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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꺄아아악! 사, 살려 주세요!
-크흐흐. 누가 죽인데?
-서걱! 푸욱! 푹!
-으아아앙! 컥!
여자는 일곱 살 이상이라면 머리채가 끌려 나가 길거리에서 겁탈을 당했고, 남자는 어린 아기라도 창에 꿰뚫려 죽어 버렸다.
눈이 돌아 버린 병사는 금목걸이를 목에 걸고서 희희낙락 웃었고, 아기의 머리만을 꿰뚫은 창을 든 병사가 가슴을 펴고 돌아다녔다.
인세에 지옥이 펼쳐졌다.
제국군에 침투한 첩자가 보내는 영상에 몽블랑은 입술 사이로 피가 흐르는 줄도 이를 갈았다.
“이 개새끼들!”
쿠웅!
수정구가 부서져 내리며 자단목의 탁자에도 금이 갔다.
격하게 숨을 몰아쉬던 몽블랑은 겨우 마음을 진정시키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가르티안 왕, 카쉬모프 자작, 라리우스 공작 등 메조른 왕국의 왕과 최고 귀족들이 핏발 선 눈으로 이쪽을 보고 있었다.
왕과 귀족으로 살아오며 때론 잔인한 명령을 내려야 했던 그들로서도 차마 마음을 다스리기 힘든 참상이었던 것이다.
“파하란의 왕은 정말 개새끼입니다! 군대가 필요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무엇 때문에 국민의 혈세로 그들을 먹이고 무장시킨단 말입니까!”
모두 자국민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단 한 명의 백성이라도 지키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군대였다.
하지만 파하란의 새로운 왕은 병력을 왕도 근처로만 집중시켰다.
말로는 제국군을 일거에 몰아쳐 없앤다는 것이었지만, 유페니언 왕국이 오기까지 시간을 벌려는 수작이었다.
겨울 사이 파하란에선 한 번의 내전이 일어나고 두 번의 왕이 바뀌었다.
파하란 왕국군만으로 제국군을 물리치겠다던 벤틀리 왕은 메조른과의 화친을 주장하는 첫째 아들 메르드세에게 독살을 당하였다.
왕좌를 차지한 메르드세는 제 형제들과 귀족들을 숙청하며 피의 바람을 일으켰다.
겨우 왕궁에서 도망친 벤틀리 왕의 여덟 번째 자식이자 4왕자인 친유페니언의 프랑코츠는 숙청당하기 시작하는 귀족들을 규합하여 내전을 벌였고, 끝내 왕이 되었다.
왕이 된 프랑코츠는 메르드세를 따르던 귀족들을 숙청하는 한편, 유페니언 왕국에 사자를 보내 동맹 협정을 맺으려 하였다.
그런데 메조른 왕국에는 사자를 보내지 않았다.
프랑코츠도 벤틀리 왕처럼 반메조른의 성향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사자를 보내기만 한다면, 알타이른 제국의 대륙 일통을 막기 위해 바로 원군을 파병시켜 줄 메조른이건만, 프랑코츠는 아예 메조른을 배제시켜 버렸다.
지금도 파하란의 사자는 유페니언 왕실과 동맹 협정을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었고, 유페니언 왕실은 그런 사자의 말에 조금씩 귀를 기울이기 시작하고 있었다.
파하란 다음은 유페니언이라는 말이 유페니언 왕국의 왕인 아우구스투스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 같았다.
거기다 많은 영토와 돈을 약속하니, 아우구스투스가 곧 동맹 협정을 맺을 것이란 게 서드아이나 다른 정보 단체의 분석이었다.
파하란 왕국의 왕 프랑코츠는 유페니언 왕국의 원군을 기다리며 전선을 왕도 근처까지 물린 것이었다.
그 때문에 수많은 백성들이 알타이른 제국군에 유린당하고 있는데도 프랑코츠는 전선을 위로 올리지 않고 있었다.
굳이 프랑코츠의 생각이 무엇인지 조사할 필요는 없었다.
모두 자기를 지키기 위한 가진 자의 이기적인 생각일 테니 말이다.
가르티안이나 거두 귀족들은 몽블랑이 터트리는 울분에 이를 갈았다.
그들이 생각해도 프랑코츠는 정말 개새끼였던 것이다.
-대신들에게 묻겠네. 그대들은 파하란 왕실이 도움을 요청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원군을 보내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가르티안의 말에 라리우스 공작이 자신의 소견을 밝혔다.
-파하란이 무너지는 것을 방조해서는 아니 되옵니다, 전하. 파하란의 해안이 저들의 손에 떨어지는 순간 본국을 비롯한 동부 왕국을 유린할 바닷길이 열리게 되옵니다. 그것을 막아야 하옵니다.
알렉소 백작이 입을 열었다.
-하나, 명분이 없습니다, 각하. 본국이 먼저 출병을 하게 되면 아후라, 루타니아, 쿠할란은 동조해 주지 않을 것이옵니다.
-명분은 이미 있소, 알렉소 백작. 카우트예 학원도시에 쳐들어온 이안노프 백작외 제국군들이 바로 그것이오. 알타이른이 지금은 침묵하고 있으나, 결코 좌시하지 않을 것이오. 본국에서 파견한 사자를 만나지 않은 것을 보면 모르는 것이오?
-알고 있소이다, 본프레레 백작. 하지만 후대의 역사를 생각해야 할 것이오. 동부 연합이 제국을 무너트린다고 하여도 후대의 역사는 우리를 탐욕스러운 정벌자로 기록하게 될 것이오.
-역사는 승자의 입맛에 바뀌게 됩니다. 알렉소 백작.
-카쉬모프 자작!
파벌이 나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것은 전쟁을 하자와 말자가 아니라 먼저 출병하자와 제국군이 메조른의 국경을 넘으면 징치하자였다.
어쩔 수 없이 전쟁 예산을 생각해야 하는 재상이라든지, 중부와 남부 귀족들은 보급선 등의 이유로 국경을 넘으면 징치하자였고, 라리우스 공작이나 카쉬모프 자작 같은 변경백들은 먼저 원군을 보내자는 것이었다.
-어차피 전쟁은 불가피합니다. 그렇다면 우린 우리의 땅이 아니라 다른 땅에서 전쟁을 치러야 할 것입니다. 저 개 같은 제국군의 창칼에 우리 땅의 소중한 백성들이 유린당하는 꼴을 저는 볼 수 없습니다!
카쉬모프 자작의 말이 지닌 뜻은 잔인하고 잔혹했다.
메조른의 일반 백성을 다치지 않게 하기 위해 타국의 백성들을 괴롭히자는 것이었다.
그건 일국의 귀족으로서 당연한 생각일 수 있었지만, 인간적으로는 최악의 대답이었다.
-카쉬모프 자작, 어, 어찌 자네가 그런 생각을!
남부의 어느 귀족이 배신감에 푸들푸들 떨며 외쳤다.
그뿐만 아니라 카쉬모프 자작과 그리 인연이 깊지 않고 소문만 무성히 들어온 고위 귀족들은 기회는 이때다라며 성토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카쉬모프 자작의 세가 너무 커졌다고 생각하였다.
그 이유는 몽블랑 때문이었다.
몽블랑 때문에 카쉬모프 자작은 왕실의 많은 지원을 받을 수 있었고, 지금은 본프레레를 누르며 명실공히 북부의 1인자가 되어 가고 있었다.
그것은 욕심이며, 질시였다.
정작 세가 밀린 본프레레 백작은 가만히 있는데도 말이다.
-그럼 여러분은 제국군이 본국의 국경을 공격해도 좋다는 겁니까! 전쟁 때문에 죽어 갈 본국의 젊은 넋을 생각하십시오!
-쾅! 쾅!
몽블랑과 귀족들은 입을 다물며 가르티안을 바라봤다.
-모두의 뜻은 잘 알겠네. 이제 짐의 생각을 말하도록 하지. 라리우스 공작이나 성자의 말처럼 먼저 선공을 해야 하네.
-전하!
-후대의 기록을 생각해 주십시오, 전하!
-하나!
모두의 입이 다시 다물어졌다.
-알렉소 백작이나 타우구르 자작의 말처럼 후대의 기록을 생각하면 무작정 쳐들어갈 수도 없네!
귀족들은 이도저도 아닌 말에 눈살을 찌푸렸다.
-그러니 시기를 정하도록 하세!
-음…….
-으음.
예민하다고 말할 수밖에 없는 안건이었다.
원군으로 포장한 징치군을 파하란으로 보내는 것은 맞지만, 그 시기를 쉬이 정할 순 없었다.
이 모든 것을 가만히 듣고 있던 몽블랑은 조용히 입을 열었다.
“이러시면 어떻겠습니까?”
모두의 시선이 몽블랑에게로 모였다.
“현재의 제국군이 내건 기치는, 황족을 헤친 파하란 왕실에 대한 복수입니다.”
-그 말에는 오류가 있네, 성자. 알타이른은 파하란에 복수를 한다고 하였지, 그 대상을 파하란 왕실로 한정 짓지 않았네.
몽블랑은 알렉소 백작의 정정에도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았다.
“하지만 왕실이 무너지면 나라가 무너지는 것과 똑같지요. 만약 그들이 황족의 피값을 받아 내는 것만이라면 파하란 왕실을 무너트리는 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하지만 그들은 진군을 멈추지 않고 파하란 전역을 잔인하게 유린하며 남하할 것입니다.”
-호오, 그 말은 곧 우리가 알타이른의 잔혹한 행위를 막는 방어, 아니 중재군이 되자?
라리우스 공작의 말에 몽블랑은 고개를 힘차게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지금부터 알타이른에 경고를 해야 합니다. 즉각 무분별한 약탈 행위를 중지하라는 문구부터 보내야 합니다.”
-오호! 복수는 말리지 않으나 약탈은 금하라? 그거 명답이로고!
가르티안은 무릎을 치며 기뻐했다.
어차피 카이사르 황제는 듣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성명을 보내는 것으로 명분은 충분히 만들어졌다.
그건 카이사르 황제도 알 테지만, 쉬이 돌아설 수는 없을 터였다.
알렉소 백작이나 다른 중부, 남부의 고위 귀족들도 몽블랑의 말에 흡족한 모습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 정도면 후대의 기록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었다.
“거기에다 본국뿐만 아니라 아후라, 루타니아, 쿠할란에서도 성명을 보낸다면, 명분으로선 그보다 좋을 수 없을 것입니다. 그들이 파하란 정벌군을 버리든 버리지 않든 말입니다.”
-좋군, 아주 좋아. 그것만이 아니라 유페니언이 참전하면 알타이른은 하는 수 없이 본국 서북쪽 국경과 마주하는 제국군들로 하여금 상대케 할 터. 우리의 국경 역시 안전해지겠구먼.
현재 메조른이 원정을 보내지 않은 이유에는 명분이 부족하다는 것도 있었지만, 서북쪽 국경에 주둔한 칠십만의 알타이른 제국군 때문이기도 했다.
여차하면 밀고 내려오겠다는 그 심보에 총병력 백오만의 메조른 왕국은 쉬이 움직이지 못하고 서북쪽 국경을 강화하는 것에만 그칠 수밖에 없었다.
-압사당하기 싫어서라도 알타이른은 국경수비군을 빼야 할 것입니다.
유페니언 왕국의 북쪽 국경에도 수십만의 알타이른 국경수비군이 있다.
하지만 그들은 쉬이 움직일 수 없을 것이다.
드넓은 비옥한 토지에서 잘 먹고 잘 훈련된 강군 수십만이 유페니언 왕국의 북쪽을 지키고 있을 테니 말이다.
유페니언 왕국도 바보가 아닌 이상 파하란과 마주하는 동쪽 국경의 병사들과 중부, 남부의 병사들만 모아서 보낼 것이니, 알타이른 제국은 어쩔 수 없이 중앙군을 파견하든지, 아님 메조른 서북쪽의 국경수비군 병력을 빼어 보낼 수밖에 없게 될 터였다.
아니면 혹시 모를 숨겨진 병력을 보내든지 말이다.
카이사르 황제가 어떤 선택을 하든 메조른이나 아후라의 부담은 한결 나아진다고 봐야 했다.
-그럼 동부의 왕국들에 본국의 생각을 알리기로 하고, 회의를 끝내도록 하겠네. 경들은 무기 생산과 소모품의 확보에 집중해 주도록 하게. 알겠나?
-예, 폐하!
-성자도 부탁하네.
“알겠습니다, 폐하.”
회의는 그렇게 끝이 났고, 몽블랑은 카우트예 학원도시의 최고 간부들을 모아 방금 회의 내용을 전하였다.
제국군의 만행에 분개한 이들은 지금 당장이라도 달려가 징치해야 한다고 외쳤지만, 몽블랑의 다독임에 어쩔 수 없이 마음을 다스려야 했다.
“나도 피가 거꾸로 솟습니다. 하지만 아직은 때가 아닙니다.”
“제길! 빌어먹을!”
몽블랑은 바라스 총사령관을 보았다.
“레인저의 훈련은 어떻게 되어 가고 있습니까?”
“아직 멀긴 했지만 이번 겨울에 혹독하게 몰아세웠더니, 점점 한 사람 몫을 해 주고 있습니다. 특히나 수인족들은 백구, 아니 화이트 양 때문에 아주 열정적으로 훈련에 임하고 있습니다.”
일개 강아지가 아니라 수인족이 되어 버린 백구는 화이트라 불리게 되었다.
정식 이름은 화이트 예거였는데, 예거란 성은 계속 몽블랑을 아빠라고 하는 화이트의 지칭 때문에 붙여진 것이었다.
몽블랑과 루시아는 화이트가 백구였을 시절, 자신들을 아빠 엄마라고 말하였고, 그것이 굳어져 버리다 보니 그녀가 각성하고 나서도 몽블랑과 루시아를 아빠 엄마라고 부르는 것이다.
결혼도 안 한 처녀 총각에게 갑자기 열다섯 살은 될 법한 외형을 가진 딸이 갑자기 생겨 버려서 상당히 당황하고 어이없어했지만, 지금은 그저 그러려니 생각하고 있었다.
“엘프들은요?”
“매일, 아니 매 시간마다 사제들의 신세를 지고 있습니다.”
인식을 바꿔야 하는 엘프들은 누구보다 열심히 훈련을 받았다.
더러운 늪에서 잠복할 땐 제일 먼저 들어가고, 눈 속에서 생활해야 할 때는 엘프 비전을 아낌없이 이용해 흔적 없이 눈밭 위를 달려 열매 같은 것을 따 왔다.
뱀도 생으로 뜯어먹고, 엘프의 비전도 서슴없이 전파했다.
미와 고귀함의 상징인 엘프가 피 칠갑을 해 가며 맨손으로 격투를 나누었고, 불리한 상황에서는 목덜미도 서슴없이 물어뜯었다.
내려놔야 가족이 편히 산다는 절박함이 그들로 하여금 처절한 사투를 벌이게 만들었다.
“그러다 보니 다른 이종족과 훈련병 들도 불이 붙어서 매 시간마다 중상자가 나오지 않으면 오히려 의아해할 정도입니다.”
“엄청나네요.”
몽블랑은 게스와 아커만을 바라봤다.
“알겠습니다. 홍보 영상을 퍼트리도록 하겠습니다.”
“엘프에 대한 지원을 은밀히 늘리겠습니다.”
게스와 아커만은 공식적인 회의라 그런지 몽블랑에게 예의를 지키고 있었다.
“홍보 영상?”
드미트리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작년 겨울에 채석장에서 가석방된 전 블랙스컬의 보스 드미트리는 경호요원양성훈련소에서 극한의 훈련을 받고 나서야 얼마 전에 경비대 1대장의 자리를 맡을 수 있게 되었다.
“아, 그건 내가 말하겠소, 1대장.”
일어선 게스는 주위를 돌아보았다.
“혹여 모르는 분들도 계실 테니, 홍보 영상에 대해 설명해 드리겠소. 홍보 영상은 몽블랑 성자님이 고안하여 만들어진 프로젝트인데, 이종족이 도시에 쉽게 녹아들 수 있도록 만든 목적을 위해 진행되고 있소. 방법은 그들의 고된 훈련 모습을 촬영하여 도시의 주민들에게 틀어 주는 것이오. 속되게 말하면 저들이 우리를 지키기 위해 저렇게 노력하고 있다. 그러니 너희도 이종족을 받아들여라 하는 것이오.”
멀린 학부장이나 카우트예 학원 교장 등 너무 바쁜 나머지 밖과의 소통이 그리 많지 않은 사람들은 살짝 놀랐다가 곧 경악했다.
그 영상이 가져올 파급력을 이해한 것이다.
“그리되면 정말 자연스럽게 이종족이 녹아들겠군.”
“원래 이 도시의 태생도 아닌데, 죽을 둥 살 둥 노력하는 모습을 보면 그 누구라도 이종족을 좋게 생각할 수밖에 없겠군.”
“비록 그들이 자신들의 가족과 일족을 위해 노력하는 것이라고 해도 말이야.”
사람들은 이런 것을 고안해 낸 몽블랑을 존경한다는 듯이 바라봤다.
게스는 갑자기 우물쭈물하다가 입을 열었다.
“뭔지는 모르지만 말해 보세요.”
“감사합니다. 저는 메조른과 도시의 군대가 출병하는 것에 주민들이 이해할 수 있게, 우리가 방금 본 알타이른 제국군의 참상을 담은 영상과 이런 훈련 장면을 같이 상영하는 것을 건의하고 싶습니다.”
몽블랑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러다 제 머리를 콩 찍었다.
“아, 이 바보. 그걸 까먹고 있었다니. 알겠습니다. 게스 진리안 국장의 건의를 받아들입니다. 게스 진리안 국장은 서드아이, 거미 둥지 및 메조른 전역의 정보단체와 합의하여 이 프로젝트를 진행시키십시오. 전하나 귀족들은 이 프로젝트를 거부치 않을 겁니다. 아, 그리고 그런 주제를 다룬 연극을 영상 수정구로 담아 무료로 배포하는 것도 한 방법이라고 전해 주십시오. 우리도 그런 걸 해 보시고요.”
“예? 아, 알겠습니다.”
게스는 그것이 가져올 파급력을 몰라 의아해했지만, 내려진 명령이라 일단은 승낙하였다.
몽블랑은 그런 그를 보며 작게 웃었다.
‘미국이 파병이나 모병을 위해 가장 잘 쓰는 방법이 그런 영화나 다큐를 만드는 거였지. 음? 이렇게 되면 영화라는 새로운 문화가 만들어지는 건가? 뭐, 어때. 즐길 게 많아지면 좋은 거지. 아드리아나에게 말해 줘야겠네.’
어깨를 으쓱인 몽블랑은 다시 회의를 진행시켰다.
이번 회의의 중점은 전쟁 준비여서 그런지, 모두 전쟁에 관련된 안건들만 나왔고, 몽블랑은 거부와 승낙을 하며 밤늦게까지 회의를 하였다.
그렇게 전쟁에 대한 준비는 차근차근 이뤄 가고 있었다.
@
또옥! 똑!
뿌연 수증기가 가득한 욕탕, 근육질의 알몸을 드러낸 알로호모라는 눈을 감고서 미인들의 시중을 받고 있었다.
수증기에 젖어 속이 다 비치는 얇은 옷을 입고서 알로호모라의 몸 이곳저곳을 닦던 하얗고 고운 손들은 갑자기 문이 열리자 멈추었다가 다시 움직였다.
그런 그녀들을 힐끔 보며 입맛을 다신 반트 몰록은 조용히 입을 열었다.
“알로호모라 님, 왕이 지원 요청을 해 왔습니다.”
번뜩 눈을 뜬 알로호모라는 앉아 있던 몸을 일으켰고, 미인들은 다급히 수건을 가져와 그의 몸을 닦기 시작했다.
그런 그를 보며 반트 몰록은 투덜거렸다.
“왜 왕을 꼭두각시로 만들지 않은 것입니까?”
“쯧쯧쯧, 못난 놈. 그딴 놈은 꼭두각시로 만들어 봤자 아무 쓸모도 없거늘. 3공주란 년이 그렇게 탐나더냐?”
반트 몰록은 히죽 웃었다.
“그 앙칼진 반응이 침대에서도 이어질까 궁금하잖습니까. 믿었던 할아비에게 배신당하면 그 고운 얼굴이 어떻게 일그러질지……. 흐흐흐.”
“하긴, 나도 썩 보고 싶기는 하구나.”
음흉하게 웃은 알로호모라는 입혀지는 옷을 추스르며 욕탕을 빠져나갔다.
“이제 검은태양의 은총이 대륙을 비출 날이 되었다. 태양의 전사들에게 전해라. 파하란으로 갈 것이다.”
“예, 알로호모라 님!”
* 감히! 가암히! 짐의 군대를!
귀족이 징집의 합리성을 얻으려면 누군가가 자신의 영지를 침입해 와야 했다.
하지만 메조른 왕실은 원정을 준비하고 있었다.
원정을 위해 징집을 하려고 해도 명분이 부족했고, 그걸 무시하고 징집을 하면 민심이 나빠져 민란이 일어날 수도 있었다.
게다가 지금은 겨울 동안 부서진 곳들을 수리하고 씨를 뿌릴 준비를 해야 하는 시기였다.
이 시기가 끝나면 바로 씨를 뿌리는 파종기였다.
남자라는 일손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시기라고 볼 수 있었다.
그 때문에 전전긍긍하려던 찰나에 몽블랑이 보내온 몇 장의 연극 시나리오는 가르티안과 귀족들을 충격에 빠트리기에 충분했다.
시나리오의 내용은 이런 식으로 진행되었다.
파하란에서 학살이 일어나고 있는데, 그곳에 메조른의 국민이 있다.
피땀 흘려 가며 훈련을 받은 메조른의 병사들이 그 메조른 국민을 구하기 위해 출병하였다.
왕이 하는 말도 멋졌다.
“자국의 백성을 구하라! 백성 한 명은 짐의 피 한 방울이니! 가라! 가서 짐을 구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