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적의 사제-155화 (155/185)

<-- 157 회: 6-11 -->

왕실파 거두 귀족들과 가르티안 왕이 통신 수정구를 통해 한자리에 모였다.

몽블랑은 자신이 전한 말에 별 반응을 보이지 않는, 아니 오히려 의미심장하게 웃는 귀족들과 가르티안을 보며 의아해하다가 이내 허탈하게 웃어 버렸다.

“알고 계셨습니까?”

-이미 서드아이에서 예측한 시나리오라네.

-본가의 거미 둥지에서도 제국군의 지그문트 합류에 그런 예측을 했다. 모든 상황을 열어 두는 것이 정보원의 덕목이지. 하지만 방법은 몰랐다.

-놀랍구먼. 고작 여러 직업과 과거를 위장해서 온다는 걸로 그걸 추리해 낸 건가? 자네의 머리는 정말 전율스럽기 그지없어.

모두 카이사르 황제가 지그문트의 총단에 직접 행차한 이후부터 정보 분석을 시작하여 얼마 전에야 가장 그럴듯한, 카이사르가 생각하는 대륙 정벌의 시나리오를 뽑아낸 것이었다.

여기에는 레벌이 보낸 정보들이 아주 중요하게 작용했다.

그런데 방금 몽블랑이 준 정보로 인해 그 가상 시나리오는 거의 사실로 변하게 되었다.

-제대로 당해 버렸군. 완벽한 외통수야.

평생을 국경을 지키고 파하란과 국지전을 벌여 온 라리우스 공작은 허탈하게 웃어 버렸다.

제 자식마저 죽여 버린 카이사르 황제라면 이번에 몽블랑에게 보내는 제국군 역시 버림 수일 확률이 100%에 가까웠다.

그들을 살려 보낸다고 하여도 어떻게든 메조른 왕국 내에서 죽게 될 터였다.

아니면, 몽블랑에게 진료를 받다가 죽든지 말이다.

파하란이 당해 버린 수작을 고스란히 당한 것이었다.

-그나저나 황제도 대범하군요. 알타이른 황실이 다음 대 황위를 잇는 데 가장 적합한 황족을 골라내기 위해 그들 간의 암투를 무시한다는 것은 원래부터 알고 있는 사실이었지만, 무려 마스터를 버림 수로 내놓다니…….

카쉬모프 자작의 말에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니면 마스터 두 명 정도 내놓아도 문제가 없을 정도로 마스터가 많든가…….

라리우스 공작의 말에 사람들은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건 정말 끔찍한 시나리오였다.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성자? 그들을 살려서 돌려보내 봤자, 어차피 죽는다네. 아니면 마스터만 살아서 도망치겠지.

가르티안의 말에 몽블랑은 눈을 감았다.

이미 그건 예상했던 일이었다.

“……아무래도 이 기회에 마화포를 데뷔시켜야 할 것 같습니다.”

사람들은 엉덩이를 들썩였다.

이미 마화포의 존재는 알타이른 제국에서도 어느 정도 짐작하고 있을 것이기에 문제는 안 되었다.

추정이 확신이 되는 것이었지만, 어차피 어느 정도 정체가 드러난 이상 위급한 상황에 판을 뒤집는 비밀 병기로 쓸 수는 없을 터였다.

-카우트예 학원도시에서 맞이하겠다는 것인가!

“너희들의 정체와 목적을 알고 있다고 정보를 흘릴 겁니다. 어차피 우리도 외통수지만, 그쪽도 물러설 수 없는 배수진을 쳤습니다. 호빗들에 의해 만들어진 평원에서 붙을 겁니다. 그래서 모조리 죽일 것입니다.”

삼천이백 명을 몰살시킨다는 데도 몽블랑의 어조엔 고저가 없었다.

그래서 더 소름이 끼쳤다.

“우리의 힘으로만 상대하겠습니다.”

-……그런가. 성자도 이번 기회에 많은 것을 얻으려는 것 같군.

가르티안은 씁쓸히 웃었다.

몽블랑은 자신의 힘이 이 정도라고 메조른에 경고하려는 것이었다.

분명 몽블랑은 왕실파 거두 귀족들과 밀접한 친분을 맺었다.

하지만 하위의 귀족들과의 관계는 그리 끈끈하지 못했다.

밥 한번, 술잔 한번 기울이지 못했으니 당연한 것이었다.

“나중에 모든 위협이 사라지면, 공성무기를 내놓도록 하겠습니다.”

-……그때가 본 메조른 안에 새로운 왕국이 세워지는 때가 될 걸세. 그 누가 반대해도 짐이 그렇게 할 것이야!

“감사합니다, 전하. 그럼 후에 전장에서 뵙겠습니다.”

몽블랑이 모든 것을 해결하겠다 말한 이상 더 이상의 간섭은 할 수 없었다.

가르티안과 거두 귀족들은 통신 수정구를 껐다.

몽블랑은 유일하게 꺼지지 않은 영상을 바라봤다.

“아버님.”

-도와줄 일은 없겠느냐?

“비록 노병이라 하나 병사로 쓰일 베테랑이 십만이고, 도시 내외 병사가 이만입니다. 수인족, 하프 엘프도 있고, 자랑스러운 제 친구 세베루스도 있습니다. 아버님께서 세베루스를 불러들이지 않은 것으로 충분히 도움을 준 것입니다.”

-……무사하여라. 내게 손주는 안겨 줘야지.

몽블랑은 순간 차오르는 눈물을 감추려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걱정 마십시오! 루시아를 꼭 닮은 손녀로 안겨 드리겠습니다!”

-그래, 건투를 비마!

수정구가 꺼지자 몽블랑은 이를 악물고 일어섰다.

‘한판 제대로 붙자!’

몽블랑의 눈은 형형히 빛났다.

@

“아, 글쎄, 지금 카우트예 학원도시로 제국군이 가고 있다는 거야!”

“뭐야? 제국군이 왜?”

“듣기로는 카우트예 교단과 원수지간이 된 지그문트 교단이 카우트예 학원도시를 지우려고 하니까 지원하는 거래.”

식사를 하기 위해 식당에 들린 이안노프 백작은 허탈함에 웃어 버리고 말았다.

그는 머리도 짧게 자르고 수염도 붙이고 한쪽 눈에 안대도 차서 완벽히 다른 사람으로 위장해 있었다.

이안노프 백작은 떠들썩하게 말을 하는 사람들을 덮치려는 수하들을 만류했다.

“저들은 메조른의 정보 요원이 확실합니다, 이안 님!”

“쓸데없이 피만 볼 뿐이다. 거기 셋! 충분히 알아들었으니 그만 꺼져라!”

“아, 알겠습니다요!”

세 명의 사내가 식당 밖으로 뛰쳐나가자 이안노프 백작은 눈을 감았다.

“디파노, 우리가 지금 어디쯤 왔느냐?”

“……내일이면 이 알렉소 백작령을 넘을 것입니다. 대체 어디서 정보가 새어 나간 걸까요?”

매번 다른 사람으로 위장하여 나타났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그런데도 들통이 났다.

“그건 의미가 없다, 디파노.”

“그럼…….”

“성자가 우리를 부르고 있다는 것이 중요하다.”

“예? 그게 무슨 말이십니까?”

“우리의 진짜 목적이 들통 난 것 같다, 디파노!”

“서, 설마! 아, 아닐 것입니다! 저와 후작님 그리고 폐하만이 아는 것을 어떻게 저들이 안단 말입니까!”

“단서가 충분하고 본 제국의 기치를 알고만 있다면 충분히 추리해 낼 수 있는 일이다.”

“으으음. 무섭군요.”

“그래, 무섭지. 그런데 더 무서운 건 이 판을 만든 성자다. 어쩌면 우린 이 땅에서 뼈를 묻을지도 모르겠구나!”

‘어쩌면 우리의 또 다른 목적을 알고 있을 수도…… 그 병기를 들고 나온다면……. 으으음.’

“지, 지금이라도 증원을 요청하는 건!”

“우린 너무 깊숙이 왔다. 그리고 우린 죽어서라도 폐하의 명령을 완수해야 한다. 모두에게 속도를 높이라 전하라! 그놈이 판을 만든 곳에서 모일 것이다.”

“예에? 함께 가지 않는 것입니까! 아니, 그놈이 어디에 전장을 만든 줄 알고 모인단 말입니까!”

“들켰다 하더라도 지금처럼 가야 한다. 그래야 폐하의 명령을 완수할 수 있다.”

자신들이 공식적으로 정체를 드러낸 순간 메조른 왕국의 개입이 시작된다.

그렇게 되면 자신들은 살아 돌아가게 될 것이다.

하지만 여태껏 그래 왔듯이 계속 정체를 바꿔 가며 움직인다면 메조른 왕국은 개입할 수 없다.

아니, 하지 않을 것이다.

자신들의 죽음은 기정사실이 되었으니 말이다.

그 말은 곧 메조른도 알타이른 제국과의 전쟁 준비를 마쳤다는 것과 똑같은 뜻이었다.

“그리고 그놈이 만든 전장은 우리가 들를 다음 도시에서 알게 되겠지! 가자, 디파노!”

“예, 옛!”

탁자를 치며 일어선 이안노프 백작은 이를 악물었다.

‘성자 네놈만은 무조건 죽여 주마!’

@

카우트예 학원도시에 이종족들이 도착했다.

첫 번째로 도착한 이종족은 하프 엘프였다.

이미 몽블랑에게서 시민권 발급에 대해 통보를 받은 그들은 별다른 마찰 없이 군에 입대하였다.

많은 이종족 가운데 노예 상인에게 가장 쫓긴 이들이 바로 하프 엘프였기 때문이었다.

“자식들을 학원에 입학시켜 달라는 말입니까?”

“그, 그렇습니다.”

이곱은 속속들이 도착하는 하프 엘프를 보듬어 안아 주며 그들의 고충을 몽블랑에게 전하였다.

그 때문인지 이곱의 말투는 변해 있었다.

“우리는 아는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성자여. 엘프는 더러운 핏줄이라고 비전을 알려 주지 않으면서 이동의 자유를 억압하며 착취했고, 우리는 살기 위해 활을 들어야 했습니다. 우리가 아는 것이라곤 고작 활 쏘는 것과 사냥감을 추격하는 것, 독초와 약초를 구별하는 것뿐입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했지만, 몽블랑은 이들이 왜 이렇게 학원에 들어가려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성공 때문입니까?”

“그렇습니다, 성자여. 내 자식이 많은 것을 배우고 부유하게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특히나 엘프의 비전이나 다름없는 정령술을 말입니다! 그러기 위해선 카우트예 학원을 들어가야 합니다!”

이곱은 바로 보았다.

카우트예 학원도시에서, 아니 메조른 내에서 성공하려면 카우트예 학원을 졸업해야 했다.

대륙 그 어느 곳보다 방대한 학문은 그들에게 성공을 위한 밑바탕이 되어 줄 것이다.

“으음. 10세 이하의 외형을 가진 하프 엘프들은 초등에 그냥 입학시켜 드리겠습니다. 그러나 초등이라고 하여도 높은 숫자의 학년에 들어가기 위해선 그만한 지식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중등, 고등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중등과 고등은 힘들지만, 초등 학원에 입학 및 편입하기 위한 지원은 제가 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가, 감사합니다! 저, 정말 충성을 다하겠습니다!”

“그 지식수준이 얼마인지는 학원 중앙관의 행정실에서 물어보면 답을 해 줄 겁니다.”

이곱은 연신 인사를 하며 몽블랑의 집무실을 빠져나갔다.

몽블랑은 비서로 채용한 르벌의 아들인 마르코를 불러 방금 나눈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다른 이종족들에게도 전해. 원한다면 자식들을 입학시키라고 말이야. 그리고 부교수라도 된다면 그 자식은 무조건 학원에 편입시킬 수 있다고도 말이야. 학원의 교수, 부교수, 조교수 등 교수 직함에 합격한다면 바로 시민권 발급이라는 말도 덧붙여.”

“음, 그럼 군 입대가 2순위로 밀려나는 거 아니에요? 주민들의 반응이 그리 좋지 못할 텐데요. 편한 것만 찾는다고요.”

“상관없어. 어차피 지원할 수 있는 숫자는 극히 한정될 테니까. 이 기회에 그들의 기술을 뼛속까지 뽑아 먹어야지.”

“이종족의 기술이 그렇게 대단할까요? 드워프는 인정하지만, 야인처럼 살아온 수인족은…….”

“넌 학원의 학과를 모두 알고 있냐?”

“……아뇨.”

“학원의 모토가 뭐냐?”

“너희는 배워라. 취직은 우리가 시켜 주마입니다. 그래서 지금도 눈 깜빡하면 학과가 한 개씩 늘어나고 있죠.”

“예를 들어 보자. 초, 중등 학원의 필수 외 과정 중 동물 돌보기만 해도 소, 양, 닭 등등 세분화가 되어 가고 있지. 거기 실습장 담당 교수의 태반은?”

“……래빗족입니다.”

래빗족은 거의 조교수였는데, 이는 글로 배우는 지식을 알지 못해서였다.

그들이 지식을 익히고 시험을 통과하면 정교수가 될 터였다.

기존에 있던 정교수들은 자리를 뺏기지 않기 위해서라도 열심히 공부를 해야 할 터였다.

“됐지? 가서 공문 작성해서 이종족들에게 돌리고 게시판에 붙여. 명심해라, 한번 퍼 주기로 작정했으면 그들이 황송해 죽어 버릴 정도로 퍼 줘야 해. 알았냐?”

“예.”

몽블랑은 나가는 마르코를 보며 책상을 두드렸다.

이렇게 무분별하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늘어나는 학과는 나중엔 독이 될 것이다.

하지만 보다 많은 기회를 주고 싶은 몽블랑은 그것을 제어하지 않았다.

“그래도 역시 너무 많나?”

몽블랑은 잠시 생각하다가 고개를 저었다.

현재 카우트예 학원에는 초등부터 계단을 밟아 와 중등, 고등에 재학하는 학생이 단 한 명도 없었다.

그렇다고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는데, 그들은 모두 메조른 전역에서 심화된 지식을 배우기 위해 몰려온 기존의 학자들이나 그 분야를 공부하던 사람들이었다.

그런 이들은 나중에 초등에 다니는 아이들이 졸업을 하고 중등에 입학을 할 때, 신설될 대학으로 차근차근 옮길 생각이었다.

“어렸을 때 많은 것을 접해 봐야 자기 적성을 찾아가지. 만날 국영수만 배우다가는 머리가 죽어 버리는 거지. 지금은 늘어날 대로 놔두면 되는 거야. 시간이 흐르면 알아서 줄어들 테니까!”

몽블랑은 마차를 모는 마부도, 거리의 쓰레기를 줍는 청소부도 전문적인 지식을 갖춘 엘리트가 되기를 원했다.

“나중에 배우지 못해서 취직 못 하고 쫓겨났다고 나를 탓해선 안 돼. 난 분명 배움의 길을 열어 두었고, 강조도 수없이 했어!”

도시 곳곳에 신설된 수천여 개의 공부방은 자정까지 운영되기에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들어갈 수 있었다.

술 먹는 시간과 돈을 조금만 줄인다면 얼마든지 관련 지식을 익힐 수 있었다.

그것들의 40% 이상은 어린애들과 같이 다니기가 부끄러운 성인들을 위해 지어진 것들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현재 카우트예 학원도시는 육십 대 노인이라고 할지라도 자식 손자 들에게 부끄럽지 않으려 공부방의 문을 두드리고 있었다.

누구는 손자에게 글자를 가르쳤네, 누구는 아들에게 편지 썼네 같은 것이 나이 든 사람들의 경쟁 심리를 부추긴 것이었다.

채석장에서부터 시작된 공부 열풍은 현재, 나이를 먹었는데도 삼백 단어라도 알지 못하면 이상한 사람 취급받는 것이 카우트예 학원도시의 풍조였기에 정말 다행이라고 할 수 있었다.

주먹을 쥐며 공부는 백년대계라고 중얼거린 몽블랑은 다시 서류를 살폈다.

마지막 서류를 승인하고 일어선 몽블랑은 성벽 밖에 지어진 경호요원양성훈련소로 향하였다.

총교관, 아니 몽블랑의 부탁으로 카우트예 학원도시의 군대의 총사령관이 된 바라스는 몽블랑을 밝은 미소로 맞이해 주었다.

“여기까진 어쩐 일이십니까?”

“이번에 입대한 이종족들이 훈련에 잘 적응하고 있는지 살펴보러 왔습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