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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의 사제-106화 (106/1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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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부터 걷는다.”

동정심을 일으킬 정도로 암담하게 일그러진 얼굴이 자신을 바라봄에도 대주교라 불리는 아문라 콜은 아무런 표정의 변화가 없었다.

되레 허리의 말채찍을 꺼내 알로호모라의 등을 후려쳤다.

“크윽!”

“걸어라, 죄인.”

알로호모라는 죽일 듯 아문라를 노려봤다가 이내 이를 악물며 사막을 향해 발을 내디뎠다.

알로호모라가 걷기 시작하자 내렸던 사제들은 한 명만 놔두고 다시 마차에 올랐다.

낙타가 끄는 넓은 바퀴의 마차는 느릿하게 알로호모라의 뒤를 따랐다.

그렇게 그들이 열사의 대지로 들어간 지 얼마 후, 그들이 있었던 자리에 수십 명의 로브인들이 나타났다.

갈색의 로브를 눌러쓴 그들은 저 멀리 점처럼 보이는 마차들을 바라보다 이내 호기 좋게도 사막에 발을 디뎠다.

푹푹 빠지는 발이나 조금이라도 멈춰서면 등판을 헤집는 채찍질, 온몸을 익힐 듯이 작렬하는 햇볕은 문제가 아니었다.

제일 미치겠는 것은 갈증이었다.

바싹바싹 마른입은 등 뒤에서 들리는 물 넘김 소리에 겨우 침을 짜 내며 갈증을 더욱 일으키며 알로호모라의 정신을 피폐하게 만들었다.

‘이제 이틀인가…….’

첫 번째 징벌을 받은 자치고 나흘을 넘긴 사람은 한 명도 없었고, 알로호모라는 자신도 이틀 후면 갑자기 스러져 일어나지 못할 것이란 것을 알고 있었다.

그렇게 걷다 보니 또 해가 떨어지며 아침과 오후 내내 달구었던 몸을 식히다 못해 찢어 버릴 듯이 차가운 추위가 찾아왔다.

“음, 오늘은 저기서 쉬는 게 좋겠군.”

아문라는 검은색 바위 같은 것이 삐죽 튀어나온 곳을 가리켰다.

알로호모라는 맞기 전에 먼저 움직였다.

그렇게 가까이 가자 검은색 바위 같은 것은 놀랍게도 어떤 양식을 갖춘 건물이었다.

“여기에 이런 건물이 있었나?”

아문라는 의아해하면서 안으로 들어갔다가 온통 모래 천지인 내부에 눈살을 찌푸리며 밖으로 나왔다.

‘어떤 글 같은 게 있었던 것 같은데…… 뭐, 상관없지. 그럼 이제 슬슬…….’

아문라의 눈에 살의가 어렸다가 사라졌다.

“오늘은 내가 불침번을 모두 설 테니 너희들은 편히 쉬도록 해라! 물론 내일부턴 나 없이 해야 하는 거 알지?”

신성 기사와 사제 들의 얼굴이 환하게 밝아졌다.

얼른 모닥불을 피우고 천막을 친 그들은 곧 술과 고기로 낮 동안 지친 정신과 몸을 풀기 시작했고, 알로호모라는 보면 괴로운 광경에 눈을 감고 등을 돌려 버렸다.

아문라는 그런 모습을 의미심장하게 쳐다보았다.

‘수면제가 든 것도 모르고 잘도 먹는군.’

술과 고기를 잔뜩 먹은 신성 기사들과 사제들은 곧 천막으로 들어가 잠을 청하기 시작했다.

어디 가지 못하게 마차에 쇠사슬이 묶인 알로호모라도 꾸벅꾸벅 졸기 시작하자 주위를 둘러보던 아문라의 얼굴에 짙은 미소가 어렸다.

“미안하구나. 대의를 위해 죽어 줘야겠다. 너희들이 죽어야 명분이 생긴다. 이 땅에 오직 지그문트 한 분만이 남을 명분 말이다.”

마차에 기댄 검을 들고 일어선 아문라는 짙은 흉소를 머금은 채 천막으로 향하였다.

슈우우욱! 퍽!

“……바보 같은…….”

가슴 앞으로 삐죽 튀어나온 피 젖은 화살촉을 어이없이 바라보던 아문라의 눈에 서린 생기는 점점 사라져 가더니 곧 꺼져 버렸다.

나지막한 중얼거림에 흠칫 놀라 깼던 알로호모라는 화살에 죽은 아문라를 보곤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사사사사삭!

꿀렁꿀렁 그림자들이 빠르게 다가오자 긴장했던 알로호모라는 선두의 누군가를 보곤 경악과 반가움이 섞인 눈빛을 지었다.

그는 예전에 카우쉬카에서 총단으로 끌려갔던 반트 몰록 대사제였다.

그가 허공에 손짓을 하자 뒤따르던 로브인들이 재빨리 천막 안으로 들어갔고, 곧 그 안에서 피육음과 단말마만이 들려왔다.

반트 몰록은 한 로브인이 들고 온 열쇠를 가지고 알로호모라의 족쇄를 풀어 주었고, 알로호모라는 손목과 발목을 만지며 후련한 표정을 지었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고생하셨습니다, 추기경 예하.”

“……고맙다. 일단 물을 다오. 저놈이 음식에 무슨 수작을 부린 것 같으니 네가 가지고 있는 것으로 다오.”

가죽 물통을 받아 든 알로호모라는 가죽의 비릿한 냄새가 섞였음에도 마치 감로수라도 되는 것처럼 배가 빵빵해질 때까지 물을 마셨다.

“푸후! 이제야 살겠군. 대체 어찌 된 일이냐?”

총단으로 끌려간 반트 몰록은 그때까지 있었던 알로호모라 추기경의 영향력 때문에 호사를 누리며 옥살이를 했다가 출소했다.

복수심에 사로잡힌 반트 몰록은 알로호모라를 찾아 그의 힘으로 몽블랑을 죽이려 했는데, 갑자기 알로호모라의 실각 소식이 들려오게 되었다.

그러자 반트 몰록은 재빨리 사람들과 함께 몸을 숨겼다가 이렇게 뒤를 따른 것이었다.

그 설명에 알로호모라는 감격할 수밖에 없었다.

힘이 사라진 자신을 구하기 위해 이렇게 위험을 감수했는데 고맙지 않는다면 그건 사람이 아닐 것이다.

“어릴 적 배고플 때 내밀어졌던 빵 한 조각과 주스를 저는 아직도 잊지 못합니다. 앞으론 제가 모시겠습니다.”

“어, 어디로 갈 것이냐?”

“씨 스왈로우로 갈 겁니다. 그곳이라면 세크메르 교황도 우릴 찾지 못할 겁니다. 그리고 거기서 힘을 길러…….”

뒷말은 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음, 그 전에 일단 저놈들에게 흔적을 남겨라. 이번엔 본 교단의 신성력을 듬뿍 담아서 말이다. 누가 봐도 같은 교단에 당한 것처럼 말이다. 도망치는 마당이니, 교황 놈의 계책이라도 깨부숴야겠다.”

“……예! 일단 저곳에서 쉬고 계십시오.”

새하얀 세인트 오러가 솟구치고, 피 냄새가 더 짙게 퍼졌다.

피 냄새를 피하기 위해 검은 건물 안으로 들어간 알로호모라는 쌓인 모래에 등을 대고 누워 눈을 감았다.

잠시 후, 감긴 눈이 밝아지며 고소한 냄새가 풍겼다.

“죽입니다, 추기경 예하.”

“고맙다.”

고소한 냄새에 눈이 돌아 버린 알로호모라는 체통도 없이 허겁지겁 스푼을 놀렸다.

몇 달간 음식을 제대로 못 먹어서 그런지 반 그릇도 못 먹었는데, 배가 찬 알로호모라는 그제야 얼굴을 붉혔다.

반트 몰록의 시선을 피하기 위해 주위를 둘러보는 척하던 알로호모라는 건물 내부 벽면에 새겨진, 어디서 많이 본 듯한 글자에 잠시 의아해했다가 이내 눈을 부릅떴다.

“신 퀼스어!”

이 땅에 처음 나타난 지그문트 경전의 글자였다.

반트 몰록의 손에 들린 횃불을 뺏다시피 하며 벽면에 다가간 알로호모라는 글을 읽어 내리다가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

“크하하하하! 그래 이것이라면 개 같은 카우트예 놈들과 교황 놈에게 정말 크게 한 방을 먹일 수 있겠구나! 반트, 일단 아후라 동쪽으로 향한다! 그곳에서 내게 힘을 줄 단초가 생길 것이야!”

“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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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에 카우쉬카의 시장인 아커만에게 비보가 찾아들었다.

듬직했던 아들, 로니에르의 죽음이 그것이었다.

연유는 설명해 주지 않았지만, 시체로 돌아온 아들에 아커만은 통곡을 눈물을 흘려야 했다.

몽블랑도 그리고 아커만의 지인들도 모두 모여 로니에르의 죽음을 애도했다.

로니에르의 장례는 귀족이나 전쟁에 공을 세운 영웅들이나 할 수 있는 국장으로 진행되었다.

비록 왕은 오지 않았지만, 국장으로 치러진 장례에 아커만은 로니에르가 명예를 지키다 죽은 것이라 생각하고, 작은 위로를 받을 수 있었다.

그 후, 관청에서 두문불출하며 지인들의 속을 썩게 만들던 아커만은 뜬금없이 양아들이 생겼다고 발표하면서 한바탕 뒤집어 놓았다.

하지만 아들을 잃은 슬픔에 눈물로 지새는 것보다는 훨씬 낫기에 몽블랑을 비롯한 아커만의 지인들은 새로운 아들인 ‘보디비히’를 열렬히 반겨 주었다.

그 사건을 제외하면 이번 겨울도 무사히 지나갔다.

눈이 녹기 시작하자 겨우내 잠들었던 카우쉬카와 카우트예 학원도시가 깨어났다.

그리고 그와 함께 카우트예 학원이 드디어 입학생을 받기 시작했다.

이 입학 때문에 한바탕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하였다.

카우트예 학원이 아무리 넓다고 하여도 분명 수용할 수 있는 학생의 숫자는 한정적이었고, 그 때문에 카쉬모프 자작령 전역에서 입학 지원자들이 몰려온 것이다.

카우쉬카와 카우트예 학원도시를 감싸는 성벽이 터져 나가는 게 아닐까 걱정할 정도로 몰려든 사람들 때문에 두 도시의 경재는 활성화되었지만, 그것 빼고는 혼란 그 자체였다.

다행이라면 평소와 변함이 없는 치안이라고 할 수 있었다.

카우트예의 장점이 바로 단결력이기 때문이었다.

잘못 건드렸다가는 그대로 몰매 맞을 것이 뻔했기에 범죄자들이나 양아치들은 아예 접근조차 안 했고, 신도들은 교단에 누가 될 수 없어 군대처럼 질서 정연한 모습을 보였다.

그렇게 입학하고자 하는 열의와 갈망이 뜨거워 지방에서 올라왔던 그들은 몽블랑이 점차적으로 카쉬모프 전역에 카우트예 학원을 세우겠다는 성명문을 발표하고 나서야 자신들의 고향으로 돌아갔다.

교장실에 앉은 몽블랑은 허탈하게 웃고 있었다.

‘내 통장의 예치금은 오래 머물러 있는 법이 없구나. 그나마 로열티는 꼬박꼬박 쌓이고 있는 게 다행이지.’

카쉬모프 자작령 여섯 개 도시에 학원을 세우는 건 문제가 아니었다.

그 정도의 자금은 충분히 동원할 수가 있었지만, 문제는 카우트예 학원이 메조른 전역에 세워질 수 있다는 것이었다.

“입학생은 몇 명이야?”

몽블랑은 임시로 비서가 된 루시아를 바라봤다.

루시아는 두꺼운 서류를 한 장 넘겼다.

“올해 입학자는 총원 67,634명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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