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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작스럽게 생겨난 일 거리 때문에 몽블랑이 원망스러운 것은 사실이었지만, 그 후에 생겨날 이득을 생각하면 몽블랑은 왕실의 재정과 인재를 늘려 준 충신 중의 충신이었다.
그런 몽블랑이 왕실에 호의적이어서 암브로시아 후작은 참으로 기꺼웠다.
“그나저나 각오하는 게 좋을 거요.”
“뭘 말입니까?”
“예거 사제를 유혹하기 위해 꽃단장을 한 레이디들을 말 하는 것이오.”
“……저는 연인이 있습니다만? 그리고 오늘 주역은 트리파이온 저하 아닙니까?”
“아쉽게도 트리파이온 저하의 연치는 이제 고작 10세이시오. 그리고 예거 사제는 20대 중반이지. 정신 단단히 붙들지 않으면 제대로 코가 꿰일 것이오. 이 나도 준비하고 있으니 말이오.”
“예에? 자, 잠깐! 전 연인이 있다니까요!”
“내 증손녀가 참으로 예쁘다오! 푸헐헐헐헐!”
70세가 가까워지는 나이에도 정력이 넘치는지 성큼성큼 멀어지는 암브로시아 후작을 몽블랑은 망연히 바라봤다.
‘……정말 정신 바짝 차려야겠네.’
메조른 왕국에서만큼은 사제로서 정점을 찍은 데다 천문학적인 액수의 현금을 동원할 수 있고, 결정적으로 총각이었다.
그 어떤 부모라도 눈이 돌아갈 사위 후보였다.
게다가 현재, 왕국의 귀족이라곤 죄다 왕실파니 모두 선의의 경쟁을 펼칠 것이다.
특히나 작위나 세가 작은 귀족의 여식들이 펼쳐 올 별의별 방법들을 떠올리니 몽블랑은 온몸에서 소름이 돋는 것 같았다.
‘잘못하다간 코 꿴다. 솜털을 곤두세우고, 남이 넘겨주는 건 절대 먹지 말아야 해!’
숨을 깊게 들이마신 몽블랑은 전투적인 표정을 지으며 연회장 문 앞에 섰다.
“카우트예 교단의 셉티마 몽블랑 예거님께서 입장하십니다!”
끼이익 문이 열리며 안에 있던 모든 귀족과 귀족 자제들의 뜨거운 눈이 전신에 꽂힘에 몽블랑은 작게 울상을 지었다.
‘오늘 무사히 돌아갈 수 있을까? 나에게 힘을 줘, 루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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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
몽블랑은 한숨을 내뱉으며 넘어지려는 한껏 꾸민 소녀를 끌어안았다.
반절 정도 드러낸 가슴은 팔뚝에 뭉개지고 하얗고 얇은 그 손은 예민한 옆구리를 쓸어내렸다.
“괜찮으십니까?”
“죄송해요. 갑자기 발이 꼬여서요. 이것도 인연인데, 와인이라도 한잔…….”
“아이고, 자작님. 그간 잘 계셨습니까?”
몽블랑은 화들짝 놀라며 오지 말라고 눈으로 소리치는 젊은 자작에게 다가갔지만, 그 길도 그리 쉽진 않았다.
“아이쿠!”
발랑 뒤로 넘어진 한 귀족 영애의 치마 안이 훤히 보였다.
거뭇거뭇한 무언가가 눈에 들어오자 몽블랑은 자연스럽게 고개를 돌렸다.
‘아주 단단히 준비했구나. 내가 늙는다, 늙어.’
영애들의 육탄공세에서 살아남는 법은 단 한 가지, 권력자의 옆에 붙어 있으면 되는 것이었지만, 문제는 그 권력자들이 자신의 딸이나 손녀, 여동생과 이어 주기 위해 눈에 불을 켜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가르티안 근처에 갈 수도 없는 것이, 가르티안 근처에는 트리파이온이 있었고, 그 나이에 맞는 여자 아이들이 포진해 있다는 것이었다.
왕실 근위 기사단장 펠리칸도 귀엽게 생긴 손녀를 대동시킨 채 이쪽을 향해 눈을 부라리고 있었다.
문제는 손녀의 나이가 이제 15세 정도로 보인다는 것이었다.
평소엔 그리도 조신할 수가 없던 아가씨들이 오늘은 다들 취하기라도 한 것인지 넘어지고 부딪치고 음료를 쏟았다.
어떤 막나가는 영애는 대놓고 입술을 부딪쳐 오기도 했다.
더 이상 참지 못하고 피곤해서 먼저 간다며 도망치다시피 연회장을 빠져나온 몽블랑은 진절머리가 난다는 듯이 고개를 저었다.
“후우, 아직도 분 냄새가 나는 것 같네. 뭔 꼬맹이들이 그렇게 적극적이야? 그걸 방치하며 독려하는 어른들은 또 뭐고……. 아나, 나 애인 있다니까.”
“쿡쿡. 성인을 두고 꼬마라 하는 것은 사제님밖에 없을 겁니다.”
“그래도 저에겐 꼬맹이들이에요. 루시아도요.”
스무 살을 넘기는 귀족 여식은 단 한 명도 없었다.
모두 그 전에 제 짝을 찾아 결혼을 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저런, 루시아 양이 들으면 슬퍼하겠군요.”
“그러니 단장은 쉿! 걔가 꼬집으면 얼마나 아픈데요.”
호위로 따라온 아흘라니는 작게 웃었고, 몽블랑도 장난스레 웃었다.
그 순간 아흘라니는 귀를 자극하는 소리에 눈살을 찌푸리며 마부석을 볼 수 있는 작은 창을 열었다.
“루카스, 지금 이거 이쪽으로 오는 거 아니냐?”
“맞아, 단장. 마차를 갓길로 정차해야겠어. 휘말리지 않게 말이야.”
“간도 크군. 오늘은 왕태자 책봉식인데 말이야.”
둘이 무슨 이야기를 하는가 하며 어리둥절해하던 몽블랑은 점점 커져 가는 ‘펑! 펑!’ 무언가 터져 나가는 소리에 눈살을 찌푸렸다.
“오늘 같은 날, 메조르니아에서 소란을 피우다니…… 단장 말대로 정말 간이 크네요.”
“안에 계십시오. 저들이 지나갈 때까지 밖에서 호위해야겠습니다.”
“……수고해 주세요.”
같이 나갔다가는 둘이 온전히 집중할 수 없기에 몽블랑은 안에 있기로 했다.
그게 못내 짜증이 났다.
‘이렇게 보호받을 정도로 나약하지 않건만…… 쯧.’
남자로서 당연한 반발심이라고 할 수도 있었다.
그래도 궁금했기에 몽블랑은 차창의 휘장을 걷어 밖을 볼 수 있도록 했다.
무언가 터져 나가는 소리는 빠르게 가까워져 갔다.
“거기 서십시오!”
“지금 서면 발가락 하나로 봐주지!”
“닥치고 꺼져! 실프 커터!”
카가가가각!
“제기랄! 어떻게 저걸 피해! 리샤, 저놈들은 누구야!”
“그딴 거 물을 시간에 화살이나 날려, 이 곰탱아!”
“소냐, 너 나중에 보자!”
후다닥 차창 앞을 스쳐 지나가는 누군가에 몽블랑은 순간 멍해졌다.
뒤로 젖혀진 후드 때문에 여실히 드러난 얼굴은 어디서 많이 본 얼굴이었다.
“……트리샤? 제기랄, 단장! 루카스 씨!”
“……알았습니다! 차앗!”
“이 새끼들은 또 뭐야!”
루카스와 아흘라니가 달려들자 마차에서 뛰어내린 몽블랑은 낯설지 않은 두 사내를 향해 손을 앞으로 뻗었다.
“신성한 포박!”
솨르르르륵!
“컥!”
“느림의 공포!”
“큭! 이, 이건 뭐야!”
그것으로 끝이었다.
짙은 오러가 서린 검을 들고 있던 두 사내는 목에 단검이 대어져 멈춰야 했고, 이 소란에 멈춰선 트리샤는 멍하니 몽블랑을 바라보았다.
“사제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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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틴과 루터는 재갈까지 물린 채 방구석에서 꿈틀거리고 있었고, 메이슨과 소냐는 말로만 들어왔던 몽블랑을 바라보면서 서로 작은 목소리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저 사람이 메조른의 성자란 말이지?”
“응? 카쉬모프의 성자 아니었어?”
“바보, 멍청아, 내가 귀 열고 살랬지? 카우트예 교단이 메조른 전역에 감기 같은 병을 치료할 수 있는 치료법을 알렸잖아. 귀족들이 치료법을 알려 줄 때, 카쉬모프의 성자가 알리라고 했다고 해서 메조른의 성자로 불리게 된 거야.”
“아, 그래? 그런데 리샤랑 어떻게 아는 사이지?”
“……어떻게 아는지는 몰라도, 일단 우리는 대박 맞은 거야. 교사 자리는 무조건 합격이라는 거지.”
“……그러네?”
어떻게 아는지는 모르지만, 악연만 아니면 되었다.
이렇게 구해 준 것을 보면 악연은 아닌 것 같지만 말이다.
몽블랑은 우물쭈물 말 못 하는 트리샤를 보다 한숨을 내뱉었다.
“저 사람들은 어떻게 할 생각이에요?”
“……일단 데리고 있으려고요. 저들이 입을 열지 못하게 할 방법은 있어요.”
“알았어요. 올라가서 쉬어요. 아, 방을 잡은 건 아니죠?”
“아뇨, 방 계약도 어제부로 끝나서요. 고마워요, 사제님.”
“목욕탕은 지하에 있어요. 고용인에게 말하면 물을 데워 줄 거예요.”
몽블랑은 더 이상 묻지 않고 자신의 방으로 올라갔고, 트리샤는 그런 몽블랑이 고마웠다.
트리샤는 마틴에게 다가가 재갈을 풀어 주었다.
입이 험한 루터보단 마틴이 훨씬 낫기 때문이었다.
“날 어떻게 할 생각이었죠?”
“모실 생각이었습니다. 그분께서 보고 싶어 하십니다.”
“우습네요. 여태껏 있는지 없는지도 모른 채 방치한 사람이 갑자기 절 보고 싶어 한다고요? 정략혼 때문이란 걸 모를 줄 알았나요?”
정답이었기에 마틴은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풀어 주면 알릴 것이 뻔하니, 어쩔 수 없이 이걸 내밀어야겠네요.”
마틴과 루터는 트리샤의 주머니에서 나오는 하나의 패에 경악을 하였다.
하얀색 드레이크가 양각된 패는 마틴과 루터, 그리고 둘이 소속된 기사단에 한하여 노예 인장보다 더 지독한 구속력을 가지고 있는 물품이었다.
“실수하시는 겁니다! 차라리 그걸 써서 교섭을 하십시오! 저희가 사라진 걸, 아시면 그분은 다른 추적대를 보낼 것입니다!”
트리샤는 말없이 목, 벨트, 양 팔목의 정령 증폭구도 떼어 내 마틴과 루터 앞에 놓았고, 둘은 눈을 부릅떴다.
“이, 이것의 의미를 아시는 겁니까! 당신의 모든 권리를 포기하신다는 것이며 그분의 핏줄인 것도 부정한다는 것입니다!”
“역시 이걸로 부족하겠죠?”
트리샤는 허리까지 내려오는 자신의 긴 머리칼을 모두 쥐어 목 부분에서 잘라 내었다.
서걱!
서늘해지는 뒷목은 그간의 추억과도 단절한다는 그녀의 마음이었다.
‘엄마…….’
“……피는 알아서 묻혀 주세요.”
“트리샤 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