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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그건 왜 묻지?”
이종족들 중 가장 인간에게 증오심이 많은 엘메이라가 반항적으로 말했다.
하지만 그 모습이 꼭 궁지에 몰린 강아지가 짖는 것 같아 게스는 실소를 지어 버렸다.
“재주가 없으면 급식소 보조나 인부로 쓸 것이고, 재주가 있으면 그에 맞는 직책을 주기 위해서다.”
엘메이라의 눈이 부릅떠졌다.
“거짓말! 그딴 말로 유혹해서 성노로 쓰려는 걸 모를 것 같아!”
“……엘프가 거짓말을 간파하는 진실의 눈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거짓말인가 보군. 잘 들어라, 얼굴만 예쁘장한 엘프 계집아. 난 너희가 싫다. 지금이라도 전쟁의 빌미만 안겨 줄 너희들을 용광로에 처넣어 뼛조각 하나까지 녹여 버리고 싶다. 그럼에도 이렇게 시간 낭비하는 이유는 모두 바보같이 착한 우리 블랑이가 너흴 살려 두라고 했기 때문이다.”
사납게 뿜어진 살기는 그들의 숨을 옥죄었다.
“으윽!”
“마지막으로 묻는다. 재주가 뭐냐?”
이종족들은 대답을 하지 못했다.
인간에게 잡힌 이종족이 어떤 고초를 겪는지를 들어왔기에 쉽사리 입을 열지 못하는 것이었다.
카우트예 교단을 무시하는 발언인 성노란 단어에 화가 잔뜩 나 있던 게스는 모두 채석장에 집어넣으라고 외치려 했지만, 갑자기 열리는 저택으로 향하는 문에 입을 다물었다.
“루시?”
백구를 끌어안은 루시아는 난생처음 보는 희귀한 외양의 사람들에 깜짝 놀랐다가 이내 낯빛을 굳혔다.
어떤 이유인지 모르나 몽블랑이 이종족들을 거둬들이려는 것을 눈치챈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슬슬 화가 나기 시작했다.
아후라에서 신성 기사들에게 습격을 받은 것이나 배회하는 숲이 까맣게 타 버린 일 등등 계속 힘든 일을 자신에게 숨기는 몽블랑의 행동 때문이었다.
자신을 보호하고 위해 주려는 몽블랑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자신이 그렇게 미덥지 못했나 하는 생각에 서럽고 화가 났다.
“……두고 봐요, 오빠.”
게스는 잠시 몽블랑을 향해 애도를 표하면서도 변호해 주는 말은 하지 않았다.
여기서 튄 불똥이 자신에게 오질 않길 바라는 마음 때문이었다.
루시아는 오늘 저녁 몽블랑에게 단단히 따지기로 마음먹으며 이종족들을 보았다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짐승의 귀를 가진 사람들이 이쪽을 보면서 경악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서로를 보며 눈빛을 교환한 수인족 들 중 늑대 귀를 가진 노인이 손을 들었다.
“울프족은 뛰어난 전사네. 먼 곳의 소리를 들을 수 있고 한번 맡은 냄새는 끝까지 추적할 수 있지. 척후나 정찰로 써 주시게.”
“우리 사자족 역시 마찬가지다, 인간. 정확히 말하자면 수인족 모두가 인간보다 수십, 수백 배 예민한 감각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여기 레빗족의 아이는 전투에 재능이 없다.”
“라틀로프, 카쉬리오, 소, 속지 말아요! 인간들은……!”
“저들에게 딴 뜻이 있었다면 이렇게 신의 성소에서 마주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네, 엘메이라.”
정론에 가까웠기에 엘메이라는 더 이상 입을 열지 못했다.
그때 엘프들의 사이에 숨어 있던 땅딸막한 근육질의 노인이 손을 들었다.
“이곳으로 오던 중 진한 철의 냄새를 맡았다. 나는 그곳으로 가겠다.”
“랄프!”
드워프 랄프는 입을 꾹 다물고서 엘메이라와 엘프들의 시선을 외면했다.
사냥을 위해 마을 밖에 나왔다가 쫓기는 엘메이라와 이종족들에게 휩쓸려 여기까지 오게 되었으니, 그리 좋은 감정이 들지 않는 것이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엘메이라와 엘프들은 당혹스러웠다.
그럼에도 그들은 자신들을 홍보하지 않았다.
의심을 하는 것이었다.
루시아는 그런 그들을 보다 게스를 향해 입을 열었다.
“아저씨, 일단 저분들에게 학원도시 내의 모든 곳을 보여 주는 게 좋을 것 같아요. 그래야 정할 수 있죠.”
“알았다. 그렇게 하마. 아, 그런데 블랑이가 사제 두 명을 보내 달라고 했는데, 어떻게 할 거냐?”
“무슨 이유 때문인데요?”
“아후라에서의 신전 건립을 위해서다. 일단은 왕도인 마흠마디에서 시작한다더군.”
“음, 그럼 머스탱 아저씨와 세르트 언니를 보내도록 하세요. 단단히 따지는 건 오빠가 돌아온 후에 할 거예요.”
“쩝, 알았다.”
“저는 고아원과 양로원 건설 부지들을 돌아보고 올게요.”
“그래, 수고해라.”
게스는 신전을 나가는 루시아를 빤히 바라보는 수인족들에게서 시선을 돌려 마르코를 불렀다.
“멀린 학부장에게 가서 여기 숫자대로 외모 변환 아티팩트를 얻어 와.”
“알겠습니다.”
마르코는 만날 자기만 시킨다고 투덜거리며 밖으로 나갔고, 게스는 이종족들을 둘러보며 혀를 찼다.
‘이게 복이 될지 화가 될지…… 블랑아, 이번엔 잘못 결정한 게 아닌가 싶구나.’
그래도 이미 내려진 명령이니 게스는 더 이상 입을 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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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 과분할 정도의 대접을 받긴 하지만 한 공간 안에만 있다는 다는 것은 사람을 참 지루하고 답답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몽블랑은 루타니아로 넘어갈 때 필요한 물자도 보충할 겸 황궁을 잠시 나오기로 생각했다.
몽블랑은 수트라들을 통해 일행을 불러 모으는 한편 샤크티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몽블랑은 가감 없이 자신이 추측한 셈하자의 의도를 샤크티에게 알려 주었다.
아직은 정신적인 면이 성장하지 않아서 인지 샤크티는 눈이 뱅글뱅글 돌아가는 혼란한 모습을 보이다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게 주인님에게 도움이 되는 일인가요?”
“그래, 도움이 돼.”
지그문트가 알타이른 제국의 어디까지 파고든지 모르는 이상 최악은 무조건 염두에 두고 있어야 했다.
그 최악은 알타이른 제국과의 전쟁이었다.
“하지만 네가 거북하다면 안 할 생각이다.”
“주, 주인님…….”
감격에 울상을 지은 샤크티는 곧 다부진 표정을 지었다.
“주인님의 행복이 곧 샤크티의 행복이에요! 무조건 할 거예요!”
“……고맙다.”
몽블랑은 씁쓸히 웃으며 샤크티의 머리를 쓰다듬었고, 샤크티는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때마침 일행이 도착하자 몽블랑은 황궁을 나왔다.
몽블랑은 조를 나눠 물자를 보충하기로 했다.
몽블랑의 조는 샤크티, 마르꼬네였고, 이들이 맡은 역할은 루타니아 양식의 의류나 잡화를 구매하는 것이었다.
아흘라니, 트리샤, 메이슨, 소냐의 역할은 음식 재료의 구매였다.
루타니아 양식의 옷은 거의 대부분이 방수성이 좋은 물개의 가죽에 짐승의 털가죽 안감을 덧대어 만든 것들이었다.
아후라와 인접한 국경은 그렇게 춥지 않지만 북부로 갈수록 기온이 떨어졌고, 어느 지방은 계절을 가리지 않고 눈이 내리니 루타니아를 여행하기 위해선 이런 털옷이 필요했다.
그런데 놀라운 점은 이들이 타국에서 곡식을 그리 수입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국경 부근의 대평원이 루타니아 전 백성이 궁핍하지 않을 정도로 먹을 곡식을 생산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뜨거운 아후라의 기온과 차디찬 루타니아의 기온이 만나 상생을 하며 풍요로운 대지를 만들어 낸 것이었다.
황혼과 새벽의 전쟁 이전의 아후라 제국은 그런 루타니아의 대평원을 넘보았지만, 지금은 달랐다.
알타이른 제국에게 빼앗긴 풍요의 대지를 수복하는 것이 먼저였기 때문이었다.
몽블랑은 샤크티를 브라만으로 만든 셈하자의 의도에서 이 심정을 읽어 내었다.
거리를 걷는 와중 사람들의 경악스러운 시선이 샤크티의 등판에 닿아 있었다.
브라만이 살을 많이 드러낸 것도 모자라 등에 문신까지 한 것이 믿기지 않은 것이다.
몽블랑은 가게에 들어서자마자 일그러지는 가게 주인의 얼굴에 기분이 상하였다.
인사를 하느라 살짝 숙인 가게 주인의 눈이 발을 거의 드러낸 샤크티의 가죽 샌들에 닿아 있었다.
반사적으로 움츠렸던 샤크티는 곧 자신이 브라만이 되었음을 생각해 내고는 콧대를 세우며 한발 나섰다.
수드라나 바이샤의 카스트나 신을 법한 발등을 거의 드러낸 가죽 샌들에 욕이 목까지 튀어나왔던 가게 주인은 금색 수실을 발견하곤 기겁하며 엎어졌다.
“브, 브라만 님을 뵙습니다!”
눈을 가늘게 떴던 샤크티는 이내 콧방귀를 뀌며 고개를 돌려 버렸고, 가게 주인은 더욱 많은 식은땀을 흘려야 했다.
“루타니아의 옷을 보고 싶습니다.”
몽블랑의 중재에 가게 주인은 그 무엇보다 재빨리 한 옷을 내밀었다.
“이게 루타니아에서 최신 유행하는 옷입니다!”
살기 위해 발악하는 가게 주인의 친절에 몽블랑은 만족스러울 정도로의 많은 옷을 50%나 싼 가격에 살 수 있었다.
거기다 열 벌의 속옷도 덤으로 얻었다.
가게 주인의 황송한 배웅까지 받으며 나온 몽블랑은 이후로도 브라만이란 계급의 덕을 톡톡히 보았다.
샤크티가 금색 수실의 옷을 드러내면 그 어떤 고약한 인상의 가게 주인이라도 설설 기며 원하는 물품들을 찾아 대령했다.
그래서 그런지 시간이 붕 떠 버린 몽블랑과 샤크티, 마르꼬네는 카페에 들러 차가운 차 한 잔의 작은 여유를 즐기기로 했다.
“루타니아의 어디까지 가실 생각이에요?”
“아쿠스바타라는 지방이에요.”
“……에스키야의 대지군요.”
에스키야는 1년 내내 얼음이 녹지 않는 얼어붙은 대지에서 살아가는 이들로서 주로 물고기나 물개 등을 사냥하며 극한의 추위를 벗 삼아 살아가는 부족을 뜻했다.
현재의 에스키야는 고대 에스키야의 후손인데, 이들은 몽블랑이 말한 아쿠스바타라는 눈과 얼음의 대지 안에서 고대의 방식으로 사냥을 하며 살았다.
하지만 세월의 흐름에 의해 사람이 모이고 도시가 생겨나자 에스키야의 후손들은 도심으로 나가면서 인구가 급감하기 시작했는데, 황혼과 새벽의 전쟁의 여파로 거의 전멸에 이르게 되었다.
그에 루타니아 왕실은 자신들의 선조인 고대 에스키야의 방식을 그대로 고집하는 그들을 보호하기 위해 아쿠스바타를 관광자치령으로 지정하여 생존권을 보장해 주었고, 해마다 많은 관광객들이 그들의 부락을 찾았다.
“그럼 베르캄프 항구에서 배를 타고 쿠할란으로 넘어가실 생각인가요?”
베르캄프 항구는 아쿠스바타와 근접해 있는 베르캄프 후작령의 항구였다.
“네, 이번 여행의 최종 도착지는 마크론트 산입니다.”
“반년에 이르는 여정이군요.”
“지금이 아니면 수년, 아니 수십 년이 흐르고 나서야 수습할지 모르니 어쩔 수가 없어요.”
새로운 교황 선출로 지그문트의 내부가 복잡한 지금이야 말로 적기라 할 수 있었다.
설혹 그게 아니더라도 자신이 덜 알려졌을 때 움직여야 했다.
그래야 내주는 게 적을 테니 말이다.
그런 몽블랑의 말에 마르꼬네는 동감이라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카우트예와 메조른은 어느 순간부터 같은 존재로 취급되기 시작했다.
모두 카우트예를 무조건 적으로 비호하는 왕실과 왕실파 귀족들 그리고 그들과 친분을 유지하는 몽블랑 때문이었지만, 아직 몽블랑에겐 메조른의 보호가 필요 했기에 이런 취급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이런 인식은 시간이 흘러 카우트예 학원도시가 독립을 하고도 꽤 시간이 흐르기 전까지는 변치 않을 것이란 게 몽블랑과 마르꼬네의 생각이었다.
몽블랑과 마르꼬네는 최단 기간의 경로를 짜면서 가상의 일정을 정하였다.
나중 일행과 모두 만나면 그때 확실히 정해질 터였다.
한참을 이야기 하다 목이 말라 찻잔을 들던 몽블랑은 밖을 빤히 바라보고 있는 샤크티를 발견하곤 그녀의 시선을 따라가 보았다.
‘하긴, 꾸밀 나이긴 한가?’
샤크티가 바라보고 있는 곳은 장신구 가게였다.
‘여자는 어려도 여자라더니…… 아까 그것도 있고.’
샤크티가 가게에 들어서자마자 무시를 당했던 것은 결국 장신구를 패용하지 않아서였다.
잠시 생각에 잠겼던 몽블랑은 몸을 일으켰다.
“이야기도 거의 끝난 것 같으니 일어나도록 하죠.”
“예, 사제님.”
화들짝 놀란 샤크티는 황급히 일어나 몽블랑의 뒤를 따랐다.
그녀는 몽블랑이 장신구 가게로 들어가자 잠시 의아해했지만 얼른 로브를 벗어 자신이 브라만임을 드러냈다.
“이 아이에게 어울릴 만한 장신구를 보여 주세요.”
“아, 알겠습니다!”
“주인님?”
놀랐다가 감격에 울상이 되는 샤크티를 본 몽블랑은 작게 웃었다.
“너도 이제 브라만이니 그에 어울리는 장신구를 차야지. 덕분에 오늘 돈을 많이 아낄 수 있었으니 주는 선물이야. 아, 이게 괜찮겠다.”
몽블랑은 가게 주인이 황급히 내민 붉은 쿠션 위의 여러 장신구들 중, 작은 방울이 달린 얇은 링 형태의 금팔찌를 들어 올렸다.
금방이라도 눈물을 흘릴 듯한 모습을 보이던 샤크티는 차릉 흔들리는 방울 소리에 눈을 동그랗게 뜨며 호기심을 드러냈다.
화려한 디자인이 아니었기에 어린 소녀도 충분히 소화해 낼 수 있겠다 생각한 몽블랑은 샤크티의 손을 끌어와 팔찌를 채워 주었다.
샤크티는 손목에서 흔들리는 영롱한 방울 소리에 끝내 몽블랑에게 파고들어 눈물을 흘렸다.
그런 샤크티의 등을 토닥여 주던 몽블랑은 가게 주인을 봤다.
“이거 세트로 나온 건가요?”
“그, 그러믄입죠! 팔찌, 발찌 한 쌍씩이 한 세트입니다요!”
울고 있는 샤크티를 떼어내 팔찌와 발찌를 채워 주고 대금을 계산한 몽블랑은 눈을 빛내는 마르꼬네 때문에 하는 수 없이 그녀가 원하는 귀걸이 세트를 사 줘야 했다.
그녀가 여태까지 해 준 것이 너무 많았기에 해 주는 보답이었다.
몽블랑은 트리샤와 소냐의 것까지 사고 나서야 가게를 나왔다.
차릉! 차릉!
샤크티는 저 멀리까지 울려 퍼지라는 듯이 손목과 발목을 힘차게 털어 내며 걸었다.
그런 그녀의 모습에 몽블랑과 마르꼬네는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그렇게 좋니?”
“네, 스승님!”
너무도 해맑게 웃자 작은 장난기가 발동한 마르꼬네는 순간 짓궂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그런데 주인의 곁을 지켜야 하는 어둠의 수호자가 그렇게 경박한 방울 소리를 내야 할까?”
“……네?”
“우리 궁으로 돌아가면 방울 소리가 나지 않도록 걷는 연습을 해 보자.”
“네에?”
“그래, 그거 좋겠네. 은밀히 걷는 법에 큰 도움이 되겠어.”
장난으로 말한 것이지만, 꽤 일리가 있을 것 같아 마르꼬네는 정말 수련을 해 보기로 마음먹었다.
“스, 스승님!”
경악한 샤크티는 몽블랑을 보며 살려 달라는 듯이 간절히 바라봤지만, 몽블랑은 도끼눈을 뜨는 마르꼬네에 슬그머니 외면하였다.
쿠궁.
배신감에 입을 떡 벌리던 샤크티는 순간 사납게 얼굴을 일그러트리며 자신의 팔목을 향해 뻗어 오는 손을 잡아 꺾어 던져 버렸다.
아흘라니, 마르꼬네에게 입에서 단내가 나도록 받은 훈련이 빛을 발한 것이다.
쿠당탕!
근처의 나무상자에 부딪친 이는 변화한 현재의 샤크티 또래 마른 소년이었다.
“감히! 주인님이 준 선물을 노려!”
화가 머리끝까지 솟은 샤크티는 몽블랑과 두 사람이 말릴 틈도 없이 로브를 벗어 던지며 소년을 향해 쇄도해 발을 내질렀다.
그 순간 하나의 그림자가 끼어들며 소년을 감쌌고, 샤크티는 여리고 작은 등과 찢어진 옷 안의 문신에 자신도 모르게 멈출 수밖에 없었다.
“사, 살려 주세요! 배가 고파서 그랬어요! 다시는 마을 안으로 들어오지 않을게요! 살려 주세요!”
얼굴 모를 소녀는 소년을 끌어안고 오열했다.
그런 소녀의 모습에서 예전 엄마를 살리기 위해 소매치기를 강행했던 자신의 모습을 투영한 샤크티는 몽블랑이 처음 준 선물을 노린 것에 솟은 분노와 싸우는 측은지심에 안절부절못했다.
“괜찮아, 안 뺏겼잖아.”
“하지만, 하지만…….”
샤크티는 어느새 옆에 온 몽블랑에 와락 안기며 주체할 수 없는 마음에 눈물을 뚝뚝 흘렸다.
몽블랑은 그런 샤크티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진정시켰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슬그머니 고개를 들었던 소녀는 샤크티의 등에 새겨진 칼리 문신과 목을 감싼 금색 수실의 옷에 눈을 부릅떴다.
“카, 카마수트라! 수드라의 등불!”
자지러지는 소녀의 외침에도 샤크티는 몽블랑의 배에 묻은 얼굴을 보여 주지 않았다.
단단히 뿔이 난 것 같은 그녀의 모습에 씁쓸히 웃은 몽블랑은 소녀를 향해 얼른 가라며 손짓을 하였다.
소녀는 머뭇거리며 샤크티의 눈치를 보다가 신음을 흘리는 소년을 부축하며 사라졌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몽블랑은 샤크티를 달래며 황궁으로 향했다.
‘이것인가?’
몽블랑은 수드라가 마흠마디의 깊숙한 이곳까지 무사히 들어온 것을 우연이라 치부할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