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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의 사제-145화 (145/185)

<-- 147 회: 6-1 [뜨겁고 딱딱해] -->

* 뜨겁고 딱딱해

그것은 불의 폭포라고 할 수 있었다.

넘실거리는 화염이 하늘을 향해 솟구치며 공기를 뜨겁게 달구고 있었다.

너비 10미터, 높이 30미터의 불기둥이 자이언트 협곡의 출구를 틀어막은 채 그 누구의 접근을 불허한다는 듯이 맹렬히 타오르며 압도적인 존재감을 내뿜고 있었다.

그리고 그 앞에 서서 화염의 바람을 휘감고 있는 한 여인. 뜨거운 열기와는 상반된, 차갑게 가라앉은 두 눈은 그들에게 절망을 선사해 주고 있었다.

“우우우.”

오백여 명의 신성 기사와 사제 들이 주춤주춤 물러섰다.

밑바닥에 있는 체력까지 끌어내며 달려왔던 샤일록은 주저앉으며 아버지 지그문트를 찾았다.

트리샤는 그런 그들을 보며 손을 흔들었다.

“실라이론. 셀라이론.”

휘우우웅!

바람의 늑대와 화염의 새가 그녀의 양옆에 섰다.

트리샤는 죽음의 위기에 발악하려는 듯 일어나려는 지그문트의 신성 기사들을 보며 사신의 선고를 내렸다.

“죽이세요.”

크아아앙!

끼아아아아!

바람의 늑대가 달리고, 화염의 새가 홰를 치며 하늘을 향해 솟구쳤다.

“마, 막아! 세인트 오러를 일으켜!”

절규하는 샤일록의 외침에 신성 기사들은 정신을 차리며 세인트 오러를 뽑아 바람을 휘감은 늑대를 향해 내리쳤다.

새하얀 검이 전신을 난도질하려 할 때, 자유로운 바람의 늑대는 한 줄기 광풍이 되어 그들의 사이를 파고들었고, 하늘 높이 솟구친 화염의 새는 점점 몸집을 키워 가더니 땅을 향해 맹렬히 떨어져 내렸다.

태양을 가리며 순간 사방에 어둠을 드리운 화염의 새는 묵시록에서나 나올 법한 세상을 종말로 이끄는 화염의 운석이었다.

사제들은 절망하고 절규하며 전력을 다해 세인트 배리어를 쳤다.

그들은 안도했다.

수십의 사제는 지그문트에서도 정예라 불리는 상급 사제였다.

상급 사제의 세인트 배리어는 5서클 마법사의 마법도 막아 내는 어마어마한 방어력을 자랑했다.

그렇기에 그들은 안도할 수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들의 그 행동이 비극의 시작이 될 것이란 걸 알지 못했다.

그들은 결코 정령이 자신들의 중심으로 파고드는 것을 용납해선 안 되었다. 그들은 차라리 흩어졌어야 했다.

승리를 당연시 여기며 살아온 그들의 오만한 무지에서 비롯된 실책이었다.

2진의 신성 기사들은 자신들 사이로 파고드는 실라이론의 움직임을 관찰하고 예측하여 검을 찔러 넣었다.

너무도 딱 맞은 타이밍에 실라이론은 차마 피하지 못한 채 푸줏간 고기를 난도질하는 소리와 함께 수십 자루의 검을 전신으로 받아들여야 했다.

위태하게 흔들리는 바람의 흐름에 신성 기사들은 환하게 웃어 갔다.

그래서 그들은 보지 못했다.

두 눈이 붉게 물들어 가는 실라이론의 주둥이가 미소를 그렸다는 것을 말이다.

우우우웅!

마치 돼지 오줌보에 바람을 불어넣듯이 실라이론의 몸이 점점 둥글게 부풀어 갔다.

그 이상현상에 당황해할 때, 사냥의 완료를 알리는 짐승의 포효가 터져 나왔다.

크아아아앙!

뻐어어어엉!

폭발한 바람이 짐승의 날카로운 발톱이 되어 검을 찔러 넣은 신성 기사들을 찢어발기며 날려 보냈다.

칼날보다 더 날카롭고 잔인한 바람의 발톱이 오백 명의 전신을 파고들며 난자했다.

“크아아악!”

“크아악!”

무방비 상태로 바람의 발톱을 받아들인 사제들은 피를 토하며 주저앉았고, 그와 동시에 그들을 안전하게 감쌌던 배리어가 산산이 부셔져 내렸다.

그리고 세상에 종언을 알리는 화염의 새가 그들 중 한 사제의 가슴을 파고들었다.

콰아아아아앙!

@

달리는 마법 마차 안, 하얗게 질린 트리샤는 침상에 누워 식은땀을 뻘뻘 흘리고 있었다.

실라이론의 공격은 자폭과 다름이 없었기에 그녀는 강제 역소환의 리바운드에 깊은 내상을 입은 것이었다.

몽블랑은 일행과 함께 출구에 도착했던 그때를 떠올렸다.

반경 100미터가 까맣게 그슬리고, 움푹움푹 패여 있었다.

사방으로 흩어진 새까맣게 탄 이들이 지옥의 망자처럼 제발 죽여 달라 외치고 있었다.

일행은 살아도 산 것이 아닌 적들의 심장에 검을 찔러 넣으며 고통의 해방을 선물했고, 몽블랑은 다급히 달려 쓰러진 트리샤를 안아 들었었다.

그녀의 상처는 외상이 아닌 내상이었다.

그리고 그보단 영혼이 흔들렸다.

영혼, 그것은 몽블랑의 손길이 닿을 수 없는 미지의 영역이었다.

포션을 흘려 먹이고서야 그녀는 안색은 조금 나아졌지만, 아직도 이렇게 시름시름 앓고 있었다.

몽블랑은 그녀의 극단적인 선택에 화가 났다.

‘조금만 기다리면 되었을 것을! 탈출하는 것을 내가 모를 거라 생각했던 건가!’

하지만 그것이 아님을 몽블랑은 알고 있었다.

자신을 향한 그녀의 마음이 어떤지를 알기에, 부담스러웠다.

“후. 샤크티, 새 천 좀 줄래?”

“아, 네!”

부담스럽더라도 자신 때문에 무리한 것을 알기에 몽블랑은 그녀의 간호를 자청했다.

받아 든 새 천을 물에 적신 몽블랑은 그녀의 얼굴에 맺힌 식은땀을 닦아 냈다.

“으으음.”

“괜찮아요?”

파르르 떨리다 뜨인 눈이 자신을 바라보고, 아픔에 짓이겨지던 입술이 힘없이 웃자 몽블랑은 가슴이 답답해졌다.

“왜 그랬어요?”

알기에 더 화가 났다.

“……나 좀 잘게요.”

“그래요.”

눈이 다시 감기자 마차에 침묵이 내려앉았고, 몽블랑은 소리를 죽여 한숨을 내뱉었다.

샤크티는 뭔가 심기가 불편해 보이는 몽블랑을 보며 안절부절못했다.

아직 그녀는 사랑을 알지 못했다.

@

메조른 왕실은 꽤나 다급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알타이른 제국의 파하란 침공 때문이었다.

명분은 제국 황자와 황녀의 원한을 갚겠다는 것이었지만, 이 땅의 권력자 중 그것을 믿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어디까지 진군했다고 하던가.”

“이제 막 국경을 넘었다고 합니다! 필립 후작이 문을 열어 줬다고 합니다!”

가르티안은 눈을 부릅떴다.

이브아의 칭호를 가지고 있는 필립 후작은 아주 유명한 왕당파의 거두 귀족이면서도, 친알타이른 파벌의 수장이었다.

필립 후작이 왕당파면서도 친알타이른 파벌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단 한 가지였다.

필립 후작은 알타이른의 문물만 받아들이려 할 뿐, 그들의 내정 간섭을 허락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알타이른에서 조금이라도 그런 기미를 보이면 불호령을 내리며 교류 중단을 외치던 귀족이 바로 그였다.

부족한 것은 받아들이자는 진보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을 뿐, 그는 어디까지나 왕에게 충성하는 왕당파 귀족이었다.

그랬기에 왕도 필립 후작을 의심치 않고 있었다.

그건 가르티안도 마찬가지였다.

“허어. 그가 세상을 속였구나. 그래, 그렇지 않고서야 파하란 왕국의 국경이 이렇게 빨리 열릴 리 없지.”

영원한 적이기에, 파하란 왕국의 역량은 가르티안이 제일 잘 알았다.

“셈하자를 연결하게.”

통신 수정구에 코드를 입력하자마자 셈하자가 나타났다.

그쪽에서도 이번 일을 중히 다루는 것인지, 절차 따윈 생략되었다.

-국경에 팔십만의 적군이 배치됐소, 가르티안.

“으음. 그 정도의 여력은 남아돈다는 말인가. 본국의 국경에도 삼십만의 병력이 배치되었소. 유페니언도 이십만의 병력이 배치되었다고 하오.”

-여태껏 국지 도발을 하지 않은 이유가 있었구려. 괘씸한 늙은 여우 같으니!

현 세대의 알타이른 제국은 타국과 자잘한 국지 도발조차 하지 않고서 내실 강화에만 집중했다.

그렇다고 폐쇄성을 띤 게 아니라 타국과도 교류를 활발히 하며 우호적인 모습을 보였다.

그게 10년이 되고, 20년이 되자 각 나라의 권력자들은 드디어 알타이른 제국이 대륙일통의 꿈을 접었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그들은 전쟁을 준비하고 있었다.

여태까지 모든 나라의 정보부가 판단한 알타이른 제국의 병력은 총 백팔십만 명이었고, 여기에는 해군 이십만도 포함이 되어 있었다.

그런데 현재 드러난 육상 병력만 해도 파하란 정벌군 오십만 명까지 합하여 백팔십만 명이었다.

문제는 귀족들의 제어에 쓰이는 병력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는 것이었다.

어쩌면 이백오십만, 삼백만이 될 수 있었다.

알타이른 제국은 40년 동안 나라 하나를 더 상대할 만한 여력을 길러 냈다.

“결국 파하란 왕실이 요청하기 전까지 손가락만 빨고 있어야 하는 건가. 부디 늦기 전에 그가 정신을 차리면 좋으련만…….”

-그 꽉 막힌 왕이 쉬이 원군을 요청하겠소? 아마, 왕궁 턱밑까지 쳐들어왔을 때쯤에야 정신을 차릴 것이오.

현 파하란의 왕은 분명 백성들에겐 성군으로 불린다.

하지만 그 성정은 주변의 이야기를 듣지 않고 자신의 생각대로만 밀어붙이는 고집으로 가득했다.

그가 왕위에 올라 첫 번째로 펼친 정책은 메조른 왕국과의 무역 금지였다.

엄청난 반발이 있었지만, 그는 반발하는 귀족들을 찍어 내면서까지 무역 금지 정책을 성사시켰다.

타국과의 무역도 메조른을 거쳐서 오는 것은 막대한 세금을 부과시켜 이득이 거의 없게 만들었다.

분명 예산상 무리라고 하는데도 국방을 강화시켰다.

그럼에도 그가 성군이라 불릴 수 있는 이유는 귀족들에게 막대한 세금을 부과하였기 때문이었다.

평민에게 부과되는 세금을 한계치까지 내리고, 귀족들에게는 한계치까지 올렸다.

이런 상황이 됐음에도 귀족들이 반란을 일으키지 못한 이유는 모두 오직 왕에게만 충성하는 백만의 중앙군 때문이었다.

파하란의 왕은 그의 대에서 절대 왕조를 성립시켜 버렸다.

왕에게 충성하는 일부 귀족들을 제외하곤 귀족들의 힘이 거의 없는 나라가 파하란 왕국이라 할 수 있었다.

이렇게 메조른을 적국으로 여기는 그가 원군을 요청할 수 있을 거라곤 생각할 수 없었다.

아니, 필립 후작의 가담으로 칠십만 명까지 늘어난 적군을 팔십만 명의 중앙군으로 막아 낼 생각을 가지고 있을 터였다.

대체 얼마나 많은 귀족들이 배신할지 알지 못한 채 말이다.

“어서 빨리 정신을 차리면 좋으련만…….”

-그러게 말이오.

둘의 얼굴에 드리운 수심은 깊어져만 갔다.

-아, 그런데 성자는 어디까지 왔다고 하오?

“벌써 국경을 넘어 본프레레 백작령의 영도에 도착했다고 하오. 곧 카우트예 학원도시에 입성할 것이오.”

-으음, 무사히 도착하였구려.

“왜 표정이 그러시오? 꼭 어딘가 불편한 듯한…….”

셈하자의 심기는 불편한 게 맞았다.

수드라가 충성하는 대상이 라하자 황실이 아니라, 몽블랑과 샤크티였기 때문이었다.

셈하자와 브라만들이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여 방관하거나 오히려 도왔던 수드라를 향한 몽블라의 식량과 치료 원조가 수드라들로 하여금 둘에게 충성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들은 자신의 명을 받들어 기꺼이 수드라로만 이뤄진 군대인 ‘아 힐 라우니 칼 르아’가 되어 국경으로 향했기에 셈하자는 무어라 말할 수 없었다.

그의 목적은 오직 아 힐 라우니 칼 르아가 전장에 투입되어 자신의 소중한 병력 대신 죽어 나가는 것이었으니 말이다.

‘전장에서 보살피다 보면 곧 내게 충성하겠지.’

-아니오. 그럼 변동이 생길 때 다시 연락합시다.

가르티안은 꺼진 통신 수정구를 보며 의아해했다.

@

파아앗!

감은 눈을 밝게 비추던 환한 빛이 사라지자 몽블랑은 슬그머니 눈을 떴다.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텔레포트 마법진이 있는 곳은 카우트예 학원도시 내에서도 깊숙한 곳에 위치했기에 모두 여태껏 그가 인연을 맺어 왔던 지인들뿐이었다.

몽블랑은 그중 한 여인 앞에 다가가 섰다.

“다녀왔어.”

“……오빠!”

루시아는 끝내 눈물을 참지 못하고 몽블랑에게 안겨 들었다.

몽블랑은 그녀의 등을 쓸어내렸다.

반년이 훌쩍 넘는 긴 시간이었다.

메조른 왕실의 트리파이온 책봉식 날, 연회에서 연인이 되고서 제대로 된 사랑조차 나누지 못하고 헤어진 것이 벌써 그 정도나 된 것이었다.

몽블랑은 그녀를 살짝 떼어 내어 입술에 입을 맞추었다.

“이젠 헤어지지 않을게. 영원히 같이 있자.”

“네! 네!”

몽블랑은 흐느끼며 대답하는 루시아를 더욱 강하게 끌어안았다.

사람들은 해우를 방해하지 않았다.

세상이 요동치고 있었지만, 오늘 하루만큼은 방해하고 싶지 않다는 마음에 모두 조심스레 탑을 빠져나갔다.

트리샤는 복잡 미묘한 표정을 지으며 발소리를 죽였고, 샤크티는 어리둥절해하며 하프 엘프들과 함께 빠져나갔다.

몽블랑은 점점 조용해지는 주위에 눈을 감으며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한참 후, 밖으로 나온 몽블랑은 루시아의 손을 잡은 채 천천히 학원도시를 걸었다.

루타니아의 예스키야 거주지 아쿠스바타만은 아니나 그래도 추운 날씨는 볼을 따갑게 했지만, 몽블랑과 루시아는 그것을 느끼지 못했다.

몽블랑을 알아본 사람들은 환호성을 지르려다가 급히 입을 막으며 엄지손가락을 치켜들거나 활짝 웃으면서 길을 비켜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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