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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의 사제-113화 (113/185)

<-- 114 회: 4-22 [역시 이것도] -->

메조르니아에 올라온 지 약 보름여, 몽블랑은 드디어 휴식다운 휴식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햇볕이 내리쬐는 침대에 누워 뒹굴던 몽블랑은 이러단 하루를 허투루 보내겠다는 생각에 몸을 일으켰다.

계단을 내려가던 몽블랑은 반대쪽에서 다가오는 트리샤를 발견하곤 잠시 멈춰 섰다.

“어머. 어디 가시나요, 사제님?”

“아, 네. 루시아 선물 좀 사려고요.”

순간 묘하게 얼굴이 어두워졌던 트리샤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눈을 초롱초롱하게 떴다.

“그럼 같이 가요!”

“네?”

“원래 여자 선물은 여자가 더 잘 보는 법이에요.”

“그렇기는 하지만…… 뭐, 그럼 같이 가시죠.”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트리샤는 걸칠 것을 가지러 간다며 얼른 왔던 길을 되돌아갔고, 몽블랑은 정원으로 내려가 벤치에 앉아 하늘을 보며 눈을 감았다.

살랑 불어오는 봄날의 따스한 바람은 마음마저 나른하게 만들며 여유를 만끽하게 하였다.

한편, 이 옷이 좋을까, 저 옷이 좋을까, 화장은 짙은 게 좋을까, 옅은 게 좋을까, 수많은 갈등을 하면서도 빠르게 외출 준비를 마친 트리샤는 초조한 마음에 조금 다급한 걸음으로 내려왔다가 고개를 뒤로 젖히고 잠이 들어 있는 몽블랑을 발견하곤 잠시 멈춰 섰다.

하늘을 향해 젖혀진 매끄러운 턱 선과 여자라고 믿을 수 있을 정도로 짙고 긴 속눈썹, 입가에 걸린 잔잔한 미소는 그녀의 마음을 크게 흔들었다.

멍하니 몽블랑을 보던 트리샤는 씁쓸한 한숨을 쉬고는 그에게 다가갔다.

“사제님, 일어나요.”

자신도 모르게 깜빡 잠이 들어 버린 몽블랑은 누군가 몸을 흔들자 눈을 떴다.

“……화장했네요?”

“원래 여자는 집 밖으로 한 발자국만 나가려 해도 꾸미는 존재예요.”

어디선가 들어 본 적 있는 말에 가벼이 수긍한 몽블랑은 몸을 일으켰다.

몽블랑과 트리샤가 향한 곳은 세 구역 떨어진 곳에 있는 73구역의 광장이었다.

몽블랑은 제일 먼저 장신구 점에 들렀다.

“결혼하시나 봐요? 좀 늦으셨네?”

“아니요. 그냥 연인이라는 징표로 끼려고 사는 거예요.”

“네? 그, 그런 것도 있었나요?”

몽블랑은 그제야 라르세리아 대륙에서 남녀가 같은 디자인의 반지를 끼는 건 약혼이나 결혼을 했다는 전제가 깔린 다는 것을 기억해 냈다.

“하긴…… 연인분의 외모를 보니 그렇게라도 구속하고 싶어지겠네요. 정말 낭만적이다, 손님. 그런데 무드가 좀…… 원래 이런 건 비밀리에 골라야 하는 거 아니에요?”

몽블랑은 해명을 하려다가 그만두었다.

“이걸로 주세요. 케이스는 붉은색 벨벳으로 해 주시고요.”

“네!”

반지를 든 주인이 안으로 들어가자 몽블랑은 뭐 예쁜 게 없나 하고 무심히 주위를 둘러봤다.

“루시는 좋겠네요, 이렇게 반지를 사 주는 사람도 있고요.”

“내 여자 내가 지켜야죠. 트리샤 씨도 곧 이런 걸 사 줄 사람이 생길 거예요.”

“그, 그러겠죠.”

조금은 울상이라 의아해한 몽블랑은 곱게 포장을 마친 반지가 나오자 신경을 껐다.

반지 케이스를 마법 주머니에 넣은 몽블랑은 옷을 사려다가 그만두었다.

정확한 사이즈를 모르니, 사기가 애매했던 것이다.

대신 어깨에 걸칠 수 있는 숄이나 향수, 손수건 같은 것을 사곤 잠시 쉬기 위해 카우트예&귀네슈 카페에 들어갔다.

“푸후, 얼마 돌아다닌 것 같지도 않은데 꽤 힘드네.”

몽블랑은 이게 누구 때문이라며 트리샤를 원망스럽다는 듯이 쳐다봤다.

이건 안 예쁘다, 이건 너무 비싸다 하며 몽블랑의 소비를 막은 게 그녀였기 때문이다.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트리샤는 카우트예&귀네슈 카페의 신상품인 ‘아이스크림 와플’에 흠뻑 빠져 있었다.

‘장사 잘되네.’

설탕이 들어가기에 웬만해선 사 먹을 수 없는데도 거의 모든 테이블에 와플이나 ‘케이크’가 놓여 있었다.

풍성한 드레스와 정장을 입은 신사 숙녀가 빵에다 칼질을 하고 있는 모습은 꽤나 우스웠지만, 그들의 옷차림은 메조르니아의 최신 유행이었다.

‘제일 유행에 뒤떨어진 건 역시 간판이려나? 조금 있다가 아드리아나에게 로고에 대한 걸…….’

탕탕! 포크가 테이블을 두드리는 소리에 몽블랑은 의아한 눈으로 트리샤를 바라봤다.

“이렇게 예쁜 숙녀를 두고 일 생각하는 거예요?”

“……내가 일 생각하는지는 어떻게 알았어요?”

“일, 아니면 루시아, 당신 생각은 그 두 가지뿐이잖아요.”

“……하하. 그것도 그러네요.”

‘옛날엔 내일은 무슨 아이템이 나와서 월세를 충당해 줄까, 숙련도 더럽게 안 올라가네라는 그런 생각만 했었는데…… 참 많이 변했어.’

둘 중 힘든 것이 언제냐고 물으면 지금이라 말할 수 있지만, 어느 게 더 보람차냐고 묻는다면 그것도 지금이라고 할 수 있었다.

자신 때문에 웃고 행복해지는 사람이 늘어갈수록 자신도 행복하고 뿌듯했다.

평생 이러면 좋겠다고 생각할 정도로 말이다.

“앞으로 어떻게 하실 생각인가요? 바로 카우쉬카로 돌아갈 생각인가요?”

“음, 일단은 아후라 왕국의 남부 쪽을 둘러보면서 카우쉬카로 돌아갈 생각이에요.”

“아후라 왕국을요? 갑자기 왜요?”

아후라 왕국의 남서부는 메조른 왕국의 북부와 접견하고 있었다.

“급한 일은 없으니까, 이 기회에 여행한다는 셈 치고 그냥 돌아보려고요.”

아후라 왕국으로 돌아서 가면 한 달 정도의 시간이 더 걸리지만, 몽블랑으로선 가야 할 이유가 있었다.

‘바쁘기 전에 찾아 놓을 수 있는 건 찾아놔야지.’

몽블랑은 아후라 왕국 남서부 어딘가에 숨겨져 있는 성물을 떠올렸다.

‘병 치료라든지 성수를 만들 수 있는 거면 좋겠다.’

대략 어디에 있는 것만 알지 그게 어떤 것인지는 잘 몰랐다.

“……같이 가도 되요?”

“트리샤 씨도요? 안 될 건 없지만…… 여기 학원에 지원한다면서요.”

“헤헤, 그건 합격이나 마찬가지니까, 학원이 개강할 때까지 여행을 해 보려고요. 사제님 따라가면 숙식이 공짜잖아요. 친구 좋다는 게 뭐예요. 이럴 때 좋은 거죠.”

몽블랑은 어이가 없어 입을 뻐끔거리다가 이내 피식 웃어버렸다.

“그래요, 그럼. 대신 숙소비는 각자 따로 내기.”

“음. 좋아요. 나 데려가는 걸로 약속한 거예요?”

몽블랑은 고개를 끄덕였고, 트리샤는 정말 기뻐했다.

‘아후라에서 허탕 치면 루타니아로 갔다가 쿠할란을 훑고 카우쉬카로 돌아와야겠어.’

몽블랑은 이 기회에 최대한 모아 보기로 했다.

* 역시 이것도

몽블랑은 귀네슈 상단의 메조르니아 지부로 가서 통신 수정구로 ‘로고’에 관하여 아드리아나와 토론하는 것으로 메조르니아의 일을 완전히 정리할 수 있었다.

카우트예 학원을 비롯한 상가, 병원 등 모든 것이 어느 정도 체계가 잡힌 것이 보이자 몽블랑은 미련 없이 메조르니아를 떠나 아후라 왕국으로 향했다.

아후라 왕국은 영토의 반절이 사막이고 나머지 반절은 초원이며 그나마 있는 산도 거의 대부분이 돌산에 가까운 아주 척박한 곳이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메조른 왕국과 맞먹는 영토를 차지할 수 있는 이유는 대륙 최대의 귀금속 생산지이기 때문이었다.

금, 은, 루비, 에메랄드, 다이아몬드, 미스릴 등등 없는 귀금속이 없는 아후라 왕국은 거지마저 금으로 만든 동냥 그릇을 들고 다닌다고 할 정도로 귀금속이 넘치는 곳이다.

그것뿐만이 아니라 고운 양털로 만든 카펫 같은 직물과 전투마 쪽으로도 유명했다.

그런 아후라 왕국은 귀금속과 직물, 말을 제외한 모든 것을 수입하는데, 주로 육상을 통해 무역을 하지만 해상무역도 그에 못지않게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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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블랑이 메조른 왕국의 국경관문을 넘은 건 메조르니아를 떠난 지 거의 한 달여가 지난 후였다.

메조른의 문물이 들어오는 곳이라 그런지 국경 마을은 꽤나 발달해 있었는데, 몽블랑은 그중에서 특이한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히잡이군요.”

“히잡요?”

“저렇게 히잡을 쓰고 있는 여자는 건드려서도, 또 말을 걸어서도 안 됩니다. 임자가 있다는 뜻입니다. 저기 저 여자의 팔뚝에 맨 가죽끈이 보이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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