몽블랑이 도착하기 사흘 전 라리우스 공작을 통해 한번 들었음에도 여전히 결정하기 어려운 문제였다.
라르세리아 대륙의 누가 보아도 7국 연합이 마음만 먹으면 알타이른을 멸망시키는 건 불가능한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얻을 것이 많지 않다는 게 문제였다.
-본 메조른은 정전협상에 찬성하네. 애초에 알타이른의 대륙 일통을 막고자 참전한 것이니 말이네. 셈하자 왕은 어떠신가?
-일단 본 라자르 황가가 깃발을 꽂은 곳까지 영토를 내놓는다면 협상에 응할 용의가 있소.
셈하자는 이미 옛 아후라 제국의 영토 대부분을 수복한 것에 꽤나 만족해하고 있었다.
왕국의 영토가 반배 이상 불어난 것도 모자라 아후라에 가장 부족한 곡식이 자랄 수 있는 평야와 초지를 대량으로 얻었으니 지금 전쟁을 끝내도 상관없는 것이었다.
그것도 있지만, 이번 전쟁에 꽤나 많이 죽었는데도 아직도 삼백만이 넘게 남은 수드라의 군대 아 힐 라우니 칼 르아를 유지하는 것이 슬슬 벅차기 시작한 것이다.
-유페니언은 어떻소?
-본인도 서남부를 내준다면 상관없소이다. 루타니아와 쿠할란은 어떻소?
-만족스러운 배상금만 내놓는다면 본 루타니아는 상관없소.
-본 쿠할란 역시 마찬가지예요. 알타이른에서 배상금을 내놓는다면 본국이 점령한 제국의 서부 해안가를 유페니언에 매각할 용의가 있어요.
-아, 그건 본 루타니아도 마찬가지요. 본국이 점령한 북부 영토를 아후라에 매각하겠소. 대가로 아후라 왕국의 동북부를 주어도 상관없소.
그들의 말에 셈하자와 유페니언의 왕의 얼굴이 함지박하게 벌어졌다.
특히 셈하자는 제국 북부의 영토를 얻을 수 있다면 아후라 왕국의 몇 개 없는 곡창지대인 동북부, 아니 동부 전체까지 내줄 수 있었다.
그런 그들은 파하란을 배제한 채 상의하고 있었다.
파하란의 귀족들은 그것을 보며 분개하고 있었고, 그들의 그런 모습은 각국의 왕들에게 여실히 보였다.
가르티안은 나른히 웃었다.
-그러고 보니 파하란도 있었군. 여보게, 밀라노 후작. 배상금을 넉넉히 줄 테니 파하란의 중부부터의 땅을 본국에 매각하는 것이 어떤가? 내 값은 넉넉히 쳐주겠네.
“그, 그런!”
-싫다는 겐가?
가르티안의 눈이 매서워졌다.
그 눈은 꽤나 많은 것을 말하고 있었고, 각국의 왕이 침묵함에 파하란의 새로운 왕으로 추대될 밀라노 후작은 급히 자국 귀족들을 바라봤다.
그러나 그들이라도 딱히 대안이 있을 리 없었다.
여기서 욕심을 드러낸다면 마화포의 포구가 자신들의 영토를 향해 겨눠질 테니 말이다.
“그, 그러겠습니다. 가르티안 왕.”
-오, 고맙구먼. 내 약속대로 값은 넉넉히 쳐주겠네. 그럼 모두 정전에 임의적으로 합의한 것이오?
-우리가 원하는 만큼 내놓지 않는다면 다시 진격해야겠지만 말이오.
각국의 왕들은 모두 동의를 했고, 가르티안은 라리우스 공작을 바라봤다.
-공작과 셈하자께서 날짜를 잡아 주시오. 그동안 본국은 이번 전쟁에 쓰인 금액을 산출해 보도록 하겠소.
-알겠소. 가르티안 왕.
“예, 전하!”
몽블랑은 그러며 화면이 끊기자 의아해했다.
“야, 날 왜 오라고 한 거냐?”
“너도 지휘관 중 한 명이잖아. 그런 거겠지.”
“그런가?”
몽블랑이 그렇게 세베루스와 대화하는 사이 귀족들은 지휘부 막사를 나서기 시작했다.
“성자는 잠시 기다려 주시게. 그리고 카쉬모프와 관련된 일도 있으니 세베루스 경도 남아 주게나.”
몽블랑과 세베루스는 의아해하며 라리우스 공작의 옆에 앉았다.
라리우스 공작은 몽블랑을 보며 대뜸 축하한다는 말부터 전했다.
“전하께서 이번에 성자의 도시를 독립자치령으로 인정하신다고 하셨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본국의 북부 전체를 카우트예 교단에 양도하신다고 하셨네.”
몽블랑과 세베루스는 경악하며 벌떡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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촤악! 촤악!
남쪽을 향해 뻗어 나가는 커다란 군선 위, 알로호모라는 이를 뿌득뿌득 갈고 있었다.
“빌어먹을 에스키야! 빌어먹을 루타니아!”
알로호모라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1천여 척의 배가 이젠 300척도 남지 않았다.
십만여 명을 자랑하던 검은 태양에 감화되었던 카만의 사제들도 이제 고작 삼만여 명밖에 남지 않았다.
모두 에스키야가 바닷속으로 끌고 들어가서였다.
그리고 에스키야의 진군에 놀라 따라왔던 루타니아의 해상함대 때문이기도 했다.
“너무 화내지 마십시오, 알로호모라 님. 그래도 꽤나 만들지 않았습니까.”
반트 몰록은 성인 주먹만 한 검붉은 수정구를 보였다.
“닥쳐라, 반트! 역시 네놈은 평생 이인자나 할 놈이다!”
알로호모라의 호통에 황급히 고개를 숙인 반트 몰록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내 나이가 지금 몇인데!’
반트 몰록은 수하들이 다 보고 있는데 혼내는 모습에 깊은 짜증을 느꼈다.
“내게 많은 수하들이 있어야 곧 강림할 검은 태양이 날 무시 못 하지 않겠느냐! 그런 것도 모른다니! 역시 네놈은…….”
“죄송합니다. 제가 생각이 짧았습니다, 알로호모라 님.”
반트 몰록은 두 눈에 살의를 담으며 더 깊이 고개를 숙였다.
자신의 말이 끊김에 정신을 차릴 수 있었던 알로호모라는 순간 자신이 잘못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런, 저것들이 보는 앞에서 혼내면 안 되는 것을…….’
아무리 자신이 막말을 했다지만, 반트 몰록은 자신의 오른팔이자 자신을 구해 준 고마운 존재였다.
더욱이 2인자이기까지 하니 결코 이렇게 수하들이 보는 앞에서 혼내어선 안 되었다.
하지만 이미 늦어 버렸다.
알로호모라는 그래도 사과를 하려다가 멈추었다.
‘이 기회에 이놈의 영향력을 줄여 놔야겠어. 그래야 후에 내가 차지할 땅이 더 많아지지!’
“흥! 썩 꺼져라!”
“예, 알로호모라 님.”
반트 몰록이 시무룩 어깨를 늘어트리며 멀어지자, 또 그 모습이 안쓰러워 혀를 찬 알로호모라는 애써 무시하며 바다를 바라봤다.
“이놈들이 스튁스의 물길만 알았다면 제국의 북부를 쓸어버릴 수 있었을 것인데, 에잉. 어느 세월에 알타이른으로 간단 말인가.”
알로호모라는 지금쯤 한창 전쟁을 하고 있을 그곳에서 나머지 제물을 모으기로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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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상 테이블이 만들어지고, 정전협정이 이뤄졌다.
알타이른은 이번 협정을 맺으며 정말 많은 것을 내놓아야 했다.
영토의 반을 비롯해 천문학적인 액수의 막대한 보상금까지, 알타이른 제국은 한 30년 정도는 빈곤하게 살아야 할 정도가 되었다.
이뿐만 아니라 목숨을 무시당한 병사들을 더 이상 생산해 낼 수 없게 하였고, 기술력 발전도 상한선을 두었으며, 보유 병력 역시 대폭 축소시켜 버렸다.
그뿐만 아니라 많은 것에 제약을 걸고, 알타이른 제국은 100년 퇴보한 것과 다름이 없게 되어 버렸다.
이번 전쟁에 중요 실력자들과 기술자들이 많이 죽어 나갔다는 것도 한몫했다.
이를 끌어내기 위해 협상단은 거의 두 달에 걸쳐 협상을 진행하였고, 트로이는 7국 연합에 완전히 굴복하며 수치로 가득한 황좌를 지킬 수 있었다.
그런데 수치 가득한 황자라 생각하는 것은 7국 연합일 뿐 당사자인 트로이는 오히려 좋아했다.
이번 전쟁을 통해 많은 귀족들이 죽어 나갔다.
또, 황제 일파와 트리스탄 일파도 모두 숙청했고, 적이 될 만한 귀족들까지 모두 제거했다.
그 적이 될 만한 귀족들은 황녀들이 시집간 가문이고, 그녀들의 외가였다.
이렇게 되다 보니 귀족의 숫자가 절대적으로 부족하게 되었다.
하지만 오히려 이건 그에게 좋은 일이었다.
땅을 많이 차지할 수 있으니 말이다.
트로이는 그 자신의 권세와 권좌만 바랄 뿐, 백성은 전혀 생각지 않는 실패한 황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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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정전 협정이 끝을 맺었는데도, 루타니아와 쿠할란을 제외한 나머지 나라들은 병력을 뒤로 물리지 않았다.
자국의 귀족들이 자리를 잡을 때까지 새로이 만들어진 국경을 지키려는 것도 있지만, 이제부터가 7국 연합 간의 진정한 협상인 것이었다.
루타니아와 쿠할란 역시도 병력은 복귀시키되 협상 전문가는 남겨 둔 상태였다.
“국경은 이렇게 합시다.”
“어허, 그러면 너무 직선이지 않소. 사람이 좀 유들유들 해야지요. 이렇게 물결선으로 합시다.”
“메조른의 암브로시아 후작, 본 유페니언과는 이렇게 합시다. 푸리안 평야를 넘겨주시오. 그럼 더 이상의 국경 확장은 그만두겠소.”
“아니, 그만한 땅을 차지하였으면서도 대륙에서 열 손가락 안에 드는 곡창지대인 푸리안을 모두 넘겨 달란 말입니까? 아니 되는 말이오.”
아후라의 브라만인 하맛드, 메조른의 재상인 암브로시아, 유페니언의 재상인 오리취 후작은 커다란 지도를 놔두고 이리저리 선을 긋고 있었다.
거기엔 조금이라도 덜 뺏기고 싶은 파하란의 귀족도 있었다.
루타니아와 쿠할란은 땅을 넘기는 대신 받아야 할 것을 최대한 확보하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었다.
본격적인 국경 가르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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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블랑은 안 피우던 시거까지 뻑뻑 피워 대며 무릎 꿇고 손들고 있는 루시아를 노려보고 있었다.
분명 성인 여성에다 한 남자의 연인이기까지 한 그녀에겐 굴욕적인 벌이지만, 루시아는 아무 말도 못하고 고개만 숙이고 있었다.
지은 죄가 있으니 겸허히 받아들인 것이었다.
그런 루시아의 옆에는 세실리아도 똑같은 모습으로 벌을 서고 있었고, 세베루스는 입술을 이죽거리고 있었다.
“어허, 팔 내려오지?”
“히잉, 큰오빠.”
“씁! 곧 결혼할 귀족 아가씨가 어디에서 뭘 어쩌고 저째?”
“하지만 곧 분가할 신생 알렉소 가문의 땅이 될 곳이라…… 가문의 안주인으로서…….”
“마루더즈 불러와. 오늘 대련 한번 진하게 해야겠다.”
“드, 들게!”
남매의 대화에 피식 웃은 몽블랑은 슬그머니 팔을 굽히는 루시아를 째려봤다.
“씁! 팔 내려오지!”
“히잉, 오빠.”
“콱!”
“오빠아, 응? 루시가 잘못했쪄요! 다시는 안 그럴게요!”
“허쭈? 그 위에 나무통 올릴까?”
“오빠야, 응? 오빠.”
오빠란 단어가 왜 이리 달콤하게 들려오고, 루시아의 파르르 떨리는 팔이 어찌 저리 안쓰러운지, 몽블랑은 약해지는 마음에 머뭇거리다 한숨을 내뱉을 수밖에 없었다.
역시 이길 수가 없었다.
“내려.”
“고마워요, 오빠!”
“한 번만 더 그래 봐라! 아주 그냥!”
“에헤헤헤헤.”
몽블랑은 자신의 품에 안겨 머리를 비비적거리는 루시아의 행동에 졌다는 듯 또 한숨을 뱉으며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넌 왜 내려!”
“하, 하지만 루시는…….”
“루시는 루시고!”
“우잉! 나 운다? 나 정말 운다?”
“그러면 마루더즈가 신혼 첫날밤에 신혼방에 못 들어가겠지.”
“우씨! 오빠!”
몽블랑은 두 남매의 언성이 높아지자 얼른 루시의 손을 잡고 방을 빠져나갔다.
“수고해.”
“블랑 오빠! 루시! 이 배신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