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적의 사제-129화 (129/185)

<-- 130 회: 5-6 [이런 날에는 시거와 술이 필요한데 말이야] -->

모든 피부를 칼로 저미고 특수한 용액이 담긴 항아리 속에 들어가면 피투성이가 된 피부는 빠르게 아물어 들었다.

이는 칼도 잘 들어가지 않을 정도로 질기면서도, 남자가 한번 맛보면 다신 다른 이를 찾지 못할 매끈한 피부를 만들기 위한 진정한 카마수트라만의 비전이었다.

수천 마리의 개미와 벌이 물고 쏘는 고통에 샤크티는 미쳐 버릴 것 같았지만, 오직 몽블랑에게 은혜를 갚을 일념 하나만으로 참아내고 있었다.

잇몸이 뭉개져 피가 흐르는데도 비명 한 번 지르지 않고 참아내는 샤크티를 보며 샤룸바디는 질렸다는 얼굴이 되었다.

‘이게 수드라인가?’

똑같은 사람인데도 누군 참아내고, 누군 참아내지 못하는 것에 샤룸바디는 태생에 의해 갈라진 성장 과정 때문이라고 볼 수밖에 없었다.

크샤트리아는 태어나면서부터 사랑에 의해 떠받들어지며 몸과 마음이 풍족하게 성장하지만, 수드라는 태어나면서부터 죽을 때까지 죽음과 함께한다.

자살을 하면 또다시 수드라로 태어나야 하기에, 수드라에겐 자살조차 허락되지 않았다.

살아도 사는 게 아닌 삶. 그게 수드라였다.

‘옛날에 왜 수드라로 카마수트라로 만들었는지 알겠어. 이 단련법은 수드라가 아닌 이상 견뎌 낼 수 없는 성질의 것이야. 그들에겐 죽음의 고통 따윈 일상이니까!’

샤룸바디는 샤크티가 카마수트라의 진정한 비전을 모두 습득할 것 같아서 소름이 돋았다.

‘수드라의 등불이 재림할 거야!’

어둠을 밝히는 등불이 켜지는 날, 탁한 강 아래 굶주리던 이들이 죄의 사함을 받으며 풍요를 얻으리니, 영광된 광영은 세상 전체를 비추리라.

‘핫산에게 보고를 해야겠어!’

그 다급한 마음에 마음이 흔들린 그녀는 샤크티의 등으로 밀려드는 아주 미세한 어둠의 바람을 발견하지 못했다.

그리고 부릅떠진 두 눈이 검게 물들었다가 다시 원래대로 돌아간 것 역시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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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결단 고맙습니다, 세르.”

-아니에요. 우리도 지그문트는 그리 좋아하지 않아요. 그리고 우리도…….

몽블랑은 세르큐리안의 이어지는 말에 다시 한 번 고맙다는 인사를 하곤 통신 수정구를 껐다.

몽블랑은 지그문트를 적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하나, 종교라는 것은 없앤다고 해서 쉬이 없어지는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강압하고 탄압할수록 신심은 더욱더 짙어지고, 강해졌다.

모두 신이 내려 준 시련이란 생각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몽블랑은 그들의 권력을 뺏어 버릴 생각이었다.

왕도 메조르니아에선 시간이 너무 없어 할 수 없다가 알로호모라가 최악의 자충수를 두어 해결되었다.

이 아후라 왕국에서도 메조르니아처럼 지그문트의 신도는 많지만, 결정적으로 다른 것은 이곳이 절대왕조의 나라라는 것이었다.

셈하자의 말이라면 같은 브라만들이라도 설설 기어야 하는 그런 나라 말이다.

‘일단 여기서부터 말려 죽인다!’

몽블랑은 셈하자와의 오후 티타임에서 입을 열었다.

“흐음, 아카데미라…….”

몽블랑은 썩 내켜 하지 않는 셈하자를 향해 입을 열었다.

“세상 그 어떤 부모라도 제일 원하는 것은 자식이 잘살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그걸 충족시켜 주면 핫산은 더 많은 신망과 충심을 얻게 될 겁니다.”

“그러느냐? 하긴 그렇구나.”

카우트예에 대해 조사를 하였던 셈하자는 거의 천만에 이르는 신도들이 어떻게 신도가 됐는지를 떠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무상 치료소와 무상 아카데미라…….”

전쟁을 준비하는 셈하자에게 있어 민심을 모으는 데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할 수 있었다.

“바로 진행해야겠군. 아핫타, 재상에게 전국 각지에 모든 바이샤가 수용할 수 있을 만한 무상 아카데미와 무상 치료소를 만들라 전하라! 돈을 아껴선 안 될 것이야!”

“예, 핫산!”

몽블랑은 무모하기까지 한 셈하자의 결정에 입을 떡 벌렸다.

‘메조른 왕실과 왕실파는 셈하자에 비교하면 애교구나. 이게 진짜 돈질이다.’

그 모습이 웃긴 것인지 실소를 지은 셈하자는 다시 최측근 신하인 아핫타를 바라봤다.

“아, 그리고 카우트예의 학원과 병원, 신전을 지으라 하라!”

“알겠습니다, 핫산!”

“하, 핫산!”

“선물이다, 성자여. 나의 백성들이 그곳에서 배우고 치료받는 돈은 모두 내가, 아후라의 황실이 지불할 것이다.”

“너, 너무 과합니다! 거둬 주십시오!”

선물도 선물 나름이었다.

질겁하는 몽블랑을 보며 셈하자의 눈은 차갑게 가라앉았다.

“그대의 카우트예가 나의 백성들을 충동시킬 만한 곳이었다면 이런 선물은 주지 않았을 것이다.”

카우트예의 가치관과 아후라 왕국의 국가관은 많은 부분에서 상충하지만, 그 목적은 결국 아래에 있는 자들의 풍요였다.

우상 숭배를 금하면서, 현생의 일이 후생에 영향을 끼친다는 것이 카우트예의 교리였다.

풍요롭게 살기 위해선 내가 노력해야 하지만, 이것이 기존 세력을 몰락시키자는 것은 아니었다.

신 아래 모두가 평등하다는 말이 가장 걸리긴 했지만, 메조른 왕국의 상황을 보면 결국 자신이나 브라만들이 처세를 잘하면 되는 것이다.

계급을 나누는 것은 어려서부터 현생의 일이 후생에 영향을 끼친다는 말로 세뇌를 시키면 그만이었다.

물론 지금의 생각대로 되진 않을 수 있지만, 가랑비에 온몸이 젖고서야 비가 온다고 느끼는 것보다는 차라리 입맛대로 다룰 수 있는 종교를 불러들이는 게 나았다.

종교의 전염성은 그만큼 무서웠으니 말이다.

‘로도스네가 그립군. 선조들이 괜한 짓을 벌였다. 쯧.’

셈하자는 선조들이 경전의 한 구절조차 남기지 않고 없애 버린 로도스네를 떠올리며 아쉬워했다.

“그러니 성자는 많은 사제들을 배출하여 본국에 보내야 할 것이다. 본 황실의 은혜를 저버린 지그문트와 카만의 자리를 치워 낼 것이니 말이야!”

“핫산!”

몽블랑은 기함했다.

지금 그의 말은 카우트예를 거의 국교로 삼겠다는 말이라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랬기에 몽블랑은 뭐가 이상했다.

비록 자신이 의도하고 있던 일이라도 말이다.

사제의 패악은 권력자들이 더 잘 알고 있었기에, 특정 교단을 국교로 삼았을 때 벌어질 일 역시 그들이 더 잘 안다고 봐야 했다.

지구의 일을 보아도 권력자는 권력을 나누려 하지 않았다.

그건 이곳도 마찬가지였다.

지금까진 자신이 그저 사람을 잘 만난 것뿐이었다.

“카만이 주인의 잠자리마저 침범하고 있다, 성자여.”

“……아.”

귀금속으로 먹고사는 아후라의 특성상 카만의 강세는 예상되는 일이었다.

“작렬하는 태양 아래서 일해야 하는 백성들의 고됨을 덜어 주겠다고 지그문트가 설레발을 친다. 정작 나의 백성들은 돌보지 않는 것들이 브라만들에게 기생하며 나의 백성들을 괴롭힌다. 그나마 율리나와 루나는 어느 순간부터 제 위치를 찾은 것 같아 지금은 참겠지만, 두 교단에 대해선 참을 만큼 참았다고 생각한다. 이제 주인이 누구인지 알려 줄 때가 온 것 같다.”

몽블랑은 그가 왜 선물을 주었는지 알 것 같았다.

‘아후라가 변하려 한다. 무엇 때문인지는 모르지만, 종교의 필요성이 생겼다. 그런데 카우트예는 나부터도 권력에 욕심이 없다. 굳이 귀족이 아니더라도 잘 먹고 잘 사는 방법을 알고 있으니까!’

권력자에게 카우트예만 한 종교는 없다고 봐야 했다.

“알겠습니다, 핫산. 하지만 시간이 걸릴 것입니다.”

“그 정도는 이해한다. 하나, 성자가 학원도시에 도착하면 무조건 본국으로 사제들을 보내야 할 것이며, 또한 본국의 백성들도 사제로 만들어야 할 것이다.”

“당연히 그럴 것입니다.”

몽블랑에게 이 제안은 절대 나쁜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부탁하고 싶을 정도였는데, 셈하자가 알아서 지그문트와 카만을 치워 주려 하니 고맙다 인사를 하고 싶을 정도였다.

하지만 이래서는 결국 지그문트와 카만을 이 땅에서 쫓아내는 것에 그칠 뿐이었다.

몽블랑은 아카데미와 병원으로 운을 뗀 진짜 목적을 이야기하기로 했다.

마침 셈하자가 바라는 일에 큰 효과를 주면서도 몽블랑 자신에게도 어마어마한 이득이 되는 이야기를 말이다.

“그런데 핫산, 그걸 아십니까?”

“음? 무얼 말이냐?”

“지그문트와 카만의 신이 원래는 고대 신들이 만든 세상의 관리자였다는 것을 말입니다.”

“하맛드가 전해 준 그 말을 말하는 거구나. 그래, 그런 방법이 있었어.”

셈하자의 눈이 차갑게 가라앉기 시작했고, 몽블랑은 입술을 비틀었다.

‘천천히 말려 죽여 주마, 지그문트!’

종교는 영역도 중요하고 얼마만큼의 신도를 지녔는지도 중요하지만, 신앙이 얼마만큼 절실한가도 중요했다.

몽블랑은 그들의 신앙을 없앨 생각을 가졌다.

* 이런 날에는 시거와 술이 필요한데 말이야.

허억! 학! 학!

우거진 나무들 때문에 햇볕조차 잘 비치지 않는 숲 속, 수십 마리의 짐승들이 달리고 있었다.

늑대, 사자, 여우, 고양이, 들개 등등, 그런데 그들의 몸집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크기보다 훨씬 컸다.

가장 작은 개체에 속하는 고양이조차 1미터는 훌쩍 넘어 있었다.

산불이 일어난 것도 아닌데도 절대 한곳에 있을 수 없는 그들은 혀가 입 밖으로 튀어나와 흔들리며 침을 사방으로 흩트리는데도, 무언가에 쫓기듯 불안하고 초조한 눈빛을 지으며 계속 땅을 박찼다.

그런데 그런 그들의 위로, 나무와 나무를 넘으며 달리는 존재들도 있었다.

긴 귀를 가진 것과 절세의 미모, 나뭇잎으로 만든 듯한 옷을 제외하면 인간과 똑같은 이들이었다.

이젠 설화 속 존재로만 여겼던 엘프였다.

그들은 맹수들을 몰이하는 게 아니라, 맹수와 똑같이 무언가에 쫓기고 있었다.

해가 저물어 한 치 앞도 볼 수 없을 정도로 어둠이 드리워도 계속 달리던 그들은 가장 선두에 섰던 늑대가 발이 꼬여 넘어지자 멈춰 섰다.

맹수들 중 늑대들은 그 늑대에게 달려가 살피는 모습을 보였다.

“후욱! 훅! 일단 여기서 쉬도록 하죠.”

땅으로 내려온 엘프의 말을 알아듣기라도 하는 듯 짐승들은 바닥에 엉덩이를 붙인 채 헐떡거리며 숨을 골랐다.

그러나 그중 늑대들은 다른 존재들의 눈치를 보는 듯 연신 그쪽을 힐끔힐끔 쳐다보며 소리조차 죽인 채 숨을 골랐다.

녹발의 청안을 가진 엘프는 그런 늑대들을 보며 복잡한 감정이 섞인 한숨을 내뱉었다.

처음 수인족들이 달려왔을 때만도 별일 아니라 여겼다.

원래 마을에서 나고 자랐지만, 노예 사냥꾼에게 잡혀갔다가 몇십 년 전 돌아온 한 하프 엘프의 입에서 추적향이란 소리가 나오고, 무조건 죽여야 한다고 외쳤을 때만 해도 별일 아니라 여겼다.

그가 평소 정신 이상적인 행동을 보이며 술에 취해 있는 것도 있지만, 진정으로 멸종해 버린 드래곤이 아닌 이상 찾을 수 없을 정도로 마을을 감싼 결계는 견고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건 무지에서 비롯된 크나큰 오판이었다.

새하얀 오러를 뿜어 대는 수백의 신성 기사들이 덮치자 마을은 삽시간에 혼란에 빠졌고, 동족의 대부분이 잡혀 들어갔다.

여기에 있는 소수의 여성과 노인, 아이 들만이 겨우 도망친 것이다.

“엘메이라, 정말 다른 동족의 마을로 가면 안 되는 건가요?”

“저 상시 발정 난 개새끼들이 몸에 묻혀 온 추적향 때문에 안 돼. 우리 마을과 똑같은 꼴을 당하게 될 거야.”

적발에 눈매가 날카로운 검은 눈동자의 엘프는 늑대들을 죽을 듯이 노려봤고, 늑대들은 더욱 움츠려들었다.

“어이, 개새끼들, 이제 말해. 우릴 어디로 인도하는 거냐?”

뿌드드득! 드득!

선두에서 넘어졌던 거대 늑대의 몸에서 뼈가 어긋나는 소리가 들리더니 곧 사람의 형상을 갖춰 갔다.

얼굴에 자글자글한 주름은 그의 나이가 상당히 많다는 것을 알려 주었다.

“비스트의 정점에 서 있는 이들이 있는 곳으로 가네. 그들은 우리들에게 왕이라 불리는 이들이지. 그들이라면 우릴 숨겨 주고, 보호해 줄 것이네.”

“아, 그들을 말하는 건가? 멸종했다고 들었는데…… 그래서 그놈들이 어디에 있는데?”

“영혼조차 헤매는 곳!”

“노망이라도 든 거냐! 슬리핑 포레스트는 숲과 조화의 종족인 우리 엘프도 살기 힘든 곳이야! 하프인 나는 말할 것도 없고!”

“알고 있네. 하지만 이대로 죽을 순 없잖은가!”

노인의 눈에선 복수의 귀화가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칫! 좋아. 안내하도록 해. 대신, 배회하는 숲을 거쳐서 갈 거야. 거기도 헤매는 것은 마찬가지니까! 어차피 가는 길이니 잔말 말고 내가 알려 주는 대로만 가!”

엘메이라 역시도 복수를 생각하고 있지만, 대륙의 금지라 불리는 슬리핑 포레스트는 두려웠다.

그녀는 부디 배회하는 숲에 그들이 있길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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