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5 회: 5-1[에, 뭐, 응?] -->
* 에, 뭐? 응?
밑이 보이지 않는 검은 무저갱과 같은 공간으로 떨어져 내리는 몽블랑은 바람에 말려 올라가는 머리칼에 오싹해졌다.
‘시발, 이런 말은 없었잖아! 이거 뒈지는 거…….’
“실프-!”
위에서 내려쳐온 녹색의 바람이 온몸을 감싸며 들어 올리자 몽블랑은 잠시 당황했다가 이내 안도했다.
하지만 너무 이른 안도였다.
“크으으윽!”
핏발 선 트리샤의 비명은 뒤이어 뛰어내린 샤크티로 인해 절규처럼 바뀌었다.
덜컹 떨어졌다 붙들리는 몸처럼 심장 역시도 덜컥 내려앉으며 온몸에 식은땀이 흐르는 것이 느껴진 몽블랑은 자신을 포기하라고 외치려 고개를 들려 했다.
그 순간 아흘라니와 마르꼬네는 서로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트리샤 씨, 우리는 풀어 줘요! 알아서 내려갈게요!”
이미 실프가 역소환되지 않은 게 용할 정도로 과중된 무게 때문에 트리샤는 미안해하면서도 재빨리 아흘라니와 마르꼬네를 감싼 실프의 제어를 풀었다.
아흘라니와 마르꼬네는 순간 서로의 발을 차더니 동굴의 벽을 향해 쇄도해 두 자루의 단검을 뽑아 들어 박아 넣었다.
카가가가가가가!
불똥이 엄청나게 튀었지만, 다행히도 박혀 든 단검 때문에 둘의 속도는 눈에 띄게 내려졌다.
“차압!”
그 순간 아흘라니와 마르꼬네는 벽을 박차며 반대쪽의 벽을 향해 몸을 날리며 또 단검을 박아 넣었다.
둘은 그런 식으로 빠르게 내려갔고, 그걸 본 메이슨과 소냐도 서로를 보며 준비하더니 트리샤를 바라봤다.
“우리도!”
“알았어!”
실프의 제어가 풀리자 둘은 아흘라니와 마르꼬네가 그랬던 것처럼 서로의 발을 부딪친 반동으로 벽으로 날아가며 무기를 박아 넣었다.
조금만 늦었어도 실프가 역소환될 뻔했던 트리샤는 작은 원망을 담아 샤크티를 노려봤는데, 샤크티는 어쩔 줄 몰라 하며 금방이라도 눈물을 흘릴 듯한 모습에 그녀는 한숨을 내뱉으며 실프의 제어에 신경을 기울였다.
솔직히 말하여 모두 샤크티의 잘못은 아니라고 할 수 있었다.
하늘에서 떨어져 내리는 깃털처럼 느리게 내려오던 그들은 곧 땅에 발을 딛고서야 안도의 한숨을 내뱉을 수 있었다.
“고마워요, 트리샤.”
“무얼요, 해야 할 일이었는걸요, 고, 용, 주, 씨?”
카우트예 재단 이사장이 몽블랑이었으니 고용주가 맞기는 했다.
트리샤는 안절부절못하는 샤크티의 머리를 쓰다듬었는데, 그 따뜻한 손길에 샤크티는 결국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렸다.
주춤주춤 몽블랑에게 달려가 여기저기 살펴보던 샤크티는 이내 아흘라니와 다른 일행에게 사죄를 하기 시작했다.
일행은 모두 괜찮다며 울고 있는 샤크티를 달래었다.
시간이 흐르자 트리샤의 실프로 소식을 전해 받은 브라만 하맛드와 그의 아들 루히알드 그리고 쿤룬의 전사들이 내려왔다.
“쿤룬의 아래에 이런 공간이 있었다니…….”
하맛드는 왠지 배신당한 듯하면서도 신기한 물건을 보는 듯한 눈으로 곳곳에 박힌 발광석에 의해 밝은 동굴 내부를 둘러보았다.
“이, 이건! 오오오! 인조 발광석!”
발광석을 살피다 크게 감격해하는 한 늙은 마법사와 비교적 젊은 마법사들을 본 사람들은 의아해했다.
라이트 아티팩트보다 빛의 세기가 현저히 떨어지는 발광석은 별 가치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게 그렇게 대단한 것이냐?”
“이건 황혼과 새벽의 전쟁 이전 마도의 산물입니다, 하맛드 님! 역사적인 가치가 엄청난 것이란 소립니다! 수백 년이 흘렀는데도 이렇게나 밝다니!”
사람들은 전혀 공감할 수 없는 이야기에 간단히 무시해 버렸다.
하맛드는 날이 나간 무기를 갈고, 위험한 곡예에 경직되었던 몸을 푼 그들 중 몽블랑을 보며 작게 아쉬워했다.
하지만 약속은 약속이라 하맛드는 욕심을 버리기로 했다.
“위험할 수도 있으니 하맛드 님은 뒤로 물러나시는 게 좋겠습니다.”
“위험하다? 나 역시 쿤룬의 대전사이오, 성자. 아후라의 남자는 위험에서 도망치지 않는다오!”
몽블랑은 무어라 더 말하려다 입을 다물고는 아흘라니와 마르꼬네를 바라보았다.
“정비를 마쳤으면 이제 전진하도록 하겠습니다. 길잡이는 여기 아흘라니 단장과 마르꼬네 양이 할 것입니다. 전엔 럴러바이라 불리었으니, 실력은 의심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하맛드와 루히알드는 눈을 부릅뜨며 이쪽을 신경 쓰지 않는 아흘라니와 마르꼬네를 노려보다 존경하는 눈으로 몽블랑을 응시했다.
‘럴러바이가 와서 잡아간다.’라고 하면 우는 아이도 그쳐 버리는 대륙의 악몽, 그들로 인한 피해자는 드러난 것만 백 명이 넘는데도 단체인지, 개인인지 혹은 남자인지 여자인지, 노인인지 아무것도 드러나지 않은 그들은 권력자에게 공포나 마찬가지였다.
그런 럴러바이를 복속시켜 이리 새사람으로 만들었으니, 하맛드는 몽블랑을 존경할 수밖에 없었다.
몽블랑은 신뢰로 빛나는 그들을 보며 자신의 노림수가 잘 먹혔다고 생각하며 아흘라니를 바라봤다.
“단장, 출발해 주세요.”
“예, 사제님!”
동굴은 장정 여덟 명이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을 정도로 높고 넓었다.
앞서 나아가던 아흘라니는 무언가를 발견하곤 순간 손을 들어 주먹을 쥐었고, 모두는 재빨리 멈춰 섰다.
“아무것도 만지지 마시고 벽에 기대지도 마십시오. 그리고 조심히 물러서십시오.”
아흘라니의 기분 좋은 중저음은 모두가 숨을 죽인 동굴 안을 또렷이 울렸고, 사람들은 벽과 주위를 경계하며 천천히 물러섰다.
아흘라니는 품에서 둥근 원반 같은 것을 꺼내 앞으로 날렸다.
팅!
무언가 끊어지는 소리가 나자 동굴의 천장이 쿠르르 울기 시작했고, 아흘라니와 마르꼬네는 재빨리 땅을 박차며 뒤로 물러섰다.
그 순간 두 사람이 있던 자리로 천장이 무너져 내렸다.
쿠구궁!
먼지구름이 피어오르자 트리샤는 실프로 일으킨 바람으로 날려 버렸다.
“꿀꺽!”
족히 2미터는 될 법한 두께를 가진 10미터의 돌 판이 내려앉아 있는 것을 본 사람들은 식겁했다.
아흘라니는 혹시 이중 함정이 있을까 돌 판도 꼼꼼히 살피고는 다시 전진하자는 말을 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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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을 향해 도달하는 길은 정말 위험천만 그 자체였다.
천장이 내려앉는 건 애교고, 두꺼운 날을 가진 커다란 도끼가 떨어져 내리거나 양쪽 벽이 좁아지는 것도 예사였다.
인조 마법 몬스터라 불리며 지금은 발견되지 않는 가고일이나 스톤 골렘이 습격했을 땐 정말 식겁했었다.
여기서 가장 신난 것은 단연코 늙은 마법사, 쿤룬 마탑의 탑주 모하메드 라무 실바와 그의 제자들이었다.
모두 과거의 유산인지라 그들의 눈은 학구열로 빛나고 있었다.
하지만 여기서 나온 것은 모두 몽블랑의 것이라며 못 박아 두었기에 너무 안타까워한 그들은 하맛드의 눈치를 보며 끙끙 앓아야 했다.
그걸 본 눈치 빠른 마르꼬네는 슬그머니 모하메드에게 다가갔다.
“7 대 3! 모두 공유하기! 대신, 카우트예와 쿤룬만!”
“고, 고맙소! 내 이 은혜는 잊지 않으리다, 마르꼬네 양! 자, 이건 내 선물이오! 아르센 것보다는 못하지만 그래도 심혈을 기울여 만든 것이오!”
“어머, 뭘 이런 걸 다…….”
모하메드는 몽블랑과 그 일행을 위해 자신의 마법 주머니에 있는 아티팩트들을 아낌없이 풀었다.
몽블랑은 마르꼬네를 어이없이 바라보았다가 이내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젓는 것으로 그녀의 행동을 허락했다.
전혀 생각지 못한 것에서 소득은 얻은 것도 모자라 앞으로도 막대한 이득이 생길 일이니 굳이 거부할 필요는 없었던 것이다.
하맛드는 자신의 것을 아낌없이 나눠 주는 몽블랑의 배포에 크게 감탄했다.
모하메드가 하도 호들갑을 떠는지라 다시 배가 아프던 와중이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다시 전진했고 위험은 다시 찾아왔다.
그럴 때마다 모두 합심해서 이겨 냈고, 곧 길의 끝에 설 수 있었다.
거대한 문의 앞에 서자 아흘라니, 마르꼬네와 모하메드, 그 제자들의 포지션이 바뀌었다.
거대한 문에 양각된 수많은 글자와 그림을 보던 모하메드의 눈은 점점 굳어져 갔다.
“이게 진정 진실이라면 현 5대 교단의 신들은…….”
“그게 무슨 말이십니까?”
5대 교단이란 말에 귀가 쫑긋해진 몽블랑은 급히 모하메드에게 다가갔다.
“저건 라훔메트 어라고 황혼과 새벽의 전쟁보다 훨씬 이전, 신들과 마법의 절정기의 시대인 신마시대 때 이 땅의 글자이오. 고문엔 밝지 않아 거의 해석할 순 없지만, 몇몇 문장에 따르면 현 5대 교단의 신들은 본디 몰락한 고대 신들의 피조물이었다고 말하고 있소이다.”
사람들은 식겁하며 모하메드를 바라봤지만, 왠지 몽블랑은 심드렁했다.
“서, 성자, 아직도 모르겠소! 이 문구대로라면 그들은 원래 신으로 태어난 게 아니라…….”
“관리자로 태어났죠. 알아요, 우리 옛 경전에도 그렇게 써져 있거든요. 괜히 분란만 일으킬 것 같아서 지금 경전엔 넣지 않았지만요.”
사람들의 식겁한 시선은 몽블랑에게로 향했다.
“그것보단 여기 열리는 문을 통해 쏟아져 나오는 이 살기부터 어떻게 해야 할 것 같은데요.”
크르르르르르!
고개를 높이 쳐들어야 볼 수 있는 곳에서 흉광을 내뿜고 있는 붉은 눈과 코를 엄습해 오는 유황의 역한 냄새.
뭔지는 모르지만, 정말 골치 아파질 몬스터임이 틀림없었다.
‘보스 몬스터까지 있냐? 아주 지랄을 해라, 지랄을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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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한의 추위로 유명한 루타니아 왕국의 정중앙, 그곳엔 세이머스, 세르큐리아, 세페스의 달과 시간의 세 여신을 모시는 루나 교단의 총단이 있다.
가장 세가 강한 세르큐리아의 성녀 세르큐리안은 세피리안의 부름에 흥분된 마음을 감추지 못하고 걷고 있었다.
“우리 귀여운 세피가 무엇 때문에 날 불렀을까? 드디어 인형놀이를 허락한다는…….”
“세피가 그럴 리 없다는 건 세르가 더 잘 알지 않나요?”
온화한 목소리에 깜짝 놀라 고개를 돌린 세르큐리안은 베일을 써서 코와 입만 드러낸 육감적인 몸매를 가진 여성을 보곤 환하게 웃었다.
“세이 언니, 오늘은 어떻게 그 어두침침한 방에서 나올 생각을 한 거야?”
세르큐리안은 세이머리안을 안으며 그 풍만한 가슴에 얼굴을 비볐다.
“아직도 아기네요, 세르. 베아트리체 추기경이 보면 섭섭해하겠어요.”
은거를 택했던 베아트리체가 본격적으로 움직이려 하자, 세르큐리안은 자신의 권력을 써서 그녀를 추기경의 위에 올려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