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적의 사제-94화 (94/1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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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블랑과 가르티안은 추기경들이 오기 전까지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어느 하나의 명제를 깊게 파고드는 이야기는 아니었지만, 가르티안의 입에선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시간이 흘러, 골드 그리폰 궁 안으로 들어오던 추기경들은 격의 없이 대화를 몽블랑과 가르티안을 보곤 경악을 하며, 작게 피어오르는 분을 힘겹게 삼켰다.

알로호모라와 바라모스 추기경의 분은 이 왕궁을 불태워 버릴 듯이 컸다.

‘그런 것인가! 네놈이었나! 자기희생 마법을 쓴 것이냐! 운 좋게 살아 있구나, 놈!’

자기희생 마법, 세크리파이스는 최소 주교 이상 급의 사제만이 쓸 수 있는 최고급 신성 마법이었다.

숨만 붙어 있다면 어떤 상태든 살릴 수 있으나, 대신 모든 신성력을 비롯해 자신의 생명력까지 전부 쏟아 내는 것이기에 시전자는 죽음을 맞이해야 했다.

하지만 역사상 세크리파이스를 시전하고도 살아났던 이들이 있었기에 무조건 죽는 것은 아니라고 봐야 했다.

어떻게 죽지 않는지는 모르지만 말이다.

‘한데 어찌 저렇게 멀쩡할 수가 있는 거지? 세크리파이스를 쓰면 모든 생명력이 쇄하기에 급격히 늙어 버리지 않나? 아니, 그 전에 세크리파이스가 노환도 고칠 수 있었던가? 설마 우리가 모르게 중독된 것이었나?’

알로호모라를 비롯해 각 교단의 추기경과 성녀, 대사제는 혼란스러운 눈으로 몽블랑을 바라봤다.

그들 역시도 왕궁에서 발현된 거대한 신성력을 느꼈던 것이다.

‘카우트예엔 우리가 모르는 신성 마법이 있다!’

그들은 결국 그런 결론에 도달할 수밖에 없었다.

몽블랑은 그런 그들을 보며 코웃음을 쳤다.

‘니들은 이제 끝났어!’

추기경들이 들어왔는데도 인사를 받은 것 빼고는 쳐다보지도 않고 몽블랑과 이야기를 나누던 가르티안은 황금색의 고급스러운 상자를 들고 오는 라리우스 백작에 혀를 차며 이야기를 끝내야 했다.

“끝나고 도망갈 생각 말게나. 자네와 할 이야기가 많아.”

“……끄응.”

가르티안은 일그러지는 몽블랑의 얼굴에 한번 실소를 짓고는 표정을 굳히며 추기경들을 둘러보았다.

“짐의 건강이 나쁘다 하여 먼 길을 마다않고 찾아온 그대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하는 바이네. 그대들이 있었기에 짐이 병상을 털고 일어날 수 있었음이야.”

“아니옵니다, 전하. 황송하옵니다, 전하.”

“그에 감사의 뜻을 표하고자 하니, 그대들은 거절치 말라. 먼저 왕도와 제일 먼 곳에서 달려온 루나의 세르큐리안은 짐의 앞으로 오라.”

라리우스 백작이 열은 상자에 든 것은 훈장 같은 것이었다.

블루 그리폰 훈장, 왕실에 큰일을 해 주었을 때 달아 주는 훈장으로, 기사의 칭호인 나이트와 동급으로 본다.

가르티안은 그걸 세르큐리안에게 직접 달아 주었고, 세르큐리안은 한쪽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이며 최상의 예를 취했다.

‘훈장이라고 해 봐야 별거 없지. 그냥 생색내기잖아.’

훈장에 딸린 부산물이라곤 단 하나도 없었다.

몽블랑은 울어야 할지, 아님 웃어야 할지 모르겠다는 듯이 복잡한 표정을 짓는 추기경들을 나른히 풀린 눈으로 바라보았다.

“마지막으로 귀천할 날짜를 받아 두었던 짐을 살리고 건강을 찾아 준 왕실과 왕국의 은인인 카우트예 교단의 사제 몽블랑 예거는 짐의 앞으로 나오라.”

몽블랑은 느긋이 일어나 그의 앞에 무릎을 꿇고 땅바닥에 머리와 양 손바닥을 붙였다.

그 엄청나고도 경건한 행동에 추기경들의 엉덩이가 들썩였고, 그건 가르티안 왕도 마찬가지였다.

설사 가르티안이라고 하여도 여태껏 단 한 번도 보지 못한 극상의 예였다.

“신 아래에는 모두 평등하나, 신께서 이 땅에 태평성대를 이룩하라는 소명을 주고 내려 주신 위대한 지존께 신의 종, 몽블랑 예거가 존경의 뜻을 담아 인사 올리옵니다. 만세, 만세, 만만세.”

순간 가르티안은 멍해졌고, 그건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오늘 사제가 일국의 왕에게 할 수 있는 최고의 찬사를 들었다고 자부할 수 있었다.

“커흠흠. 아, 아부가 너무 짙지 않나, 예거 사제. 별 칭송을 다 들어온 짐이라 하여도 부끄러워 얼굴이 뜨거워질 지경이야.”

몽블랑은 고개만 삐쭉 들어 희죽 웃어 주었다.

“휴, 역시 말로선 자네를 당해 낼 수 없나 보구먼. 일어나게나.”

“성은이 망극하여이다.”

“크흠. 장난은 그만하래도……. 쯧. 이러다간 짐이 정신을 차리지 못할 것 같으니 얼른 진행하겠네. 카우트예의 마지막 사제 몽블랑 예거는 그 공이 하늘을 덮은 봐, 골드 그리폰 훈장을 사사하노라.”

추기경들과 세르큐리안, 베아트리체의 눈이 부릅떠졌다.

골드 그리폰 훈장은 건국공신처럼 엄청난 위업을 달성해야만 받을 수 있는 이 나라 최고의 훈장이었다.

문제는 골드 그리폰이 가진 효과였다.

“이 훈장은 자작의 작위와 동일시되고, 그 어떤 죄라도, 설사 반역이라도 한 번의 면책부를 가짐에 사제 몽블랑 예거는 방만히 굴지 말고 몸가짐을 바로 하라.”

“서,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또한!”

아직 끝나지 않은 것에 사람들은 이젠 불안해지기까지 하였다.

“이로도 그 은혜가 부족하기에 금 10억 페니를 하사하니, 사제 몽블랑 예거는 이를 백성들에게 베풀어, 본 왕국 전역에 웃음꽃을 피우도록 하라!”

“명을 받잡사옵니다!”

몽블랑은 이제 제 자신도 얼마가 있을지 모를 통장 잔고에 머리가 혼미해질 지경이었고, 추기경들은 작은 질투심에 몸을 떨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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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이런 공적 치하란 것은 많은 문무 대신들이 있을 때 해야 함에도 가르티안이 그들만 따로 불러 한 이유는 다름이 아니었다.

좋게 말하면 더 이상 진료는 필요 없으니 원래의 자리로 돌아가라는 것이고, 나쁘게 말하면 볼일 다 봤으면 꺼지라는 것이었다.

그런 속내를 짐작하지 못한 그들이 아니었기에 포비아의 아만다 추기경과 율리나의 로네 추기경이 제일 먼저 왕도를 떠났고, 그 뒤를 질투와 시기에 몸부림치는 카만의 바라모스가 따랐다.

알로호모라 추기경은 메조르니아에 있는 지그문트 신전에 칩거하였다.

“실수하셨습니다, 세르.”

메조르니아를 떠나는 마차 안, 베아트리체는 온화함 속에 질책을 담아 세르큐리안을 바라봤다.

세르큐리안은 순간 하얗게 질렸다.

“어, 어떻게?”

“이 대모가 전에 어느 분께 선택을 받았었는지 잊으셨던 겁니까? 세피리안에게 비하자면 턱없이 부족하나 아직 세페스 님의 잔재는 남아 있답니다. 그것이 티끌보다 작다고 하나, 순하신 세페스 님께선 당신을 외면한 못난 종에게도 이리 은총을 베풀어 주신 거지요.”

“……다 알고 계셨는데 왜 막지 않으셨죠?”

“그게 세르를 더욱 강하게 키워 줄 시련이었기 때문이에요. 이번 일은 경험이다 생각하시고, 돌아가시거든 루타니아를 발전시키세요. 이 메조른에서 부는 바람은 제가 보고 읽어 전달해 드리겠습니다.”

“그가 우릴 적대하지 않을까요?”

몽블랑의 능력은 드러난 것도 무섭지만, 왕을 살려 낸 숨겨진 능력도 무서웠다.

그런 이가 독심을 품고 달려들 것을 떠올리니 세르큐리안은 눈앞이 깜깜해지는 것 같았다.

“그가 알아차렸다면 우린 이미 공격을 받고 있을 거랍니다. 걱정 마세요. 그는 아무것도 모르고 있습니다.”

“……미안해요, 대모님. 제가 대모님의 일을 망칠 뻔했어요.”

“다 경험이라 여기시고, 실수를 번복하지 않으시면 됩니다.”

“대, 대모님!”

알로호모라 추기경을 물어뜯을 듯 사나운 모습을 보였어도 그녀는 이제 막 스무 살밖에 안 된 여자였다.

그것도 반생을 루나 교단의 총단에서 떠받들어지며 살아온 온실 속의 화초였다.

그런 그녀에게 이번의 일은 심장이 터지진 않을까 할 정도의 막중한 초조함과 불안함에 몸부림 쳐야 했다.

베아트리체는 안겨 온 그녀의 등을 조심스럽게 쓸어내려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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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네슈 상단은 왕도에서 지부가 있었다.

귀네슈 상단은 카쉬모프 자작가 전속 상담임과 동시에 왕국 5대 상단의 말석을 차지하고 있었다.

단 1년 전만 하더라도 10대 상단의 말석에 걸쳐 있었는데 순식간에 엄청난 세를 이룩하여 5대 상단에 끼어든 것이었다.

그런 귀네슈 상단에서 몽블랑은 귀인 중 귀인으로 취급받고 있었는데, 이번 일로 인해 골칫거리가 되어야 했다.

몽블랑은 찡그려진 아드리아나를 보며 실실 웃었다.

-웃지 마욧! 어떻게 일개인의 예치금이 이렇게 많을 수가 있는데요!

아마 직접 얼굴을 마주 보고 있었더라면 멱살을 잡을 듯이 그녀는 흥분하고 있었다.

“왜 이래? 돈은 많으면 좋은 거잖아.”

-많아도 너무 많으니까 그렇죠! 아, 머리 아파. 당신과 만나고서부터 만날 두통을 달고 사는 것 같아요. 더 이상 이야기 나누다 보면 속 뒤집어질 것 같으니까, 이 아이랑 안부나 나눠요.

몽블랑은 아드리아나가 비켜나고 그 자리를 차지한 루시아를 보곤 눈을 동그랗게 떴다가 이내 그녀의 울먹거리는 얼굴을 보며 작게 웃었다.

“몸은 괜찮아? 가을이라 감기 걸릴 수 있어.”

-전 괜찮아요. 오빠는 괜찮아요? 어디 다친 곳은 없고요? 위험한 일에 휘말린 건 아니죠?

“난 괜찮아. 봐, 봐, 이번에 전하를 살린 덕분에 이렇게 귀족과 동급으로 취급되는 훈장까지 받았는걸.”

-……다행이다. 그런데 왕님을 살리신 거예요? 어떻게요?

“그건 사업상 비밀! 하지만 나쁜 짓으로 살린 건 아니니까, 너무 걱정 마.”

몽블랑은 루시아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시간이 되자 일어설 수밖에 없었다.

루시아가 아쉬워하며 물러나자 아드리아나가 다시 자리를 차지했다.

-거기에서도 학원을 세우겠다고요?

“응. 이제 카우트예도 왕국 전체로 뻗어 나갈 수 있는 방법이 생겼거든.”

아드리아나는 대충 그 뜻을 짐작하곤 경악했다.

“돈도 생겼겠다, 할 수 있을 때 해 버려야지. 학원뿐만 아니라 병원도 설립할 예정이야. 그래서 그런데 세르게이 씨가 데려오라던 사람들은 모두 수배했어?”

-모두 데려왔어요. 병원에 대해 설명해 주니까 단걸음에 달려오더라고요. 안 그래도 지금 병원에서 병자를 받고 있어요. 다 지어지지 않았는데도 말이에요. 당신이 오기까지 기다리라고 말했는데도 기어코 받더라고요.

“아니, 그건 세르게이 씨가 잘한 거야. 쟝 형님에게 안전에 특히 주의해 달라고 말해 주고, 세르세이 씨한테는 혹시 왕도에도 괜찮은 치료사가 있는지 좀 물어봐 줘.”

-알았어요. 이번 건설 건에 관해서는 그쪽의 마틴 지부장과 상의하도록 하세요. 이번에도 귀네슈에서 지원이 들어 갈 거예요. 다만, 이번엔 반절만 해야 할 것 같아요.

“그 정도도 많아. 정말 네 은혜는 잊지 않으마.”

-그, 그거면 됐어요! 그, 그럼 수고해요!

수정구가 꺼지자 몽블랑은 문을 열고 들어오는 마틴 지부장을 바라봤다.

서류를 한 아름 들고 들어오는 마틴 지부장의 입가엔 함박웃음이 지어져 있었다.

“어느 빈민가를 밀어 버리시겠습니까!”

인사고과가 엄청나게 반영될 귀빈에 그는 웃음을 주체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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