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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의 사제-115화 (115/1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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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작 산하나 넘었을 뿐인데, 기온차가 엄청나네요.”

무더웠던 낮과 비교하면 전혀 다른 계절이라고 오해할 만큼 밤은 추워져 있었다.

그런데 몸은 기분 좋게 서늘한 정도로만 체온을 유지해 주고 있었다.

“단장이 추천한 이유가 있네요. 아티팩트가 부럽지 않아요.”

아흘라니는 과찬이라며 작게 웃었다.

입을 온전히 드러낸 가면 때문인지, 그의 미소는 여실히 보이고 있었다.

국경 마을의 야시장은 메조른의 색체와 아후라 왕국의 색체가 어우러져 꽤나 색다른 광경을 자아내고 있었다.

“역시나 여행자용 선물들…….”

날이 세우지 않은 곡도, 뼈로 만든 장신구, 풍경이나 인물로 짠 천, 회중시계 등등 많은 것이 새로웠지만, 거의 모든 가판이 그런 것들을 팔다 보니 금세 심드렁해졌다.

하지만 그것도 좋다는 듯이 트리샤, 소냐, 마르꼬네는 눈을 빛내며 구경하는 데 여념이 없었는데, 남자들은 저마다 양꼬치 하나씩을 입에 문 채 먹는 데만 정신이 팔려 있었다.

“다 똑같은 게 뭐가 다르다고 저리 구경하는지. 내 눈엔 다 똑같아 보이는데 말이야.”

“그러게 말입니다. 어차피 메조른에 돌아가면 장식품이나 될 것을 왜 저리 많이 사는지 모르겠군요.”

“역시 먹는 게 남는 거 아니겠어?”

메이슨의 말에 몽블랑과 아흘라니는 적극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의미로 이번엔 소시지나 먹어 보죠.”

몽블랑은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가판을 가리켰고, 메이슨과 아흘라니는 허겁지겁 남은 양꼬치를 입에 밀어 넣었다.

“새콤하면서도 조금 느끼한 게 꽤 재밌는 맛이네요.”

“이건 안에 오돌뼈를 다져 넣은 것 같습니다.”

“후아~ 이건 정말 맵다.”

가판에선 총 다섯 종류의 소시지를 팔았는데, 한입 베어 물면서 뽀득 터지는 소시지 특유의 식감도 잘 살아 있어서 그들은 상당히 만족스럽게 즐길 수 있었다.

세 여자들이 생각나 고개를 돌렸던 몽블랑은 그녀들이 보이질 않자 주위를 둘러보았다.

하지만 인파에 묻혀서 그런지 찾을 수가 없었다.

“얼레? 어디 갔지?”

그 말에 고개를 돌렸던 아흘라니와 메이슨도 찾지 못했다.

잠시 당황했던 메이슨은 이내 음흉하게 웃었다.

“여자들은 제쳐 두고 우리들끼리만 돌아다닐까? 야시장의 어느 골목으로 들어가면 아주 죽이는 술집들이 있다는데…….”

“……콜!”

여자들 역시도 한가락씩 하기 때문에 그들은 걱정하지 않았다.

한 번 더 둘러보며 여자들이 완전히 보이지 않음을 확인하자 셋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교환하며 발을 뗐다.

입에다 쉴 틈 없이 길거리 음식을 집어넣는 그들은 매의 눈으로 골목길을 살폈다.

“아, 저기인 것 같다.”

붉은 등이 걸린 것이 아주 익숙했다.

그렇게 안으로 들어가려던 세 남자는 갑자기 소란스러워지는 앞에 의아해하며 시선을 돌렸다.

삐익! 삑삑!

“우앗! 헛! 뭐, 뭐야! 소매치기냐! 이놈!”

소란은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무슨 일 때문인지 의아해하며 몽블랑과 메이슨이 저 앞쪽을 보는 가운데 아흘라니는 앞의 나무 상자를 박차고 오른 그림자가 몽블랑의 머리 위로 향하자 반사적으로 손날을 세워 발목을 걷어 버렸다.

“꺄악!”

“우왁!”

몽블랑은 급히 고개를 숙였고, 그림자는 그런 몽블랑을 넘어 바닥에 떨어졌다.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본 몽블랑은 바닥을 뒹구는 여자아이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심하게 굴렀는지 드러난 얼굴과 팔, 다리가 쓸려 피투성이가 된 여자아이는 두려운 눈빛으로 몽블랑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흘라니는 그 찰나 찢어진 옷 사이에서 무언가 발견하였다.

“등에 문신을 새기다니…… 수드라군요.”

몽블랑은 순간 모든 것을 파악할 수 있었다.

“일단 숨기죠. 맞아 죽는다면서요.”

가만히 놔두면 양심의 가책 때문에 꽤나 힘들 것 같았다.

“……알겠습니다.”

아흘라니는 바로 주머니에서 페니를 한 움큼 꺼내 허공에 던져 버렸다.

“……도, 돈이다! 우왁! 내 거야! 저리 가!”

주위는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고, 옆의 가판에서 넓은 천을 걷어낸 몽블랑은 여자아이에게 접근하여 덮어 주며 들어 올렸다.

가판에 셈을 한 메이슨까지, 셋은 재빨리 자리를 이탈했다.

사람의 통행이 없는 비좁고 한산한 골목으로 들어온 몽블랑은 두려움에 질린 여자아이를 여기 저기 널브러진 나무 상자에 앉혀 놓고는 이마에 손을 얹었다.

“신성한 치료.”

여자아이의 몸에 난 생채기는 순식간에 감쪽같이 사라져 버렸다.

손이 다가오자 눈을 질끈 감았던 여자아이는 갑자기 사라지는 고통에, 특히나 부러진 것같이 아팠던 발목의 고통이 씻은 듯 사라지자 눈을 동그랗게 뜨며 몽블랑을 바라봤다.

“괜찮니?”

여자아이는 멍하니 고개를 끄덕였다.

“이름이 뭐야?”

“샤, 샤크티입니다.”

“샤크티? 공용어를 할 줄 아는구나.”

“샤, 샤크티. 조금 합니다. 배웠습니다. 수드라 마을 들른 금발, 푸른 눈의 여행자에게…….”

말을 줄이던 샤크티는 곧 그 큰 눈에서 눈물을 뚝뚝 흘렸다.

“사, 살려 주세요. 샤크티, 엄마 아픕니다. 살려 주세요. 샤크티 받고 엄마 고쳐 주세요, 다른 나라 브라만 님.”

나무 상자에서 내려온 샤크티는 머리를 조아리며 바들바들 떨었고, 몽블랑은 그 처절하고 잔인한 말에 눈을 질끈 감았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사제님?”

“이걸 외면하면 잠을 설칠 것 같네요.”

아흘라니와 메이슨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흐뭇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메이슨 형은 남아 계셔서 여자들에게 오늘 늦을 것 같다고 말해 주세요. 걱정하지 않게요.”

“음, 알았어. 그럴게.”

강자는 강자를 알아본다고, 메이슨은 아흘라니가 자신의 윗줄에 있는 고수라는 것을 알아보았기에 믿고 호위를 맡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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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드라는 마을 안으로 들어올 수 없다.

그렇기에 그들은 살기 위해 강가 주변에, 그것도 사람들이 찾지 않는 외진 곳에다 부락을 형성하고 있었다.

동물을 키우는 것도 농사를 짓는 것도 허락이 안 되기에 그들은 어쩔 수 없이 목숨을 걸고 도시 안에 들어가 쓰레기를 훔쳐 오거나, 마찬가지로 목숨을 걸고 나무에서 열매를 따고, 강가에 잠수해 물고기를 잡았다.

국경 마을을 포함해 주위 땅과 물건 등등 하물며 길가에 떨어진 쓰레기까지 브라만 릭샤의 것이었기에 그들은 살기 위해 목숨을 거는 것이다.

크샤트리아의 옷을 입은 몽블랑과 아흘라니가 부락 안으로 들어서자 마을 내의 거지보다 더 몰골이 더럽고, 비쩍 마른 수드라들은 기겁하며 엎어졌다.

몽블랑은 부락을 감싼 침묵에 눈살을 찌푸렸다.

“수드라는 위 계급의 사람이 질문을 던질 때까지 말을 할 수 없습니다.”

“정말 많은 걸 알고 계시네요, 단장.”

“……돌아가신 제 모친이 아후라 출신이었습니다.”

“아, 그래서…….”

몽블랑은 어두운 아흘라니의 낯빛에 무언가 사정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그건 개인사였기 때문에 말해 주기 전까진 묻지 않기로 했다.

“샤크티, 네 엄마는 어디 계시니?”

“샤, 샤크티 엄마한테 갑니다.”

부락의 모든 집은 여러 장의 헝겊쪼가리를 기워 짠 천으로 지붕을 만든 천막 같은 형태였는데 크기가 6인용을 넘지 못했다.

몽블랑은 그 지붕이 아흘라니의 말에 의하면 강을 통해 흘러 내려온 쓰레기로 만든 것이란 것을 알게 되었다.

“엄마! 엄마!”

천막을 걷자마자 퀴퀴한 먼지가 피어올라 눈살을 찌푸렸던 몽블랑은 동물 썩는 냄새가 풍기자 기겁하며 누워 있는 여성을 보았다.

파리하게 죽은 얼굴은 눈마저 감고 있어 시체처럼 보일 정도였다.

몽블랑은 급히 여성에게 다가갔다.

“살려 주세요. 샤크티 드립니다.”

가까이 다가가자 몽블랑은 그녀가 왜 죽을 지경인지 알 수 있었다.

옷이 찢어져 드러난 배는 굳어 버린 피로 범벅이 되어 있었는데, 어떻게 봉합하기는 했지만 그것도 들쭉날쭉하고, 후의 관리까지 되지 않아 상처에 고름이 생긴 데다 구더기가 끓고 있었다.

“단장, 포션 있죠? 저 좀 도와주세요!”

“예!”

“샤크티 너는 물을 끓여 와! 그리고 깨끗한 천도! 어서!”

“네, 네!”

밖으로 뛰어나간 샤크티가 잠시 후 끓인 물을 가져왔고, 그사이 구더기를 걷어낸 몽블랑은 뜨거운 물을 적신 천으로 그녀의 상처를 북북 닦았다.

여성은 몸부림을 치며 아파했는데, 아흘라니는 그녀의 어깨를 잡아 눌렀고, 몽블랑은 굳인 피가 모두 닦여 나갈 때까지 봉합된 상처를 닦고 또 닦았다.

비교적 깨끗이 변하자 몽블랑은 아흘라니를 바라봤고, 아흘라니는 단검을 들어 봉합실뿐만 아니라 고름이 없는 부분까지 살을 잘라 버렸다.

스걱 하는 소리와 함께 피가 튀자 샤크티는 자지러졌다.

“신성한 치료! 신성한 치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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