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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추기경들의 반발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3성녀가 모두가 움직이자 그들은 아무 반항도 못 하고 받아들여야 했다.
“히~ 대모는 대모고, 언니는 언니인걸. 난 세이 언니가 큰언니 같아서 정말 좋단 말이야. 음~ 이 포근한 살 냄새.”
베일 아래로 드러난 붉은 입술이 온기를 머금으며 곱게 휘었다.
딱 붙은 세이머리안과 세르큐리안은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며 세피리안의 방으로 향했다.
세피리안은 작은 체구에 은발의 은회안을 가진 미래가 기대되는 아리따운 소녀였다.
옥의 티가 있다면 인형처럼 감정 없는 표정이었다.
“세피~.”
세르큐리안은 날다시피 세피리안에게 달려들었다.
세피리안은 놀랍지도 않은지 앉아 있던 자리에서 재빨리 일어났고, 세르큐리안은 그대로 의자를 껴안으며 바닥을 뒹굴었다.
“아고고, 우리 세피, 또 부끄러워하는 거야? 자, 이리 오렴. 언니의 품은 넓단다~.”
“죽어 버려, 바보.”
“에이~ 부끄러워하지 말래도.”
세피리안은 한숨을 내뱉고는 세이머리안에게 목례를 했다.
“오셨어요.”
“그래, 밥은 잘 먹고 있니? 또 피망만 골라내는 건 아니지?”
“아줌마, 아니 세페스 님께서 오늘 낮잠 자는데 꿈에 나타났어요. 묻었던 진실이 드러났다고요.”
“응? 그건 현재의 일 아니야? 왜 세페스 님이 말해?”
“세르 언니가 안 자니까 세르큐리아 님께서 세페스 님께 부탁한 거겠지. 하루에 몇 시간 자?”
“3, 3시간?”
세이머리안과 세피리안의 입에서 한숨을 흘러나왔다.
현재 총단에선 카우쉬카에 있는 카우트예 학원도시를 모티브로 하여 루나만의 신성도시를 짓고 있는 중이어서 세르큐리안은 매일매일 서류에 시달리고 있는 중이었다.
그렇다고 도와줄 수도 없는 게 각자의 일이 바쁘다는 것도 있지만, 세력도 적고 현재의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셋은 각자의 영역을 존중하고 지켜 줄 줄 알았다.
“묻었던 진실은 그걸 말하는 거니?”
“네.”
“왜 드러났는지도 말해 주셨어?”
“일어선 신의 사자가 발견했데요.”
“아, 그래? 그럼 상관없겠다.”
둘은 깜짝 놀라 의자에 양반다리를 하고 앉은 세르큐리안을 바라봤다.
“세르,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지 못한 거니?”
이번 일은 신도들의 신앙이 흔들릴 만한 중대한 사건이었다.
“걱정 마, 그 사람은 그걸 이용하지 않을 거니까. 정확히 말하자면 우리에게 해가 될 일은 하지 않는다는 게 맞을 거야.”
“그만큼 신의가 있는 사람이란 거니?”
“응. 자신의 울타리 안에 있는 존재는 어떻게든 지키려는 사람이지. 아마, 피해를 입는 건 지그문트와 카만뿐일 거야. 뭐, 그렇게 되면 우리도 피해가 없는 건 아닐 테지만, 확정과 예측은 다르잖아?”
세이머리안과 세피리안은 생각에 잠겼다.
세르큐리안은 그걸 보며 씁쓸히 웃었다.
“그리고 어차피 우린 뿌리까지 무너질 정도의 시련이 필요해. 그래야 천년만년의 광영을 이룰 수가 있어.”
“네가 그렇게 말한다면…….”
이곳에 있는 세 명 중 교단을 가장 사랑하고 번영시키려 하는 존재는 세르큐리안이었다.
과거와 미래를 통해 너무 많은 것을 보아 온 세이머스와 세피리안은 교단의 일, 정확히는 세상사에 관심이 별로 없었다.
“세페스 님이 뭐라고 더 말하진 않으셨어?”
세피리안은 고개를 저었다.
“무언가 있는 것 같았지만, 말해 주진 않았어. 아직은 때가 아니라는 거겠지.”
“암튼 음흉한 분들이라니까. 자기 딸들이 잘되는 꼴을 못 봐요. 빨랑빨랑 말해 주면 어디 덧나나?”
“이 역시도 시련이잖니.”
말은 막 해도 그 안에 악의는 없다는 것을 아는 세이머리안은 따뜻이 웃으며 세르큐리안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입술을 비죽 내밀고 투덜거리던 세르큐리안은 벌떡 일어났다.
“여기 있어 봤자 우리 세피와 인형놀이도 못 할 것 같으니까, 난 이만 세 분께서 더 칭송받을 수 있도록 일하러 갑니다~.”
세이머리안과 세피리안은 안쓰러운 마음으로 세르큐리안을 배웅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교단을 제일 걱정하는 건 세르지?”
“네, 역대로 저런 사람이 세르큐리안을 받았기 때문에 본 교단이 이만큼까지 번창할 수 있었던 거예요. 그런데 정말 신경 쓰지 않아도 될 까요?”
“세르가 믿는 사람이라면 나도 믿는단다.”
온화하게 웃은 세이머리안은 세피리안을 지긋이 바라봤다.
“정말 이후에 말 하신 게 더 없니?”
“잊혔던 과거가 일어선 자의 낙원에서 재림하리라…… 무슨 소리인지는 잘 모르겠어요.”
“휴, 역시 세페스 님은 쉽게 말하시는 법이 없구나.”
생각에 잠겼다 고개를 저은 세이머리안은 베일을 걷어 감겼다 떠진 온통 검게 물든 눈으로 세피리안을 바라봤다.
세피리안은 깜짝 놀라 고개를 돌렸지만, 늦어 버렸다.
“역시 피망을 안 먹었구나?”
“윽!”
“오늘은 피망 요리만 하도록 부탁해야겠어.”
“어, 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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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한 포박, 신성한 심판.”
땅에서 솟아오른 하얀 밧줄이 날아오르려던 5미터 높이의 거대 괴물을 묶고 투명한 해머가 옆구리로 날아가 틀어박혔다.
깽!
“느림의 공포.”
일어나려는 거대 괴물을 향해 보라색의 빛줄기가 쏘아지자 기회를 노리고 있던 이들이 일점사를 시작했다.
목표는 성대 아래의 살이었다.
고통에 찬 비명조차 느리게 흘러나왔다.
손을 뻗고 있던 몽블랑은 너무도 격한 반항에 혀를 차며 모두 물러나라고 외치고는 다른 손을 뻗었다.
다시 한 번 개의 형상을 가진 거대 괴물을 묶기 위해서였다.
“신성한 포박!”
우웅! 촤르르르르!
갑자기 온몸이 한 번 진동함과 동시에 머릿속에 어떤 이름이 떠올라 흠칫했던 몽블랑은 밧줄이 아니라 사슬이 솟아나 거대 괴물을 묶자 깜짝 놀랐다.
“진화?”
눈을 동그랗게 떴던 몽블랑은 찰나에 정신을 차리고는 다시 신성한 심판을 쏘아 냈다.
그런데 이번에도 몸이 울더니 머릿속에 어떤 이름이 떠오르는 것과 동시에 천장에 닿을 듯한 높이에서 만들어진 거대한, 웬만한 장정 두 명만 한 크기의 해머가 머리를 아래로 하며, 거대 괴물의 머리를 향해 떨어져 내리자 몽블랑은 급히 소리쳤다.
“모두 물러나요!”
모두가 급히 자리를 이탈할 때, 신성한 심판의 머리는 거대 괴물의 머리를 향해 맹렬히 떨어져 내렸다.
콰아아앙!
깨애애애앵!
죽는다는 비명 소리 이후, 거대 괴물은 정신을 차리지 못한 것인지 이리저리 비틀거렸다.
몽블랑은 급히 느림의 공포를 쏘아 냈고, 이 역시도 한번 울며 또 다른 단어를 뱉어 냈다.
슬로우 마법까지 걸린 상태에서 물속에서 걷는 듯이 느려지는 그 모습에 사람들은 지금이 때라고 여기며 자신의 모든 것을 쥐어짜 공격을 감행했다.
촤아악! 퍼엉! 푸우우욱!
크아아아아앙!
뼈가 드러날 정도로 성대 아래의 살이 잔인하도록 유린된 거대 괴물은 끝내 단발마를 뱉어 내며 옆으로 쓰러져 버렸다.
쿠우우웅!
먼지구름을 피어올린 괴물이 한참의 시간이 흘렀어도 숨을 쏟아지지 않자 일행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뱉으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정말 괴물이로군. 어떻게 오러가 통하지 않았던 거지?”
마스터를 목전에 두고 있는 하맛드는 전력을 다한 오러를 뽑아 내지 않으면 생체기도 나지 않았던 괴물을 보며 질린다는 얼굴이 되었다.
그건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나마 제대로 된 치명상을 입혔던 것은 아흘라니와 마르꼬네 두 명이었다.
‘역시 럴러바이인가? 초입이지만 마스터라니…….’
놀란 얼굴이 되었던 하맛드는 이내 괴물을 보며 비실 웃었다.
‘그래도 뿌듯하군. 대체 얼마만의 혈투인가?’
샤크티를 제외한 모두는 후련한 얼굴로 거대 괴물을 보고 있었다.
몽블랑은 그런 그들을 보다가 가슴께로 손을 모았다.
“신성한 치료의 대지.”
화아아아악!
몽블랑의 몸에서 사방으로 퍼져 나간 신성력이 일행의 몸을 감쌌다.
그에 괴물의 발톱에 스쳐 깊은 자상이, 발에 치여 부러진 뼈가 원래대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아흘라니와 마르꼬네는 몸을 감싸는 포근한 기운에 무릎을 꿇고 앉아 기도를 올렸고, 하맛드와 그의 사람들은 경이로운 눈으로 몽블랑을 바라봤다.
그 뜨거운 눈길이 조금 부담스러워진 몽블랑은 거대 괴물의 죽음이 확인되자마자 달려가 사체를 해부하기 시작한 모하메드와 그 제자들을 바라보다 모하메드의 손에 들려 조심스럽게 나오는 검붉은 핏덩이 같은 것을 보곤 눈을 부릅떴다.
“스톱! 그거 저를 주십시오!”
흠칫 놀란 모하메드는 몽블랑을 보며 울상을 지었다.
“서, 성자! 이것은 성자가 가져가 봐야 아무런……”
“사체의 80%를 넘겨 드릴게요! 그 가죽으로 갑옷을 만들면 정말 죽이겠죠?”
모하메드가 아니라 하맛드가 들으라고 한 소리였다.
“모하메드, 그걸 넘겨주어라! 여기서 난 것은 성자의 것이다!”
“아, 알 쿨, 이것은 이 괴물의 하트이자 정수입니다! 이건 엄청난 자원…….”
“이 정도 가죽과 뼈라면 대전사 삼십여 명을 무장시킬 수 있을 터! 잔말하지 마라, 모하메드!”
갑자기 울고 싶어진 모하메드는 정말 싫은 얼굴로 몽블랑에게 괴물의 하트를 넘겨주었고, 몽블랑은 희희낙락거리며 하트를 마법 주머니 안에 집어넣다가 순간 아차 했다.
‘잠깐, 이거 나한테 필요 없는데?’
괴물의 하트에 눈이 돌아 쓸모없는 짓을 해버렸다.
‘아직도 버릇을 못 고친 건가?’
몽블랑은 어떤 기대를 담아 하맛드를 바라봤지만, 상당히 만족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어서 거래를 번복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에이, 멀린 학부장에게 주면 뭐라고 만들겠지. 이 정도면 최상급 마나석 정도는 될 테니까.’
입맛을 다시던 몽블랑은 반대편에 만들어진 문을 발견하곤 일행을 일으켰다.
“자, 안으로 들어가죠!”
사람들은 또 이런 괴물이 있을까 긴장하며 문으로 향했다.
마법적 장치와 기관적 장치가 없는 것을 확인되자 문은 조심스럽게 열렸고, 사람들은 눈을 멀게 할 듯 비쳐 오는 황금의 파도에 입을 벌렸다.
작은 공동 안에는 온갖 금은보화가 쌓여 있었고, 벽에는 수천 권의 책들이 꽂혀 있었다.
검도 삐죽 튀어나와 있고, 딱 봐도 아티팩트인 방패 위에 금화 수백 개가 놓여 있었다.
몽블랑은 가운데 난 길을 걸어 끝에 있는 단상으로 향했다.
허리까지 오는 단상에는 130센티미터 크기의 지팡이가 놓여 있었다.
투명한 하얀색의 보석이 박힌 지팡이는 몽블랑이 아주 낯익은 것이었다.
“성자의 지팡이…….”
몽블랑은 어떠한 이끌림에 지팡이를 들었고, 그 순간 가슴의 신성력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몽블랑은 눈을 감으며 머릿속을 헤집는 지식을 음미했다.
우우우웅! 화아아아악!
사람들은 빛을 뿜어 대는 몽블랑과 지팡이 그리고 공간 전체를 보며 눈을 부릅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