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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의 사제-114화 (114/1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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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죽끈 액세서리로 인해 여성의 건강미는 더욱 돋보였다.

“저건 약혼을 했다는 표시입니다. 저렇게 잘 보이는 곳에 액세서리로 표식이 되어 있으면 모두 임자가 있는 거니, 절대 접근해선 안 됩니다.”

“그냥 길을 물으려고 해도요?”

“임자가 달려와 목을 쳐도 항변할 수 없는 큰 죄입니다. 다만, 발목에 액세서리를 찼다면 물어도 됩니다. 그런데 몸에 아무런 장식이 없으면 절대 말을 걸어서도 접근해서도 안 됩니다. 사제님이 아니라 그들이 맞아 죽습니다.”

몽블랑과 트리샤, 메이슨, 소냐는 눈을 크게 떴다.

“아후라 왕국은 브라만 제도라는 특이한 제도가 있는데, 왕족인 브라만과 귀족인 크샤트리아, 평민인 바이샤, 가축보다 못한 존재인 수드라가 있습니다. 몸에 아무것도 패용할 수 없는 이들은 수드라인데, 이들은 전생에 엄청난 죄를 저지른 죄인이기에 인간 취급을 해선 안 된다는 게 아후라 왕국 전 국민의 생각입니다. 황혼과 새벽의 전쟁 이전, 몰락하기 전의…….”

“로도스네군요. 그쪽의 경전에서 읽은 기억이 나요.”

“그거 아십니까? 지그문트의 발원지는 여기 아후라에 있는 세크마루 사막이었습니다.”

“네에? 그게 정말이에요?”

몽블랑은 정말 놀란 얼굴로 아흘라니를 바라봤다.

“모두 로도스네의 영향 때문입니다. 브라만과 크샤트리아는 자신들의 권력을 위해 로도스네의 교리를 자신들의 입맛대로 고쳐 아후라 왕국을 지배하기 시작했고, 그 때문에 지그문트는 알타이른 제국으로 거처를 옮겨야 했습니다. 그들은 브라만과 크샤트리아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지그문트가 알타이른 제국에 있는 거군요.”

난생처음 듣는 이야기에 몽블랑은 호기심을 드러냈고, 아흘라니는 신이 나서 아후라 왕국에 관하여 자신이 아는 모든 이야기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이야기를 들을수록 트리샤와 소냐의 얼굴은 어두워져 갔는데, 아후라 왕국은 여자들에게 지옥이나 다름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특히나 외모를 뽐낼 수 있는 장신구와 화장을 할 수 없다는 부분에서 둘은 너무도 크게 낙담했다.

“국경 마을은 그 특수성 때문에 아후라 왕국법에 대해 크게 제약을 받진 않지만, 그래도 옷은 사야 합니다. 아후라 왕국은 일교차가 정말 심한데, 저들이 입는 옷이 가장 실용성이 좋기 때문입니다. 마법이 걸린 아티팩트가 아니라면 말입니다.”

몽블랑은 빠르게 이해할 수 있었다.

아흘라니의 말대로 일교차가 크다면, 이곳에 사는 사람들이 그에 맞게 옷을 변형시켰을 테니 말이다.

“일단 숙소부터 알아보고, 사러 나가죠.”

일행들은 새로운 나라의 도시를 구경한다는 것에 작게 흥분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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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소는 적당히 머물 공간이 없어서 아후라 왕국의 양식으로 지어진 저택을 임대했다.

지붕이 둥근 저택은 온통 하얀 대리석으로 만들어져 있었는데, 담벼락도 높은 데다 정원도 넓고, 간단히 물장난을 칠 수 있는 수영장까지 마련되어 있었다.

거의 오십여 명이 한꺼번에 잘 수 있을 법한 저택이건만 놀라운 점은 빌리는데, 하루에 3천 페니도 안 한다는 것이었다.

다른 나라와 인접한 국경 마을이 이 정도라면 안으로 들어갈수록 물가는 더욱 싸질 거라는 것을 몽블랑은 짐작할 수 있었다.

“필요한 게 있으시면 언제든 불러 주십시오. 살롬.”

“수고하셨습니다. 살롬.”

살롬은 아후라 왕국식의 언어로 ‘안녕하세요, 안녕히 가세요.’라는 뜻이었다.

몽블랑은 풍채가 넓은 저택 주인이 나가자 바로 나갈 준비를 하였다.

저택 주인이 소개시켜 준 옷 가게가 얼마 떨어지지 않아서 얼른 옷을 사 입고 쉬다가 저녁에 야시장을 구경하기로 한 것이다.

“……거지가 많네요.”

까맣게 탄 비쩍 마른 사람들이 거리거리마다 바닥에 엎드려 있었다.

“그나마 여기 국경 마을은 양호한 겁니다. 타국인에게 좋은 인상을 심어 준다고 노력했기 때문이죠. 더 안쪽에 있는 마을에 가면 저녁에 함부로 돌아다닐 수 없습니다. 저들이 강도로 돌변하기 때문입니다.”

“아, 나도 그 이야기는 들어 본 적 있는 것 같아요.”

소냐가 아흘라니의 말에 얼른 손을 들고 동조했다.

몽블랑은 눈이 죽은 그들을 보자 마음이 조금 좋지 않았다.

“그럼 저들이 수드라인가요?”

“아뇨, 바이샤입니다.”

“네?”

“수드라는 도시 내로 들어올 수 없습니다. 저들은 바이샤 중에서도 직업을 가질 수 없는 가장 하층민인 카스트입니다. 붐바이, 마훔, 카스트. 바이샤는 이렇게 세 가지로 나뉘는데, 붐바이 계급만이 상가를 소유할 수 있고, 마훔은 종업원, 카스트는 거지밖에 못합니다. 건물을 다섯 채 이상 소유할 수 있는 계급은 크샤트리아부터입니다.”

“계급을 속이고 취직할 수 있는 거 아닌가요?”

“속일 수 없습니다. 저들은 누군가 물으면 자신의 계급을 말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큰 벌을 받게 되죠. 법으로 명시되어 있습니다.”

“……종교가 없는데도 이게 유지될 수 있는 건가요?”

‘힌두와 이슬람을 모티브로 한 게 로도스네였지?’

“그만큼 브라만과 크샤트리아가 치밀하게 세뇌를 시켜 놓은 겁니다. 아후라 왕국에서 신은 브라만입니다.”

몽블랑은 어째서 이 제도가 유지될 수 있는 지를 이해할 수 있었다.

‘윗동네의 김 씨 일족도 그렇게 다스렸었지?’

“혹시나 해서 드리는 말인데 절대 적선을 해 주지 마십시오. 국경 마을 모든 거지들이 사제님 뒤만 졸졸 쫓아다닐 겁니다.”

고개를 들었지만, 구걸을 바라는 말을 하지 못하는 거지들의 시선을 애써 외면하며 옷가게로 향했다.

딸랑!

“오~ 외국인이시군요. 살롬. 브라만 릭샤 님의 가호가 함께하기를…… 전 라파티입니다.”

짙은 갈색으로 탄 라파티는 풍채 좋은 갈매기 수염의 호인이었다.

남성은 거의 하얀 옷에 은색 실로 수놓아진 옷들이었고, 여성은 정말 화려한 색상의 천에 색색의 실로 자수를 놓고 있었다.

아흘라니는 몽블랑에게 귓속말을 했다.

“은색 실을 쓴 것을 보니 크샤트리아만이 옷을 살 수 있는 가게입니다. 은색은 크샤트리아만이, 그리고 금색은 브라만만이 쓸 수 있는 색상입니다. 저 주인은 아마 크샤트리아일겁니다. 크샤트리아에게 옷을 팔 수 있는 사람은 크샤트리아뿐입니다.”

아흘라니는 앞으로 나섰다.

“옷을 사려고 하는데, 외국인도 크샤트리아의 옷을 입을 수 있는 것이오?”

“모두 브라만 릭샤 님의 자비 덕분이죠. 다만 우리들의 색상까지만입니다.”

“릭샤 님께서 정말 자비가 넘치시는가 보군요.”

아흘라니가 브라만 릭샤를 칭찬하자 라파티의 얼굴이 헤벌쭉 벌어졌다.

자신의 주인을 외국인이 칭찬하자 정말 좋아진 것이다.

“이 국경 마을의 지배자이신 브라만 릭샤 님은 정말 자비로우신 분입니다. 그분께 적당한 선물을 바치면 몸종으로 쓸 바이샤 몇 명 정돈 기꺼이 내주실 겁니다.”

아흘라니는 상당히 놀라는 기색을 보였다.

“재산인 바이샤를 내준다는 말이오?”

“그만큼 자비가 넘치시는 분이시죠. 껄껄껄껄껄!”

별 필요 없는 잡담은 여기까지였다.

몽블랑과 일행들은 옷을 고르기 시작했다.

트리샤와 소냐, 마르꼬네는 메조른에서 볼 수 없는 양식이지만, 정말 예쁜 옷들을 보며 깊은 고민에 빠졌다.

반면 남자들은 고를 것도 없었다.

의상색이라곤 온통 하얀색에다 디자인도 다들 비슷했기 때문이었다.

일단은 얼마간 여행할지 몰라서 다들 네 벌씩은 샀고, 크샤트리아의 얼굴은 환하게 밝아졌다.

값이 만만치 않았지만, 몽블랑은 바로 현금으로 결제했다.

라파티는 ‘페니’에 눈을 동그랗게 뜨며 좋아했다.

아후라 왕국의 통용 화폐인 ‘루피’보다 페니의 값어치가 훨씬 높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라파티는 일행들의 옷을 계산한 몽블랑에게 조언을 해 주었다.

“본국 안을 여행 하시려면 관청에 특별 여행자 등록을 하시는 게 좋을 겁니다. 특별 여행자는 브라만 님들이 인정하는 여행자인데, 크샤트리아로 대우받기에 자칫 혼혈의 바이샤로 오인받아 당할 수 있는 험한 일을 피할 수 있습니다.”

몽블랑은 놀랍게도 라파티의 말을 알아듣고 있었다.

‘공용어로 해석? 통역되어서 들린다. 그것도 딜레이 없이. 역시 이것도…….’

라파티에게는 아후라 왕국의 언어로 해석되어 들을 수 있는 능력이 없기에 몽블랑은 아흘라니에게 들어 외운 아후라 왕국의 간단한 회화로 감사를 표했다.

라파티의 조언은 정말 이로운 것이어서, 그런 사실을 몰랐던 몽블랑은 그에게 팁을 조금 주었다.

하지만 그는 웃는 낯으로 팁을 거부했다.

“팁을 받는 건 바이샤뿐입니다. 크샤트리아는 적선을 받을 필요가 없습니다.”

“아, 실례했습니다.”

“껄껄껄! 아닙니다. 여행자시니 충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아, 여행자용 식료품을 사시려면 중앙 광장의 오른편에 있는 루파티로 가 보십시오. 라파티가 보냈다고 하면 정말 좋은 것만 줄 것입니다.”

“이름, 비슷하군요.”

“제 동생의 가게입니다! 형제끼리 돕고 사는 것이죠. 껄껄껄!”

뻔뻔했지만, 그리 기분 나쁘지 않은 몽블랑은 실소를 지으며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옷가게를 나온 몽블랑과 일행들은 그길로 관청으로 가 특별 여행자 등록을 하였다.

각자 페니로 2만씩을 내야 했지만, 수려한 은패는 마음을 든든하게 했다.

관청을 나오는 그들은 관리의 친절한 언행과 무엇이라도 더 해 주지 못해서 안달인 모습 때문인지 꽤나 기분이 좋았다.

“다들 친절하네요. 아후라 왕국은 모두 이런가요?”

“여행자라서 이러는 거예요. 여행자는 그들에게 돈을 안겨 주는 보물이니까요.”

아흘라니 대신 마르꼬네가 답했다.

“그래도 기본적으로 대부분이 호인이에요. 팔면 좋지만 안 팔리면 그만인, 그들만의 여유로운 마인드가 그들에게 치열한 경쟁을 선사하지 않으니까요.”

“……브라만 제도 때문이군요.”

“정답이에요, 사제님. 계급에 따라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일이 정해져 있기 때문에 그들은 꽤나 여유롭죠. 그만큼 질서가 없기도 하지만요.”

몽블랑은 방금 전 관청에서 벌어졌던 일을 떠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여행자 등록을 하는 창구는 가지런히 줄을 선 반면, 내국인을 상대로 한 창구들은 북새통이 따로 없었기 때문이었다.

일단 먼저 서류를 내면 끝이었는데, 관리가 일이 있어 자리를 비우게 되면 한정 없이 기다려야 했다.

그러면서도 서로 싸우거나 얼굴을 붉히지 않는 모습은 꽤나 문화적인 충격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런데 사제님, 아후라 왕국의 언어를 아시는 겁니까?”

비록 말은 잘 못 하지만, 다 알아듣는 듯한 몽블랑의 모습에 얼마나 놀랐는지 몰랐다.

“배, 배웠어요. 하하하.”

자기가 생각해도 어이없는 변명이었지만, 아흘라니가 고개를 주억거리며 넘어가자 어색하게 웃었다.

아흘라니는 그런 그를 보며 존경에 찬 눈빛을 보냈다.

‘역시 신의 아바타시다. 이분께 언어의 장벽이 없구나. 비록 반쪽짜리지만…….’

저택으로 돌아온 몽블랑과 일행들은 야시장이 열릴 때까지 쉬기로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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