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적의 사제-100화 (100/1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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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흥분된 마음을 추스르며 저택으로 들어갔다.

두꺼운 이불을 목까지 끌어 올린 몽블랑은 앞으로의 일을 생각했다.

‘1왕자의 거사일은 연회가 파해지는 순간이야. 가장 방심할 시간이지. 이로써 아버님이 말했던 유일하게 믿을 만한…….’

똑똑똑!

“응? 네, 들어오세요.”

문이 빼꼼 열리며 루시아가 고개를 내밀었다.

“오, 오늘 여기서 자도 돼요? 너, 너무 흥분되어서 잠을 잘 수가…….”

몽블랑은 심장을 흔드는 말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가 이내 그녀의 파자마 차림에 피식 웃으며 자신의 옆자리를 두드렸다.

마음의 준비를 한 게 아니라 정말 순수하게 온 것이었다.

베개를 끌어안은 루시아는 빠르게 다가와 침대로 쏙 들어왔다.

루시아는 몽블랑을 보며 억지로 배시시 웃었다.

침대 옆에 놓인 등잔 때문에 어스름히 보이는 그녀의 얼굴은 새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몽블랑은 안절부절못하는 그녀의 콧등을 튕겼다.

“대체 뭘 바라는 거냐, 이 앙큼한 아가씨야.”

“……에헤헤헤.”

몽블랑은 그녀의 목 아래로 자신의 팔을 밀어 넣어 그녀의 얼굴을 가슴 쪽으로 오게 하였다.

화들짝 놀랐던 루시아는 이내 곧 굳었던 몸을 이완시키며 편히 몽블랑에게 기대었다.

“잘 자라.”

“네, 오빠도 안녕히 주무세요.”

팔을 뻗어 등잔을 끈 몽블랑은 눈을 감았고, 곧 방 안에는 고른 숨소리와 조금은 가쁜 숨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것도 곧 둘 모두 고르게 변했다.

루시아의 입가엔 행복한 미소가 맺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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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아침부터 저택은 시끌벅적해졌다.

오늘이 가르티안의 건강 회복을 축하하는 연회가 열리는 날이었기 때문이었다.

특히나 제일 바쁜 것은 아무래도 여성인 세실리아였다.

세베루스는 자작가에서부터 따라온 하녀들이 바쁘게 움직이는 것을 보며 고개를 저었다.

“어머니까지 있었더라면 저것의 두 배는 부산했겠지. 배가 불러, 오시지 않은 게 다행이야.”

연회나 파티 날만 되면 보는 광경이지만, 여전히 적응되지 않는다는 듯이 고개를 저었다.

“움직이지 마시라니까요! 가위질 잘못할 뻔했잖아요! 아이 참, 속상해.”

가느다란 미성이었지만, 분명 남자였다.

몸짓이 교태스럽다고 해도, 분명 남자였다.

“아, 알았네.”

세베루스는 이발사를 잘못 데려온 세바스찬을 작게 원망했다.

연회에 참석할 모든 이의 꽃단장이 마무리된 것은 늦은 오후가 되어서였다.

노을이 청명하게 푸르던 하늘을 물들여 갈 때쯤, 카쉬모프 자작이 대여한 저택에선 두 대의 마법 마차가 왕궁을 향해 출발했다.

“전하의 회복을 다시 한 번 감축드리옵니다. 이것은 전하의 만수무강을 기원하는 제 작은 성의이옵니다.”

“어제 연회에서도 줘 놓고 또 주는 건가? 허허허. 고맙네, 허미트 후작. 내 이건 요긴히 쓰겠네.”

“가, 감사하옵니다, 전하!”

몽블랑은 애교를 피우며 아양을 떠는 2왕자의 파벌이었던 귀족들을 보며 안쓰럽다는 듯이 한숨을 내뱉었다.

옆에 있던 알렉소 백작은 혀를 찼다.

“저리 발악한다고 해도 떠난 마음이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을 모른단 말인가. 차라리 영지에 남아 있는 게 더 의연하게 보였을 것을…… 쯧쯧쯧. 못난 자들 같으니.”

“그런데 왜 저들을 징치하지 않는 거죠? 2왕자는 역모를 꾸몄잖아요.”

“증거가 없으니 저러는 것이지. 고작 일개 기사의 증언을 가지고 귀족을 옭아맬 수는 없네. 다른 죄도 아닌 역모니 연판장 같은 확실한 증거가 필요하지. 하지만…….”

“발견하지 못했죠. 그래도 경고는 줄 수 있겠네요?”

“저들의 발언권은 이제 없다시피 해질 것이네. 왕좌에 앉을 새로운 주인을 찾기 전까지는 말이야.”

“희한하게도 1왕자에게는 접촉을 안 하네요?”

“그 이유는 자네가 더 잘 알고 있지 않나. 응? 몽블랑 사제.”

몽블랑은 장난이었다는 듯이 배시시 웃었다.

대대적인 왕실전복을 꿈꾸며 모든 것을 준비해 놓은 1왕자가 의심의 기미를 보여 줄 리가 없었다.

2왕자 파벌의 귀족과 접촉하는 순간 의심받을 테니 말이다.

몽블랑은 1왕자 주위로 몰려 있는 귀족들을 보며 나른히 웃다가 알로호모라 추기경을 발견하곤 손을 들어 흔들었다.

순간 얼굴을 일그러트렸다가 의미심장하게 웃는 알로호모라 추기경을 본 몽블랑은 정말 환하게 웃어 주었다.

“사돈이 자네에게 잔인한 면이 있다고 해서 무슨 성자가 잔인할 수 있냐고 반박했는데…… 허어.”

알렉소 백작은 몽블랑의 웃음을, 반전의 반전을 거듭하는 치밀한 연극에 집중하고 있는 관객들을 향해 난 이미 결과를 알고 있다며 비웃고 있는 자의 그것과 같이 받아들였다.

하지만 알렉소 백작은 그것도 보기 좋다는 듯이 흐뭇이 웃었다.

‘정치를 하려면 이 정도 배짱과 독심은 있어야지! 사돈이 정말 사람을 잘 얻었구나.’

알렉소 백작은 내심 카쉬모프 자작이 부러웠다.

“음? 이쪽으로 오는구먼. 난 이만 자리를 피해 주지. 이야기 잘하게나. 레이디 카루트, 아니 카루트 사제도 함께…….”

알렉소 백작은 루시아를 데리고 가려 했으나, 루시아와 몽블랑 모두 거부를 했다.

‘허어, 맹수의 짝은 역시 맹수라는 것인가? 쩝, 정말 부럽구먼.’

알렉소 백작은 고개를 저으며 멀어졌고, 몽블랑은 법복을 입은 루시아의 손을 꼭 잡았다.

루시아에게 법복을 입힌 것은 연출이었다.

이제 카우트예도 몽블랑 자신 말고도 다른 사제가 생겼다, 그리고 앞으로 생길 것이라는 위협의 연출 말이다.

몽블랑은 다가온 알로호모라 추기경을 향해 고개를 까딱였다.

“한, 두 달 만이지요, 추기경?”

상당히 건방진 말투와 몸짓에 알로호모라 추기경의 이가 악물어졌다.

“허허허. 그래 오랜만일세, 세스타 예거.”

“이번에 셉티마로 올라섰습니다. 카우트예 님께서 내려 주셨지요.”

“……오, 그거 축하할 일이군. 하긴, 사제라곤 하나 있으니 교황이라 자칭해도 무어라 할 사람은 없지. 한데 이쪽은 사제 지망생인가? 어찌 법복을…….”

“아닙니다. 이번에 새로이 본 교단의 노베노가 된 루시아 카루트라고 합니다. 제 연인이지요.”

노베노는 견습 사제를 지칭하는 말이었다.

알로호모라 추기경의 눈이 경악으로 떨렸다.

“저, 정말인가?”

몰락한 신이 새로운 사제를 만들어 냈다.

결코 함부로 넘길 만한 사안이 아니었다.

“곧 들통 날 거짓말을 왜 하겠습니까.”

‘확실히 신성력이 느껴지는군. 저놈의 가호 같은 게 아니었어. 하나 상관없지. 어차피 곧 죽을 놈이고, 무너질 교단이니 말이야. 허허, 고년 참…….’

알로호모라 추기경은 미소를 지었다.

두 눈에 여실이 드러나는 음심에 몽블랑은 앞으로 나서 그의 시선을 가로막았다.

허리 뒤로 돌린 주먹은 하얗게 질려 떨리고 있었지만, 몽블랑은 잔잔히 웃어 보였다.

“그리 보시면 이 아이가 쑥스러워합니다.”

“크흠, 그런가? 내 주책을 부렸군. 여하튼 축하하네. 카우트예가 다시 일어서겠구먼. 내가 도와줄 일은 없겠나?”

“아니요, 괜찮습니다. 저에게 도움을 주시는 분은 많습니다. 추기경의 도움 따윈 필요 없습니다.”

따위란 말에 알로호모라 추기경의 얼굴이 굳어졌다가 펴졌다.

“허허허. 그런가? 잘 생각해 보시게, 필요한 날이 꼭 올 테니. 그럼, 난 이만 가 보겠네.”

은은한 미소로 배웅하던 몽블랑은 허리 뒤로 돌린 주먹을 감싸는 손길에 몸을 돌렸다.

“괜찮아?”

“괜찮아요. 추악한 늙은이의 추잡한 눈길 따윈 아무렇지도 않아요. 오빠가 오기 전의 채석장이 어땠는지 벌써 잊으셨어요?”

“그래, 수고했다.”

이틀째에 접어드는 연회는 사람들의 입에서 하품이 흘러나오기 시작하자 끝을 맺었다.

마지막 사흘째 연회가 되는 날, 루시아를 떼어 놓고 온 몽블랑은 느긋이 연회를 즐기고 있는 카쉬모프 자작 외 왕실파 거두인 세 귀족을 보며 고개를 저었다.

그들은 진정으로 여유로웠고, 자신들의 카리스마를 여실히 뿜어내고 있었다.

긴장감에 어깨가 굳은 자신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몽블랑은 애써 긴장된 모습을 감추기 위해 느긋한 모습을 보이려 와인을 홀짝였다.

‘언제 거사를 벌일 거냐, 1왕자 알트란.’

몽블랑은 와인을 마시는 척 귀족들과 웃으며 떠드는 1왕자를 은밀히 바라보았다.

“몽블랑 예거 사제님 되십니까?”

“누구신지…….”

잘 차려 입었지만, 예복이 아니라 연미복임에 몽블랑은 자신을 부른 노인이 왕궁에서 일하는 하인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전하께서 부르십니다, 이쪽으로.”

“……예. 안내해 주십시오.”

몽블랑은 연회장 구석의 어느 방으로 안내되었다.

“전 여기까지입니다. 그럼…….”

노인이 문을 열어 주자 몽블랑은 숨을 가다듬으며 언제든 스킬을 시전 할 준비를 마치며 안으로 들어갔다가 긴장을 풀었다.

“부르셨다고 들었습니다, 전하.”

“그게 무슨 말인가? 난 자네가 먼저 청했다 하여…….”

몽블랑과 가르티안 둘 모두 누가 먼저라고 할 것 없이 얼굴을 굳혔다.

“문을 열어 보겠나?”

어느새 닫힌 문의 손잡이를 돌린 몽블랑은 철컥철컥 돌아가지 않는 소리에 허탈하게 웃어 버렸고, 가르티안은 천장을 보며 침통한 표정을 지었다.

“와아아아아!”

“뭐, 뭐냐!”

“반역이다!”

“모두 죽여라!”

“사, 사제들까지!”

갑자기 일어난 소란에 가르티안의 얼굴은 더욱 굳어졌다.

“난 그래도 믿었네. 그게 부모이기 때문이네.”

“맞습니다. 부모는 자식이 배에 칼을 찌른다고 해도 믿어 주고 사랑을 하죠. 그렇기에 전하께선 그에게 기회를 주시려 하였죠.”

몽블랑의 보고를 받고 바로 1왕자를 조사하고 내치지 않은 것만으로도 기회를 주었다 봐야 했다.

“헉! 배, 배신이다!”

“무기를 버려라! 너희들은 포위됐다!”

들려오는 소리만으로도 밖의 상황이 어떨지 예측이 되었다.

“이번 연회가 마지막 시험이었네.”

왕궁의 성문부터 이곳까지 치워 놓은 경비를 보고 1왕자 알트란이 무언가를 깨닫기를 바랐다.

가르티안은 자신의 등을 바라보며 자란 1왕자 알트란이라면 근위병들이 없는 걸 보고 환호보다는 경계를 할 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뜻을 돌리기를 바랐다.

“연회의 마지막에 내일 책봉식이 있을 예정이니 남아 달라 이야기를 하려고 했었네. 후, 아니지. 이 모두 부질없는 생각일 뿐이지. 모두 짐의 부덕인 게야.”

“전하…….”

몽블랑은 피붙이 둘을 짧은 시간 안에 내치게 된 가르티안의 급격히 늙은 모습을 보며 안쓰러워했다.

그 순간 자물쇠가 돌아가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며 모습을 드러낸 라리우스 백작이 가르티안을 향해 허리를 숙였다.

“그래, 갈 시간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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