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적의 사제-131화 (131/185)

<-- 132 회: 5-8 [신성한 축복!] -->

* 신성한 축복!

그들은 배회하는 숲에 대해 너무도 무지했다.

지도도 없었고 동물처럼 감각적으로 길을 찾을 능력도 없었다.

칠백여 명의 기사들이 흩어지는 건 한순간이었다.

시야에서 멀어진 동료가 잠시 눈을 판 사이에 사라지고, 앞으로 나아갔던 동료가 뒤에서 나타나기도 했다.

그제야 그들은 무언가 잘못된 것을 깨닫고 모이려 했으나, 이미 그들은 끝없이 배회하게 만드는 마물에 갇혀 버린 뒤였다.

“빌어먹을! 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이야!”

“아마도 여기가 배회하는 숲이 아닐까 싶습니다, 단장.”

“여기를 알고 있는 거냐, 우랄?”

“카쉬모프의 명물 아닌 명물입니다. 이 숲은 본프레레 백작가, 레버쿠젠 남작가, 아우구스 후작가로 통하지만 지도가 없으면 한 달 정도는 헤매야 하는 곳입니다.”

“제기랄! 그럼 놓쳤다는 거잖아!”

“아직 낙관하기엔 이릅니다. 그놈들도 여기선 길을 잃을 겁니다.”

“으음, 알았다. 일단 더 이상 흩어지면 안 되겠군.”

샤무엘의 주위엔 백여 명의 신성 기사들이 있었다.

우우웅! 우우웅!

우랄은 허리에서 우는 주머니 속에서 수정구를 꺼내었다.

“코드가 켄들라입니다.”

“줘 봐라.”

샤무엘은 통신 수정구를 켰다.

“뭐냐, 켄들라?”

-어디쯤이냐, 샤무엘? 카쉬모프에 도착했나?

“도착했다. 그런데 그건 왜 묻지?”

-빌어먹게도 네놈에게 빚을 져야 하기 때문이다. 난 지금 배회하는 숲에 갇혔다. 얼른 지도를 구해 들어와라. 우린 동북쪽으로 들어왔다.

순간 샤무엘의 눈썹이 파르르 떨렸다.

“흥! 아훔마에게 부탁해도 될 텐데?”

-아훔마도 이 안에 갇혔다.

“뭐, 뭐라고? 어떻게 그놈까지 여기에 있는 거냐!”

-······혹시 너도 이종족을 쫓은 거냐?

“너도? 그럼 너희들도…… 빌어먹을, 함정이군!”

-제기랄! 모두 자리를 이…… 치지직! 탈…… 치이익!

갑자기 화면에 노이즈가 끼기 시작하며 소리가 들려오지 않게되었다.

“켄들라! 켄들라! 우랄, 다른 곳에 연락을 넣어 봐라! 푸쉐나 하칸은 아직 들어오지 않았을 것이다! 그들보고 시간을 벌라고 하라!”

“예!”

우랄은 다급히 다른 연란 수정구 두 개를 꺼내 푸쉐와 하칸에게 연락을 넣었다.

-샤무엘, 나좀 구해 주라! 여기 배회하는 숲…… 치지지직!

-치지직! 배회하는…… 치이이익!

“모두 이탈한다! 여기 있으면 안…….”

슈우우우우!

샤무엘은 무언가 날아오는 듯한 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콰자자자작!

하늘에서 날아온 무언가 나무들을 헤집으며 이쪽을 향해 맹렬히 쇄도해 오자 샤무엘은 다급히 땅을 박찼다.

“피, 피해라!”

콰아아앙!

큰 소리에 고개를 돌렸던 샤무엘은 먼지구름 사이에서 희미하게 모습을 드러낸 사람 몸통만 한 철구를 발견하곤 의아해했다.

“이건 뭐지? 왜 이런 게 하늘에서…….”

난생처음 본 기이한 광경에 의아해하며 다가간 샤무엘은 반경 10여 미터의 크레이터 안에 있는 철구와 그 철구 표면에 깊이 새겨진 기형학적인 문양을 보곤 더 의아해했다.

“이건 꼭 아티팩트 같은…….”

우웅!

갑자기 기형학적인 문양이 빛을 발하기 시작하며 철구가 크게 울기 시작하자 샤무엘은 표정을 잔뜩 굳혔다.

여기 있으면 죽는다는 위협이 갑자기 전신을 울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모두 피…….”

그 순간 철구의 진동이 강렬해지기 시작했다.

우아아아아아아앙! 꽈아아아아앙!

샤무엘은 뒤로 날아가는 느낌과 온몸을 덮치는 뜨거움에 정신을 잃었다.

@

거대한 숲이 불바다가 되어 가고 있었다.

한 번의 폭발에 반경 수십 미터의 공기가 터졌다가 화마에 휩싸이고, 들리지 않을 비명 소리가 귀를 찢는 듯하였다.

찌릿찌릿한 전율과 공포가 전신을 치달으며 춥다는 감정을 느끼게 했다.

몽블랑은 망연히 중얼 거렸다.

“이게 마화포…….”

곳곳에서 마른침이 넘어가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영상을 보는 셈하자는 드디어 복토수복을 할 수 있게 됨에 미칠 듯한 흥분을 감추지 못했고, 트리샤의 얼굴은 어둡게 물들었다.

-천천히 진군하며 계속 쏴 댈 거라오, 예거 사제.

“……수고해 주십시오.”

몽블랑은 겨우 그 말을 뱉어 내곤 떨리는 손으로 다른 통신 수정구를 켰다.

-보고 있냐?

“보고 있습니다.”

-이게 이제 우리의, 그리고 너의 힘이다. 여긴 걱정 마라.

무어라 말하고 싶은데 엉클어진 머릿속은 정리를 하지 않아 입 밖으로 뱉어 낼 수 없었다.

“……알겠습니다. 수고해 주십시오.”

수정구가 꺼지자 몽블랑은 테이블에 올려 진 시거 박스를 열었다.

시거를 물고 불을 붙인 몽블랑은 기침을 토해 냈다.

하지만 끄지 않고 계속 피우기 시작했다.

무언가에 신경을 돌리지 않으면 미쳐 버릴 듯이 가슴과 머리가 들끓고 있었다.

삼백여 명의 피가 눈앞에서 튀었을 때도 역류하지 않았던 구토가 올라오는 것 같아 몽블랑은 연심 침을 넘겨야 했다.

“사제님…….”

아흘라니의 부름에 고개를 든 몽블랑은 걱정스러운 시선으로 바라보는 일행의 모습에 이를 악물었다.

‘그래, 시작했으면 어떤 수를 써서라도 이겨야지!’

이미 신앙을 무너트리기로 하였으니, 이제부터 이런 일은 비일비재하게 될 것이다.

여기서 약한 모습을 보여 자신의 곁으로 몰려든 사람들을 흔들리게 할 수 없었다.

몽블랑은 불타는 배회하는 숲을 보며 입을 열었다.

“바라스 총교관님.”

-말씀하시오, 예거 사제.

“지도에서 배회하는 숲을 지워 버리십시오. 포탄이 떨어지면 마법으로, 마나가 고갈되면 도끼로 쳐서라도 말입니다! 그 안에 살아 있는 모든 생명체를…….”

몽블랑은 잠시 머뭇거리다 이내 이를 갈며 피를 토하듯 외쳤다.

“죽이십시오! 개미 새끼 한 마리라도 빠져나가선 안 됩니다!”

-……충!

바라스 총교관이 끈 듯 통신 수정구가 빛을 잃자, 멍해 있던 셈하자는 갑자기 크게 웃기 시작했다.

“성자에게 이런 면이 있을 줄은 몰랐군!”

“……독하지 않으면 장부가 아니라고 했죠.”

차갑게 가라앉은 눈을 보며 셈하자는 혀를 내둘렀다.

‘지그문트가 적을 잘못 규정했구나.’

혀를 내두른 셈하자는 은근히 바라는 눈으로 몽블랑을 바라봤다.

“포탄이야말로 진짜배기가 아니겠습니까. 그런 것까지 넘겨주면 우린 무얼 먹고 살겠습니까?”

“하하핫! 역시 통하지 않구나! 혹시나 해서이니, 너무 불쾌해하지 말라.”

“핫산의 자비에 깊은 감사를 바칩니다.”

셈하자는 흡족하다는 듯이 웃었다.

“성자여, 이제 마화포를 어떻게 쓸 것인가? 보병이나 기병을 필요 없게 만드는 절대 악마의 무기의 쓰임을 설명해 달라.”

“……일단 대답에 앞서 오류를 한 가지 짚고 넘어가겠습니다. 신성 기사 및 사제 사천여 명을 몰살시킬 수 있는 이유는 저곳의 지리적 특성 때문입니다.”

몽블랑은 배회하는 숲에 대해 간략히 설명했고, 셈하자는 머릿속에서 오류를 붙잡을 수 있었다.

“음, 그렇군. 그렇다 하여도 악마의 무기임은 틀림없다. 수백, 수천 명을 한 번에 날려 버릴 물건이니 어찌 그렇게 부르지 않을 수 있을까.”

“음, 대답을 드리자면, ‘저도 모르겠다.’입니다.”

“모르겠다?”

“마음 같아선 지그문트 총단에다 갈겨 버리고 싶지만, 그리되면…….”

“전쟁이지. 전쟁을 두려워하는 것이냐?”

“전쟁을 하며 스러져 갈 젊은 피들이 제 어깨에 얹어질까 두려운 것입니다.”

“과연 성자다운 말이로다.”

셈하자 역시도 전쟁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

마화포 포신의 설계도가 도착하면, 그 대가로 쿠할란과 마주하는 국경을 향해 병력을 이동시켜 주어야 했다.

그것이 몽블랑은 모르는 메조른 왕실의 결정이었다.

모두 지그문트나 혹시 모를 타 교단의 도발을 막기 위한 일이었기에 셈하자도 자국에 많은 것을 해 준 몽블랑을 위해 그 정도는 들어줄 수 있었다.

하지만 문제는 역시 그로 인한 알타이른의 움직임이었다.

황혼과 새벽의 전쟁 이전, 아후라 왕국의 전신인 아후라 제국은 대륙 최대의 땅과 최고의 군사를 지닌 곳이었다.

끔찍한 자연 재해에 정신이 없을 때, 기회를 노린 지금의 알타이른은 머리를 숙이고 들어온 지그문트와 함께 아후라 제국을 도모했고, 끝내 아후라 제국으로 하여금 영토의 반을 넘겨줘야 하는 치욕의 역사를 쓰게 만들었다.

한 줄기 골자로만 남은 역사의 이야기지만, 셈하자는 그걸 볼 때마다 피가 거꾸로 솟는 분노를 느꼈다.

그러나 쉽사리 움직일 수 없었다.

알타이른 제국은 아후라 왕국과 메조른 왕국, 파하란 왕국, 유페니안 왕국과도 전쟁을 할 수 있는 저력을 지닌 나라였다.

마화포 하나만을 가지고 움직이기에는 알타이른 제국이 가진 힘이 너무 컸다.

‘이럴 때 온 백성이 하나가 될 수 있다면 좋으련만…….’

셈하자는 다시 한 번 로도스네를 아쉬워했다.

아후라 왕국의 전신인 아후라 제국에 로도스네만 있을 당시, 아후라의 백성들은 설사 어린아이라 하여도 죽음을 불사하는 전사였기 때문이었다.

‘영광된 죽음을 위한 성전…… 현 아후라에는 그것이 없다.’

참담한 말이지만, 현 아후라 왕국에는 브라만을 위해 목숨을 바칠 하위 계급이 없었다.

쿠구궁!

“헛! 뭐, 뭐냐? 지진이냐!”

벌떡 일어난 셈하자는 테라스를 향해 뛰어갔다가 미간을 좁혔다.

“밖은 멀쩡…….”

쿠구궁!

이번엔 더 크게 흔들렸다.

“으윽!”

테라스 난간을 붙잡고 휘청거리는 몸을 진정시킨 셈하자는 벌컥 문이 열리는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새하얗게 질린 샤룸바디가 있었다.

“폐, 폐하, 어서 피하셔야 합니다! 지하에서 칼리가! 칼리가아-!”

짙은 불안감이 심장을 강타하자 몽블랑은 그대로 뛰쳐 나갔다.

“샤크티!”

@

샤크티는 어느 순간부터 자신의 몸속에 무언가가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처음엔 아흘라니나 마르꼬네가 말하던 오러인 줄 알았다.

총감독하는 샤룸바디나 다른 카마수트라들이 이 단련이 끝나면 지금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해진다고 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오러는 아니었다.

카마수트라들의 몸에 있는 기운도 아니었다.

몸속에 자리를 잡고 덩치를 키운 검은 짐승이 카마수트라들을 보며 저들은 가짜라고 말하였기 때문이다.

진짜로 말한 것은 아니고 그렇게 느껴졌었다.

처음엔 강아지만큼 작았던 짐승은 점점 커져 가더니 몸속 저 깊은 곳에서 여태껏 보아 왔던 것들 중, 가장 컸던 황궁보다 돌산보다 더 큰 괴물이 되었다.

어둠 속에서 빛나는 여섯 개의 붉은 눈에 두려워져 단련을 멈추려 했을 땐 마지막 세례만 남게 되었다.

피처럼 붉은 기운의 정화가 미간에 떨어지는 순간 온몸을 찢어발길 듯 밀려온 기운이 괴물을 더욱 크고 강하게 변화시켜 갔다.

형태 없던 괴물은 점점 인간의 형상을 갖춰 가더니 곧 몇 번 본 모습으로 변하였다.

웃고, 아름답고, 흉측하게 일그러진 세 개의 얼굴과 갖가지 무기를 든 열 개의 손.

‘칼……리…….’

-크르르! 얼마만인거지. 로도스네 님은 어디로 간 것인가?

온통 어둠뿐인 주위를 둘러보던 칼리는 샤크티를 발견하곤 깜짝 놀랐다.

-아, 네가 내게 육체를 줄 제물이구나. 그런데 이상하구나. 지금쯤이면 이지를 상실하고, 영혼은 부서져야 했을 텐데…… 음? 이 느낌은?

의아해하던 칼리는 어찌 된 일인지 알 것 같았다.

-그래, 카우트예 님의 물건을 지니고 있구나. 하나 이젠 상관없지. 네 육체는 잘 쓰도록 하마. 이만 사라져라.

쩌저저저정!

공간이 부서져 내리며 몸도 찢어 발겨졌다.

‘꺄아아악!’

-호오? 저항한다? 이거 재밌구나. 이것도 받아 보아라.

칼리의 한 손이 뻗어진 순간 샤크티의 본능이 도망치라고 외쳤다.

그녀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리기 시작했으나 쏘아져 나간 샤크티의 등판을 후려쳤다.

‘꺄아아아악!’

샤크티가 검은빛에 잡아 먹혔을 때, 외부의 샤크티의 몸이 변화를 일으키기 시작했다.

온몸이 검게 물들어가고 눈은 백태마저 붉게 물들어 갔다.

몸 주위로 넘실거리기 시작한 검은 기운에 카마수트라들은 기겁하며 물러섰다.

“크르르! 크아아아아앙!”

푸화악!

폭사되는 기운은 허공에 거대한 형상을 그려 냈고, 카마수트라들은 눈을 부릅떴다.

“카, 칼리!”

“크르르!”

누군가의 외침에 허공에 뜬 칼리의 얼굴들이 카마수트라들을 보았다.

섬뜩한 붉은 광망에 샤룸바디의 본능은 맹렬히 경고를 하였다.

“도, 도망쳐!”

자신들의 실력으론 죽일 수 없는 괴물, 칼리의 이면에 있는 얼굴인 파괴신이 눈을 떴음에 그들은 도주를 택했다.

“크아아아앙!”

@

몽블랑은 사력을 다해 뛰어 지하에 도착했다.

지하는 초토화되어 있었다.

문의 한쪽은 떨어져 나가 바닥을 뒹굴고 있었고, 채석장의 쓰레기 돌을 모으는 곳을 보는 듯 돌의 잔해가 수북하게 깔려 있었다.

“이거 정말 엄청난 걸?”

메이슨은 깊숙한 곳에서 풍겨 오는 섬뜩하고 거대한 기운에 마른침을 삼켰다.

몽블랑은 이를 악물며 발을 뗐다.

꽈드득!

“위험합니다!”

아흘라니는 기겁하며 몽블랑의 어깨를 잡았다.

“내가 거둔 아이입니다. 그 아이가 저곳에서 날 기다리고 있어요, 단장.”

“그만두십시오! 사제님은 혼자가 아닙니다!”

“내 사람도 지키지 못하는 놈이 누굴 지킨단 말입니까! 방해하려거든 여기서 기다리십시오!”

몽블랑은 아흘라니의 팔을 거칠게 떼어 내며 성큼 걸었다.

멀어지는 등에 이를 악문 아흘라니는 다급히 발을 땠다.

“모시겠습니다! 사제님이 죽기 전에 제가 먼저 죽을 것입니다!”

“나도 마찬가지예요. 사제님.”

“허유, 오늘이 한번 죽는 날인가?”

마르꼬네, 메이슨, 소냐, 트리샤 모두 비장한 표정으로 몽블랑의 옆에 섰다.

몽블랑은 울컥 솟는 감동에 입술을 깨물었다.

“죽지 마세요. 24시간 안에 한 명밖에 못 살립니다. 위험하면 무조건 도망치세요.”

“아, 그래? 알았어. 그럴게.”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