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적의 사제-108화 (108/1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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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명한 사제가 왔다는 소식에 마을의 주민들은 죄다 촌장의 집으로 몰려들었다.

그들은 신성 마법으로 낫게 해 주는 게 아니라 감기에 좋은 약초를 알려 주는 세르게이의 행동에 의문을 품지 않고, 오히려 크게 감사해했다.

비싸디비싼 신성 마법을 시전하지 않아 준 게 가장 고마워 세르게이의 능력을 의심하지 못한 것이다.

감기뿐만이 아니라 쉽게 걸릴 수 있는 병의 치료법과 몽블랑에게 허락을 얻은 약차 조제법을 촌장에게 넘겨준 세르게이는 늦은 밤이 되어서야 여관으로 돌아왔다.

다음 날, 마차는 다시 왕도 메조르니아로 출발했다.

그렇게 메조르니아로 향하던 중 느낀 것은 의외로 감기가 전염된 마을이 많다는 것이었다.

그때마다 세르게이는 약과 약차 조제법을 넘겨주었고, 그에 비례해 카우트예의 명성이 높아졌다.

환자를 불러 모으라고 마을의 촌장을 다그칠 때, 세르게이가 내밀었던 신성력과 카우트예를 상징하는 펜던트 때문이었다.

세르게이는 자신이 카우트예의 사제라는 걸 숨기지 않았다.

현왕인 가르티안을 구한 사건 때문인지 산골 오지 같은 촌구석의 마을을 빼면 메조른에서 카우트예의 이름을 모르는 사람은 드물었기에, 빠른 시간 내에 치료법에 대해 신뢰를 주기 위해선 그 방법이 가장 좋았던 것이다.

그런 세르게이의 행동에 깨달은 게 있는 몽블랑은 카쉬모프 자작에게 연락해 세르게이의 치료법을 왕실파 귀족들에게 널리 알리도록 부탁하였고, 카쉬모프 자작은 흔쾌히 승낙을 해 주었다.

카쉬모프 자작으로서도 사방에서 쏟아지는 기침 소리에 마음이 편치 않았던 것이었다.

그건 백성을 다스리는 입장의 귀족들이라면 당연한 것일지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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꾸에엑!

녹색의 돼지 머리 몬스터 오크가 단발마를 지르며 무너져 내렸다.

전투가 끝났는데도 열 대의 수레를 호위하는 용병들은 긴장을 놓지 않고 있었다.

그때 어디선가 불어온 비취빛의 바람이 잿빛 로브를 눌러쓴 이에게 스며들었고, 로브인은 잔뜩 굳은 얼굴의 상단주에게 다가갔다.

“근방엔 없다고 하는 걸 보니, 마지막인 것 같아요.”

가슴을 쓸어내린 상단주는 로브인을 향해 활짝 웃어 주었다.

“고맙소. 그대 때문에 오크들의 기습을 먼저 알고 대비할 수 있었소.”

상단주는 갑자기 얼굴을 일그러트렸다.

“오크가 관도까지 내려왔는데 대체 정규군은 뭘 하는 건지, 아무리 역모에 얽혀 어지럽다지만……. 쯧. 아, 수고했소.”

로브인은 돌아서 걸어가다 네 번째 수레 위로 훌쩍 뛰어올랐다.

그와 동시에 두 명의 남녀 용병도 함께 올라왔다.

“이야~ 역시 정령사가 있으니까 편하구나. 만날 이렇게 편하게 갔으면 좋겠네.”

3급 용병인 메이슨의 말에 같은 3급 용병인 여자 소냐가 못마땅한 듯 혀를 찼다.

“너 그렇게 편한 것만 찾고, 늘어진 모습만 보이면 앞으로 의뢰를 못 받을 수도 있다?”

“뭔 개소리야? 어떤 의뢰주가 3급 용병을 괄시해?”

3급이면 나이트 급이라고 봐야 했다.

“소문 못 들었어? 카쉬모프에서 경호요원이라고 상단 호위나 요인 호위 같은 걸 전문적으로 하는 얘들을 길러 낸다더라. 기사들에게 전문적으로 배운다던데?”

“뭐? 그딴 헛소리는 어디서 들은 거야?”

“길드 지부에서 들은 거다. 그것뿐만이 아니라 왕실파 귀족들 영지에서도 그 경호요원인가 뭔가 하는 것들을 양성한단다. 바지런한 모습을 보이지 않으면 정말 의뢰를 받지 못할 수도 있어.”

“……길드에선 허락을 했데?”

“부산물 없음. 추가 수당도 없음. 오직 자신들이 만든 단체에서 월급만 줌. 이제 이해됐냐?”

“뭐야? 그딴 걸 길드에서 인정했다고? 의뢰가 그쪽으로 몰릴 게 뻔한데도?”

“어쩌겠냐, 길드가 아무리 날고뛴다고 해도 상대가 귀족인데? 다행이라면 상단 호위가 아니라 요인 호위 쪽으로 많이 몰릴 거라더라. 귀족은 아닌데 돈 좀 있는 새끼들이 합법적으로 사병을 끌고 다닐 수 있는 거지.”

“아주 지랄이구먼. 이젠 이 짓도 때려치워야 하나?”

메이슨은 얼굴을 와락 일그러트린 체 한숨만 푹푹 쉬었다.

그러다 로브인을 부럽다는 듯이 바라보았다.

“그래도 너는 낫겠네, 정령사는 귀하잖아.”

“아니, 나도 이제 때려치우려고. 어차피 정식 용병도 아니잖아.”

로브인은 길드에 정식으로 등록한 용병이 아니라, 메이슨의 용병 팀에 등록한 떠돌이였다.

“뭐? 정말? 왜? 너 같은 실력자는 드물어! 가까운 도시에서 길드에 등록만 하면 바로 3급은 줄걸.”

메이슨과 소냐는 깜짝 놀라 로브인을 바라봤다.

로브인은 상단 행렬의 끝을 힐끔 바라봤다가 하늘을 바라봤다.

“저주라도 걸린 것처럼 만날 길바닥에서 자는 것도 이젠 지겨워져서 말이야. 왕도에 카우트예 학원이라는 게 지어지고 있는데, 거기 교사나 지원해 볼 생각이야.”

“카우트예 학원? 아! 그 카우쉬카에 만들어진 학원도시를 말하는 거야? 그게 왕도에도 생겨?”

“아, 왕을 구한 그 사제가 만든 평민들을 위한 학교 말이지? 듣기로 과목이 수도 없이 많고, 실전에 관한 과목도 있다고 하던데…….”

메이슨과 소냐는 서로를 바라보았다.

“3급 용병이면 어디서 꿇리지 않지?”

“실전에 관해 우리 같은 용병을 따라올 인간이 있을까?”

의미심장하게 웃은 둘은 로브인을 바라봤다.

로브 속에서 피식 하는 웃음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래, 같이 지원하자.”

“좋았으! 그런데 월급은 얼마나 되지? 한 10만 페니는 주려나? 그 정도는 줘야 대출 끼고 집을 살 수 있을 텐데…….”

“듣기로 4만 페니 정도래. 대신 교사는 학원 차원에서 숙소, 식사, 생활용 아티팩트 등등 생활 전반에 필요한 모든 걸 지원한다고 했어. 전투 쪽은 무기와 방어구까지 공짜로 말이야.”

로브인의 말에 메이슨과 소냐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완전히 꿈의 직장이네! 이거 경쟁률이 엄청나겠는걸.”

“제기랄! 무조건 합격한다!”

메이슨과 소냐가 열의를 뿜어 대는 것을 보던 로브인은 갑자기 불어온 청명하고 시원한 바람에 하늘을 향해 고개를 들었다.

스륵 하고 흘러내리는 후드 속의 얼굴은 작년, 몽블랑과 헤어진 트리샤였다.

‘등잔 밑이 어둡다고 했어. 설마 내가 한 나라의 왕도에 있을 거라곤 그 누구도 생각지 못할 거야. 다시 추적자들이 붙는 것 같으니 숨어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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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온 메조르니아는 작년과 별반 달라진 게 없었다.

다만 있다면 곳곳에서 건물이 허물어지고 다시 세워지는 건설 열풍이 분다는 것뿐이었다.

몽블랑은 작년에 임대하였다가 아예 사 버린 저택으로 향하였다.

세르게이는 여독이란 게 없는 것인지 바로 카우트예 병원의 원장을 만나러 떠났고, 거의 1년 만에 만난 루카스와 아흘라니, 마르꼬네는 서로 뜨거운 해우를 나누었다.

챙! 퍼억! 퍽퍽!

검과 피륙이 부딪치는 소리에 목욕을 마치고 올라오던 몽블랑은 고개를 저었다.

“정말 힘도 좋아.”

아흘라니는 거의 1년간 실전에서 손을 놓은 루카스의 실력이 퇴보하지 않았나 하고 마르꼬네와 함께 몰아붙이고 있는 중이었다.

단검을 날리거나 심장을 향해 검을 찔러 넣는 등 창문 밖으로 보이는 광경은 외나무다리에서 만난 원수같이 살벌했다.

“저, 저거 괜찮은 거냐?”

튠은 너무 살벌한 광경에 하얗게 질려 있었다.

“괜찮아요. 그냥 놀이니까요.”

“놀이 치고는 너무 살벌하잖아. 저러다 죽겠다.”

몽블랑은 루카스와의 거리를 재 보았다가 손을 뻗었다.

“신성한 힘, 신성한 바람.”

순간 몸에서 빛을 발한 루카스는 창문 안의 몽블랑을 바라보았고, 아흘라니와 마르꼬네는 한숨을 내뱉었다.

몽블랑은 계속 싸우라며 손짓을 했고, 방금 전까지 칼날 위를 걷는 듯 목숨이 경각에 처해야 했던 루카스는 이를 사납게 드러내며 아흘라니와 마르꼬네를 향해 달려들었다.

번개처럼 빠른 속도에 아흘라니와 마르꼬네는 질겁하며 단검을 쳐들었다.

“빌어먹을!”

“사제님!”

“크하핫! 이제부터 반격의 시간이야, 단장, 아기 손바닥으로 다 쥐어지는 마르꼬네!”

“……뒈졌어!”

몽블랑은 다시 격돌하는 그들을 보며 나른히 웃고는 자신의 방으로 올라갔다.

“아저씨도 피곤할 텐데 주무세요.”

“악마 같은 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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