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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의 사제-97화 (97/1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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쩌엉! 콰앙!

시간을 거꾸로 먹어 가는 가르티안과 이브아의 칭호를 받은 절대자 펠리칸은 거의 동급의 검격을 나누고 있었다.

발차기로 가르티안을 날려 보낸 펠리칸은 미약하게 떨리는 손을 보며 어이없어했다.

“이건 반칙입니다, 전하!”

“어쩌겠나. 예거 사제의 신성 마법이 그리 대단한 것을…… 오늘 아침만 해도 천막을 친 아랫도리가 가라앉지 않아 아랫것들의 시선에 너무 무안했다네. 아, 그런데 자네는 아침에 서는가? 마스터니 서겠지?”

빠직!

“제대로 가겠습니다, 전하!”

펠리칸의 검에서 오러가 솟으며, 펠리칸의 몸이 하늘을 날았다.

“허허, 상처받은 짐승의 추접한 질투로고!”

가르티안의 검에서도 금색의 오러가 솟으며 두 다리는 굳건히 대지에 뿌리를 내렸다.

쩌어어엉!

몇 년 전부터 사라진 왕궁의 아침을 깨우는 소리가 다시 울려 퍼지자 알트란은 양 주먹을 말아 쥔 채 파르르 떨었다.

그가 머무는 레드 그리폰 궁은 가르티안과 펠리칸의 대련을 펼치는 연무장이 선명히 보이는 곳에 위치해 있었다.

알트란은 추억으로만 남아 있는 가르티안의 전성기 시절이, 지금의 가르티안과 겹쳐 보이자 분노가 치밀어 미쳐 버릴 것 같았다.

“점점 젊어지고 계시다. 대체 카우트예의 사제 놈이 무슨 수를 쓴 거란 말인가! 까드드득!”

노환에 몸져눕는 척 위장을 하였어도 늙어 간 세월을 되돌릴 순 없었다.

이는 분명 그날 가르티안을 치료한 몽블랑이 무슨 수를 쓴 것이 확실했다.

“저리 젊어지시면 내 왕위는 어떻게 된단 말인가!”

가르티안이 병상을 털고 일어난 지 벌써 한 달이 되어 가지만, 가르티안은 단 한 번도 왕위 계승에 관하여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계승 서열 6위의 어린 왕손만 끼고도니, 알트란은 이제 배신감마저 들기 시작했다.

계승 서열 3위에 있는 자신의 자식이 아니라 불의의 사고로 죽고 없는 3왕자의 자식을 자주 부른다는 것은 분명 가르티안에게 다른 속내가 있다는 것이었다.

‘설마 레버튼을 사고사로 위장한 게 들통 난 것인가? 하지만 그건 아바마마의 잘못입니다! 고귀한 피만 이어받은 장자인 나를 제쳐 두고 어디서 굴러먹다 들어온 건지 모르는 비천한 몰락 귀족이 낳은 3왕자를 끼고돈 아바마마의 잘못이란 말입니다! 대체 언제까지 레버튼 놈의 망령에 사로잡혀 있을 것입니까, 아바마마!’

알트란의 이가 뿌득뿌득 갈렸다.

‘날 이리 취급하신다면 나도 생각이 있사옵니다, 아바마마.’

알트란의 눈이 위험하게 빛나기 시작했다.

“밖에 누구 없느냐! 가서 알로호모라 추기경을 불러오라! 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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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흐, 역시 남자는 통장에 돈이 있어야 어깨가 펴지는 거야.”

오늘도 헌금을 예치시키기 위해 귀네슈를 찾은 몽블랑은 1천만에 못 미치는 통장 잔고를 떠올리며 헤벌쭉 웃었다.

“허허허. 아주 기분이 좋으신가 봅니다, 예거 사제님.”

“아, 말론 지부장님, 통장은 다 만드셨나요?”

“아무렴요. 여기 헌금만 따로 모으실 수 있는 통장입니다. 그리고 이건 예치금에 따라 지급되는 다이아몬드 패입니다. 정말 헌금이 어마어마하군요.”

10억이 넘는 돈을 한꺼번에 날려 먹은 경험 때문인지 몽블랑은 이제부터라도 돈 관리를 확실히 하고자 헌금이나 지원금을 예치하는 통장을 따로 만들었다.

‘앞으로 학교나 병원 설립은 무조건 헌금과 아버님이 보내 준 지원금으로만 쓴다! 다 떨어져도 절대 내 돈은 안 건드릴 거야!’

그렇게 다짐하던 몽블랑은 다이아몬드 패란 요상한 단어에 의아해했다.

“……어래?”

몽블랑은 헌금 통장의 잔고를 보곤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건 세베루스도 그리고 헌금 수송 때문에 호위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같이 다니게 된 발루와 루킹도 마찬가지였다.

루카스는 비교적 담담했다.

“이거 잘못 찍힌 것 같은데요?”

통잔에는 억 단위의 돈이 예치되어 있었다.

카쉬모프 자작이 보내는 지원금의 액수를 아는 몽블랑으로선 도통 이해할 수 없는 금액이었다.

“아, 자금이 부족하시어 땅을 파신 것을 들으신 라리우스 공작 각하, 알렉소 백작님 등 왕실파의 모든 귀족님들께서 예거 사제님께 보내 드리는 지원금입니다. 모두 한결같이 이 돈으로 좋은 세상을 이룩해 달라는 말을 전해 달라 하셨습니다.”

몽블랑은 갑자기 땅을 치고 하늘을 향해 통곡하고 싶었다.

‘내 땅! 내 금싸라기 땅!’

“그, 그래요? 저, 정말 감사히 쓰겠다고 전해 주세요. 죄, 죄송하지만, 이 지원금에 대한 통장을 따로 만들어 주실 수 있나요? 수익용 통장도요.”

“그 정도야 수고랄 것까지도 없지요.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말론 지부장이 다시 안으로 들어가자 몽블랑은 원망스럽다는 듯이 세베루스를 바라봤다.

“너 알고 있었지?”

“나도 처음 듣는 이야기다.”

세베루스는 정색하며 고개를 저었다.

입맛을 다신 몽블랑은 펜을 들어 헌금 통장에다 ‘경전용 및 자원봉사용’이라는 단어를 썼다.

“자원봉사는 이해 가는데, 경전용? 너 앞으로도 경전을 무료로 배포하려고?”

“아니, 돈 받고 팔 건데? 대신 그 수익은 여기다 넣어야지. 그래야 악마의 유혹도 참을 것 같고.”

“……하긴, 그 어떤 현자도 이만한 액수 앞에선 눈이 뒤집히겠지. 잘 생각했다.”

“아이고, 헌금 통장을 가져가지 않았군요! 죄송합니다.”

“아, 괜찮아요. 여기요. 그리고 여기 로열티 통장에서도 로열티를 제외한 수익은 수익용 통장에 넣어 주시고, 50만 페니를 인출해 주세요. 여러분들이 도와주신 덕분에 공돈도 생겼으니 술 좀 진하게 마시려고요. 지부장님도 같이 가시죠?”

말론 지부장의 입이 헤벌쭉 벌어졌다.

“예, 알겠습니다!”

몽블랑은 발루와 루킹, 루카스를 바라봤다.

“같이 가셔야죠?”

“그, 그래도 됩니까?”

“대신 입은 꼭 다물기! 누가 물어보면 무조건 오리발!”

발루와 루킹은 얼떨떨해하면서도 고개를 끄덕였고, 루카스는 오랜만에 회포를 진하게 풀어 보겠다는 듯이 헤벌쭉 웃었다.

지부장과 약속 시간과 장소를 정하고 나온 몽블랑은 오랜만에 때 빼고 광내겠다는 듯이 장기 임대한 저택의 지하 목욕탕으로 향했다.

저택까지 따라온 발루와 루킹은 정원의 벤치에 앉아 서로를 바라보았다.

“벌어들인 돈으로 술집에 가 여자를 끼고 논다. 증오스럽기까지 한 사제 놈들과 똑같은 행동이다. 하지만 그들과 다르다.”

“맞습니다, 형님. 사제님은 오직 자신의 재주로 번 돈만 씁니다. 물론 그 돈도 무시 못 할 만큼 많지만 말입니다.”

그 재주 안에는 신성력을 이용해 버는 것은 없었다.

아니, 아예 상처 치료 같은 걸로 돈을 벌지 않았다.

그건 그들의 상식 안에서 일어날 수 없는 꿈같은 이야기였다.

“수억의 돈을 그렇게 깔끔히 포기할 수 있다는 게 너무도 대단하다. 저런 분이기에 성자라 불리시는 거겠지. 주군이라면 과연 그럴 수 있을까?”

“혀, 형님?”

주군의 연락을 기다리자고 했던 발루의 입에서 의심을 말이 나오자 루킹은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발루는 씁쓸히 웃으며 하늘을 바라봤다.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든다. 예거 사제야말로 진정한 기사고 귀족이 아닐까 하는…….”

발루의 머릿속으로 기사도의 몇 구절이 스쳐 지나갔다.

“혀, 형님…….”

“한 달이다. 네 말대로, 알론의 의심대로 그리고 다른 기사들의 추측대로 우린…… 버림받았다.”

그래도 인정하지 않고 싶었던 게 진실이 되자 루킹은 바르르 떨며 눈물을 흘렸다.

“맞습니다. 당신들은 버림받았습니다.”

발루와 루킹은 기겁하며 말이 들려오는 쪽을 바라보았다.

루카스가 은은히 웃으며 다가오고 있었다.

“당신들은 퇴출되었다고 합니다. 그것도 당신들이 이 왕도를 향해 출발했던 그 시점에 말입니다. 게다가 근무 기록까지 완전히 말소됐다고 하더군요. 아마도 만에 하나 실패한다면 발뺌하기 위해서겠지요. 왕궁엔 수호자 펠리칸 경이 계시니까요.”

“우, 우리의 정체를 알고 있었던 것이냐!”

루킹은 죽임으로써 입을 막겠다는 생각을 하며 달려들려고 했지만, 발루가 그것을 막아 세웠다.

“그 말 정말이오? 우리를 꼬여 내기 위해 꾸며 낸 말이 아니오?”

“금방 들통 날 거짓말을 할 정도로 머저리는 아닙니다. 아, 진짜 인사가 늦었습니다. 카우트예 직속 정보단체 진리안의 루카스입니다. 전직은 럴러바이의 단원이었습니다.”

“럴러바이!”

루킹은 하얗게 질려 주춤주춤 물러섰다.

“……럴러바이의 말이라면 진실이겠지. 그런데 정보단체라 하였소?”

“저희 사제님께서 세상을 구원할 대업을 행하시기엔 걸림돌이 너무 많습니다. 그리하기에 그분께 죽어도 갚지 못할 은혜를 입은 어둠의 종자들이 모여 창설하였습니다. 사제님은 모르십니다.”

“그렇지. 그분께서 어둠을 아시면 안 되지. 부탁이 있소.”

“이미 당신들의 가족들은 구출되고 있습니다. 사별하신 부인께서 이 세상에 남긴 유일한 혈육의 이름이 샤린, 맞습니까?”

“……맞소.”

“루킹 씨는 가족이 없으신 것 같더군요.”

“……빌어먹을, 어째서 가족이 없는 기사들만 고르는가 싶더니만! 결국 이런 것이었나! 으아아아아!”

루킹은 지독한 배신감에 울분을 토해 냈다.

씩씩거리던 루킹은 벌겋게 달아오른 눈으로 루카스를 죽일 듯이 노려보았다.

“우리가 육천의 기사들에게 알리길 원하는 거냐?”

“남은 기사의 숫자는 고작 사천여 명입니다. 저희가 필사적으로 구해 내고 있지만, 지금 이 순간에도 많은 가족들이 사고사로 위장당하여 사라지고 있습니다. 복수하고 싶지 않습니까?”

“당연히 하고 싶다! 그건 이 사실을 듣게 될 다른 이들 역시 마찬가지일 거다!”

“인성을 버린 자들은 제외시키십시오. 비밀을 지킬 수 없는 자들도 제외시키십시오. 열 명이라도 좋습니다. 몇 명이든, 저희 사제님께선 당신들에게 복수와 영원의 영광을 안겨 드릴 겁니다.”

복수와 영원의 영광이란 단어에 루킹과 발루는 이를 악물며 부르르 떨었다.

“기사는 주군이 버리기 전까지 충성을 해야 하오. 그 어떤 더러운 짓도 주군의 명령이라면 해야 하오. 그랬던 난 이제 광야의 짐승이 되었소. 갈 곳 없는 충성, 부디 받아 주시오.”

루카스는 한 달간의 기다림이 헛되지 않게 되자 만족스럽다는 듯이 웃었다.

“그 충성, 나중에 우리 사제님께 직접 해 주십시오. 그 전까지 각자 맡은 바 소임을 다해 주십시오.”

“최대한 모아 보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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