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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하들은 방금 전 성내 경비대를 공격하였다. 이는 카우트예 학원도시의 법률을 위반하는 행위로 지금부터 그대들의 자유와 신체를 구속하도록 하겠다.”
타다다다!
“이쪽이다! 뛰어!”
“씨발, 이 밤에 이게 무슨 날벼락이야!”
사방에서 말 떼가 달리는 듯한 군홧발 소리가 들려왔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마법사들이 하늘을 날아오고, 수인족 병사들이 지붕을 뛰어넘으며 달려왔다.
순식간에 밀려든 이천여 명의 병사들은 주위를 포위하였다.
백부장은 한 중년인에게 다가가 군례를 취했다.
“충!”
“무슨 일인가, 에릭 백부장?”
“방금 전 저기 서 있는 오십여 명의 엘프들이 자신들의 동족을 구하려던 저를 공격하고 협박하였습니다. 우리 백인대만으로는 몰살을 당할 것 같아, 이렇게 원군 요청을 한 것입니다.”
가젤 천부장은 주춤거리는 엘프들과 노예 사냥꾼들을 보았다.
“개새끼들, 은혜를 베풀어 줬는데도 뒤통수를 쳐? 모두 포박해! 반항하면 사살해도 좋다!”
“추웅-!”
쿵!
지축을 울리듯 발을 내디딘 병사들은 창을 내밀며 엘프들과 노예 상인들을 향해 다가갔다.
그와 동시에 가젤 천부장이 뽑은 검에서 오러가 솟고, 마법사들의 손에 마법이 피어올랐다.
엘프들의 얼굴에 절망이 드리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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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사이 일어난 일에 카우트예 학원도시가 뒤집어졌다.
오만방자한 이방인인 엘프가 감히 성내 경비대를 공격했다는 소문은 사람들을 분노케 만들었다.
이젠 외면도 없었다.
거리를 돌아다니면 몰매를 맞아 죽을 수도 있었다.
시민이 된 엘프들은 시민증을 목에 걸고 돌아다녀야 했을 정도로 학원도시 주민들의 분노는 대단했다.
그런데 가만히 있기는커녕 잡혀간 엘프들을 만나기 위해 거리로 나간 엘프들이 사람들의 돌팔매질에 분노하며 손과 발을 휘둘렀고, 출동한 성내 경비대와 기사들에 의해 구속되었다.
성내 경비대는 혹시 모를 위험에 가만히 있던 엘프들마저 기습하여 모두 끌어내었다.
카우트예 재판소에서 대대적인 재판이 열렸다.
집법관 석에 앉은 몽블랑은 책상에 놓인 통신 수정구에서 토해 내는 영상들을 서늘한 눈으로 바라봤다.
영상 속 엘프들은 감히 몽블랑의 눈을 마주치지 못했다.
노예 상인 로토가 엘프들을 잡기 위해 주방에 들어와 약을 타는 순간부터 엘프들이 경비대에 잡혀갈 때까지 자신은 관계없다며 여관 주인이 수정구로 녹화하여 제출한 영상을 본 뒤라 동족의 잘못을 시인한 것이었다.
“방금 전 보여 준 영상이나 여태까지 녹화된 영상을 보셨다시피 난 당신들 엘프를 위해 많은 기회를 주었습니다. 하지만 돌아온 대가는 성내 경비대 폭행, 주민 상해였습니다. 주민 중 몇 명은 갈비뼈가 부러지는 중상을 입었습니다. 잘못하면 부러진 갈비뼈가 폐를 찔러 죽을 수도 있던 상황이었습니다.”
몽블랑은 시선을 피하는 엘프들을 보며 콧방귀를 뀌곤 재판장에 무릎 꿇려진 엘프들을 바라봤다.
그들은 시민권 없는 엘프들의 대표로서 판결을 받을 엘프 장로들이었다.
몽블랑은 재판장에 몰린 사람들을 적개심 어린 눈빛들을 둘러봤다.
“상황이 너무 명백한 바, 변론은 듣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이제부터 판결을 내리겠습니다. 시민권이 없는 모든 엘프들은 주민들에게 잠재적 위험이 되는 바 영주의 권한으로서 카우트예 학원도시에서 추방하도록 합니다. 신의 자비고 지랄이고는 없습니다.”
땅! 땅! 땅!
“우아아아아! 사제님 만세!”
“카악, 퉤! 개새끼들 나가서 뒈져 버려!”
“너희 같은 새끼들은 채석장도 아까워!”
몽블랑은 혹시 모를 사태에 대기하고 있는 기사들 중 아흘라니와 세베루스를 바라봤다.
“아흘라니 경, 세베루스 경, 시민권 없는 엘프들을 모두 카우트예 학원도시의 경계 밖으로 쫓아 버리십시오.”
“충!”
엘프 장로들은 거칠게 일으켜져 끌려가야 했다.
사람들은 썩은 계란이라도 던지기 위해 우르르 일어났다.
몽블랑은 영상을 바라봤다.
“귀네슈 상단의 직원들과 보호자들은 들으십시오.”
영상에서 대답이 들려왔다.
“돌아가고자 원하는 엘프들은 그 자리에서 돌려보내십시오. 굳이 데려다줄 필요 따윈 없습니다.”
-이, 인간의 지배자여, 이, 이건 너무한 것 아니오!
“너무한 건 당신들이지. 난 분명히 삼백여 명의 엘프들을 어떻게든 배부르고 따뜻하게 지낼 수 있게 노력했어. 하지만 너희 엘프들은 나를 그리고 우릴 배신했어. 그딴 새끼들은 필요 없어.”
몽블랑은 반박하려 뱉어 내는 말들을 무시하며 수정구들을 꺼 버렸다.
몽블랑은 재판장을 나와 저택으로 향했다.
접객실의 문을 열고 들어간 몽블랑은 안에 있는 사람을 발견하곤 서늘히 가라앉아 있던 표정에 온기를 불어넣었다.
“이렇게 얼굴 보고 이야기하는 건 정말 오랜만이지, 로토?”
“씨발, 진짜 그때 돈 받고 풀어 줬어야 했다니까. 아, 존댓말을 해야 하는 겁니까?”
놀랍게도 그는 엘프를 포획하려 했던 노예 상인 로토였다.
세실리아와 세베루스의 개입으로 예상만큼의 돈을 벌지 못한 로토의 대장은 끌어모은 빚을 감당치 못하고 파산하고 말았다.
그 전에 한몫 챙겨 도망친 로토는 제 버릇 고치지 못하고 북부를 돌아다니며 노예 매매 일을 하였다.
그러던 중 그는 어느 노역장에 노예를 팔러 갔다가 우연치 않게 몽블랑의 연설을 듣게 되었다.
그 후, 그는 점점 변해 갔다.
하지만 당장 입에 풀칠할 돈도 없기에 계속 공식적인 노예 매매 일을 하던 로토는 몽블랑의 부름을 받고 오게 된 것이었다.
계속 물을 흐리는 엘프들을 쫓아 버리고 싶었던 몽블랑은 우연치 않게 노예 상인 몽타주를 확인하다가 로토를 발견하곤 혹시나 하여 사람을 파견해 보았다.
로토는 자신과 다섯 명의 수하들에게 월 3만 페니와 집만 약속해 준다면 얼마든지 때려치우겠다고 하였다.
그래서 몽블랑은 녹화 수정구를 넘겨주며 작전을 짰다.
로토는 당신이 피해를 입으면 안 된다며 식당 주인에게 영상 녹화 수정구를 넘겨주었다.
식당 주인의 아들은 엘프에게 홀려 있었는데, 그 여자 엘프는 그걸 이용하여 야채를 싸게 얻었다.
독실한 카우트예 신자인 식당 주인은 아들을 회개시키기 위해 받아들였고, 그 이후부터는 이런 사건이 벌어진 것이었다.
“됐어, 우리 사이에 무슨.”
아무리 시켜서 한 일이라도 로토는 몽블랑에게 많은 편의를 봐주었다.
“일단은 채석장에서 반년간은 노역해야 할 거다. 이후로는…….”
“군 관련 업체에서 일해야 한다고? 알아. 완전히 새 사람으로 태어나는데 그 정도는 감수해야지.”
“체놈 간수장에게 잘 봐 달라고 말해 놨으니까, 가면 도서관 관리나 사랑과 나눔의 집을 청소 관리 같은 걸 하게 될 거야.”
“크흐흐. 땡큐다. 그럼 올라가 볼게.”
“그래, 사람이 나와 있을 거다.”
돌아서던 로토는 번뜩 떠오르는 생각에 다시 몽블랑을 바라봤다.
“근데 너는 노예 싫어하지 않냐? 원래 한번 노예로 팔렸던 놈은 노예란 단어를 증오하던데 말이야.”
“당연히 싫어하지. 안 그래도 이번 전쟁을 통해 메조른 내에서만큼은 노예를 없앨 생각이야. 노예라도 3년간 군복무를 하면 평민으로 승격시키는 것으로 말이야. 지금 왕실과 귀족들에게 조심스럽게 타진해 보고 있어. 내가 아무리 그들과 끈끈한 사이라도 노예는 그들의 재산이니, 조심해야지.”
“……전쟁? 그거 파하란과 알타이른 제국과의 전쟁이잖아. 메조른하고는 상관없을 텐데?”
“넌 알타이른이 파하란 하나에서 만족할 것 같냐? 분명 별의별 핑계를 다 대서라도 침공할 거다.”
로토는 침공이란 단어에 하얗게 질렸다.
“그런데 지금 여기 있어도 돼?”
기적을 일으키는 성자, 그게 몽블랑 예거였다.
그런 몽블랑은 전선에서 가장 필요한 존재였다.
몽블랑은 웃어 주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고, 고개를 저은 로토는 접객실을 빠져나갔다.
“가기 전에 부엌에 들러라! 깜빵 가는데 맛있는 거 많이 먹어 둬야지! 해 달라는 거 다 해 주라고 얘기해 놨어.”
“어제 다 즐겼어! 그래도 먹고는 가마!”
피식 웃은 몽블랑은 집무실로 가기 위해 일어섰다가 문을 벌컥 열고 들어오는 베네딕트 전추기경에 눈살을 찌푸렸다.
“무슨 일이십니까?”
베네딕트 추기경은 카우트예 학원도시 내에 있는 지그문트 교단의 신전에서 지내고 있는데, 그들은 내려놓은 권위와 여러 자원 봉사로 주민들의 마음을 조금씩 얻고 있었다.
또한, 어린아이들에게 몽크의 심신 단련법을 무료로 알려 주는 일종의 훈련소를 열었는데, 지그문트의 교리 같은 것은 하나도 말하지 않았는지라 카우트예의 신도인 부모들 사이에서도 꽤나 호응을 받고 있었다.
이것은 몽블랑이 베네딕트 전추기경을 배척하지 말고, 여러 가지 면에서 보살펴 주라고 말해 놓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성군, 아니 바루아 신성 기사단에 있는 옛 인연의 끈이 마지막 호의라며 내게 연락을 해 왔네. 아마도 피하라는 것이겠지.”
몽블랑은 미간을 좁혔고, 베네딕트 전추기경은 급히 입을 열었다.
“마스터 두 명과 마법사 백 명을 포함한 숫자 삼천여 명의 병력이 지금 메조른의 국경을 비밀리에 넘었다고 하네!”
몽블랑은 눈을 부릅떴다.
* 잠깐, 명분?
제대로 한 건 해 준 베네딕트 전추기경 때문에 진리안에 비상이 걸렸다.
용병으로 위장한 진리안의 기사들까지 함께 가담하면서 두터워진 정보망은 끝내 그들의 꼬리를 잡아내었다.
역시나 사제들이 문제였다.
그들은 약자가 당하는 무시를 참지 못하고 정체를 밝혀 버렸다.
그 후, 정체를 숨기기 위해 죽여서 입을 막았지만 살아난 사람이 있었다.
그렇게 꼬리를 잡으며 그들의 위장 패턴을 파악한 진리안은 서부와 북서부 국경을 모조리 뒤지기 시작했고, 곧 그들의 진입 루트를 모조리 파악할 수 있었다.
몽블랑은 속속들이 올라오는 정보를 들으며 혀를 내둘렀다.
“병자, 상인, 노예 상인, 용병, 떠돌이 마법사, 보부상, 귀족 등등 엄청나네. 이러니 우리가 발견 못 한 거지.”
“제국 정보국의 도움이 있을 것이란 게 우리의 추측이다.”
그들을 놓쳤다는 것에 수치를 느낀 게스는 붉어진 얼굴로 그렇게 변명했다.
그들의 과거가 완벽하게 위장이 되어 있었기에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또한 제국 정보국이 움직이지 않았다면 그들 대부분이 국경을 넘자마자 물이 증발해 버리듯 사라졌다가 다른 모습으로 나타나기를 반복할 수 없었다.
다른 모습으로 나타나면 꼭 제대로 된 음식을 먹고 따뜻한 물에 씻었다는 것을 보니 거친 노숙을 견디지 못한 것이 분명했다.
“아마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는 산길 같은 곳을 지나서 이곳으로 몰려오는 것 같다. 그런데 병자를 수송하는 무리는 대놓고 이동하고 있다. 그들이 정말 제국군인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말이야.”
“아마도 그렇게 의심할 걸 생각하고 당당한 것일 수도 있죠. 나무는 숲에 숨기라고 하잖아요. 흐음. 그런데 또 쪼개져서 오네요?”
정체를 들키지 않으려고 흩어져서 오는 것일 테지만, 이렇게 들켜 버린 이상 완벽한 자충수라고 볼 수 있었다.
제아무리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는 오지라도 진리안이 마음을 먹으면 흔적을 찾는 것은 식은 죽 먹기보다 쉽다고 할 수 있었다.
그들이 전문적으로 흔적을 지우는 훈련을 받은 어쌔신이 아닌 이상 흔적은 남을 테니 말이다.
“이렇게 기회를 주는데 부응해 줘?”
“그게 가장 최선이겠지. 도시에 피해가 오지 않을 테니 말이다.”
몽블랑은 생각에 잠겼다.
한 무리는 많아 봤자 사십 명 정도였다.
세베루스와 황금사자 기사단, 진리안의 기사들과 아흘라니를 비롯한 럴러바이의 전 단원들, 마법사들, 뛰어난 궁수인 하프 엘프 등등 카우트예 학원도시 근처에서 정면으로 맞붙는다고 해도 충분히 몰살시킬 수 있는 전력이었다.
‘적은 우리 쪽에 마스터가 다섯 명 이상이란 걸 모른다. 하지만 대충적인 병력은 알 거야. 문제는 지그문트에 소중한 병력을 딸려 보낸 황제의 의도다. 굳이 이런 시기에 그런 정예 병력을 뺀다? 그만큼 여유가 있다는 건가? 아니, 그 전에 들킬 것이라 생각지 않는 걸까?’
그들이 제국의 정예인 이상 검술을 알아보는 사람은 분명히 있을 것이고, 그렇게 되면 알타이른 제국이 먼저 메조른 왕국을 선공한 것이 되어 명분을 빼앗기게 되고, 연합을 맺은 네 나라의 침공을 받게 될 터였다.
하지만 문제는 대륙 정벌의 가치를 내걸은 알타이른 제국이 동부의 네 나라와 한꺼번에 전쟁을 치를 여력이 없다는 것이었다.
‘잠깐, 명분?’
몽블랑은 눈을 부릅떴다.
“게스 형님, 병자를 수송을 하는 무리는 대놓고 온다고 했죠?”
“응? 아, 아니지. 그놈들도 한 도시를 넘어가면 사라졌다가 며칠 후에 다시 나타나. 그것도 꽤 다르게 변장을 해서 말이야.”
“거기를 살펴봐요! 아무래도 거기에 제국 소속의 마스터가 있을 것 같아요!”
“뭐? 그, 그게 무슨 말이야?”
“그들은 명분을 위해 나를 찾아오는 겁니다! 버림 수란 말이에요! 어서 찾으시고, 왕실과 직통되는 수정구를 주세요!”
“아, 알았다!”
게스는 주위를 뒤져 수정구 하나를 꺼내어 몽블랑에게 넘기고는 바로 밖으로 뛰쳐나갔다.
몽블랑은 수정구를 작동시켰다.
-성자님을 뵙습니다. 무슨 일이십니까?
“어서 전하께 알려 드리십시오! 역시 제국은 대륙 정벌을 하려는 거라고 말입니다!”
-네? 아, 알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