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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모두 고개를 힘차게 끄덕이며 대답했다.
“모두 입장해 주세요.”
사제 지망생들이 걸어 나오자 사람들은 숨을 죽였다.
놀랜드, 제스퍼, 튠, 세르게이, 허클 등 익숙한 얼굴들을 보며 몽블랑은 입을 열었다.
세르게이는 조금이라도 더 빨리 환자를 치료하고 싶은 마음에 지망생이 되었다.
“비록 사제가 되지 못한다고 하여도, 여러분들은 버림받은 것이 아닙니다. 분명 다른 뜻이 있는 것일 테니, 그것을 찾아 일로정진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먼저 튠 목사님, 앞으로 나와 주세요.”
튠은 잔뜩 굳은 얼굴로 걸어 나와 단상 앞에 무릎을 꿇었다.
그와 동시에 후다닥 뛰쳐나온 아이들로 인해 단상은 치워 졌고, 몽블랑은 하얗게 변한 물이 들어 있는 축복의 잔을 들고서 튠의 앞에 섰다.
물을 찍은 몽블랑은 튠의 이마에 하나의 선을 그렸다.
“세례명 튠 프랑코는 카우트예 님의 뜻을 받들어 어렵고 힘든 자들을 보살필 것을 약속합니까?”
“예, 약속합니다.”
우웅.
이마에 그려진 물의 선이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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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타이른 제국의 중부 남쪽, 타르메 공작령의 영도 타르메시아의 외곽에는 황궁의 크기만 한 거대 신전이 있다.
세크메르 라 주다 1세와 태양의 아들들이 기거하며 태양신 지그문트를 모시는 지그문트 교단의 총단이었다.
지그문트 교단의 발원지는 아후라 왕국에 있는 세크마루 사막이었는데, 그들은 성세를 위해 알타이른으로 총단을 옮겼었다.
공작성보다 더 크고 웅장하며 거대한 지그문트 총단에 대륙 전역에 흩어져 있던 추기경들이 몰려들었다.
교황 세크메르 라 주다 1세가 모든 추기경들을 불러 모았기 때문이었다.
세크메르 라 주다 1세는 백발이 성성하고 수염도 배꼽까지 내려오는 푸근한 옆집 할아버지 같은 인상의 노인이었지만, 그 몸은 잘 단련된 기사보다 훨씬 더 우람한 근육으로 무장하고 있었다.
뒤집어진 ‘U’ 형 테이블의 가장 상석에는 오직 세크메르 주다 1세만이 착석하고 있었고 열한 명의 추기경이 각자의 자리에 앉아 있었다.
시거를 물고 불쾌한 표정을 짓고 있는 추기경도 있었고, 상황 파악을 못 하는 건지 옆 추기경과 농담 따먹기를 하는 추기경도 있었다.
너무도 자유로운 그들의 사이에는 빈자리가 하나 있었는데, 그것은 알로호모라 추기경의 자리였다.
세크메르 교황은 손을 들어 추기경들을 조용히 시켰다.
“모두 어느 바보의 이야기를 들었을 것이오, 제 권세를 위해 반역을 일으켰다가 모든 걸 뺏겨 버린 바보의 이야기를 말이오.”
추기경들의 입가에 비웃음이 번져 갔다.
“반역을 일으켰으면 성공이나 할 것이지. 쯧쯧쯧.”
“그딴 근본을 모르는 놈이, 이 영광된 자리에 앉은 것부터가 잘못된 것이었어. 그놈을 추대한 게 누구였더라…….”
“쩝. 나도 그렇게까지 머저리일 줄은 몰랐소이다. 그래도 제 위치 정돈 알고 있는 놈이라 생각했거늘…… 에잉!”
그들은 누구 한 명 알로호모라 추기경을 감싸지 않았다.
라이벌, 정적 같은 것 때문이 아니라 아예 자신들과 동급으로 보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추기경들 중 가장 세가 약하다 알려진 베네딕트 추기경 역시도 말이다.
세크메르 교황은 다시 손을 들어 진정시키고는 알로호모라 추기경을 들어오게끔 시켰다.
문이 열리며 거지꼴이 된 알로호모라 추기경이 대주교 둘에게 질질 끌려 안으로 들어와 테이블의 앞에 무릎이 꿇려졌다.
“알로호모라, 자네의 죄를 알고 있나?”
“……내게 죄가 있다면 아버지의 영광을 위해 힘을 쓴 것 밖에 없소, 교황.”
“아니네. 자네의 죄는 능력도 되지 않으면서 욕심만 컸다는 것이네.”
“흥! 성공할 수 있었소! 그 버러지들만 아니었다면!”
“쯧쯧쯧. 알로호모라, 버러지 같은 패배자야. 네놈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은 시궁창 쓰레기처럼 쓸모가 없구나. 자신의 실책도 인정하지도 못하는 바보 같은 놈을 어찌 이 영광된 자리에 올렸을까. 아아, 아버지시여, 당신의 종을 잘못 선택한 바보 같은 저희들을 용서하소서.”
알로호모라 추기경은 치욕과 분노에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내가 메조른을 등에 업었어도 당신이 그딴 말을 지껄일 수 있었을 것 같소, 교황!”
“후, 더 이상 귀가 썩기 전에 치워 버려야겠군. 죄인의 처형 방법을 정하겠소. 난 첫 번째 징벌이 좋다고 생각하는데…… 다른 형제들은 어떻소?”
“난 찬성이오.”
“나도 찬성이오.”
만장일치로 벌이 정해지자 알로호모라 추기경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첫 번째 징벌은 알몸으로 사막을 계속 걷게 하는 것이었다.
물 한 모금 구할 수 없고, 음식은 꿈도 꾸지 못한 상태에서 쉬지도 못하고 죽을 때까지 걸어야 하는 것이었다.
“아, 안 돼. 차, 차라리 태워 죽여…… 읍!”
알로호모라가 발악을 하려하자 양옆의 대주교들이 그의 입을 틀어막았다.
세크메르 추기경은 대주교들을 바라봤다.
“그를 세크마루 사막으로 데려가게.”
“예, 교황성하.”
알로호모라는 발버둥을 쳤지만, 두 대주교의 힘을 이기지 못하고 끌려갔다.
대회의실의 문이 닫히자 세크메르 교황의 눈이 서늘히 가라앉았다.
“본 교단의 명예가 땅으로 떨어졌소이다. 이를 어떻게 생각하시오, 베네딕트 형제.”
세크메르 못지않게 선한 인상을 지닌 베네딕트는 잠시 몸을 굳혔다가 곧 푸근한 미소를 지으며 가슴까지 내려온 수염을 쓸어내렸다.
“아버지의 영광을 위해서라면 배덕 정돈 얼마든지 저지를 수 있는 것 아니겠소.”
“나설 것이오?”
“아버지의 영광된 세상을 이룩하기 위해서라면 이 노구가 바스러져도 좋소이다.”
“그가 권좌를 찾으면 아버지를 제일 먼저 칠 것임에도 그리하겠단 말이오? 방금 전, 대륙으로 전체로 퍼진 파동을 느끼지 못한 것이오? 그는 이미 일어섰소이다!”
“그러함에도 별말이 없으신 것을 보면 아버지께서도 생각하신 뜻이 있는 것 아니겠소.”
“그대도 배덕자였구려! 어찌 아버지의 세상에 그딴 버러지들을 채워 넣으려 하는 것이오? 됐소이다. 내 행보를 막는다면 그대부터 칠 것이오, 베네딕트 형제.”
전쟁 선포에도 베네딕트의 미소는 사라지지 않았다.
그는 진정으로 두려워하고 있지 않고 있었다.
“어디 한번 해 보시구려. 이미 아버지의 옆자리를 맡아 놓은 몸, 무엇이 두려울까. 할 말이 다 끝났으면 이만 가고 싶은데…….”
“명심하시오! 나를 방해했다가는 그대도 파멸에 이를 것이오!”
“교황이야말로 급에 맞는 놀이를 하시구려. 괜히 소꿉장난처럼 애꿎은 아이를 울리지 마시고…….”
베네딕트는 초연한 모습으로 여유롭게 걸어 나갔고, 세크메르 교황은 이를 갈았다.
“빌어먹을 배덕자 놈!”
베네딕트의 파벌 숫자가 가장 적음에도 함부로 찍어 내릴 수 없는 이유는 그가 민심과 함께하기 때문이었다.
추기경들은 혹여 불똥이라도 튈까 슬그머니 몸을 일으켜 대회의실을 빠져나갔다.
“아문라 형제!”
“예, 성하.”
추기경들이 닫고 나가지 않은 문을 통해 40대 후반의 사내가 걸어 들어왔다.
“해 주어야 할 일이 있네.”
세크메르 교황의 눈이 위험하게 빛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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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랍게도 이백 명 전원, 견습 사제인 누베노가 되었다.
그들 중 나이가 많은 이들은 신학과의 교수 및 학원의 예배를 주관할 사제가 되거나 메조른 전역으로 퍼져 나갈 예정이었고, 20세가 되지 못한 아이들은 신학과에 입학하여 경전에 대해 다시 탐독하고 연구하며 공부할 예정이었다.
신학과는 자원자, 즉 사제 지망생에 한하여 운영될 예정이었다.
사람들의 축복을 받으며 눈물을 흘리고 미소를 짓는 지인들을 본 몽블랑은 잔뜩 피곤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푸후, 이것도 못할 짓이네.’
그 많던 신성력이 바닥을 기고 있었다.
이백 명이나 되는 사람들을 신과 연결시켜 주었으니 당연하다면 당연하다고 할 수 있었다.
“이제 카우트예도 엄연히 사제를 가진 교단이 됐군요. 축하드려요.”
“축하드립니다, 셉티마 예거.”
“감사합니다.”
몽블랑은 베아트리체와 엘핀토 외에도 아드리아나, 아커만 등 카우쉬카의 지주들에게 칭찬을 받느라 정신이 없어졌다.
그렇게 사제 임명식이 끝나고 시간은 흘러, 떠들썩한 크리스마스도 지나고 설날도 지나게 되었다.
몽블랑은 12월 31일의 12시가 지나자 종을 33번 치며 희망찬 새해를 맞이하게 하였다.
카우트예의 행사에 ‘타종’이라는 것이 끼어드는 순간이었다.
카쉬모프 자작은 예쁜 딸을 낳게 되었다.
이름은 카테리나, 카쉬모프 자작가의 새로운 보물이 나타난 순간이었다.
그 때문에 몽블랑은 눈길을 헤치며 나아가 카테리나에게 축복을 내려 줘야 했고, 어린 여동생에 몽블랑은 팔불출처럼 헤픈 웃음을 지었다.
-나를 넘지 않으면 결혼은 못 한다!
카테리나를 본 몽블랑이 처음으로 꺼낸 말이었다.
그렇게 팔불출 행각을 하고 돌아온 몽블랑을 맞이한 것은 산처럼 쌓인 서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